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공 상희 2006. 8. 8. 12:06

예전에 학교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간을 위해 영원을 버리지 말자! 영원을 위해 순간을 참자!” 이 말은 고3이었던 우리들에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저도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순간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오늘날 이 사회에 던지는 간절한 충고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에서 비교하는 것을 네 가지로 분리하면, “겉 사람-후패함. 육에 속함. 옛 사람. 속사람-날로 새로움. 영에 속함. 새 사람. 환난-잠간이다. 현세적이다. 경하다. 작다. 영광-영원하다. 미래적이다. 중하다. 크다.” 입니다.
몇 일전에 고 김선일씨의 비보를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이라크 선교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 왔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유가족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실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낙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낙심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적잖은 영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나라에 있는 이라크 사람들이 걱정됩니다. 어느 소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안되고, 또 ‘이에는 이’라는 의식으로 똑같이 보복을 한다면 진정한 신앙의 자리는 잃고 말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한 사람의 비보에는 슬퍼하면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비보에는 우리가 너무 냉랭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자신을 해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새로움 때문입니다.(16절)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10년 전에 죽어간 사람들의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6월이 지나면 7월이 새롭게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새로움의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힘들다고 괴롭다고 낙망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저도 질병이 발생한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너무나 빠른 시간들이었습니다. 낙망하고 좌절 속에 있었다면 저는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서질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맘이 낙심 될 때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수련회 장소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강릉에 가니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 되었지만 기도했습니다. 비가 그치도록. 하나님은 살아계심이 또 입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해에 가니까 날이 점점 밝아져 해가 방긋 고개를 내밀더군요. 얼마나 감사한지. 바다를 보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바다는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폭풍 중에도 바다는 늘 제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몰려와서 그 물결이 바위에 부딪혀도 바다는 그 아픔을 모두 뒤로 하고 자기의 자리를 늘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이들에게 새로운 바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안 믿는 자들에게 바다와 같은 새로움을 비추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후패하다는 것은 헬)‘디아프데이’로 ‘점점 파괴되어 없어지는 상태, 점차로 없어져서 죽어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새롭다는 것은 헬)‘아나카이노오’로 ‘다시’라는 뜻으로, 성도의 성화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파괴되고 넘어지더라도 그 아픔을 이겨낼 때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다가옴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2. 영광 때문입니다.(17절)
육상 선수시절 저는 가을의 대회를 위해서 봄부터 열심히 뛰고 뛰었습니다. 밥을 굶어가며 뛰었습니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밥 먹을 때 물로 배를 채우며 뛰었습니다. 어쩌면 배고픔을 잊으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100m를 10초38로 뛰었을 때 제게는 큰 영광의 시간이 되었고, 힘들었던 순간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힘이 들수록 우리는 전진해야 합니다. 환난은 경한 것이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땀을 흘린 자에게 부는 바람은 너무나 시원합니다. 애쓰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그 결과는 더욱 의미가 클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영광을 위해 순간을 참아 내길 바랍니다.
3. 영원함 때문입니다.(18절)
우리의 돌아보는 것(헬-스코푼톤)은 소망을 두고 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하다면 너무나 슬플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인들도 극락의 세계에 들어가려 하고, 많은 다른 사람들도 내세의 축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국이라는 구체적인 내세가 있음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에게는 큰 기쁨임을 감사해야 합니다. 순간을 위해서 영원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영원을 위해서 순간을 참고 잘 견디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새롭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순간을 잘 참아 내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