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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5. 10:24

계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기린봉 등산길 돌계단은 돌과 시멘트를 섞어서 쌓았다. 기린의 목처럼 기다란 능선길을 언제 누가 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정상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만약 이 계단이 없었다면 자연은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계단을 오르면서 계단의 수를 센다. 어느 날은 천 개였다가 다음 날에는 다시 세면 몇 개가 모자란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면서도 속셈으로 수를 세면 힘든 걸 잊기에 매일 계속한다.

처음에는 열 개 단위로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백 단위가 되면 왼손가락을 꼽는 식으로 세다보면 힘든 줄 모르고 정상까지 도달한다. 해발 271미터지만 계단은 시작부터 정상까지 이어졌다. 전주8경 중 제1경이 기린토월(麒麟吐月)이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쯤에 잠시 숨을 고른다. 매일 아침마다 세다 보면 일 천 개가 못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는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다른 길을 통해 정상에 오른다. 나는 계단으로 올랐다가 내려 올 때는 평지로 내려온다. 계단을 쌓은 석수장이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서 오르내린다. 만약 계단을 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능선은 패이고 무너져 제 모습을 간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사람의 한 평생도 이처럼 힘든 고비가 있으려니 싶다. 또 위계질서가 있다. 한 계단 윗자리에 있다고 아랫사람을 막 대하는 사람도 있다. 신라의 현군(賢君)으로 일컬어지는 경문왕이 왕자때 좋은 일 세 가지를 보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입니다."

이 말의 요체는 섬김이다. 계단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사람도 계단처럼 위, 아래 구분하여 자기의 직분만 충실히 하면 될 터인데 한 계단 위에 있다고 권세를 휘두르려 한다. 계단은 위에 있지만 아래 계단에게 권세를 부리지도 않고 제 위치를 지킨다. 오히려 아래계단이 튼튼해야 위가 무너지지 않기에 아래를 더 튼튼히 한다. 아침 등산길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람도 위, 아래 각자 본분을 다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단은 나에게 수고로움도 주지만 나에게 깊은 깨달음도 준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운동효과가 크다. 요즘은 춥기도하고 코로나19로 비대면이라 내가 사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있다. 23층 까지 오르고 내려올 때는 승강기를 이용한다. 라디오를 들으며 2회정도 오르다 보면 춥지도 않고 운동효과도 좋다. 헬스장도 폐쇄되어 등산하는 효과도 있다. 매일 아침마다 오르니 참 좋다.

(20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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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5. 05:59

 



어머니와 솥뚜껑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이 세상에서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통통 불은 젖을 부끄럽게 내밀어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려 젖을 먹이면서 서로 눈을 떼지 않고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이다. 오래전에 공주 석장리박물관에서 세계 유명 선사(先史) 유적지에서 출토된 여인들의 조각상을 대여하여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마디로 어머니는 지모신(地母神)으로 모성, 생식능력, 창조성, 또는 대지의 풍부함을 상징·대표하는 여신이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영원한 사랑에서부터 부엌을 빼놓을 수 없다. 부엌의 각종 조리 도구에서 필수적인 솥단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양은 달라도 용도는 같다. 그래서 솥단지는 조왕신(竈王神)처럼 부엌을 지키며 어머니의 정성과 손때가 가장 많이 남은 물건으로 인류의 식생활과 같이했다.



가마솥에 장작불로 밥을 짓던 할머니의 부엌, 연탄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어머니의 부엌, 최신 가전으로 꾸민 며느리의 현대 입식 주방에서는 늘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장소이다. 그래서 부엌에는 솥단지가 항상 있고 그 솥단지의 솥뚜껑이 있다.



인류가 살았던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출산, 육아, 길쌈 그리고 취사(炊事)의 업무로 가정에서 어르신을 모시며 어린 자녀들의 생계를 꾸려왔다. 모성애의 본능은 모든 동물 세계에서 공통된 속성이다. 언제인가 포수(砲手)에게 총을 맞고 창자가 튀어나온 채로 피를 흘리던 어미멧돼지가 새끼들을 끝까지 보호하다 애처롭게 죽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새 중에서 까마귀는 효조(孝鳥)로 알려져 있다. 어미는 먹지도 못하고 새끼들만 거두다가 새끼 까마귀들이 날갯짓을 할 때쯤이면 영양실조에 걸려 실명(失明)된다. 그러면 새끼는 먹이를 물어다가 어미 입에 넣어준다고 ‘반포지효(反哺之孝)라 하여 자오(慈烏), 효조(孝鳥), 반포조(反哺鳥)라 했다. 그뿐이랴, 회귀성(回歸性) 물고기 연어도 새끼들을 낳기 위해 자기가 태어난 곳을 끝까지 찾아가 알을 낳을 때는, 온몸의 살덩어리는 너덜너덜하며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눈은 먼 하늘을 보면서 마지막 숨을 쉬는 아가미등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동물들의 모성애 장면들이다.



조물주가 여자에게 남자보다 더 긴 수명을 준 것은 끝까지 새끼들을 보살피고 키워야 한다는 숙명이 아닐까? 요사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어머니가 안 계신 가정의 어린이들을 보면 간혹 뿔뿔이 헤어져서 안타깝게 사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현대 사회는 의식주 중에서 의와 주는 맞춤형 방식에 의해서 해결되지만, 그래도 가족의 식사는 동서고금 모두가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마음과 따뜻한 손길로 솥단지에서 지은 밥과 반찬으로 식구와 더 나아가 인류를 건사하고 있다.



그 옛날은 밥 지을 때, 땔감도 넉넉하지 않아 청솔개비를 아궁이에 몰아넣고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불을 지폈을 그때, 청솔개비 연기가 매워서인지 시집살이가 서러워서인지 어머니도 솥뚜껑도 같이 울어 부뚜막은 언제나 눈물로 질퍽했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들은 한 많은 세월을 부뚜막과 솥뚜껑의 그을음처럼 속이 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양은솥에 뚜껑은 나무 널빤지로 둥글게 만들어 중앙 부분에 각목 두 개를 고정해서 손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옛날 시골에서 겨울에 꼬마들이 탔던 얼음 썰매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게다(일본 나막신)는 일본인들이 즐겨 신는 나막신의 일종이다. 일본의 게다는 신발 밑창 모양과 같고 크기는 조금 크게 널빤지를 자르고, 게다 굽은 두툼한 각목을 붙여 만든 나무 신발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야외(野外) 활동이나 기타 긴급히 이동할 때 솥뚜껑은 필요 없고 솥단지만 가지고 가며 솥뚜껑은 게다짝 한 켤레만 벗어서 뒤집어 덮으면 된다며 편리성을 자랑한단다. 얼마나 비위생적인 발상일까?



우리나라의 솥뚜껑은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이다. 가마솥 뚜껑을 세워서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어머니의 젖가슴이다. 우선 솥뚜껑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젖을 빨던 어머니의 젖꼭지(가마솥 뚜껑의 손잡이)를 중심으로 형상화하여 어머니의 은혜를 하루 세 끼 식사처럼 고마움을 잊지 않으며 평생 생각하고, 효도하도록 영구불변의 철주물(鐵鑄物)로 만들었다.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젖을 빨던 어머니의 젖가슴이 형상화했으며, 조금 자라서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가마솥에서 식사를 지어서 한평생 먹여 살리고 있다. 이렇게 솥뚜껑까지 어머니의 자애(慈愛)와 자식의 효(孝)를 생각하게 했으니 얼마나 어머니의 사랑과 효를 중시했던 민족인가? 세상에서 어머니의 젖꼭지를 형상화하여 솥뚜껑을 만든 민족은 동방예의민족인 우리뿐이다.



독립된 어머니만의 공간이었던 부엌 속의 부뚜막에 있던 가마솥은 사라지고 대신 열린 공간의 싱크대(sink臺) 위에 전기밥솥이 있는 게 요즘이다. 어머니 사랑의 증표였던 가마솥이 이제는 시골집 사랑방 부엌에서 군불 때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여 그 옛날 어머니가 더더욱 그리워진다.

(2021, 1. 14. 정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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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4. 17:04

 



합평회 유감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이건 시가 아닙니다. 다시 써 오세요."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사님이 내가 쓴 시를 보고 이렇게 말하고 합평을 끝냈다. 문창과 학생인데 합평 시간 때마다 참 거시기하다. 합평이 끝나고 만찬이라는 음식점에서 파티가 있었다. 본인의 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글 또한 꼼꼼히 읽어 와서 열심히 합평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합평 시간에 조금씩 손 본 본인들의 글들을 다시 수정해서 카페 ‘합평 수정방’에 직접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모두가 합평에 대한 검색 글이다.


L 시인’은 초창기 시를 쓰던 시절 합평 시간에 겪은 고충을 한 편의 시로 남겼다.




‘날카로운 세 치 혀 예리한 판단에/ 얼어붙은 공기/

파르르 떨리는 심장/ 시의 영혼 깊은 곳/ 해부당할 때/

폐부를 찌르는 눈물로/ 가슴은 멍들고/ 시인의 영혼 칼질당한다/(중략)





수필의 합평 시간도 그렇다. 이제 입문한 신입생 작품은 선배로부터 지적이 많다. 반면에 등단도 하고, 수상도 한 연륜이 있는 작가에게는 칭찬만 있을 뿐이다. 나도 그랬다. ‘ㄲ’복지관 수필 반에서 공부할 때다. 그곳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다. ‘K 지도교수님’은 나의 작품을 교재로 올려놓곤 했다. 문장부호에서 맞춤법, 띄어쓰기, 단락 나누기 등 모든 부분에 지적이을 받았다.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으로부터도 지적을 받았다. 나는 그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문재인 대통령’을 ‘문제인 대통령’으로 착각했다가 ‘똑바로 알고 쓰라’며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그 뒤에도 내 작품은 교재로 자주 올라왔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 작품은 작품성은 없지만, 수필교재로는 최고입니다.”


모두가 큰 소리로 웃으며 합평회를 마쳤다.


합평은 각자가 빚어낸 도자기를 모두에게 평가받는 한마당 축제다. 숙련된 도공은 흠이 없이 매끈한 도자기를 내놓겠지만, 초보자는 볼품이 없는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실력이 갖춰진 뒤에 내놓고 싶지만, 글은 무엇이든지 써봐야 실력이 쌓인다고 하니 미완성 작품도 선보일 수밖에 없다. 아니 미완성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완성작품이다. 하루아침에 어떻게 장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선배들도 새내기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때 받았던 설움을 되갚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나도 수필을 배운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지금도 합평 시간이면 마음을 상한다. 글도 그렇다. 어느 때는 내가 봐도 좋은 글을 썼다고 생각되지만 어느 때는 아니다 싶을 때도 많다. 좋게 표현하면 귀담아듣지만, 작품도 내지 않으면서 남의 작품을 보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듣지를 않았다.

“이 나이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런 합평 뒤에 일주일 이상 글쓰기를 멈춘 때도 많다. 글이란 게 참 묘하다. 쓰면 쓸수록 어렵다.


내가 합평시간에 눈여겨 보는 ‘K 작가'가 있다. 그 분은 시각장애인이지만 영혼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다독하여 박식하고 항상 한 차원 높은 작품을 내놓지만, 다른 문우님의 작품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작가가 처한 위치나 환경까지도 혜안으로 바라본다. 이 글은 선생님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며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분의 평가는 칭찬이 전부다. 내 글을 보고 본인이 수정한 부분을 기록하여 아무도 모르게 전한 중견 작가분도 계신다. 그 분도 참으로 훌륭하다. 또 한 분은 ’H 작가‘다. 이분에게도 합평은 칭찬의 시간이다. 칭찬을 하기 위하여 합평할 작품을 몇 번씩 읽고는 세밀하게 메모한 노트를 보며 칭찬을 한다. 그는 작품을 쓴 작가보다 내용을 더 깊이 알고 있다.


나는 ‘K 작가님'과 ’H 작가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먼저 단락별로 칭찬할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내가 체험하지 못한 소재도 메모하여 합평 준비를 했다. 작가의 주제 선택에 대하여 칭찬을 해주고, 다른 의견이 있을 시에는 “제 생각에는 이런 부분은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심스럽고도 겸손하게 내 생각을 전하면 상대방도 납득하고 표정이 밝다.


어느 심리학자가 분야별 전문가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수학자는 '덧셈' 부호라고 했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답하는가 하면, 교통경찰은 '사거리' 라 했고, 간호사는 '적십자' 마크라고 했단다. 모두가 맞는 답이다. 단지,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았다고 다른 사람의 입장은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판단한 것이다. 그는 실험 결과 이런 결론을 냈다고 한다.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고. 그러니 누구나 틀림은 없고 다름만 있을 뿐이지 않은가?



합평은 누구에게나 수필을 배운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합평으로 인하여 수필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갈등이 생겨서도 안 된다. 비록 글을 잘 쓰지 못한다 해도 다른 부분에는 상대방보다 잘하는 게 있지 않은가? 누구나 어느 부분에는 스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호르몬 중에 ‘엔돌핀’보다 5,000배나 강력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게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 몸에 생성되는 '감동 호르몬'이라고 한다. 합평이 불편한 시간이 아니고, 칭찬의 한마당이 된다면 우리 모두 ‘다이돌핀’을 가득 안고 수필 공부를 하게 되지 않을까?

(202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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