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선조묘역,유적

이창신 2020. 11. 26. 19:53

♣ 일시 : 2005-09-25(일)  15:32~15:36

♣ 장소 : 약사골약수터(양성이씨약수터) (경기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약사골)

♣ 인원 : 3명

♣ 비고 : snutac 복계산 산행 후 상경길에 탐방

 

■ 약사골약수터 약도

<1> 위치

<2>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거리에서 좌측 김화방면으로 3km 쯤 올라가면 좌측으로 약사계곡이 있는데 여기서 한 300m 쯤 우측에 약사골 약수터가 있는데 안내문에 양성이씨 약수터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바위에 새겨 넣었다하는 약수터 이름은 미처 보지 못했는데 다음에 다시 가볼 기회가 있으면 찾아볼까한다.
이곳을 지나갈 기회가 있으면 약수터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자료발췌 참조 / 종사 50년사>
도평리에는 양성이씨가 광복이전까지 약 100여 세대가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 왔는데 광복 후에 38선 이북지역으로 북한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6.25 동란 후 특히 휴전 무렵 북한군이 북상하면서 많은 주민들을 선동, 휴전선 이북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일부는 고향땅을 지켜 수복지구인 도평리에 현재 3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동소종회]
입향조는 15世 휘 시현(時顯)으로 입향시기는 1636년 병자호란때 도평리에 이주하여 뿌리를 내렸으며 전국에 약 80세대가 있다고 한다.

 

약수암 각자

<사진 출처 : 양성이씨 종보 1993-09-30 1면에서 발췌>

▲ 이 바위(표석)가 현존하지 않고 후에 도로를 확장하면서 주변 도로에 묻혔다고 구전

 

약수암 내력

1. 큰 바위면의 오른쪽에 "藥水巖", 왼쪽에 "陽城李氏墓門"이라 두줄로 새겨졌는데 200여년전쯤 된 것으로 보인다하였고, 일시중 18世 "厚자 培자" 선산이 계곡안 군부대 내에 위치해 이를 알리고자 묘소 입구에 표지석으로 새겼을 것으로 추정, 그런 연유로 양성이씨 약수암이라 불렀던 것으로 보임  <출처: 약수암 탐방기>

 

2. 약수암 각자 바위(표석)가 현존하지 않고 후에 도로를 확장하면서 주변 도로에 묻혔다고 구전, 이 바위(표석)를 수소문해서 파내어 다시 세웠으면 좋겠다. <도움말 주신분 : 재수 님>

 

■ 약수터 안내문 

 

■ 약사골약수터 

 

<동굴안에 있는 약수터>

▲ 동굴안이 잘 보이지 않아 사진기 후레쉬를 터트리고 나서야 그 내부를 보게 되었다.

 

■ 약수암 탐방기 

<출처 : 양성이씨 종보 1993-09-30 4면에서 발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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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끝"

완벽하게 복원하였군요. 그 선산 가는 길을 오래도록 기록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쳐지나가지않고 짚어서 제보해주신 定圭 부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6세 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