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6. 3. 22. 16:32

나는 반항아였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양용모


 



 나는 억울하다. 절대로 남의 것을 보고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느닷없이 성적이 급상승함으로써 커닝의 주범으로 몰렸고, 재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옆에서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르는 시험은 지옥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나는 절대 결백하다.' 그러나 나의 가슴은 떨렸다. 시험은 보기도 싫다. 그냥 대충대충 쓰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선생이고 나발이고 잘 해쳐먹어라.' 나는 그 날 이후 공부와 담을 쌓고 말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담임 윤 선생님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는 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늘 공부가 고만고만한 나는 어느 날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된다. 이번 시험에는 반드시 일등을 한 번 해보리라. 나는 남몰래 밤낮 없이 공부하였다. 앉으나 서나 공부생각을 했다.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다. 나는 마침내 시험 보는 날 일사천리로 시험지를 써내러 갔다. 가슴과 손이 떨렸다. 공부를 하니 다 쉬운 문제였다.
 드디어 시험결과가 밝혀지는 날, 나는 반에서 일등은 못했어도 성적이 급상승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성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정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한 추측이었다. 공부를 못한 학생이 갑자기 성적이 좋아졌으니 의심을 한 것이다.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 선생님은 나는 항상 공부를 못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보고 있는 것이었다.
 재시험을 치른 나는 그만한 성적이 안나왔다.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시간이었다. 숙제가 주어졌다. 창작 장난감을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만은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며칠을 궁리하여 도토리를 끼워서 날리는 장난감을 만들었다. 자동으로 발사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의기양양하여 선생님에게 가져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작품을 보더니 칠판에다 대고는 조롱하듯이 뚝뚝 쏘면서 “이게 뭐냐?” 하시며 부숴 버렸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도망치듯이 교실을 나온 나는 한없이 울었다. 그 뒤 나는 공부고 숙제고 무엇이든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반대로 하였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알고 모든 것을 덮어 버린 것이다.
 6학년이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중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것을 아신 할아버지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비상대책을 강구하셨다. 이른바 과외였다. 당시 우리 반에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담임선생님 댁에서 그룹으로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 뒤 담임선생님에게 통사정을 한 할아버지 덕분에 나도 그 그룹에 끼었다. 담임선생님의 불호령 속에 나는 간신히 전주에 있는 사립중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와 어머니가 시장에 다녀오시더니 숟가락 하나를 놓고 다투었다. 어머니와 이웃집 아주머니는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었다. 새 숟가락이 유기전 앞에 떨어져 있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워서 어머니를 주었고, 어머니는 그것이 떨어져 있는 것을 먼저 보고 주워 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즉 이웃집 아주머니는 떨어져 있는 숟가락을 주어서 주인이 볼까봐 어머니를 준 것이고 어머니는 떨어져 있으니 이웃집 아주머니보고 주워 달래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였다. 한참 듣고 있던 나는 왜 남의 물건을 주어 왔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어머니는 유기전 앞에서 주어온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와 이웃집 아주머니를 보고 소리쳤다."아니, 가계 앞에서 이런 것을 주어와 싸우면 어떡하십니까?" 갑작스런 나의 고함에 놀라 이웃집 아주머니는 그냥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부엌으로 가버리셨다. 나중 안 일이지만 가계 앞이 아니라 장이 파하여 물건을 거두고 간 뒤 주어 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숟가락 하나도 구하기 힘든 때였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마을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스무 명이 넘었다. 나는 신문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나눠주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마을 사람들의 관심사를 글로 써서 여러 장 베껴 나눠 보는 소식지였다. 누군가 마을 뒷산에서 소나무를 마구 베어 버렸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누군가는 모르지만 정말 많은 소나무를 베었다. 어린 마음에 소나무가 없으면 산사태가 나서 마을이 해를 당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소식지에 그런 내용을 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른들이 그것을 본 것이다. 쪼끄만 게 뭘 안다고 이런 내용을 글로 써서 돌리느냐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어른들은 산 감독이 알면 큰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어른들에게 대들듯이 말했다. 산 감독이 알면 큰일 날 일을 왜 하셨느냐고. 그러나 나의 그런 반항을 이해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들려오는 대답은 공부나 하라는 말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녀석이 동아리를 조직하였다고 한다. 축구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총무를 맡았다고 한다. 맨유의 유니폼을 흉내낸 축구 유니폼을 만들었는데 회원들이 대금을 내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역시 너도 내 아들이구나!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하고 있으니." 나는 빙그레 웃고 일어나 아파트 창가로 다가갔다. 비가 오고 난 뒤에 동녘하늘에 물안개가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