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6. 3. 21. 17:05

오리정의 추억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황 점 숙


  "우리 선조들은 손님이 다녀가시면 오리 밖까지 배웅을 하여 그 곳에 있는 정자에서 서로 시조를 지어 주고받은 뒤 작별을 했습니다. 그때는 어느 고장이나 오리 밖에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유일하게 남원 한 곳에 '오리정'이 남아 있습니다."

 늦게 시작한 국문학공부를 하다가 '고전시가강독' 강의 도중 귀가 번뜩 트이는 교수님의 이 말씀을 듣게 되었다. 전주 남원간 국도 변에 있는 '오리정'이 우리나라에서 선조들의 정취가 남아있는 유일한 정자라고 했다. 선조들이 손님을 배웅하면서 시조를 한 수씩 건네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던 격조 높은 장소였던 오리정은 나 역시 학창시절의 달콤한 추억이 담겨진 곳이다.

 고향집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도로가 정비되면서 자꾸 짧아진다. 한 달에 한 번씩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을 찾던 학창시절에는 갈아타는 차시간까지 무려 세 시간이 걸렸지만, 다시 요금이 비싼 직행버스를 타면서 30분이 더 줄었다. 요즘에는 승용차로 딱 한 시간이면 고향집 마당에 도착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민족의 대 명절이 오면 고향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했었다. 기차역의 대합실은 벽이 터져 나갈 듯 사람들로 꽉 찼고, 역 광장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이 귀성인파로 북적거렸다. 요금이 싼 완행열차를 타려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시외버스 터미널 역시 예외일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복잡하기만 한 대중교통을 피해서 고향으로 가는 또 다른 교통편이 있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중학교동문 선배들이 향우회를 소집했다.
 "올해는 00고등학교와 함께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3학년 선배는 어디까지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자율의사에 맡긴다고 하면서도 인원이 많아야 요금 부담이 줄어든다며, 함께 갈 것을 강요하는 눈치였다. 그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는 명절 특별 이벤트이기도 해서 은근히 기다리는 설렘도 있었다. 참가비용은 기차요금보다는 비쌌고 직행버스 요금 수준을 갹출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간식도 준비한다는 말로 우리를 유혹하였다.
 선배들 결정에 군소리 없이 따라야 했던 하급생이었지만 가벼운 주머니를 울리는 비용보다 남학생과 함께 간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추석 전날 고향에 가려고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우리는 자취 집에 들러 짐을 챙겨서 전주역 부근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관광버스를 찾아갔다. 남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우리는 모두 회비를 내고 차에 올랐다. 좌석은 다 차고 보조의자까지 동원해서 승객을 태운 관광버스는 고향을 향하여 출발했다.

 전주에서 남원까지 달려가는 동안 각 학교 대표의 인사가 있고, 간식 분배도 이뤄졌지만 어색한 분위기로 차안은 썰렁하기만 했다. 지금처럼 직선 도로가 아니었던 터라 한 시간쯤 달리면 예외 없이 멀미하는 학생들이 생겨나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5분쯤 가면 오리정이 나오는데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오리정에 도착해서 약 30분간의 휴식 시간에 오락시간을 갖겠다는 대표의 안내는 진통제 같은 것이어서 괴롭던 멀미도 진정되는 듯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관광버스는 오리정 입구에 학생들을 내려놓았다. 광한루 완월정보다 규모가 작은 정자가 있고, 연꽃잎이 떠있는 작은 연못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넓은 마당의 잔디가 푸릇푸릇했었다. 어색해서 삼삼오오 몰려 있는 학생들을 불러 둥그렇게 앉게 한 뒤 수건돌리기 게임을 시작했다. 술래에게 잡힌 학생은 가운데로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게 벌칙의 전부였다. 행여 술래에게 잡힐세라 수시로 손을 뒤로 저어가면서 살펴야했던 내 가슴은 콩닥콩닥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음치가 갖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눈 한 번 위로 떠보지 못하던 부끄러움도 승부욕에 밀려 앞에 앉은 남학생의 얼굴도 쳐다볼 수 있는 있었다. 약 30분간의 오락 시간이 지나고 일행은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가로수의 환영을 받으며 구불구불한 춘향고개를 넘어 남원역 광장에서 헤어졌다.

 결혼한 뒤 첫아이를 데리고 친정나들이를 하던 길에  학창시절 잊혀지지 않는 오리정을  들러보았다. 빨간색 프라이드 중고차를 구입한 남편은 가는 중간중간에 우리를 모델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정자 기둥에 세우고 사진을 찍어 주고 나오는데 남편이 오리정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냥 옛날부터 전해진 이름이겠지!" 라고 대답한 뒤 조금의 의아심도 갖지 않았다. 스무 해가 지난 뒤 오리정의 유래를 알았고, 친정 가는 길에 오리정을 지나가면서 가족들에게 문화유산해설사가 된 기분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국도였던 전주 남원 간 도로가 이제는 4차선 고속도로처럼 쭉 뻗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리니 잠시 오리정에 머물다 갈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손님을 배웅하러 걸어서 5리까지 나왔다는 선조들의 여유로운 멋을 흉내내고 싶어진다. 가끔 오래된 앨범을 꺼내 스무 살 청년이 된 아들의 유아시절 모습을 담고 있는 오리정 사진을 꺼내본다. 더 아득한 내 학창시절의 추억이 나를 늘 소중한 고향으로 데려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