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3. 4. 22. 06:29

거제도포로수용소

산동산수유문학회 회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들러 보았다. 당초 계획은 명품모임 3과 1/2 부부가 4월1일 1박2일로 경상남도 통영을 관광하고, 경찰수련원에서 1박한 뒤 거가대교를 거쳐 남해안을 드라이브하기로 했었다. 총무 金철수가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라고 하여, 계획을 바꾸어 그곳을 찾았다. 주말이 아닌데도 승용차가 많고 관광버스는 15대나 보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라는 간판을 보니 돈과 공을 많이 들여 만든 공원임을 알 수 있었다. ‘金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데 얼마나 잘 해 놓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용소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때의 포로를 수용했던 곳이다. 인민군 포로 15만 명과 중공군 포로 2만 명 등 17만3천명이 수용되었는데, 그중에는 여자포로도 300명이나 있었다. 포로들은 ‘반공포로’와 ‘친공포로’로 나누어져서 살상(殺傷)이 벌어졌다. 1953년 한국정부의(대통령 이승만)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기회로,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수용소가 폐쇄되었다. 그 당시의 참상을 알 수 있게, 잔존 건물과, 막사, 의복 생활상, 사진 등으로 재연시켜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99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지금은 전쟁의 산 교육장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넓은 야산 64,224평방미터에다가 1번 <분수광장>부터 남침에서 휴전까지를 24번<잔존유적지>로 조성했는데, 다시 한 번 동족상잔의 비극을 느낄 수 있었다. 6․25전쟁의 비참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어난 6․25전쟁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더 실감이 났다.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비참했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극이었다. ‘金일성이는 정말 나쁜 X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 악독한 전범을 미라로 보존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3대에 걸쳐 세습정치를 하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1973년 내가 110전투경찰대 부대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반공포로로 석방된 분을 대장으로 모시고 근무한 일이 있었다. 故 양재권(梁在權) 님이다. 그분은 석방 된 뒤 경찰에 투신하였다. 전북 장수군 부잣집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 두 명을 두었다. 큰아들도 경찰간부가 되어 근무하고 있다. 梁 대장님은 키가 크고 인물이 잘 생겼었다. 우리 부대가 김제 진봉해안선에 근무할 때였다. 망해사(望海寺) 해변초소를 순시하고 오면서 칼빙 소총으로 꿩을 잡아서

“부대장, 꿩을 잡았으니 술 마실 준비를 하세요!”

라는 무전을 날리기도 했었다. 당면과 무를 많이 넣고 꿩탕을 만들어 술을 마셨던 추억이 새롭다. 무주경찰서장을 역임하시고 몹쓸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많이 마셔서 술 때문에 돌아가셨다고도 했다. 고향인 이북에 부모형제를 두고 와서 술로 그리움을 달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칭찬을 아낄 수 없는 일은, 우리 부대가 부안 격포에서 상하면 내륙(內陸)으로 이동할 때와 그곳에서 김제 진봉 해안선으로 이동할 때의 일이다. 부대 이동 계획을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잘 세워서 지휘하여 감탄을 했다. 그분이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북한에서 전문학교까지 다녔으니, 그 당시 상황으로 봐서 경무관까지는 진급했을 것인데 너무 애석했다. 국립묘지로 가지 못하다가, 경찰간부로 있는 아들이 서둘러서 국립임실호국원에 모시게 되어 다행이다.

나도 이념전쟁의 피해자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하여 나를 끔찍이 사랑했던 둘째형님이 돌아가셨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웃마을 탑동으로 피신을 갔다. 남침을 한 북괴군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념전쟁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몸을 피했던 형님들을 따라갔다. 우리 면에는 비행기 폭격이 단 한 번 있었다. 다리 건너 부촌 보릿대를 쌓아 놓은 것을 천막으로 알고 쌕쌕이가 기관총 사격을 했다. 그 때 어린이 한 명이 불쌍하게 죽었다.

이 전쟁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기억해야 할 동족상쟁의 아픔이다. 다시는 이 지구상에서 이와 같은 이념전쟁과 동족상쟁의 비국이 없기를 바라는마음 간절하다.

(2013.4.20.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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