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5 경

공 상희 2006. 7. 31. 15:49
레위인의 봉사 (민 4:4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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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의 봉사 (민 4:46-49 )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터득해 갑니다. 그중에 하나가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또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힐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안하려고 한다고 해서 윽박지르면서 매를 들고 먹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이구 우리 ⼑⼑이는 약도 잘먹지, 옆집에 ⼑⼑이는 약도 못먹는다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말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도 꼭 들어가는 것은 아이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는 이것도 못한다더라는 말을 함으로써 '아하 내가 이것을 하면 다른 아이보다 더 잘하는 것이 되는구나'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도 칭찬과 나는 다른 아이하고는 다르다는 차별의식에 힘입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인정해 줄 때 더 잘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이 나를 인정해주는 일에는 신바람이 나서 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항상 칭찬받고 대접받고 인정받는 자리에 있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대접하지 않을 때는 반발을 하게 됩니다. 뭔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대접을 받게 되면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에 하는 말은 '교회가 왜 이러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교회를 나오는 신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교회를 나오게 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회를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으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유익을 제공해 줌으로서 자기 교회에 계속 붙들어 놓고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레위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우리가 있는 자리는 레위인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레위인의 자리란 한마디로 모든 칭찬과 대접받는 것을 포기한 자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있는 자리도 아니고 큰 뜻을 품고 있는 자리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부르셔서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있을 뿐입니다. 레위인의 자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신자다운 모습을 보여 가지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겠다는 꿈도 없고, 우리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레위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소망도 없습니다. 우리가 레위인의 자리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성도로 부르셨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레위인의 자리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우리가 레위인으로 살아갈 때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맙시다. 가령 내가 레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김과 희생을 보이면 안믿는 남편이 감화를 받아 가지고 교회를 나오게 될 것을 기대한다거나, 직장에서 불신자가 나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다거나,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레위인의 자리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결국에는 '잘한다 잘한다'하니까 더 잘하려고 애쓰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레위인의 자리란 섬김과 헌신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설교가 좀 어려웠는지 모르겠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레위인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것은 레위인만의 봉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해야할 봉사를 레위인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레위인을 보면서 '저 헌신은 바로 나의 헌신이다'는 것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레위인은 이스라엘에게 헌신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약식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인 섬김과 헌신을 보면서 저 섬김과 헌신은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예수님께서 대신하셨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주님의 희생과 섬김이 곧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고 그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레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도 내가 레위인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말씀으로 점검을 받지 아니하면 자신이 잘못된 자리에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과 자리를 확인하면서 레위인의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런 사람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사실 신자는 부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고서 신자로 살아갈 수 없지만, 이 은혜를 안다고 해서 그 은혜에 주저앉아 날마다 나를 불러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말만하고 있다면 그 역시 잘못입니다. 부름 받은 은혜를 안다면 왜 나를 부르셨는지,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그 뜻에 살기를 원하는 것이 진짜 신자된 모습입니다.


오늘은 레위인의 봉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린 '봉사'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교회를 위해서, 혹은 형제를 위해서 내가 헌신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내 몸을 쓰고, 돈을 쓴다는 것을 봉사라고만 생각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봉사하라고 하셨다면 그것도 모두 남을 도와주라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이해해 버립니다. 물론 봉사는 남을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봉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봉사를 하면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레위인의 봉사를 좀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레위인이 회막에서 봉사하듯 우리도 교회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합시다는 얘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봉사합시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봉사하는 사람이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봉사가 짐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기는 싫은데 안하면 봉사를 안하는 신자가 되고 하자니 싫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봉사라는 것이 큰짐이 되어버리고 고민거리가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김과 헌신은 짐이 되어서도 안되고 고민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섬김과 헌신은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신자만이 보일 수 있습니다. 봉사가 짐이 되는 경우는 '내가 저걸 안하면 신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때입니다. '내가 저 일을 안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이런 생각들이 봉사를 짐이 되게 하고 고민거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타인의 시선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를 잃어버린 상태이고 그런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해봐야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하는 일이 되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타인이 자기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을 때 마음에 큰 섭섭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회막에서 일하게 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봉사를 어떤 정신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린 보통 봉사를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즉 내가 해야 하는 일로만 생각하고 그쳐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봉사는 비록 그 일이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지만 봉사를 통해서 배우는 자는 둘 다입니다. 앞서 레위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이스라엘은 레위인의 헌신을 보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레위인은 이스라엘에게 섬김과 헌신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으로 그쳐버립니까? 그러면 레위인은 단지 섬김과 헌신을 보여주는 도구이고 레위인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오늘날 신자들이 봉사를 한다고 하면서 이 부분을 지나치기 때문에 스스로 큰 잘못에 빠져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부름을 입어서 회막의 일을 명령받았다면, 그리고 그 일이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는 일이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보면서 뭔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도 배울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봉사를 내가 남에게 베푼다는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봉사를 하라고 하신 것은 그 봉사를 통해서 자신이 뭔가를 배우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내가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배우는 것이 없는 봉사를 하니까 자꾸 내가 남에게 베풀었다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랑으로 가게 되겠죠?


설교를 할 때 성도들이 버려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나는 다 안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 얘기를 또 뭐하려고 하나'이런 생각을 가질 때 여러분은 진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설교가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면 다 아는 얘기를 하면 안됩니다. 항상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설교란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새로운 것, 들어보지 못한 말을 가르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나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말씀을 들을 때 배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가장 많이 받는 유혹은 뭔가 새로운 말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함으로서 성도들의 인기를 얻어보려고 하는 유혹이 설교할 때마다 있게 됩니다. 다 아는 말을 하면 성도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말을 하고 들어보지 못한 말을 했을 때 그 결과는 이단으로 빠지는 것이었음을 아십니까? 새로운 말, 들어보지 못한 말은 사이비, 이단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말은 없습니다. 날마다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새롭다는 것은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한다는 것이지 말씀의 내용이 날마다 새롭게 달라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도 새로운 말을 기대하고 나오셨다면 여러분은 이 설교를 들으면서 '다 안다. 아는 얘기를 또 하나. 귀따갑다'라는 생각만 하다가 돌아가게 될 것이고 결국 배우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이 과연 아는 것만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은 지식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안다고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박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이 박힌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 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까? 결국 다 아는데도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다시 한번 깨우치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날마다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삶의 환경과 여건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배우는 교육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실습현장이라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의 현장은 결코 여러분의 호의호식을 위한 조건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우기 위한 교육현장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염려와 걱정보다는 이 일을 통해서 나는 성경을 잘알고 하나님도 잘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전도도, 봉사도, 헌금도,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배우기 위한 일로 여기셔야 합니다.


평소에 아무일 없이 살 때는 설교에 고개 끄덕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외치고, 걱정 근심하는 사람을 보면 '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어려움이 생기므로 인해서 자기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민수기 4장은 레위인들이 회막의 일을 분담 받는 내용입니다. 레위지파는 고핫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각각 분담을 시켰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회막의 기구를 메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단지 회막의 일을 효과적으로 하도록 하기 위해서 레위인의 일을 분담하고 조직적으로 일을 시키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보통 일을 분담할 때는 불평을 하는 자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나는 왜 이런 어려운 일을 맡기느냐' '누구는 귀한 일을 하고 누구는 천한 일을 해야 하느냐'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레위자손들도 각자 맡은 일이 달랐습니다. 똑같이 어깨에 회막의 기구를 메는 일이기는 하지만 누구는 무거운 것을 멜 수도 있고, 누구는 가벼운 것을 멜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구는 증거궤, 상, 등대 같은 귀한 것을 멜 수도 있고, 누구는 널판, 말뚝, 줄 같은 하찮은 것(물론 성막의 기구에 귀하고 하찮은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예배당에 강대상은 귀하고 의자 같은 것은 덜 귀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을 메느냐는 불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선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을 일을 위해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레위인들이 회막의 일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고 그 배운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레위인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일은 각기 다르지만 서로 다른 사람의 일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도록 부름 받은 자라는 것을 평생을 회막에서 일하면서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 교육을 받기 위해서 레위인은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신자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서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욕심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섬기고자 힘쓰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레위인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레위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결국 자기도 배워가는 것이지요. 내가 이런 일을 해서 남을 가르치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이 일을 함으로서 내가 배운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결국 그 사람은 봉사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섬김과 헌신을 배우게 될 것이고, 헌금을 하면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열심히 주님을 바라보는 삶으로 보여지고 결국 그들도 주님을 배우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봉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봉사는 내가 배우기 위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빠지면 봉사는 결국 자랑으로 나타납니다.


회막봉사에 계수함을 입은 자가 8,580명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일에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벗어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싸움을 하면서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돈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도 배우고 또 보여주라고 부름 받은 여러분입니다. '다 안다'라고 하지 말고 배우는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회막의 기구를 메면서 '우리는 세상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다'는 것을 배우는 것 같이 여러분 자신도 하나님을 배우고 십자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부름 받았다는 것을 배우십시오. 봉사를 하면서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봉사를 하도록 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노력을 가지고 남을 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만큼 되었다는 것을 배우라고 봉사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봉사합시다.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