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3. 4. 23. 09:33

상념 (2)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형숙

 

 

얼굴에 닿는 바람은 아직 차가운데 강변의 꽃들은 줄지어 서서 잔치를 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앞산 기슭의 벚꽃은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인 듯, 거대한 솜사탕인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변 아래쪽 노란 물결을 이루는 개나리들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에도 서로 얼굴을 부비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들을 나는 열매 같다 했고, 친구는 시집갈 처녀 같다고 했다. 띄엄띄엄 서있던 진달래도 오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작년 이맘때는 무엇이 급했는지 서둘러 꽃을 내밀었던 진달래가 거센 꽃샘바람에 파랗게 떨던 모습이 애처로웠었는데…….

솜씨 좋은 친정 엄마는 이맘때 연례행사인 집안제사에 진달래 화전을 부쳐 조상님께선물 하셨다. 동그랗고 조그만 찹쌀떡 위에 분홍빛 꽃잎을 얹어 익힌 다음 그 위에 조청을 발랐다. 정성껏 수를 놓은 듯 달콤한 떡은 조상님께서도 더 없이 기뻐하셨으리라.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진달래의 색깔에 따라 꽃 이름이 다르다고 했었다. 하얀 진달래는 흰달래, 연한 분홍이면 연달래, 알맞게 붉으면 진달래, 너무 진하여 자줏빛이 나면 난초 빛이랑 닮았다고 하여 난달래라고 부른단다.

엊그제 신문기사 중에 경기도 용인식물원에 흰 진달래 가지에 붉은 진달래 두 송이가 피었다며 희귀현상이라고 야단들이다. 옛날에는 국사에 큰 조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혹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북한에서 보내는 겁나는 소리들이 현실화되지 않을까 사실은 두렵다. 식수나 라면을 사재기해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총알이 사람의 체온을 쫓아온다는 믿기지 않은 기사들을 읽고 살아남기를 체념한 것인지 모두 전쟁의 위협에도 별 반응이 나 생각이 없어 보인다.

먹고 사는 일이 이미 전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경쟁에서 남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삶이 이미 전쟁이다. 빚을 갚지 못하고 숨어 다니는 어떤 사람은 빚이 전쟁보다 무섭다고 했었다.

지난 달 불의의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서 요양중인 후배 부부를 찾아갔었다. 이미 회복기에 들어선 부부는 새롭게 인생을 설계하며 봄을 맞고 있었다. 3일 만에 의식을 찾았지만 온몸에 엄습하는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단다.

어느 날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천사 같았던 간호사가 손바닥에 써 보여주던 두 글자에 새로운 삶의 의지를 새롭게 다져가며 반복되는 수술을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병실 창밖에 죽은 듯이 서있던 나무들이 봄과 함께 꽃을 피워 내는 신비로움을 보면서 다시 살아난 스스로의 목숨 역시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덤으로 얻은 생의 남은 시간들을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 본다. 하느님은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선 계기를 통해 희망을 주시고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시는가 싶다.

동생은 내게 꽃은 때가 되면 어찌 알고 세상을 향해 환호하느냐고 물었다. 오래 전 읽었던 과학 동화책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야기해 주었다. 생명이 있는 세상 모든 것들은 생존과 종족번식을 위한 것이 삶을 영위하는 이유라고 했다. 길어진 낮의 길이와 높아진 기온을 알아차리고 봄이 머리 위에 와 있음을 느끼며 봄을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

언 땅 밑에서 더 붉고 진한 몸부림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며 겨울을 이겨냈을 질긴 생명력과 신비스러움을 새삼 생각해 보았다. 왜 여기 심어져 햇볕이 닿지 않는가 불평하지 않고 바꿀 수 없는 삶인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나무의 침묵이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재작년 결혼하고 독일 베를린에 가 있는 막내딸 임신소식이 이 화려한 계절에 나를 우울하게 한다. 생명을 잉태하는 게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일이며, 사랑을 통해 후손을 이어가는 일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했다.

유난스런 입덧에 겨울 동치미와 고추장에 무친 게장을 먹고 싶다는 말이 어미 마음을 한 없이 아프게 흔들어 놓는다. 거기다 지가 다니던 대학교 앞 불어터진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단다. 절대로 구해 먹을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지도 말고 포기해 버리라고 잘라 말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쁨보다는 딸이 엄마가 된다는 그 엄청난 일이 내게는 산보다 더 높게만 느껴졌다. 다만 잉태된 생명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건강관리 잘하고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하여 예쁜 아기를 순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이르고 또 일렀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이 끝없는 사랑과 희생인 것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가는 순간순간을 나는 눈이 아프게 지켜볼 것이다

새 생명에게 젖을 물리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경험하게 되고, 존재의 이유만으로 무한한 희망이며 충만한 기쁨인 것을 알아가는 어미가 되리라.

계절이 두 번쯤 달려간 뒤 들려 올 세상을 향한 힘찬 울음소리가 기다려진다. <2013.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