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5 경

공 상희 2021. 3. 20. 15:25

제사장의 축복과 우리가 받아야 할 복/ 민수기 6:24-27

 

이 시간에는 제사장의 축복과, 우리가 받아야 할 복,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40년 동안 인구가 줄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순종 하다가, 20세 이상은 전부 죽고, 두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모든 지파가 자연스럽게 인구가 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와 유다지파의 인구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그 이유는 레위 지파는 성막을 관리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지파였고, 유다 지파는 광야 행진 때 제일 앞장서서 행군하며 어려운 일은 도맡아서 했던 지파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하나님일 하되, 앞장서서 복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레위지파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유다지파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본문은 제사장의 축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제사장 가문을 이룬,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말하라고 하시면서. 24-26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빌 복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7절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신구약 성경을 푸는 중요한 열쇠 중에 하나는, 그림자와 실상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실상을 보여주는 그림자고, 신약은 구약의 그림자가 보여주는 실상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은, 이 시대의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고, 구약의 성민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이 시대의 성도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을 제사장을 통해 축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곧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복 입니다.

24절에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24절에서는 원하며’, 25절에서도 원하며’ 26절에는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을, 저와 여러분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도 못했던 복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은 나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믿으시고, 늘 믿음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나님이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복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복이다.믿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축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복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지키시는 복입니다.

24절에서 제사장은 주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여기서 지키다라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친다.’라는 뜻입니다. 가시로 담장을 친다는 말은, 대적들로부터 지켜주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수 마귀로부터 지켜주십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성도를 멸망시키려고 갖은 수법을 다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신앙의 큰 도전을 만났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거의 30m에 육박하는 엄청난 금 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우고 낙성식을 했습니다.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낙성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음악 소리가 나면, 우상 앞에 절해야 해야 하지만,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라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는 그들의 정적들을 통하여, 왕에게 그들을 고소하게 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우상에게 절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풀무불 속에 들어가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만들었고, 그들을 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불이 얼마나 뜨거웠든지 그들을 불에 집어던지던 병사들마저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 속에 주님이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더 높은 자리에 앉혀주었습니다. 주님이 마귀가 시험하는 불속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럼 오늘날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지키심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애굽 군대는 치시고, 이스라엘은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날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것을 경고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양을 잡아서 그 고기는 먹고 피는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에 죽음의 천사들이 애굽 전역의 장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때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갔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어린 양의 피로 보호를 받았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우리를 보호합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마음의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는 현세에서도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믿음의 사람들을 보호해 줍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안팎으로 역청을 발랐습니다. 그 결과 홍수가 나서 물이 범람할 때, 노아의 방주는 물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역청은, 예수님의 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역청이 홍수로부터 방주를 보호한 것처럼, 주님의 보혈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나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교회를 주의 보혈로 덮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는 사자처럼 역사하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나와 가족들과 교회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을 가려서 그늘이 생기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의 추위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온갖 환난과 문제로부터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2. 은혜의 복입니다.

25절에 보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개인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 얼굴을 너희에게 비추사라고 말하지 않고, 네게 비추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구원 받지 못하면, 심판 받아 영원한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하십니다.

사람은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떠난다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 베푸시는 얼굴인데, 하나님의 얼굴을 떠나면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고, 그 결과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을 명문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아들 이삭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손자 야곱도, 증손 요셉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이 명문가가 된 것은, 대를 이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강대국이 됩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평안하여 든든히 서갑니다. 우리가 어떤 단체에 속해있든지, 그 단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은혜를 입는 것은 논에 물을 대는 것 같습니다. 물 없는 논은 모내기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종을 심어도,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듯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리는 은혜로 생명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진리를 들을 때, 은혜가 임하여 그 진리를 믿어서 생명을 얻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듣고도 강퍅하게 반응해서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이 강퍅했던 이유는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격언 가운데 젖소는 물을 마신 후에 그 물로 아름다운 젖을 만든다. 그러나 뱀은 물을 마신 후 그 물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젖소는 우유를 만들고, 독사는 독을 만듭니다. 이처럼 성도 중에 같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있으면 구원과 생명이 되지만,

은혜가 없으면 구원도 생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평강의 복입니다.

26절에서는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말씀합니다. 평강은 샬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평화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경과 상관없이 평강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평강은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하십니다. 성령 안에 진짜 평강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환경을 초월하는 평강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 결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의 평화가 사라집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인디언들에게는 재미있는 풍습이 하나 있습니다. , 분노로 소리 지르고 싶을 때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가서 구멍을 파고 엎드려 소리를 지르고 실컷 욕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리고서 흙으로 구멍을 덮고 돌아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울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평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지키시는 복과, 은혜의 복, 그리고 평강의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의 종의 축복을 통해서, 그런 복들을 주십니다. 27절에 보면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옛 히브리 학자들은 복을 주시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있고, 제사장은 그 입을 대신하여 전달하는 것이라 하여 제사장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경시하지 말찌니라 했습니다.

 

예배의 순서 가운데 축도가 있습니다. 축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목사가 주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복을 빌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시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많은 일을 하지만,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성도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고, 성도들을 위하여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사를 통해서 공급되는 생명의 양식과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축복하는 목사가, 중심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축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가 도저히 마음껏 복을 빌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성도는 주의 종의 축복을 통해서 어떤 복을 받아야 할까요? 1. 지키시는 복입니다. 2. 은혜의 복입니다. 3. 평강의 복입니다. 이런 복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