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9. 1. 28. 14:22

부러운 시상식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윤석조

 

 

 

 

뜬금없는 “200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 초대합니다.”란 초청장을 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라 읽고 또 읽어보며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십여 년 전 느닷없이 정년이 단축되어 쫓겨나다시피 퇴직하여, 이태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했었다. 붓글씨를 쓰고 싶어 전주시립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시민대학 서예반에 등록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은 지나간 일들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짧은 글짓기를 발표하자, 선생님이 교단에서 내려오시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셨다. 대학동기들 모임의 총무가 되어서 부부모임 안내를 해야 했다. 안내문을 만들어 문맥과 맞춤법의 교정을 국어 선생님들에게 부탁 했다. 수정해 주면서 교장선생님 때문에 국어선생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농담을 걸어 올 때마다 함께 웃기도 했다. 모임 장소에 나가면 안내문을 내 놓고, 이구동성으로 내 글을 칭찬하여 은근히 자부심도 생겼었다. 더구나 친구보다 사모님들이 안내문을 더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서 나도 문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이튿날 서예반 등록을 취소하고 문예창작반 강의실을 찾았다. 지도교수(김동수)님의 익살스럽고 정열적인 강의에 푹 빠져들었고, 함께하는 수강생들의 창작활동에 감화되었다. 그해 가을 대둔산축제 백일장 산문부에서, ‘미워했던 아버지’로 영광의 금상을 받기도 했다. 연말이 가까워지자 신문마다 신춘문예 모집광고를 싣고 있었다. 겁도 없이 도내 일간신문 신춘문예의 수필 분야에 응모하였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추운 아침이었다. 나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김 교수님의 전화가 왔다. 신문을 보고 알았는지 신춘문예에 응모했느냐면서, 내 이름이 후보로 들어 있다고 하였다. 신춘문예에 대한 성격을 이야기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신문사의 위치도 몰라 물어물어 찾아가 2002.1.1.자 신문을 얻어, 최승범 교수님의 심사평을 읽었다. “선자로 하여금 마지막까지 서로 비교하며 읽게 한 작품은 ‘느낌’ ‘달하 높이곰 도다샤’ ‘되찾은 봉급날’(윤석조), ‘애기똥풀’ ‘사람을 때린다는 것’ ‘철학, 그 아름다운 유혹’ 등 여섯 편이었다.”란 글에 자꾸만 눈이 갔다.

문인이 되는 등단과정의 절차와 방법을 알고 싶었는데, 교수님이 복사한 ‘신인문학작품 공모’ 광고를 복사하여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유인물에 따라 그 동안 써놓은 수필 5편을 우송하였다. 등단 소식을 기다리다 《대한문학》과 《공무원문학》의 신인등단 작품상공모에 응모하였다. 늦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문예연구》편집장으로부터, 등단 축하전화를 받았다. 나 혼자만의 기쁨에 젖어 맨 먼저 김 교수님께 등단 소식을 전해 주었더니, 깜작 반가워하면서 《문예연구》란 문학지에 관하여 자랑스럽게 소개해 주었다. 연달아 《대한문학》과《공무원문학》에서도 등단소식이 오자 나 혼자만이 여의주(如意珠)를 가진 듯하였다. 작년에 응모했던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다시 응모하였다. 또 후보로만 선정되었다는 작품 평을 읽었다. 응모자가 작년보다 배가 되어서인지 후보자는 한 사람 더 늘어 일곱 사람이나 되었다. 나의 수필 제재는 <흐뭇한 꽃다발>이었다. 그 뒤 시 장르에서도 등단(공무원 문학)의 영광을 안았지만, 오늘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상을 받는 젊은 문인들이 부러울 뿐이다.

문학 강의가 있는 곳이라면 시간을 내어 찾아 다녔고, 우리 문단의 큰 별이신 교수들의 강의에 흠뻑 젖기도 하였다. 지도 교수님들의 열성스런 지도를 받아, 문인이란 자부심으로 공저인 수필집을 세권이나 만들었다. 친지들과 제자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무모하게, 첫수필집 『노을빛 사랑』을 출간하였다. 제자들(전라고 12회)이 봉정식으로 출판기념회도 열어 주고, 내 고희잔치도 코아호텔(무궁화 홀)에서 베풀어 주었다. 이 이상의 영광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가슴이 벅찰 뿐이었다.

작년부터는 수필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 학 교수님의 수필창작 지도를 안골복지회관에서 받고 있다. 나도 수필가답게 좋은 글을 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시상식이 시작하기 10분 전에 7층에서 내리니, 안내자가 다가와 “윤석조 선생님 이지요?” 하지 않는가? 나는 놀랐다. 궁금증을 안고 식장에 들어서니 문인들과 꽃다발을 든 하객들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앞에는 “2009년 신춘문예 시상식”이란 플랜카드가 걸려 있고, 그 속에 수상자들의 이름과 문학 장르가 적혀 있었다. 식장을 가득 메운 문인들과 당선자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올 신춘문예에도 전국 각지에서 응모하였으며 참가자도 고등학생부터 80대에 이르고 1,400여 명이 참가했다고 하였다. 시상식에 이어 당선자들의 당선소감이 이어졌다.

심사위원장인 정양 교수는 심사평에서 ‘한 사람의 당선이란 영광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떨어뜨려야 한다.’ 는 고충을 털어 놓으며 당선자들은 심사위원들의 그 마음을 알고 더욱 좋은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패배의 쓴 잔을 두 번이나 맛 본 나를 달래 주는 듯하였다. 시인 허소라 교수님의 축사에 이어 참가한 문인들의 호명에 따라 인사가 이어졌는데, 문인으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 같아 싫지 않았다. 심사위원과 수상자들, 문인들의 기념촬영으로 시상식에 초대된 보람을 가져보았다.

한 쪽에 차린 연회장에서 미쳐 인사를 못 드린 문인들을 찾아다니며, 술잔을 주고받으며 다정한 인사를 나눠 더욱 좋은 자리가 되었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서쪽 하늘로 기운 겨울 해가, 좋은 글만 쓰라는 듯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2009. 1. 21.)

양아영윤석조숙여나언숙여너댜아니
교육서고러온2009년3일5월기대리아니
경축형[토]라언성갸다렁명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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