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3. 4. 23. 18:07

그리운 친구 정미에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수영

 

 

목소리만 들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가 있다.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아도 "우리 점심 먹자!" 하면 눈곱만 떼고 부랴부랴 나와 주는 친구,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해질 무렵 "소주 한 잔 생각난다."고 전화를 하면 내 마음을 먼저 헤아려 소주를 맛있게 먹어 주는 친구. 빈속에 먹으면 안 좋다며 안주를 내 앞으로 넌지시 밀어놓는 그런 자상한 친구. 그런 친구가 그립다.

슬플 때는 어깨를 빌려주고 기쁠 때는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친구, 나에겐 그런 친구가 몇이나 될까?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가끔 친구가 그리울 때 나는 죽마고우한테 쓴 편지를 꺼내보곤 한다. 그 친구는 중학교 동창이었던 귀엽고 똘똘한 강정미라는 친구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그 친구 집에서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사흘 뒤에 돌아오겠다며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문평이라는 시골에 갔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엄마가 물어물어 친구 집으로 찾아오셨다. 그때는 어찌나 하루하루가 빨리 가던지 아직도 즐거웠던 그 추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 시절의 그리움을 회고라도 하듯이 추억의 편지를 꺼내들었다.

정미에게

친구야! 정말 오랜만에 불러보는 정겨운 이름이구나. 너를 처음 만난 그날도 오늘처럼 하늘은 참 푸르고 솜털 같은 구름은 사뿐히 나무 위에 걸려 있었지. 낙엽이 하나둘 제 색깔을 내며 고운 빛으로 물들 때 우리는 그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참 많이도 꽂아두었었지.

너 기억하니? 귀에 들리는 세상사가 아무런 거슬림이 없는 나이가 되면, 우리 평생 이웃으로 다시 만나 정겨운 얘기를 나누며 늙어가기로 한 거 말이야.

난 요즘 아무 욕심이 없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만 가져도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부엌 모퉁이에 연탄만 가득해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뭉클했던 그 시절을…….

그리고 너 생각나니? 정말 군고구마가 맛있던 그해 겨울, 우리는 장작불에서 잘 익은 고구마를 서로 꺼내 먹으려다 실수로 네 손등에 불씨를 떨어뜨렸던 일도 있었지. 그땐 정말 미안했다, 친구야. 지금도 우리의 우정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니?

그동안 연락도 못하고 살았구나! 난 사실 요새 좀 힘든 시간을 보냈어. 며칠 전에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단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거든. 내가 아끼던 물건을 가져갔고, 살림살이도 흩어놓고 갔더구나. 인생에서 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서글펐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온 것에 감사해야겠지.

날씨가 싸늘해지니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가 생각난다. 너랑 나랑 늦도록 사탕포장을 하며 그것을 받고 즐거워할 아이들을 생각했지 않니? 그때는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마냥 기쁘고 흐뭇했었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침부터 일터로 출근하는 든든한 가장이 있기에 감사하고, 나에게 웃음과 눈물을 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기에 감사하고, 파전이라도 한 장 부치면 나누는 정 많은 이웃이 있기에 감사하면서 말이야.

친구야! 너에게 편지를 쓰는 늦가을 오후, 지금은 참 평화로운 시간이야. 풍선을 쫓아 바람이 가는대로 따라 다니며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 쌀쌀한 소슬바람에 놀라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콧물을 흘리며 딸꾹질을 하는 모습,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은 내 귓가를 간질이며 속삭이는 것 같구나. 가을을 조금만 더 붙잡아 달라고․․․․․․.

친구야! 이렇게 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가을 오후, 우리도 이렇듯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늦가을 버버리 코트 깃을 세우고 무작정 걷다가 가을이 머문 벤치에 앉아 그리움을 닮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너를 떠올려본다. 나도 너에게 이렇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되고 싶은데, 이런 내 마음을 알겠니? 보고 싶다, 친구야!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또 편지할게. 안녕.

- 2003년 가을이 발자국을 남긴 고운 잔디위에서 수영이가-

 

 

이 편지를 쓴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강산은 변했어도 그 친구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 흰 종이가 노래져도 버리지 않고 추억의 상자에 모셔놓은 걸 보면 난 아직도 그 시절이 그리운가보다. 뒷동산에 올라 노래도 부르고, 풀꽃을 뽑아 시계를 만들던 고운 감성의 시절이 흘렀다. 지금은 아름다운 장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스마트폰시대가 열렸다. 언제든지 친구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카톡으로 안부를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절의 친구가 그립다.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친구 집에서 보낸 선물 같은 일주일이 그립다. 이 세상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데 그것이 바로 친구가 타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미숫가루고, 친구랑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이다. (2013. 4. 23.)

참 편안하고 옛우정이 돋아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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