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9. 10. 9. 16:51

부톤 섬의 한글교육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일본 노래를 시작으로 일본어 ‘가다가나와 히라가나’를 배웠다. 늦은 나이에 홍역을 하느라 오래 결석하고, 집에서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어서 나는 지진아(遲進兒)가 되었다. 거의 1년 동안 방과 후 학습(노꼬리 벵교)으로 늦게 집으로 갈 때가 많았지만, 그 중 일찍 책을 읽고 집으로 가는 편이었다.

혼자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사택에서 나오던 우리 담임 하리모도(일본사람으로 교감)선생이 내게 다가와 귀에 대고 ‘얼른 집에 가’ 하지 않는가? 깜짝 놀랐다. 그때 학생들은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고,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썼었다. 상급생들은 학교에서 조선말을 하다 들키면 붉은 띠를 어깨에 메고 일정기간 학교를 다녀야 했다.

큰 태풍(평란 바람)이 지나가더니 해방(8ㆍ15)이라고 거리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해외 동포들이 돌아오면서 전염병이 퍼져 나도 집에 누워있어야 했다. 어머니가 한글의 모음과 자음, 24자를 붓으로 써서 벽에 붙여놓고 가르쳐 주어 곧 읽고 쓸 수 있었다. 병이 나아 학교에 나갔을 때는 1학년 교실에서 6학년 교실까지, 가에 ㄱ하면 ‘각’ 나에 ㄴ하면 ‘난’ 이란 우렁찬 소리가 교실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뒤「한글 첫 걸음」이란 책으로 전교생이 한글공부를 하였는데, 어머니 덕으로 미리 공부 하여 우쭐대기도 하였다.

한글은 세계 모든 문자 중에서 으뜸이었다. 언어학연구로 세계최고대학(영국 옥스퍼드 언어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의 순위(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를 매겨 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우리 한글이 차지하였다. 지금과 같이 컴퓨터의 위력이 큰 세상에, 자유자재로 표현하여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한글의 과학성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선진국이 된 배경에도 어느 언어보다 쉽고 편리하게 표기하고 전송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열 개의 모음과 열네 개의 자음을 조합 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소리 나는 것을 거의 다 쓸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한국어가 국제 공개어(PTC) 10개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7천 개에 가까운 언어가 있으나 이중 합리적 표기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언어는 영어나 프랑스어,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같은 지배언어에 눌려 언어의 다양성이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세계는 이 많은 언어의 소멸을 막는 일이 중요한 일로 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말은 있되 적을 수 없는 소수민족의 글로 한글을 권장했다.

인도네시아 부톤(경상도 크기)섬의 바우바우시는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채택하였다. 문자가 없는 토착어를 지키고 보존하기위하여 이를 표기(標記)해야 했다. 이에 따라 초등학생용 한글교과서가 보급되고 고교생 교과서도 발간되어 주당 4시간씩 한글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비딘(유일한 한글 교사)은 교과서에 있는 한글을 칠판에 적은 뒤 4학년 학생들에게 찌아찌아어인 “인다우 마아 파에 마이 이사”를 어떻게 읽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일제히 “나는 밥과 물고기를 먹었습니다.”로 읽었다. ‘시골라’(학교) ‘보꾸’(책) ‘마누’(닭) 등이 적힌 카드를 연달아 보이면 학생들은 다투어 손을 들었다. 10학년(우리나라 고1) 3반에 재학 중인 아르만(18)군은 “이제 한 달 정도 배웠는데 영어보다 한국어가 공부하기 쉽고 편한 것 같다. 한글이 알파벳보다 훨씬 편리하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 이슬람 사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반의 프리라마다니 양은 “영어는 쓰는 것과 읽는 것이 다르지만 한글은 읽고 쓰는 게 더 쉽다. TV로 ‘꽃보다 남자‘ 같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 열심히 한글을 공부해서 부톤섬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단다. 한글교과서에는 그들의 종족, 역사와 문화는 물론, 한국 전래동화인 ‘토끼전’까지 소개되고 있다. 국력신장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한글이 보급되고 있지만 이처럼 한 종족의 공식문자로 채택된 일은 처음이어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한글은 하루면 배울 수 있고 쓰기도 쉽다며, 사대주의 학자들로부터 무시당했던 문자였다. 더구나 한일합방과 일제의 우리민족말살정책에 따라 우리글과 말을 빼앗겼고, 굶주림에 시달린 게 우리 국민들이었다. 그 무렵에 낳고 자란 사람들은 배울 기회조차 잃어버려 문맹으로 서러운 세월을 살아야 했다. 오죽하면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란 속담이 생겼을까?

우리 한글학자들이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지킨 한글로 광복 후 문맹퇴치운동을 벌였었다. 다양한 성인교육과 손자손녀들까지도 노인들을 가르쳐 주어 문맹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얼마 전까지도 글을 몰랐다가 편지를 쓰고 읽으며 좋아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TV에서 보니 내 가슴도 후련했다.

우리나라도 지금 지배언어인 영어교육에 몰입하고 있다. 상품명과 회사명은 물론 대중잡지나 아파트, 가게 간판의 표기까지 영어를 비롯한 서양언어가 판을 치고 있다. 개방화시대에 외국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우리 언어와 문화를 존중함으로써 조화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이 우리에게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상 글자가 없는 곳에 ‘한글 섬’이나 ‘한글 마을’들이 많이 생겨, 그곳 언어와 문화를 지켜주면 좋겠다.

언어는 사용자의 정체성(正體性)을 상징한다. 한글의 세계화로 우리의 국력도 신장(伸張)되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도 꿈꾸고 싶다. 1444년 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우리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2009. 8. 30.)

 

 

 

* (한국의 문맹률은 2.1%. 2003) *발음 수 (한국 1만 1천 개 이상, 중국400개, 일본 3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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