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3. 4. 23. 06:30

어머니와 보따리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성려

팔팔 끓는 물을 부어 뽕잎차를 우려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싹 마른 어린 뽕잎이 부풀면서 진한 녹색의 차를 우려낸다. 진하게 우러난 뜨거운 뽕잎차를 호~~ 불어 한 모금 입에 물었다. 은은한 뽕잎의 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평소 녹차 종류는 즐겨하지 않았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뽕잎차를 자주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녹차의 맛이 좋아졌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일까? 몸에 좋은 거라며 어머니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정성을 생각하며 자주 마시다 보니 습관처럼 마시게 되었고, 맛 또한 깔끔하고 입안이 개운했다. 따끈한 뽕잎차가 목줄을 타고 내려가며 어머니의 사랑이 온몸에 전율로 퍼진다.

이른 봄, 연한 뽕잎을 따다가 솥에 쪄서 응달에 말려 만드셨다. 몸도 성치 않은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딸을 생각하며 비탈진 산 밑 다랑이 밭둑에 우뚝 서있는 뽕나무의 가지를 휘어잡고 땄을 것이다. 어머니의 몸 크기만큼이나 큰 보따리를 만들어 끌고 내려오셨을 모습이 그려진다. 눈물이 핑 돌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친정에 가면 푸성귀며 여러 가지 농산물을 못주어서 한이 된 사람처럼 바리바리 싸주시던 어머니. 집에 와서 풀어 놓으면 너무 많아 옆집도 주고, 앞집도 주고, 뒷집도 주고, 나는 또 그렇게 이웃과 나누어 주기가 바빴다. 친정에서 가지고 왔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마 친정에 가면 챙겨주는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이 자랑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다보면 우리식구가 먹을 것은 부족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이웃과 나누는 기분은 마냥 재미있고 좋았다.

이제는 어머니께서 싸주시던 보따리는 받아 볼 수도 없다. 1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 있는 것들은 모두 바닥이 났다. 듬뿍 넣어 우려 마시던 마른 어린뽕잎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차츰차츰 줄어 바닥이 드러날 무렵이다. 이제는 먹기도 아깝다. 마른 뽕잎이 담겨 있던 투명한 유리병을 바라보니 울컥 가슴이 멘다.

끈적끈적한 눈을 감고 어머니를 떠올렸다. 기억이 나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늘 보따리가 따라 다녔다. 여러 가지 채소들과 특수작물을 재배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 시동생들과 자식들을 가르치시느라 보따리만 매셨다.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팔 채소는 단을 지어 높이 쌓아 보자기로 묶어 큰 보따리로 만들었다. 어린 내 눈에는 어머니의 체중보다 무거울 것 같은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버스정류장으로 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는 시내버스가 큰 보따리를 시장까지 이동해주는 수단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던 푸념도 떠오른다.

무겁고 큰 보따리를 실으려면 시내버스 기사는 짐을 싣는 버스가 아니라며 태워주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렇게 창피를 당하면서도 사정사정하며 싣고 전주 전동에 있는 도깨비(새벽시장)시장에서 팔고 아침이면 집에 돌아오시던 어머니는 파김치가 되어 지쳐 있었다. 그 뒤, 농기계가 발달하면서 경운기가 나오고 큰 보따리는 경운기에 싣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조용한 새벽의 정적을 깨고 새벽시장을 털털거리며 다녀오셨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아버지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용달차를 사셨다. 그 용달차가 할 일은 농기계를 싣고 논밭을 다니는 일과 큰 보따리를 싣고 새벽시장을 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편하게 새벽시장을 다니던 일도 잠시 용달차의 주인인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의 큰 보따리들은 차츰 작아졌다. 그리고 감당하기가 힘드셨던지 새벽시장으로 가는 큰 보따리는 더 이상 매지 않으셨다.

그 뒤, 채소는 큰 보따리에 매지 않고 작은 보따리로 매어 자식들 6남매와 시동생, 시누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보따리의 숫자가 더 많아진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손가락은 반듯하게 펴지지 않고 굽어 있었다. 관절염은 아니라고 했다. 큰 보따리를 매며 다친 손가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에 손가락들이 그대로 굽어 갈퀴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을 보면 항상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는 보따리를 매는 일에 능숙했으며 항상 나누어 주는 일에 바빴다.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도 보따리를 매며 남들에게 나누어 주노라 바쁘실까?

(2013.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