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마음, 밝은 지혜, 스스로 행복

행복이란, 슬픈 세상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명상하는 법 (위빠사나 명상법)

댓글 0

행복의 기술

2011. 4. 15.

 

제 블로그에 <명상법>이라는 검색어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저도 특별히 명상법을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닌 지라,

책을 읽고 제 나름대로 위빠사나 명상을 해 보고 있었거든요..^^:

 

명상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짧은 글  두편을  소개합니다.

 

인생에서 명상법을 알고 이를 습관화하는 삶,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

 

 

 

 

 

위빠사나 명상은 호흡법을 익히는 데 매우 좋은 방법이다.

위빠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호흡에 대한 주시, 통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붓다가 수행을 했던 방법으로 동남아 인도의 승려들 사이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으로 전수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명상법이다.

스트레스 해소나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데 효과적이다.

 

1. 조용한 장소에서 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몸을 조이지 않는 편안한 옷차림이면 좋다.

눈을 지그시 감고 턱을 살짝 내린다.턱과 어깨 , 눈 사이의 긴장을 푼다.

천천히 호흡한다.

호흡의 들어가고 나옴의 감각을, 코끝과 코 언저리에 의식을 든다.

자신의 숨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를 살핀다. 평소보다 조금 더 깊게 내쉬도록 의식한다.

도중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인정하고 주시한다.

20분 정도 한다.

 

2. 이번에는 의식을 아랫배 단전에 둔다.

아랫배 배꼽 약간 밑을 중심으로 삼고 그 속에 큰 풍선이 있다고 느낀다.

숨을 들이쉬면 그 풍선이 부풀고 숨을 내쉬면 풍선이 가라앉는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20분 정도에서 시작해서 차츰 시간을 늘려간다.

 

 

3.깊은 호흡에 익숙해졌으면 일상 행활 속에서도 호흡을 주시한다.

길을 걸을 때나 차에 오를 때, 밥을 먹거나 책상 앞에 앉아서도 늘 호흡을 의식한다.

 

 

               -< 홍신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에서 발췌

 

 

 

 

출처: http://blog.daum.net/molad/520



위빠사나(Vipassana)는 다른 어떤 명상법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 준 명상법이다. 위빠사나는 매우 본질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명상법들 역시 동일한 핵심 요소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비핵심적인 요소들이 흘러들었다. 그러나 위빠사나는 순수하게 핵심만 남아 있다.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더 좋게 개량하기 위해 덧붙일 것도 없다.


위빠사나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명상법이다. 사실 어린아이는 그대보다 더 쉽게 위빠사나 명상법을 행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아직 마음이라는 쓰레기로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청정무구한 상태이다. 위빠사나를 행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으며 그대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첫번째 방법은 행동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자각하는 것이다. 몸의 움직임과 마음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가령 걸음을 걸을 때에도 완벽한 인식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팔을 흔들 때에는 자신이 팔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식해야 한다. 평상시에 그대는 아무 의식도 없이 기계처럼 행동한다. 아침 산책을 할 때에도 다리의 움직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긴다. 


육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인식하라. 음식을 먹을 때에도 동작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의식하라. 샤워를 하는 동안 물의 차가운 감촉과 그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의식하라. 그대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깨어 있으라. 그런 일들이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일어나게 해서는 안된다. 


마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지나가든 그 생각을 주시하라. 가슴 속에 어떤 감정이 떠오르면 그 감정을 주시하라. 그 감정의 물결에 휩쓸리거나 동화되지 말라.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하지 말라. 그것은 명상이 아니다. 


두번째 방법은 호흡이다. 호흡 하나하나를 자각하는 것이다. 호흡이 들어오면 배가 불룩해지고, 숨을 내뿜으면 배가 꺼진다. 이 배의 움직임을 자각하라. 배는 삶의 근원과 아주 밀접하다. 태아는 배꼽을 통해 엄마의 삶과 연결된다. 배꼽 뒤에 삶의 근원이 있다. 그러므로 호흡에 따라 배가 움직일 때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은 삶의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가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별로 어려운 방법이 아니다. 어쩌면 첫번째 방법보다 더 쉬울 것이다. 배의 움직임만 주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대는 몸을 자각하고, 마음을 자각하고, 감정을 자각해야 한다.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그리고 두번째 접근 방식에는 단 하나의 단계가 있을 뿐이다. 단지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관찰하면 되는 것이다. 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감정이 사라진다.


세번째 접근 방식은 코를 통해 호흡이 들어올 때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숨이 들어오면서 코에 시원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 다음에 숨이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


이것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쉽다. 여성은 배를 더 자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은 배에 도달할 만큼 깊이 숨쉬지 못한다. 그들은 숨쉴 때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이것은 그룻된 운동법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대는 배로 숨쉬면서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육체미를 망가뜨린다고 염려할지도 모른다... 사실, 남성들은 그런 육체미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호흡이 들어올 때 콧구멍을 주시하는 것이 더 쉽다. 콧구멍을 주시하라. 그리고 호흡이 나갈 때에도 주시하라.

 

지금까지 말한 것이 위빠사나의 세가지 방법이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상관없다. 두가지 방법을 병행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세가지 방법 모두를 병행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면 목적지에 이르는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쉽게 느껴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대에게 달렸다.


쉬운 것이 옳다. 언제나 이것을 잊지 말라.


명상이 깊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에고가 사라질 것이다. '나'라고 하는 느낌이 없어질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문이 열린다. 그 깨달음의 순간,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그 순간을 열망하고 환영하는 자세로 기다려라. 마냥 기다려라. 그러면 그 순간이 온다. 틀림없이 온다. 그 순간은 단 한번도 지체된 적이 없다. 일단 주파수만 제대로 맞추고 기다리면 돌연 그대 안에 폭발이 일어난다. 이 폭발이 그대를 완전히 변형시킨다. 이제 낡은 인간은 죽고 새로운 인간이 태어난다.


자리에 앉아라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하라. 등과 목을 꼿꼿이 세워야 한다. 눈을 감고 호흡은 평상시대로 한다. 꼭 자세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는다. 


앉아 있는 동안 일차적인 목적은 호흡에 따라 배가 오르내리는 것을 주시하는 것이다. 배꼽 약간 윗부분을 주시하라. 이것은 집중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호흡을 주시하고 있는 동안에 많은 일들이 그대의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 것이다. 위빠사나 자체에는 그대의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요소가 없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떠오를 때에는 그것을 거부하지 말라. 다시 호흡을 주시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라. 사념, 감정, 판단, 몸의 감각, 외부 세계에 대한 인상 등이 떠오르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휩쓸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중요한 것은 주시의 과정 자체이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시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떠오르든 거기에 동화되지 말라. 의문이나 문제가 떠오르면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즐겨야 할 신비로 대하라.


걸음


평상시와 똑같은 걸음걸이로 천천히 걷는다. 발이 땅바닥에 닿는 것을 느낀다. 원을 그리며 걷거나 일직선으로 걷는다. 일직선으로 걸을 때에는 10보에서 15보까지 앞으로 전진하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눈은 몇 발자국 앞을 낮게 응시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바닥에 닿는 그 감촉을 주시하라. 다른 잡념이 들어오면 그대의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는지 찾아 지켜보라. 그런 다음 다시 걸음걸이에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은 좌선과 같은 기법이다. 다만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20분에서 30분 동안 걸음을 계속하라. 



 


- OSHO, <명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