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부활절

공 상희 2021. 3. 30. 19:54

주 부활이 회복시키는 것들 요한복음 20:19-21

 

이 시간에는주 부활이 회복시키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저녁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믿음을 강조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켜주시고 싶으신 것들이 무엇일까요?

 

1. 두려워하는 자에게 평안을 회복 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는데, 19절에 보면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두려움 가운데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시며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셨습니다.

 

26절에 보면. 8일 후에도,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도마와 함께 있었는데때도 역시 제자들은 문들이 닫고 있었습니다아직도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서셔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평강과 담대함을 회복시켜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이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의 내면의 평강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내면의 평강은 사실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화목할 당시에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완전한 내면의 평강을 누렸습니다그런데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는, 내면의 평강을 잃어버렸습니다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시자 아담은 두려워 에덴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세기 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있을 때는 평강을 누렸습니다반대로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지자. 내면의 평강을 잃어버렸습니다내면의 평강의 비결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다윗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입니다. 시편 3:6을 보면.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놀라운 평강이요대단한 담대함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담대함과 평강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앞 절 시편 3:5을 보면.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합니다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잠도 잤고, 이제는 일어나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여호와께서 자기를 붙들고 계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만큼 하나님과 화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두려움으로 떠는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어떤 사람어떤 질병어떤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므로 내면의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저와 여러분은 내면의 평강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2.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을 회복 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그 중에 가장 큰 감정이 절망감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었을 것입니다그렇게도 믿고 따랐던 주님께서, 허망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그들의 마음이 슬픈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시자. 제자들은 슬픔이 치료 되었고 기쁨이 회복 되었습니다.

20절에,“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합니다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비시고, 그 다음으로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그러자 제자들은 그제야 주가 살아나심을 믿고, 마음에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본문 앞부분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이 나옵니다.  여자들이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뉘었던 곳에 앉아있었습니다그리고 여인들은 자신들의 뒤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마음에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만난 후에는, 큰 기쁨이 생겼습니다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은 슬퍼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주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슬픈 자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십니다여기 보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가 나옵니다그 중에 첫 번째가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평강을 회복하는 비결이 하나님과 화목이었던 것처럼, 픔을 이기고 항상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 역시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주님과 관계가 회복될 때 기쁨이 회복 됩니다하나님과 화목해야 기쁨이 회복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다른 말로는 성령 충만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희락의 영이십니다성령님은 기쁨을 주시는 영이십니다그러므로 성령 충만할 때 슬픔이 있는 사람에게 기쁨이 회복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증거 중에 하나가 쉬지 않는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하면 기쁨이 회복됩니다기도 응답을 받으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기도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하나님과 화목하니 기쁜 것입니다.

 

3. 사명을 버린 자에게 사명을 회복 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사명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주님은 그들이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21절에.“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셨습니다아버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제자들은 사명이 회복 되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도, 자신들의 사명을 내팽개쳤습니다요한복음 21장에 보면, 7명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니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자라고는 갈릴리로 가서 배에 올랐습니다

그 날 밤에 그들은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시고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예수님과 제자들은 구운 생선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아침식사 후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째 같은 질문을 하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대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베드로가 버린 목양의 사명을 말씀하십니다부활하신 주님은 사명을 잃어버린 베드로가 사명을 회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위하여 삽니다사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모든 사람에게 있는 보편적인 사명이 있고각 개인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사명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사명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사명 중에서 중요한 것 4가지만 말씀드리면.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예배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그래서 마귀는 세상 권력으로 예배를 막는 것입니다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중보기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중보기도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세계와 열방을 위하여나라와 빈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우리는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하여, 가정을 위한, 또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 사역자들입니다.

전도와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는 전도와 선교입니다우리는 이웃과 나라와 땅 끝가지 복음을 전할 사명자입니다.

섬김입니다. 마태복음 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사명은 예배와 기도와 선교와 섬김입니다.

 

2) 각각의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

각각의 그리스도인이 받은 사명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사람이 방황하는 인생을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첫째는 사명을 발견하지 못해서 방황합니다둘째는 사명을 발견했으나 사명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기 때문에 방황합니다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사명대로 살려는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으나 무엇이 사명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래서 사명이 무엇인지 몇 가지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르심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라고 부르시면, 그것이 사명입니다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고 부르셨고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데리고 들어가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물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모세는 출애굽이 사명입니다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과 정복이 사명입니다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사명입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모세처럼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사명을 주실 수도 있고, 여호수아처럼 자기가 의지를 가지고 성막에 거하다가 사명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그래서 예배에 힘을 써야 하고 기도에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직분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명입니다경찰은 치안의 사명이 있습니다소방관은 화재진압의 사명이 있습니다군인은 국방의 사명이 있습니다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목사는 목회의 사명이 있고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를 보조하는 사명이 있습니다장로는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를 치리하는 사명이 있습니다여러분은 무슨 직분을 받았습니까직분을 받은 그것이 사명입니다

 

능력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졌다면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그게 사명입니다

 

관심사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남달리 내게만 더 관심이 가는 일이 있습니다그것이 사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유독 내 관심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 사명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목회하고 연결을 해서 생각합니다저의 최대의 관심사가 목회이고 제 사명이 목회입니다길을 가다가 멋있는 건물을 보면 ‘교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제 관심사가 교회이고 제 사명은 목회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사람이 회사에 들어가면 보직이 주어집니다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의 보직에 맡게 일해야 합니다인생도 그렇습니다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그 일은 단기적인 사명일수도 있고, 장기적인 사명일 수도 있습니다정말 잘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 일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만남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이 회복시켜 주고 싶으신 것은, 두려워하는 자에게 평안을 회복시켜주고,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을 회복시켜주고 사명을 버린 자에게 사명을 회복시켜주시기를 원하십니다.

2021년 부활절을 맞아 저와 여러분도 주님이 우리에게 회복되길 원하는 일에 힘써 깨닫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