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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3. 06:43

 



산타(Santa)의 선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아내와 나는 교보문고에 갔다. 손자들에게 줄만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매장에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장난감과 초콜릿, 예쁜 노트 와 연필 등 많은 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몇 권의 책과 체크보드판 두 개를 골랐다. 어린 준원이(3세)에겐 자동차를 선물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예쁘게 포장을 하고 편지도 써 넣었다.



오래 전 교회 학생반 교사때의 일이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거리에 징글벨소리가 울려 퍼졌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선물준비에 바빴다. 밤늦도록 선물을 포장하고, 새벽 4시쯤 되면 산타복장에 등불을 들고 아이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을 하며 선물을 문 앞에 놓고 다녔다. 순진한 아이들에게 벌인 깜짝 이벤트였다. 그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어제저녁 산타가 선물을 주고 갔다”며 좋아했었다.



어릴 때는 작은 선물을 받아도 기뻤다. 연말쯤엔 왠지 마음이 설레고 하얀 수염의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날 것 같은 기대에 꿈이 부풀었다. 이렇듯 산타의 거주지로 알려진 북유럽 핀란드의 산타는 인기가 높다. 아이들의 소원을 담은 편지가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 태평양의 섬나라 통가에 이르기까지 200여 국가로부터 “핀란드 96930 북극 산타클로스마을 중앙우체국” 주소로 60여 만 통의 편지가 날아든단다.



산타는 선물을 나누어주고 자비를 베푸는 너그러움의 상징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서라도 많은 사람이 믿도록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원동력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도 수만 명이 믿고 행동하면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한몸같이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한계가 너무도 명백한 인간이 몇 백만을 한 집단으로 조직해 수없는 큰 규모의 일을 해낸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브저녁 우리가족은 함께 모였다. 앞에 놓인 선물꾸러미를 보며 아이들은 생기가 돌고 재미가 있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들이었다. 직장일에 바빠 늘 늦게 들어오던 제 엄마와 함께하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저녁엔 장기자랑을 하기로 했다. 먼저 벌레박사 시원이(9살)는 곤충연구발표를 할 시간이다. 어른들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노트북 브리핑을 손색없이 이어갔다. 곤충의 종류, 특징과 이 땅에서 곤충왕은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또 6살 지원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를” 하며 율동과 노래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딸아이라 노래하는 모습도 율동도 너무 귀여웠다. 이에 질세라, 3살 준원이도 나와 “안녕하세요”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더니 “징글벨” 노래를 또렷이 부른다. 제 누나와 함께 유치원을 다니더니 말하는 것도 빠르고 붙임성도 좋아졌다. 길을 가다보면 하찮은 것도 신기해 하여 “저건 뭐야? 왜 그런데?” 등 질문을 달고 산다.



아이들은 재롱을 마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저희들을 돌보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인사를 나붓이 했다. 아이구 저런… 많이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힘껏 안아주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 앞에서 쑥스러워하지 않고 발표도 하고 노래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으니 든든해졌다. 오늘밤 우리부부는 산타가 되어 준비한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갈수록 문명은 발전해 가는데 요즘처럼 답답하고 긴장한 때가 없었다. 난데없는 “코로나19”로 인해 인류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방문도 대면의 기회도 달갑지 않은 사회를 맞이하고 있으니 이제는 웬만한 애경사도 가족중심으로 치러야 하는 때가 된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늘 그렇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는 솔로몬의 글귀로 자위하며 하루 빨리 평범한 일상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럴수록 서로 산타가 되어 즐거움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오늘저녁은 아이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니 행복한 시간이었다.

(202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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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3. 05:54

희수 유감(稀壽 有感)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희수를 지났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족과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다. 역병이 창궐하니 내가 하지말자고 했다. 입동을 시작으로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으로 겨울이 이어진다. 내 나이가 인생의 입동에 들어섰다. 계절만 춘하추동이 있는 게 아니고 인생도 춘하추동이 있다. 25세까지는 봄이고 50세까지는 여름, 75세까지는 가을이며, 75세 이후는 겨울로 생의 끝이다.

삼라만상은 겨울을 맞이하여 나무는 잎을 떨구고 다른 생물도 동면에 들어간다. 누구나 그 대열에서 이탈할 수 없다. 항상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 귀뚜라미 울고 천고마비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지만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야한다.

뒤돌아보니 1967년도에 제대를 하고 그해에 공무원이 되어 2001년도에 정년퇴직을 했으니 얼추 35년이다. 돌이켜 보아도 내세울 건 없다. 태생부터가 시골에서 팔남매의 장남으로 6.25를 겪으며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고생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왜일까? 여름밤 초가지붕에 박꽃이 피고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식구들과 멍석에 누워 별을 헤며 잠들던 시절, 자지러지게 매미가 울고 소쩍새가 목이 타던 보릿고개가 생각난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있었고, 정월 대보름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란 깃대를 들고 풍물을 쳤다.

내가 도시로 나온 건 공군에 복무하면서부터였다. 제대 후에 시험으로 경찰이 되었다. 경찰은 인사이동이 많아 35년간 40여 회나 이동하면서 근무했으니 가족이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을 했다. 그때는 방랑시인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월급 받으며 방랑했으니 빌어먹은 김삿갓보다 못할 게 없다고 마음먹으니 가는 곳마다 즐거웠다. 제복을 입고 근무했으니 무시당하진 않았다. 그런 시절을 뒤로하고 퇴직 후 여유를 가지고 살다보니 어느덧 희수다. 앞으로 산수 미수 졸수가 다가올 텐데 내가 얼마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의료보험공단에서 연명치료거부 동의서를 받아 보관하고 다닌다. 요즘 이승을 떠나는 친구들의 부음이 들릴 때마다 쓸쓸하다. 언젠가는 나도 저 길을 갈 것이다.

희수가 되어 생각해보니 일모도원이다. 즉 해는 지는데 해놓은 건 없고 마음만 바쁘다. 뭔가 정리해야겠고 언제 떠나도 후회가 없도록 내 삶을 정리할 수필집을 내어 자손들에게 이렇게 살았노라고 전하고 싶다. 그건 수필가로서 나의 꿈이기도 하다.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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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1. 1. 13. 05:03

내가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 사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아는 것을 애써 난척하지 않고도

자신의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겸손함과

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비치는

거울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남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선한 눈을 가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를 내거나 과장해 보이지

않는 온유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특함으로 자신의 유익을

헤아려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마음보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남의 행복을 기뻐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잔꾀를 부리지 않으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깊은 배려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잠깐동안의 억울함과 쓰라림을

묵묵히 견뎌 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진실 된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쌓으며,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
좋은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