▣역 사 서

공 상희 2021. 1. 28. 13:05

주님은 나의 반석입니다. 삼상 2:1-10

 

이 시간에는 주님은 나의 반석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본문은 한나의 기도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 자식이 없음을 인하여 한이 맺힌 기도를,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드렸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엘리제사장을 통해서 축복을 받게 하셨고, 아들 사무엘 선지자를 낳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한나가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한나의 기도 중에 가장 돋보인 부분은, 6,7절입니다. 한나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을 합니다. 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아멘

 

그리고 본문2절에서는, 한나는 자기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세 가지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고.주 밖에 다른 이가 없으며. 우리 하나님과 같은 반석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특별히 자신에게 유일한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반석은 넓고 편편한 큰 돌을 말합니다.

이 반석에 대하여 구약에서는 시편 18:2에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오. ”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약에서는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하십니다. 이 말씀에 주님은 우리의 반석이 되신다 하시는데. 주님이 나의 반석이 되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1.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의미 입니다.

주님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1) 주는 환란으로부터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잠언 30:24-28에 보면,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을 말 합니다.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입니다.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입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메뚜기입니다. 왕궁에 거하는 도마뱀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나오는 것이 사반입니다. 사반은 바위 너구리라고도 합니다. 생긴 것은 비버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사반은 적들이 나타나면, 바위 사이로 피 합니다. 사반이 바위 사이에 숨으면, 사자나 곰처럼 힘센 짐승들도 사반을 잡을 수 없습니다. 바위는 사반에게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환난을 만날 때, 문제를 만날 때, 감당하기 어려운 적들을 만날 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몸에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듣고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며 심히 통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왕하 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하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 시켜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으로부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간청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환난으로부터 피난처이십니다.

 

2) 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출애굽기 33:22-23.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살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허물을 가진 인간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반석 틈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모세를 반석 틈에 두셨고, 하나님의 손으로 모세를 덮으셨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장차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날을 피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대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이기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에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난처이십니다. 로마서 3:23-24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말이며, 좀 더 확대해석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가 됩니다.

그 결과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으로부터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2. 주는 나의 생명이라는 의미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중에 물을 구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을 구하지 못한다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놀라운 사건을 일으켜주십니다.

출애굽기 17: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홍해을 가르던 지팡이를 잡고, 반석 위에 서서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반석을 치니 반석이 깨지며 반석에서 생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반석에서 나온 생수 때문에 죽음을 면했습니다. 반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을 준 것입니다. 여기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날 때 반석이 깨지면서 생수가 흘러넘쳤습니다. 반석의 깨어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수가 필요할 때, 오직 반석을 통해서 생수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은, 메마른 사막보다 생명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사람 속에는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생수의 강 때문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반석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3. 주는 나의 기반이라는 의미 입니다.

식물은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포아폴은, 사막이나 황무지 어디서나 자라는 풀입니다. 이 풀은 겨우 5의 작은 키를 가지고 있지만, 뿌리는 전체 길이를 합하면 600가 넘는다고 합니다.

겉은 보잘 것 없지만, 뿌리는 땅 속 곳곳을 장악하며 물을 빨아올립니다. 그래서 포아폴은 어떤 척박한 토양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기반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기반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십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 반석 위에 세우십니다. 이 반석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반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처럼, 성도 개개인의 신앙의 기반도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여의도는 모래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63빌딩을 지었습니다. 모래사장 위에 63빌딩을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모래 속에 어마어마한 암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지을 때는 기반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었어도 기반이 약하면 무너집니다. 그래서 튼튼한 기반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724~27에 보면, 신앙의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짓는 집은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견고하게 서 있지만. 반면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기반이 부실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고난이 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신앙인들이 쉽게 시험에 들고 자주 흔들립니까?

그것은 신앙의 기반이 잘못 되었기 때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행위나 공로가 신앙의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신앙은 문제가 발생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분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환난이 와도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신앙의 기반이십니다.

 

4. 주는 나의 동반자라는 의미 입니다.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하십니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 음료는 반석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합니다. 그런데 그 반석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는 반석이었습니다. 여기서 함께 라는 말은 함께 가다, 동반하다는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수를 주었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으며,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다니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과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하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동반자이십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갖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믿음을 갖고 평안을 누리는 2021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이 믿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주는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주님은 환란으로부터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심판으로부터 피난처이십니다. 그리고 주는 나의 생명이요. 주는 나의 기반이요. 주는 나의 동반자이십니다.

이 반석이 되시는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 오실 때 까지, 늘 함께 하시기를 예수 이름을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