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1. 4. 18. 05:58

주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석곤

 

 

퇴근길에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들렀다가 바로 집으로 왔다. 퇴근 때마다 집 앞 도로에는 차들이 즐비하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시장터 건물 동쪽 주민편의 주차공간에 겨우 비집고 들어가 주차를 해놓았다.

KBS TV 저녁 프로그램인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하였다. 66세인 남자회사원이 본선에서 아홉 문제 중 여섯 번째 문제에서 실패했다. 동병상련이라고 젊은이 넷과 겨루어 이겼다는 게 대견스러웠다. 나도 힘들여 쓴 글을 고치다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아내가 방에 들어와 불을 끈 지도 모른 채 신나게 여행을 했다.

지금은 사순절특별새벽기도회 기간이다. 청아한 노랫가락이 끈질기게 울려 퍼졌다. 핸드폰의 모닝콜은 어김없이 새벽 4시 30분만 되면 찾아와 노래를 불러준다. 좀더 자자고 뭉그적거리다 쿨쿨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늦을세라 서둘러 내가 먼저 차를 탔다. 여느 때처럼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오른 쪽 자리에 길쭉하고 얇은 푸르스름한 모양의 물건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내 눈은 갑자기 토끼눈마냥 동그래졌다. 오른쪽 차창 유리가 완전히 깨져 큰 조각은 옆 의자에, 작은 조각은 의자 밑에 떨어져 있었다. 또 아주 작은 조각들은 옆 의자와 그 밑에 수북이 쌓여있고, 박살난 가루는 운전석 의자와 뒤쪽 의자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차 안의 라이트를 켜봤다. 운전석 옆 트렁크가 열렸다. 차량등록증과 보험가입증서를 보관한 비닐 케이스가 그대로 있었다. 네비게이션도 있었다. 불평의 화살은 이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날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평소 잘 안된 크고 작은 일들이 나를 원망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도 모르게 큰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아버지, 잘못을 저지른 자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7언’ 가운에 제1언과 같은 기도를 한 것이다. 작은 용서가 담긴 사랑의 손을 내가 먼저 내미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진안군 상전에서 근무할 때였다. 학교 본관 앞 운동장에 주차한 새 차의 앞 유리가 아주 작은 돌멩이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다. 가해자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앞 유리가 무너져 내리려는 차를 전주 팔복동까지 끌고 갔다. 그 때는 치밀어 오른 적개심을 가시 돋친 말로 풀어버린 기억이 생생하다.

20여 년간 전주시 덕진동 들사평 마을에 살고 있다. 마을 도로가 낮에는 외부인들의 주차장이고, 밤에야 겨우 동네사람들의 몫이 된다. 첫 운전을 한 1990년 4월 19일부터 길가에 주차를 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기껏해야 승용차 프레스토의 덮개를 벗겨 가거나, 몇 년 뒤 엘란트라의 한 쪽 백미러를 다른 차의 부주의로 부러뜨리고 도망친 정도였다.

교회를 갈까 말까 잠깐 망설이다 교회차가 생각났다. 막 뛰었다. 어쩌다 차를 타는 자리가 가까워지는데 우측에서 불빛이 비쳤다. 노란 교회자동차였다. 세게 달리며 손을 흔들었지만 그냥 지나갔다. 아내도 뛰면서 따라 왔다. 차를 우측으로 약간 비켜서 손을 흔들며 뒤따라 달렸다. 아내도 더 세게 달려왔다. 다행히 덕진 종합경기장 수영장 옆에 C권사님이 서 있었다. 더 세게 손을 흔들며 달려가 차를 탔다. 식식거리며 뛰어오는 아내도 탔다.

기도회 시간의 찬양도, 특송도, 설교 말씀도 거의 반사되고 마음에 담겨지지 않았다. 개인 기도시간이었다. 눈을 감아도 차만 보이고 내 머리에는 깨진 유리창뿐이었다. 집에 오는 차 시간 때문에 기도가 집중이 안 되었다. 오는 차 속에서도 대화를 하지만 오직 깨진 유리창 생각뿐이었다.

바로 덕진지구대에 가서 신고를 했더니 경찰차가 현장으로 왔다. 그때 이웃에 사는 H집사님도 작년 추석 때 차창을 깨고 물건을 가져갔다고 했다. 틀림없이 작은 절도범의 소행이라 짐작되었다. 경찰은 현장 상황을 사진을 찍으며 수사에 필요한 질문을 했다. 사건진술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지구대로 가자고 했다. TV, 영화에서나 본 것처럼 경찰 앞에 앉아 기다리며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느라 7시가 다 되었다. 꼭 잘못을 저질러 조서를 받는 것 같았다. 내 차 안을 다시 보았다. 운전석 옆 의자 위에 책은 있는데 접어놓은 녹색 종이팩 두 개가 안 보였다.

가해자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경찰에 신고하는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용서하려면 내가 받은 상처를 잊어버리고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지만 신고함으로써 지구대가 앞으로 이런 우범지역에 대한 관심과 순찰을 늘린다면 이 동네에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내 차의 멘토는 단골 K공업사 사장이다. 아침 일찍 사장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이 편찮다는 데 일어나 사고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차 유리를 끼우는 상사를 소개해 주었다. 출근 시간을 조금 앞당기려 서둘러 그 상사를 찾아갔다. 마침 첫 손님을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어 빨리 유리를 끼웠다. 차 안을 보니 교회요람이 안 보였다. 수리비를 다른 이보다 적게 받는다고 하지만 무척 아까웠다.

한 시간 남짓 늦은 출근길이어서 그런지 차들이 듬성듬성했다. 밤새 벌어진 일을 다시 그려 보며 달렸다. 내 차창을 깨뜨린 이는 누구일까? 그를 향한 저주의 분노가 주머니 속의 송곳마냥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잡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가 새사람이 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시옵소서.’

(2011. 4. 12.)

※ 사순절(Lent 四旬節) : ‘40일간의 기념일’이란 뜻으로 ‘수난절’이라고도 한다. 부 활주일(금년 4월 24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항상 성회수요일(금년 3월 9일)부 터 부활주일 전날까지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 6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

※ 십자가상의 7언 :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최후로 남기신 7가지의 말씀

※ 제1언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 다.(누가복음 23장 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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