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두루미 2013. 8. 28. 13:01

내 고향 마이산과 탑사

                                                                        한숙자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 년 전까지 담수호였다. 그러나 대홍수 때 모래와 자갈 등 풍화작용으로 이루어진 수성암으로 약 7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융기되어 지금의 마이산이 이루어 졌다. 지금도 민물고기의 화석이 간혹 발견되는, 자연이 만든 최대의 걸작이다.

마이산은 사계의 아름다움이 있다. 봄에는 돗대봉으로 안개가 끼어 마치 호수처럼 마이봉이 구름위로 떠올라 두 척의 돗대배와 흡사하다고 하여 돗대봉이라 한다. 여름에는 용각봉 으로 용이 하늘로 치솟아오를 듯한 기상이다. 용의 뿔과 흡사하여 용각봉이라한다. 가을에는 마이봉으로 바위에 조금씩 자라는 나무와 풀이 단풍을 이루니 가을을 만끽할 수 있고, 바위 등선에 나무들이 줄을 서 있어 말의 목 등에 난 털과 흡사하다 하여 마이봉이라 한다. 겨울에는 문필봉으로 눈이 내리면 정상에는 눈이 없어 꼭 먹물 묻는 붓 두 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다하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전설(구전)에 따르면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산신부부 내외가 이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 두 아이를 낳고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승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면 부정을 타서 안 되니 아무도 안보일 때 밤에 가자고 하고 여신은 무서우니 새벽에 가자고 해서 부부가(숫마이산과 암마이산) 나란히 걸어가는데 인근에 사는 아낙네가 새벽에 우물에 물을 길러 나오다가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산이 걸어간다고 소리쳤단다. 그 소리에 그만 산은 자리에서 멈춰 섰고 화가 난 남편인 숫 마이산은 아내를 발로 차면서 두 자식을 빼앗아 가슴에 안고 비스듬히 누워버리고 여신인 암마이산은 미안해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 버렸다. 그것을 보고 옆에 있는 산이 나도 숫마이산과 닮았다고 해서 나도산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단다.

숫 마이봉과 암 마이봉 사이에 천황문이 있다. 숫 마이봉 쪽(100m쯤)으로 올라가면 작은 하나의 동굴이 나오는데 이곳을 화엄굴이라 한다.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이 약수를 마시고 치성을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부정한 사람이 물을 떠 마시면 반드시 해를 보았다.

우리도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서 물을 마시러 올라가다 천황문에서 돌이 굴러 떨어져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직접 보았으며 함부로 약수를 마시지 못했다. 최근에 사람들이 질서 없이 드나들어 산신령님의 노여움을 사서 물을 못 마시게 된 것 같고 조류(비둘기 등) 서식지로 오염되어 먹는 물로는 사용할 수 없어 안타깝다. 옛날에 마이산을 올라가려면 108계단을(불교의 108번뇌) 밟으며 마음을 정화시켜 올라가야 무사하다는 유명한 명산이다.

이성계 장군이 운봉전투에서 승전하고 돌아오다가 자기가 탄 말 귀와 닮아서 이름을 마이산이라 지었단다. 그 전에는 속금산이라고도 하는 등 이름이 분분했었다.

마이산에는 탑사가 유명하다. 우리도 어릴 적에는 많이 놀러 다녔다. 이갑룡 처사가 살았는데 탑을 쌓기 위해 나막신을 신고 삼사십리 밖에서 돌을 주어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밤에만 백여 개가 넘게 평생을 쌓았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과 같이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늘날 까지도 모든 사람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소원을 들어 준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는 우리가 봐도 기인 같이 생기셨고 눈썹이 위로 치솟은 것이 마치 호랑이 눈썹 같았다. 탑사에 가면 언제나 목탁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 기도만 하면서 어렵게 사셨지만, 후손들은 읍내 마을에서 살았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탑사 할아버지 덕에 후손들이 이곳에서 잘 살고 있다. 요즘 마이산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느라 몸살을 앓을 정도다.

(2013.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