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9. 1. 28. 15:11

산다는 것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말로만 듣던 60평 아파트에 들렀다. 지인의 집이다. 우리 집보다 두 배나 더 넓은 집이어서 운동장만큼이나 커 보였다. 살림살이가 호화롭다기보다는 품위와 격조가 있어서 이런 집에 살 자격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비싸다는 보이 차를 한 잔 우아하게 마시며 내가 짐짓 잘 사는 사람으로 머무는 시간이었다. 조용하던 복도 중간 방에서 귀여운 사내아이가 뛰어나왔는데 그 아이의 손에는 자동차가 들려 있었다. 그 자동차는 아이의 리모컨 조정 따라 거실 복도와 안방을 돌아 다녔는데 어느 순간 내가 앉은 곳까지 와서 멈추었다.

“할머니! 뛰뛰! 빵빵! 멈추세요! 위험합니다.”

비켜주려는 내게 아이는 자기 차가 길이 아닌 곳으로 갔으니 비킬 필요가 없다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지인의 성격 한 단면을 닮아서 함께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잠시 뒤에 말쑥하게 옷을 차려입고 피아노 학원에 간다고 예쁘게 절을 하고 아이엄마와 함께 나갔다. 살짝 드려다 본 아이의 방에는 장난감 상자에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수십 대도 더 되는 것 같았다. 손자가 유난히 차를 좋아해서 막무가내로 사달라는 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사 줄 수만 있다면…….”

어느덧 나는 수 십 년 전의 속리산 선물가게로 되돌아가 있었다. 아들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5월이었다. 친정어머님 생일을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찾아주었는데 그해는 대전에 사는 둘째동생네가 모셨다. 이튿날 속리산 법주사 구경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아들이 선물가게 앞에서 딱 멈추었다. 그 곳에는 커다란 트럭처럼 생긴 차동차가 있었고 아이는 그 것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 자동차를 사줄 돈도 없을뿐더러 오빠와 동생네 아이들 모두 8명인데 우리 아이만 자동차를 사 줄 수도 없었다. 아들은 그 자리에서 아예 누워 버렸다. 어르고 달래고 야단치고 그렇게 해서 아이는 자동차를 갖지 못하고 눈이 벌겋게 부어서 내려왔다. 일찍 내려간 친정식구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아이 뺨의 눈물자국을 닦아주면서 법주사 입구에 어울리지 않은 장난감가게가 야속하기도 하고, 마음 놓고 장난감 자동차 한 대도 사 주지 못한 내처지가 참 한심하기도 했다. 그 뒤 살면서 장난감자동차는 가끔 아픔으로 내 마음을 스치곤 했다.

아들은 자라서도 여전히 자동차를 좋아했다. 취직을 해서 맨 처음 산 것도 내 빨간 내복하고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150만 원짜리 자동차였다. 속리산 자동차가 그 모형자동차와 겹쳐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면허증을 따게 했던 것은 어쩌면 그 때 발버둥을 치며 울게 만들었던 미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들이 두 번째 산 것도 타고 다니는 자동차였다. 아직은 차를 몰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속리산에서 눈물이 범벅되어 울던 모습이 떠올라 그만두었다. 남편은 십년도 더 된 차를 몰고 다니는 동안 아들은 벌써 자동차를 세 번째나 바꾸었다. 그 때마다 속리산 선물가게 속 자동차는 큰소리로 ‘뛰뛰 빵빵’ 울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내 말을 차단했다. 세상부모가 모두 자식이 사 달라고 한 모든 것들을 다 사 주며 살 수는 없다. 형편이 어려워서도 그렇고 옳지 못한 것을 원해서도 그렇다.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가져 보고 사는 사람은 죽어도 후회가 없다고 어딘가에 씌어져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 가난한 부모노릇을 하기가 더 힘들겠지만 다행이도 그런 문구는 없다. 그리고 모두 가졌다고 행복하다는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세상 살기가 공평한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여유롭고 호화로운 아파트를 소유한 지인님도 가슴 한켠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그녀의 옷이 명품이어서 멋있는 날에도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가끔 보노라면 속리산가게 앞에서 울먹이던 아이를 달래야 했던 촌부의 아내인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지인의 손에 들린 찻잔은 상당히 비싼 것이다. 가격에 맞게 지인의 손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여름내 논밭에서 일하다 거칠어진 내 굶은 손에 어울리지 않는 찻잔에 비싼 보이 차를 마시는 나와 그녀 사이는 얼마만의 간격이 있을까? 다행이 나는 아무런 위축도 부러움도 없으며 그녀 또한 아무런 편견이 없으니 이것도 공평한 어울림이다.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그녀의 외제차를 마다하고 버스를 탔다. 청잣빛 하늘과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의 벼들이 가슴에 한 아름 차건만 막상 수확을 하고도 어두워질 농민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음이 무겁다. 지인의 집에서 당당하던 자신이 생각되어 씁쓸했지만 길가의 청초한 들국화가 어두운 내 마음을 거둬갔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공으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지천에 얼마나 많은가.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이것만이 아니다.

아들내외가 예쁜 손녀와 함께 내려왔다. 손녀는 정교한 장난감과 예쁜 인형보다는 마당에 널어놓은 검은 콩을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더 재미있어 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주워 깔깔거리며, 풀 섶의 개미를 보고 즐거워한다. 작은 화단에 핀 꽃 속에 숨어서 내가 찾기를 기다리다가 내 눈과 마주치면 숨이 멎을 만큼 매력적인 웃음을 짓는다. 넘어질듯 뒤뚱거리면서 뛰는 손녀를 따라가 풀꽃 한 송이를 머리에 꽂아주는 할머니의 기쁨, 이런 것이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행복이다. 아직은 사람이 만든 장난감에 매료되지 않는 내 손녀의 그 맑디맑은 눈을 보면 비싼 장난감 사다 줄 수 없는 내 생활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다. 높은 것이 있어 낮은 것이 있고, 큰 것이 있어 작은 것이 있듯이 너와 내가 달라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세상은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게 아닐까

언덕배기에 심었던 팥꼬투리가 익었기에 따 보니 루비보다 더 고운 팥알이 인사를 건넸다. 손안에 든 팥알 몇 개가 보석처럼 소중했다. 밭두둑의 고구마 고랑도 벌어져 있다. 고구마가 알차게 들어있는 모양이다. 지인을 불러 고구마 한 소쿠리 삶아 놓고 지난여름 지리산 자락에서 따다가 말려 두었던 국화차를 마시며 우리는 또 이런 저런 이야기로 서로를 다독일 것이다. 국화차와 보이 차는 서로 다른 향기로 찻잔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