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두루미 2013. 9. 8. 14:43

오리털 점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양영아

순서가 왜 하필 의식주(衣食住)일까? 식의주(食衣住)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벗고 사는 종족은 있어도 먹지 않고 사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오죽해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했을까? 요즘 다이어트니 웰빙이니 하면서 음식을 조금만 먹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래서 食이 衣의 뒷전으로 밀려났을까?

옷(衣)은 몸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이제 멋을 위한 수단으로 넘어가 버렸다. 다양한 디자인과 고운 색상이 넘쳐나 사람들을 얼마나 현혹하고 있는가? 겨우 엉덩이만 가리고 다니는 치마나 반바지마저도 멋의 최첨단이라며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과연 의(衣)를 으뜸으로 삼을 만해졌다.

주(住)는 의(衣)나 식(食)보다 월등히 높은 차원 때문에 뒤로 밀어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 내 집 마련을 위해 살아야 하니 멀고도 힘들다. 옛날엔 동굴 속에서도 살았으니 앞의 의(衣)나 식(食)에 밀려났다고 말함이 차라리 편할까?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선견지명이 있어서 의식주(衣食住)라 말했나 보다.

동창회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전날부터 오늘 입고 갈 옷을 고르느라 꽤 신경이 쓰였다. 5월을 앞둔 4월의 하순은 화사하고 가벼운 옷이 어울리겠지만, 돌풍에 60mm∽70mm의 비 소식을 전해주는 아나운서의 일기예보는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게 했다. 일단 흰 바지에 얇은 옷을 두세 벌 껴입고 가리라 생각하고 옷을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새까만 하늘에 거센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잡고 뱅뱅이 질을 하고 있었다. 어제 치료받고 온 어깨 통증이 염려되어 오리털 점퍼를 찾아 입었다. 오리털이긴 하지만 얇고 연두색이어서 봄 냄새가 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바지 역시 흰 바지 대신 검은 색 골덴 바지를 입고 검정 운동화를 신었다. 어제까지 간택되었던 흰 바지와 흰 운동화는 한순간에 선택의 영광을 빼앗기고 말았다.

세상사도 옷장 속에 도로 갇히는 옷처럼 뒤바뀌는 사건들이 허다한 것 같다. 새 학년을 맞이하는 학교에서 어제까지의 약속과는 달리 발표되는 담임 배정에 황당해하는 교사들, 승진을 약속받은 계급사회에서도 어떤 연유에서든 뒤바뀐 순서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오리털 점퍼를 입고 시내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난 후회하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봄이라는 이유로 모두 얇은 옷차림으로 차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누가 내 차림새를 보고 웃을 것 같아 몸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어깨가 따뜻하여 포근하다는 게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변명이었다. 동창생들과 통영을 향해 달리는 내내 빗줄기는 거세어졌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과 새까만 하늘을 볼 땐 ‘그래, 이렇게 입고 오길 참 잘했어. 비가 더 와도 괜찮겠다.’ 그러나 잠시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오면 얼른 오리털 점퍼를 벗고 나도 처음부터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선 듯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었다. 휴게소에서 오리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니 친지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체면이 뭘까? 내 몸에 맞춰 옷을 입었으면 됐지 남들과 다르게 옷을 입었다 하여 하루 종일 좌불안석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 말이다. 덜 익어도 한창 덜 익은 내 속 좁은 마음에 쯧쯧 혀가 차졌다.

옷이란 종류도 많아 때와 장소에 따라 잘 맞춰 입어야 한다. 겨울에 여름옷을 입을 수 없고 여름에 두꺼운 털옷을 입을 수는 없듯이 말이다. 운동할 땐 운동복을, 잠잘 때는 잠옷을, 수영장에선 수영복을 입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해방 직후의 우리나라는 옷이란 겨우 몸을 가려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옷을 때와 곳에 따라서 골라 입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잠잘 때 따로 입는 잠옷이 있다는 것은 본 일도 없고 알 수도 없지 않았겠는가? 어떤 사람이 일본사람으로부터 잠옷을 선물 받고 멋진 디자인과 색상에 반해버렸다. 신식 옷이라고 차려입고 다방에 나가 거만스럽게 커피를 주문했다는데, 실소(失笑)를 넘어 고생했던 그 선조가 가여워 입맛이 씁쓸하다.

옷이 날개일까? 거지와 왕자도 뒤바뀔 수 있는 것이 옷이고 보면 정말 날개 이상일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백화점을 자주 찾는 게 아닐까? 백화점에서 흔히 쓰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구호도 외모와 상관관계로 왕이 되기도 하고 지나가는 객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백화점에 갈 때엔 좋은 옷차림으로 가야 극진한 손님대우를 받는다. 허술한 차림새로 가면 호객행위도 받지 못한다. 20여 년 전 옷을 사지 않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떨어지던 “이런 옷을 아무나 입나?”하던 모피 가게주인의 목소리는 이젠 말 없는 눈빛으로 변했다. 옷은 사기도 팔기도 어려운 것 같다.

오후에 비가 그치고 나니 오리털 점퍼가 무거워지고 들고 다니던 우산이 거추장스럽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실컷 부려 먹고 필요 없으니 버리고 싶은 심정이 참으로 이기적이다. 점퍼를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 비가 지나간 산들이 말끔히 세수하고 나온 소녀의 얼굴처럼 해맑다. 꽃은 어느새 신록 사이로 스며들어버렸고, 대신 나온 연초록 잎들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산 위의 어린잎들은 꽉 차지 않은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고 살랑살랑 여유를 부린다. 나도 내 마음의 공간을 찾아봐야겠다.

(2012.04.30. )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자 주인이 삶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가 있을 때는 잘 쓰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매정하게 내버리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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