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3. 4. 21. 16:00

새로 들어온 식구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세정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다. 집안 곳곳에 넘쳐나는 초록의 무리들을 바라보노라니 흐뭇하면서도 부담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저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올봄, 우리 집에 새로 들어온 식구가 일곱이나 된다. 몇 주 전에 들어온 다육까지 합한다면 열 손가락을 넘는 숫자다. 딸아이 한 명뿐인 집이 적적하여 쓸쓸하였는데, 갑자기 맞닥뜨린 풍요로움이 생경스럽다.

 

 지루한 겨울 뒤에 찾아온 반갑고도 고마운 손님, 봄. 그 손님이 우리 집에 기분 좋게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봄마다 대청소를 하고 있다. 마음을 다잡고 한 해를 잘 살아보려는 나만의 의식이기도 하다. 겨우내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물걸레로 닦아낸다. 희뿌연한 유리창도 세정제(洗淨劑)를 뿌려 투명하게 닦는다. 두툼한 이불이며 겨울 옷가지들 그리고 커튼까지 세탁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분갈이를 한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워서 얼어 죽은 식물들이 많았다. 생명이 빠져나간 뒤에 남은 흔적들을 바라보는 일이 나에겐 고역이었다. 한때 나에게 웃음을 주었던 이들이 아니던가? 내다 버리든지, 새 식물을 심던지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집에 식물이 많은 편이라 이 기회에 모두 버릴까도 생각했다. 지난 세월 함께 지내면서 정이 들어 차마 그렇게 하질 못했다. 빈 화분마다 식물을 심어서 집에 들여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식구 많은 집이 부러웠는데, 새로 들어온 식물들이 식구처럼 느껴져서 뿌듯했다. 식물이라고 왜 식구가 되지 못할까.

 

 안방 쪽 베란다 창가에 뿌리가 굵은 ‘알로카시아’를 놓았다. 우리 부부의 침실을 안전하게 지키는 호위병(護衛兵)으로 그를 임명했다. 튼튼한 허벅지를 보란 듯이 내놓고 보초를 선 지도 어느덧 2주가 다 되어간다. 남편의 귀가시간이 늦는 편이라 먼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른쪽이 허전했다. 창 밖에서 나를 지키고 서 있는 ‘알로카시아’ 덕에 한결 편안하게 잠을 잔다.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그에게 잠을 자도 좋다고 미리 눈짓을 보낸다. 근엄한 표정 속에 감춰진 아이처럼 좋아하는 낯빛이 듬직한 아들 하나 얻은 듯해 기쁨이 한량 없다.

 

 “‘부부초’라고 하는데요, 아주 좋은 식물이에요. 부부사이를 좋게 해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화원 주인의 설명을 듣자마자 그를 우리 집 안방에 들여 놓기로 결심했다. ‘부부초’가 안방에 놓인 첫 날, 우리는 사소한 일로 다퉜다. ‘그럼 그렇지.’ 주인이 나를 혹하게 하려고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부부초’에 대한 주인의 해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우치는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합니다.’ 식물을 키우면서 깨우친 사실은 그들도 사람과 똑 같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꽃도 풍성하고 잎사귀도 윤이 난다. ‘부부초’는 우리의 기운(氣運)을 먹고 자란다. 좋은 기운을 보내 주어야 부부초가 잘 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부초’ 때문에라도 잘 지내야 한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 같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결국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은 남편일 테니 하루하루 잘 지내고 싶다.

 

 남편의 사업이 예전 같지 않아서 걱정이다.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오는 그의 굳은 표정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안방과 가까운 거실 한 켠에 ‘황금죽’을 들여놓았다. 그 기운으로 사업이 다시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당신 사업 잘 되라고 일부러 이렇게 큰 걸로 골라왔어.”

 

 허무맹랑한 내 논리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깐 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그 웃음의 의미는, 그 또한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었으리라. ‘황금죽’이 언제쯤 남편의 처진 어깨에 각을 되살려 줄지 모르겠지만,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믿어보기로 했다. ‘황금죽’, 너의 임무는 그의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을 되찾아주는 것이니 명심하여라.

 

  거실 창가에 놓인 ‘자스민’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이 봄, 활짝 핀 보랏빛 꽃잎들이 내 마음을 흔든다. 눈에 밟힌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디에 있더라도 그 꽃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화원에서 고심을 하다가 고른 식물이었다. 잎사귀만 달고 있는 식물을 권하는 주인의 말을 무시한 채, 다른 식물을 고르고 있었다. 예쁘지도 않은 식물을 왜 심으라고 하는지 물으니, 꽃을 피우면 그 향이 기가 막힐 정도라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에 길러 본 적이 있는 ‘자스민’이었다. 한 철 꽃을 보고 난 뒤 내다 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때의 헤어짐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볕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매일 바라보았다. 보랏빛 꽃잎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흰빛으로 바래졌다.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보랏빛 향으로 토해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신비롭기까지 했다. ‘자스민’, 너를 가슴에 품고 이 계절을 보내련다. 허허로운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준 ‘자스민’.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기특하고 고맙구나.

 

  딸아이 방에는 키 큰 ‘산세베리아’를 들여 놓았다. 몇 주 전에 들어온 키 작은 다육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의 한켠을 차지하게 했다. ‘보석’ 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다육이 제일 좋아라한다. 제 딴에도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무척 힘이 들었나보다. ‘산세베리아’를 보자마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뛸 듯이 기뻤으리라. ‘산세베리아’가 뿜어내는 청정한 기운 속에서 공부하는 딸아이의 성적이 오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돈다.

 

  토요일인 오늘은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비가 몰고 온 찬바람이 들지 않도록 유리창을 닫아 두었다. 일부러, 새로 들어온 식구들이 늦잠을 자라고 블라인드도 걷지 않았다. 지난 밤 안방 보초를 서느라 잠을 한 숨도 못 잔 ‘알로카시아’가 아직도 취침중이다. 밤사이 진한 향기를 토해낸 ‘자스민’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입을 쩍 벌린 채 늘어지게 자고 있다. 시절 인연으로 만난 이들과 오래도록 잘 지내고 싶은 소망 하나를 품어본다. 유리창을 ’톡톡톡‘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나의 소망은 모든 이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소망이 실제가 되도록 노력하련다.

                                                       (2013.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