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19. 5. 4. 07:07

달챙이 숟가락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학철


                                                                     


 


  찬장에서 찻잔을 찾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숟가락을 보았다. 어머니가 생전에 애용하시던 그 숟가락은 놋쇠로 만들어진 것인데 닳아빠져 흡사 초승달 모양 같았다. 옛날 우리 집에선 그 수저를 ‘달챙이 숟가락’ 이라고 불렀다. 그걸 꺼내봤다.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인지 푸른 녹마저 더덕더덕 슬어 있었다. ‘아, 이곳에서 30년간을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었구나!’ 나는 그 수저를 가지고 수돗가에 가서 수세미에 모래를 묻혀 깨끗이 닦았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그 수저로 누룽지를 훑고, 감자껍질도 벗겨 쪄 주셨다. 우리 집 아이들은 간식으로 피자, 햄버거 등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 누룽지와 찐 감자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정상적인 수저가 아닌 볼품없이 닳아빠진 그 수저가 어쩐지 눈에 거슬렸다. 그러던 중 어느 여름날, 큰 가위를 짤랑 짤랑대며


 “엿이요 엿, 맛있는 엿이 왔어요. 울릉도 호박엿도 있어요!


라고 외치는 엿장수 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반갑고 기다리던 소리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마루 밑 한쪽 구석에 모아 놓았던 사이다병 2개와 부뚜막에 있던 그 달챙이 숟가락을 가지고 나가 엿과 바꿔 먹었다. 한참 뒤에 부엌에서 어머니와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자 깎으려고 하는데 달챙이 숟가락이 없어졌다며 찾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머니는 나에게


  “너, 달챙이 숟가락 못 봤냐?”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까 엿하고 바꿔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고 이 녀석아, 왜 그걸로 엿을 바꿔 먹어. 그러면 감자는 무엇으로 긁으라고?


  하시면서 부엌 한쪽 구석에 두었던 바닥이 닳아 구멍이 난 어머니의 헌 고무신 한 켤레를 꺼내와 신에 붙어있는 먼지와 거미줄을 털면서 지금 이걸 그 엿장수한테 갖다 주고 달챙이 숟가락으로 바꿔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감자를 긁으려면 다른 새 숟가락으로 긁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더니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것으로 긁으면 잘 긁어지겠냐고 하면서 냉큼 가서 그 달챙이 숟가락을 가져 오라고 하셨다.


  그 신짝을 들고 동네에 나가 봤으나 엿장수는 이미 다른 동네로 떠나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 동네 저 동네로 뛰어가 찾아 봐도 헛수고였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이틀 후 아버지는 장에 가셨다가 고물상을 두어 군데 들러 달챙이 숟가락을 사려고 했으나 없어서 그냥 왔다고 하셨다. 나는 하는 수없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멀쩡한 새 놋쇠 숟가락 하나를 가지고 숫돌에 갈아 보았다. 힘이 들었다. 물을 묻혀 힘껏 갈아 봐도 조금씩밖에 끝이 갈아지지 않았다. 한참을 갈았더니 숟가락 끝이 조금 파이게 되어 그걸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별수 없이 이것이라도 사용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의 두 번째 달챙이 숟가락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나서부터 나는 달챙이 숟가락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그 숟가락이 뭐길래 그토록 찾으셨을까?

  눈여겨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무쇠 솥의 밥을 퍼내고 밑에 눌러 붙어있는 누룽지를 긁을 때나 그 독한 청보라색 하지 감자 껍질을 긁을 때, 굼벵이가 파 놓은 감자의 상처를 깎을 때, 심지어 눈이 붙어있어 오목하게 들어간 곳도 숟가락 옆의 뾰족한 끝부분을 이용하여 정밀하게 깎아내는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무나 당근도 긁고, 늙은 호박의 겉과 속을 긁는데도 요긴하게 쓰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 깎을 때는 제일이랑개!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식기 전에 어서들 먹으라며 금방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소쿠리에 담아 제비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듯 주시곤 했다.

  ! 이래서 달챙이 숟가락을 그렇게 찾으셨구나. 그제야 달챙이 숟가락의 위력을, 그리고 어머니가 어금니 아끼듯 귀하게 여긴 까닭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볼품없는 물건이라도 쓸모가 한 가지씩은 있다는 것도 이때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이번 일로 후일 성장해 가면서 나의 사람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었다. 잘 생기거나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약간 부족하거나 어수룩한 사람이라도 무슨 일이던 척척 잘 해내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이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그 달챙이 숟가락을 오랫동안 쓰셨다. 그것은 날이 갈수록 반달을 거쳐 초승달로 변했다. 그동안 얼마나 긁어 댔기에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러다가 어머니는 30년 전에 초승달이 새벽녘에 사라지듯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내는 달챙이 숟가락 대신 감자칼을 사다가 사용하고 있다. 어머니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기도 한 이 숟가락은 주인을 잃은 채 이렇게 홀로 지내고 있었다. 볼수록 짠하다.

 


  10년 전 어느 개인 미술전시회를 관람한 일이 있었다. 서양화 여러 점과 수예품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는 놀랍게도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는데 뇌성마비를 앓아서인지 얼굴은 약간 돌아간 모습으로 연신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웃는 입의 모습이 꼭 달챙이 숟가락을 닮았다. 질환만 없었더라면 누구 못지않게 예쁜 얼굴이었을 텐데 보기에 딱하고 애처롭기조차 했다. 은 이 여성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방관했더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신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주변에는 친구인지 친척인지 여성 서너 명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뛰어났다. 평소 기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지 못한 자기만의 개성과 참신함을 갖추고 있었다. 어떠한 기교나 가식도 없이 마치 어린 아이들과 같은 때묻지 않은 청신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이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성치 못한 몸과 정신으로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까?

  관람객은 쓸쓸하게도 나와 두어 사람뿐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그냥 나오기가 어쩐지 아쉬웠다. ‘자린고비 국제대회’에서 2등 가라면 서운타 할 나였지만 여기서는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림 한 점을 구입한 것이다. 그 작가에게 축하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와 대화가 통하질 않았다. 하는 수없이 방명록에 이렇게 쓰고 나왔다.

  ‘오늘 나는 작가님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소서!

  비록 볼품없는 신체와 외모를 지녔지만 영혼이 불타고 있는 이 여성은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해 주는데 한 몫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뿐이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 사회 구석구석에는 모자라지만 나누는 삶을 사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이들이야말로 ‘달챙이 숟가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볼 때가 있다. 그 달을 보면 그 옛날의 달챙이숟가락이 보인다. 그리고 누룽지를 긁어 주시던 어머니의 얼굴도 보이고, 전시장의 자기 작품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 뇌성마비 여성화가의 얼굴도 보인다.                                       ( 2019.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