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9. 1. 29. 05:38

겨울 산사에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금산사의 천왕문이 바라다 보이는 찻집의 창가에서 진한 쌍화차 한 잔으로 언 몸을 녹인다. 오늘로서 세 번째 찾아오게 된 금산사이다. 연 삼일 계속 내린 눈으로 금산사의 정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나뭇가지에 소복소복 쌓인 눈들은 바람처럼 날리고 처마 끝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첫 번째 방문은 한 달 전에 있었다. 하루의 일을 이르게 마치자 남편은 내게 금산사 방문을 제의했다. 길었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 전주로 거처를 옮긴 지 두 달여, 모든 것이 낯설어 가끔 홀로 눈물짓던 즈음이었다.

 김제에 도착할 무렵, 초겨울의 짧은 해는 서쪽 산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나는 적이 실망스러웠다. 방대한 규모의 주차장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석문을 지나며 실망은 이내 기대로 바뀌었다.

 천여 년 세월의 풍상으로 절반은 허물어진 석문, 그 형상은 마치 부질없는 야망을 꿈꾸다 스러져버린 견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견훤은 아들 신검에 의해 이곳 금산사 미륵전 지하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하여 고려의 왕 왕건에게 도움을 청하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최후를 맞았다.  

 절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 있는‘산중다원'이란 찻집을 지나 바윗돌 틈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금강교를 건넜다. 금강문과 천왕문을 통과하며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경외심을 갖게 하려고 여러 개의 문을 지나도록 한다. 이 문들은 속계와 성계(聖界)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의미이다.

 늦은 시각이어서인지 절 안에는 아무도 없다. 바람조차 잠든 듯 금산사는 노을과 적막, 고즈넉함 속에 잠겨 있었다. 처음 본 금산사는 ‘고요’ 그 자체였다. 보제루를 지나니 널다란 공간을 만나게 되었다. 정면으로 대웅전격인 대적광전이 있고 그 오른 쪽으로 미륵전이 보인다.

 금산사의 창건은 백제 법왕 원년(599년)이다.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86년 대적광전이 창건될 때 당시 왕이던 숙종은 자신의 이름인 ‘이 연’을 상량문에 기록하였다. 왕위를 계승할 원자를 간절히 기원한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대적광전은 1986년 화재로 불 타 현 건물은 다시 건축되었다.

 금산사의 정점은 미륵전이다. 미륵전(국보 62호)은 겉은 3층 목조건물로 보이나 속은 하나로 트여 있다. 또한 국내 최대 조소불인 미륵불과 법화림보살, 대묘상보살을 모시고 있다. 신을 벗고 미륵전에 들어선 순간, 나는 불상의 크기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미륵불 한 쪽 귀의 크기가 사람의 키와 비슷하고 총 길이가 33척이니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이다. 이 불상을 세우기까지 진표율사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미륵불이 있는 자리는 물이 가득한 방죽이었다. 처음에 진표율사는 흙으로 메웠다. 그러나 습기가 다시 올라와 율사는 선정에 들어 원인을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수백 년 간 살고 있던 용이 방해를 했던 것이다. 율사는 7일간 기도하여 용을 내쫒고 숯을 사용하여 방죽을 메웠다.

 그 많은 숯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눈병 때문이었다. 당시 김제, 부안지역에 잘 낫지 않는 눈병이 유행하였다. 숯 한 짐을 방죽에 넣고 그 곳에 있는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곧 나았다. 진표율사의 신통력 때문이다. 이렇게 방죽을 메워 미륵전은 세워졌다.

 또한 미륵전은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쇠솥)가 유명하다. 이 좌대는 철로 되어 있어 진표율사가 조성할 당시는 불상도 철로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철불도 정유재란 때 왜병들이 녹여 없애 버려서 좌대만 남게 되었다. 그 뒤 불상은 다시 조성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미륵불 밑으로 사람이 지나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어 쇠솥단지를 만져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 밖에 금산사는 대장전, 석련대, 육각다층석탑, 당간지주, 5층 석탑, 석종 등 중요한 문화재들을 가지고 있다.

 낯선 전주로 이사를 와 첫 번째로 만나게 된 금산사, 잠깐의 틈이 생기면 나는 고즈넉했던 금산사를 떠올린다. 금산사는 한동안 나태했던 나의 신앙심을 다시 일깨워 주고 낯선 땅에서의 삶에 기대를 갖게 해 준 곳이다.

 천안 이남의 지역을 잘 모르고 살던 내게 부처님께서는 폭넓은 경험을 주시려고 이곳까지 나를 인도하신 것만 같다. 전주 근방에는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사찰이 많다.

 아름다운 산사가 있고 우리 고유의 문화가 숨쉬고 있는 곳 전주, 나는 그 전주를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