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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4. 11:40

 



치매, 그 몹쓸 놈

한성덕







11월의 어느 날, 두 자녀가 어머니와 함께 우리 요양원을 방문했다.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마치고 이방 저 방을 돌아보았다. 으레 풍길 줄 알았던 노인성 냄새가 없자 ‘냄새가 안 난다.’며 퍽 좋아했다. 그리고 12월 첫 날, 다시 와서는 아버지를 맡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요양원을 나섰다. 미남형에 큰 키인 1950년생 중증 치매환자다. 요즘 같으면 청년의 나이가 아닌가?

몇 번이나 부인은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옷을 매만지고, 손을 만지작거리며, 양 볼에 뽀뽀하는 마지막 스킨십에 가슴이 뭉클했다. 남편은, 그 어떤 대꾸나 반응도 없이 그저 덤덤했다. 목석처럼 느껴져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자녀들은 자꾸 아빠를 쳐다 보았다. 부인은, ‘40년 이상을 살면서 5남매를 키워 시집장가 다 보내고 살만한데 이 무슨 짓이냐’고, 이 말 저 말을 주절거리며 울먹였다. 남편의 어깨를 두드리며, ‘여보 미안해요.’ 하고 돌아서는 이별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부인이 그토록 울더라.’는 복지사의 말에, 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니 웬일일까?

만약, 내가 그 지경이라면? 그래서 열렬히 사랑하는 우리 부부사이를 치매가 갈라놓는다면, 친구나 자녀는커녕 아내도 몰라본다면, 숟가락질도 잊어서 밥을 떠 먹여준다면,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져 사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면, 그 어떤 사물도 몰라보는 처지라면, 자나 깨나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보챈다면, 대소변을 손으로 가리켜 타인이 화장실로 안내한다면, 그토록 즐겨 쓰는 수필은 고사하고 글조차 읽을 수 없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면, 그 인생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기야, 그런 것조차 치매가 전부 앗아갔으니 무엇을 알랴? 그저 백지상태로 남은생애를 사는 거겠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조여 들었다. 자신은 알 수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자녀들과 아내는 얼마나 속상할까? 그 좁은 공간에서 고향을 가겠다며 문이란 문을 죄다 찾고 난리다. 요양보호사가 특별 관리하는 요주의 치매환자다.

어느 날, 아버지의 서류문제로 큰딸이 요양원에 왔었다. 가족을 보면 어쩔까싶어서 충분히 설명하고 면회를 금지시켰다. 일을 마친 딸이 거실 문을 살며시 열고서는 적이 놀랐다. 늘 서성거리며 밖에만 나가려던 아빠의 모습이 전혀 아닌 것에 감탄했나? 안심한 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빠 사랑해’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그토록 쓸쓸해 보여서 울컥했다.

그 환자가 치과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병원에서 부인과 한 달 만에 만났다. 놀라기는커녕 반가운 기색도, 안아줄 마음도, 안부를 물을 생각도 전혀 없었다. 무덤덤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부인이, ‘관광버스 기사로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고 귀뜸했다. 우리 요양원에서 보는 중증치매환자의 실제 이야기다.

이 소설 같은 현실 속에서 요양원에 근무한 지 5개월째다. 이런저런 일이 왜 없었을까마는, 치매환자의 일상을 늘 보고 있어서 가슴이 저며 온다. 도대체 그 놈의 치매는 인정도, 사정도, 눈치도, 부끄러움도 없는 불한당이다. 40년이 아니라 그 이상을 살았다고 해도 사람을 몰라보니 어쩔 것인가?

노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질병은 암이 아니라 치매라고 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병 중 단연코 1위다. 아프면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하면 되지만, 치매는 어디 그런가? 실제적 경험에서 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치매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후천적인 외상이나 질병 등 외인에 의해서 기질적으로 손상된 것을 말한다. 전반적으로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능력, 전두엽기능 등의 인지기능과 이상행동증상이 동반되는 복합적인 질환이다.” (양영순 저 ‘치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

저자는 그의 책에서, ‘최근에는 치매와 관련된 많은 약물들이 개발되었다. 진단 역시 훌륭한 검사를 통해서 정확하게 내려진다. 그래서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진행을 늦추거나,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도 썼다.

나도 점점 익어가면서 치매에 신경을 쓴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전력을 보면 전혀 아니라고 우겨댈 바도 아니다. ‘치매, 그 몹쓸 놈’이 우리의 땅에서 얼씬 못하도록 기도할 것이며, 온전한 치료제가 개발되기를 또한 기도한다.

(2021. 1. 5. 새해 첫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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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4. 04:17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스무 한 번째, 일백 스무 두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21.

이 할애비는 몇 종류의 소나무과(-科) 소나무속(-屬) 나뭇가지들을 잎이 달린 채로 꺾어 와서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녀석한테 건네주며 말한다.

“으뜸아, 언젠가 네게 알려준 적 있다마는, 이 나무들 식별점(識別點)을 말해보렴.”

그러자 녀석은 꼼꼼하게 살피며 말해온다.

“한아버지, 으뜸이가 금세 기억해냈다? 잎이 다섯 개인 이 나무는 잣나무류, 잎이 두 개인 이 나무는 소나무류, 잎이 세 개인 이 나무는 소나무류 가운데에서도 리기다 소나무(rigida). 리기다 소나무는 잎이 빳빳하다고(rigid) 붙여진 이름.”

하여간, 녀석은 천재다. 사실 이미 오래 전에 이 할애비가 딱 한 차례 일러주었던 사항인데, 그걸 다 기억해내다니!

“으뜸아, 이참에 소나무류에 관해서만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볼까? 소나무류는 잎이 세 개씩 달리는 종류와 잎이 두 개씩 달리는 종류로 크게 둘로 나뉜단다. 앞엣것[前者]은 이미 네가 말했던 대로 리기다소나무를 비롯하여 ‘테에다소나무’와 ‘왕솔나무’가 있어. 뒤엣것[後者]은 ‘소나무’·‘방크스소나무’·‘구주소나무’·‘풍겐스소나무’·‘곰솔’·‘중국곰솔 ’·‘만주곰솔’등이 있어.”

녀석은 ‘수목학’의 근간(根幹)이 식별(識別)임을 익히 알고 지내는 터. 해서, 이 할애비의 수목학 강의가 그다지 지겹지 않은 눈치다.

“으뜸아, 수목의 식별은 ‘같은 가족이지만 멀고 가까운 관계’를 따지는 우리네 ‘촌수(寸數)따지기’와 비슷하지 않니? 나는 네 외할애이고, 너는 이 할애비의 외손주이고, 네 엄마 ‘초롱’은 이 할애비의 딸이고, 네 이모 ‘아름’은 네 엄마의 하나뿐인 동생이고... .”

자연스레, 녀석한테 ‘촌수 따지기’ 이야기로 옮아간다. 이 할애비는 녀석한테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촌수 따지기’는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제도이며 12세기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디‘촌(寸)’은 대나무의 ‘마디’를 ‘친등(親等)’즉, ‘친족 관계의 원근의 차를 나타내는 등급’을 표시하는데 이용한 듯. 촌수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1촌(한 마디;한 세대)’으로 계산하는 데에서 출발. 1촌,3촌,5촌,7촌,9촌 등 홀수는 ‘아버지’,‘아재비’,‘할아버지’,‘조카’,‘손자’. 2촌,4촌, 6촌, 8촌 등 짝수는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형제항렬(兄弟行列). 촌수호칭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친족호칭에는 조(祖)·숙(叔)·형(兄)·질(姪)·손(孫) 등으로 세대를 표시한다. 그리고 친소(親疏)의 정도에 따라 종(從)-·재종(再從)-·삼종(三從)- 등의 접두어를 붙여 사용한다. 가령, 종형제면 나랑 4촌 관계이고 재종형제이면 나랑 6촌 관계이며 재종형제면 나랑 8촌 관계이다. ’

여기까지 듣고 있던 녀석이 어쩌자고 ‘휴우!’ 한숨까지 내쉬는지?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으뜸이한테는 안타깝게도 2촌인 형제도, 4촌인 종형제도, 6촌인 재종형제도 없는 걸! 앞으로 으뜸이한테는 촌수따지기가 아니, 분류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애. 으뜸과(-科) 으뜸속(-屬)에는 속하는 나무는 오로지 으뜸나무뿐이니깐.”

녀석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이 할애비는 언뜻 알아차린다. 하나만 낳거나 아예 낳지 않음으로써 형제도, 종형제도, 재종형제도 차츰 사라져 가는 ... .

참말로, 온 나라 어른들이 근심하는 인구문제를, 출산문제를 내 귀엽고 사랑스런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그 작은 입술로 지금 안타까이 말하고 있다.

나무난롯불은 사위어 가고, 굴뚝새 무리는 ‘짹짹’ 이 덤불 저 덤불 건너타고 저네들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122.

 

마른 행주 쥐어짜듯, 또 다음 이야기를 장만하겠어요.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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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3. 14:42

 





긍정적인 삶/김길남

 전민일보




어느 여대생의 푸념’이란 글을 읽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무얼 하겠어요. 결과가 너무 뻔하다는 말이에요. 취직을 해 봤자 대학 4년을 배운 지식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나 할 텐데…. 차나 나르고 그렇지 않으면 서류나 챙기고, 그 일도 못하면 결혼이나 하고 4년 동안의 꿈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가 시작 될 것 같아요’였다.

너무나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어떤 일이나 ‘…나’ ‘…나’ ‘…나’로 시들하게 여겼다.

요즘 가정에서 아들딸을 하나만 낳아 귀하게 키우고 어려운 일을 시키려 하지 않는다. 편한 것만 찾게 하고 쉽게 이루려한다. 오직 입시에서 일류대학에 가야 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며 학원을 이 곳 저 곳 보내고 공부 잘 하기만 바란다.

그리고 사회풍조도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못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 경향이다. 그래서 편하게 살려고 결혼도 포기하고 직장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너무 도전정신이 없다. 힘껏 싸워 이기려 하지 않는 나약한 젊은이가 많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를 ‘…도’로 바꿔야 한다.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차도 나르고 서류도 정리하고 결혼도 하고’로 바꾸면 시들하던 일도 재미가 있고 캄캄하던 앞길도 훤하게 보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맞이하면 앞길이 열릴 것이다. 이 세상의 일은 하찮은 일이 있고 보람찬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사는 일이 날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일 같은 큰 일만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사는 일이란 다 하찮기도 한 소소한 일들이다.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끼는 자만이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옛날 숙종대왕이 암행에 나섰다. 어느 오두막집을 지나는데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양반집에서도 보지 못하는 일이었다. 이상하여 주인을 찾아 지나가는 나그네라 하고 물 한 그릇을 청했다. 그 사이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할아버지는 새끼를 꼬고 있고 손자들은 짚을 골라 주었으며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며느리는 옷을 깁고 있었다.

물그릇을 받아들고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어찌하여 웃음이 그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이렇게 살아도 빚도 갚아가며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임금이 돌아가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다음날 다시 찾아가 어떻게 빚을 갚고 저축을 하는가 물었다. 주인이 대답하기를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이 빚을 갚는 일이고 제가 늙어서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저축이 아닙니까 했다.

삶이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못사는 것을 원망하고 산다면 무슨 웃음이 나오겠는가? 이만큼 사는 것도 부모님 덕이고 하늘이 내려주신 복이라 여기니 웃음이 그치지 않은 것이다. 행복은 소득수준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국민소득이 최하위인 부탄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현실에 만족하고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순박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행복지수는 낮아진다.

사람이 사는 일이란 모두 이렇게 사소한 일이다. 조그만 일에서 만족을 느끼고 보람을 찾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행복은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을 찾아 하루 종일 헤매다 지쳐 해질녘에 집에 돌아왔는데 찾던 행복이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족이 저녁에 오순도순 모여 밥을 먹으며 아이들 재롱을 보는 일 그게 행복이다. 일상의 일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보다.

김길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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