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8. 5. 31. 07:11

벌초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 용 창

 

 

 

 비가 오려는지, 개미들이 부지런히 오고 간다. 입에 모래처럼 작은 것을 물고 오면 조그만 구멍에서 나온 다른 개미가 받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비가 오면 빗물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인지, 먹이를 곳간에 쌓는 것인지, 집 주위를 부지런히 오가며 개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비가 올 것을 알까? 참으로 신기하다. 수 백 마리쯤 되어 보이는 개미들이 소리 없이 질서 정연하게 오고 간다. 몸 안에서 만든 다양한 분비물을 발산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지만 대화를 나누면서도 의견 충돌을 하는 우리네 세상 사람들보다 현명하다. 한참을 바라다보고 있으니 놀란 듯 우왕좌왕한다. 나를 거인의 나라에서 온 침입자로 생각하나 보다. 개미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예초기를 메고 산소로 올라갔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택하여 전남 보성 주암호 상류에 있는 장인, 장모님 산소에 벌초하러 왔다. 식목일 전후에 오려했으나 아내가 5월에 함께 가자고 하여 연기했으나 아내는 건강이 안 좋아 혼자서 왔다. 선산에는 처가 조부모를 비롯하여 장인, 장모 그리고 큰처남, 형수, 작은아버지 등 여덟 분의 봉분이 있다. 2시간을 달려서 찾아오지만 나는 이 날이 기쁘다. 이 날은 아내가 나에게 가장 잘해주는 날이기도 하지만, 아내한테 속상한 것을 장인 장모님께 일러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벌초를 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다 전했다. 아내가 몸이 아파서 오지 못한 얘기도 했고, 막내의 취직을 위해서 기도를 하기도 했다. 숙련된 이발사처럼 예쁘게 일곱 봉분은 잘 다듬어주었으나 처 작은아버지 봉분은 선머슴아 머리처럼 하부는 다듬고 상단은 잡초가 있는 상태로 그대로 두었다. 해마다 다듬어 주었는데 언젠가 추석 무렵에 조금 늦게 왔더니 서울에서 작은 집 아들이 온듯한데 자신의 부모님 봉분만 벌초를 하고 매정하게도 나란히 있는 장인, 장모님 봉분은 조금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얄미워서 나는 상고머리만 해주었다. 장인어른은 말끔히 해주라고 했지만 나는 이번만은 양해해 달라고 했다. 선산도 없어서 장인어른이 마련한 선산에 모셨는데 후손이 고마움을 모르니 개미에게서 집안의 화목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내가 심어놓은 동백나무와 백일홍은 이미 스무 살이 지난 성년이 되어 활착을 했고, 황금 편백과 철쭉도 가슴에 다달았다. 동백은 건강상태가 좋아서 잎의 윤기가 잘잘 흐르고 있었다. 잎만 만져 주었는데 나무들은 주인이 왔다며 반기는 것 같았다. 개나리는 꽃이 필 때 오지 왜 이제 왔냐며 서운해 했고, 장모님 산소 앞에 놓여 있는 화병은 왜 조화를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며 혼을 낸다. 새벽같이 오느라 준비를 못했다며 다음에는 꼭 가져오겠노라고 했다.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들렸다.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주말이면 아이들을 맡기고 당일로 여행을 가곤 했었다. 지나고 보니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막심이다. 우리 부부가 금슬 좋게 살라고 희생하신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나는 장인어른을 더 좋아했다. 아내는 입버릇처럼 내가 장인어른과 결혼했다고 했다. 처갓집에 가면 으레 장인어른과 나는 밤이 새도록 인생에 대하여 토론을 했는데 어찌나 대화가 척척 맞던지 밤새 피곤함도 몰랐다. 대화가 끝나면 장인어른은 항상 침대를 내어 주셨다. 나는 방바닥이 좋다고 해도 하룻밤만 자고 갈 텐데 편하게 자고 가라며 기어이 양보하셨다. 나는 장인어른 채취를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식들이 많아도 두 분만이 사시니 밤마다 얼마나 적적하실까, 장차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지. 인생은 결국 혼자가 되는 걸까? 고요한 적막 속에 장인어른의 숨소리가 들렸다. 짧게 쉬시다가 한 번씩 길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아프신지, 노년이 외로우신지 긴 한숨을 쉬고 계셨다. 평소 대화를 나눌 때는 듣지 못했던 긴 한숨을 밤이 고요하니 들을 수가 있었다. 지나간 추억들을 회상하며 벌초를 하다 보니 점심때도 되기 전에 마쳤다. 점심은 간단히 고구마와 우유로 떼우고 여름에 다시 오겠노라며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TV에서 본 화순의 운주사가 생각났다.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여 고즈넉하기에 네비게이션에 찍어서 들렀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 방문객이 많았다. 천불천탑을 둘러보고 대웅전에 들러 헌금함에 시주를 하고, 약수를 한 컵 마셨다. 돌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대웅전에서 경을 읽은 소리가 들렸다. “몬니블 허가”, “모니블 스가”, “몬이블 허가”, “모니블 흐가”, “모니불 석가” 똑같은 내용일 텐데 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들리는지, 내방객들의 소음까지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경내를 돌아보고 대웅전 뒤로 열린 산책길을 따라 언덕 위에 다다르니 널브러진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가 도선국사가 운주사 창건 당시 공사감독을 위해 자주 들렸다는 불사암(佛事岩)으로 운주사 경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도선국사가 마스터플랜을 세웠다고 생각되었다.

 

 불사바위에 앉아 있어도 대웅전의 경 읽는 내용이 궁금하고 귓가에 메아리쳐서 서둘러 하산을 했다. 다시금 돌계단에 앉았다.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는 한 소절의 불경일 텐데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지막에 생각한 “모니불 석가”를 한동안 듣고 또 들었다. 집중하니 경내가 고요해지고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나의 고민이 풀렸다. '이거구나!' “석가모니 불”이 “모니불 석가”로 들렸구나. 중생도 부처님의 마음을 품으면 부처가 된다는 경전을 설법하고 있구나. 혜민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 했는데, 나는 ’고요하면 비로소 들리는 것‘을 산소에서도 운주사에서도 깨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화순을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2019.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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