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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0. 01:04

아리랑은 미 제 7보병사단의 공식 사단가로 지정되어 있다. 2차대전 당시 미 7사단은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부대는 1945년 9월 한국점령군의 일원으로 인천을 통해 들어와 3년 동안 주둔했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 미군부대로 잔류하고 있었다가 한국전이 발발하자 미 7사단은 인천 상륙작전의 주력부대 중 하나로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된다.

서울 수복에 일익을 담당했던 이 부대는 1950년 10월 28일 함경남도 이원에 상륙, 산수와 갑산을 지나 혜산진까지 진출하여  미 7사단은 압록강까지 도달했던 유일한 미군 부대였지만, 한국전에 개입한 중국군의 1차 공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사단의 잔존병력은 그 해 12월 20일 흥남에서 부산으로 철수하게 된다.

아리랑이 미 7사단의 공식행진곡이 된 사연

전쟁이 끝나고 1956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은 이임 인사차 경무대를 방문했던 W. 캘러웨이 7사단장에게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전통 자수 방식으로 아리랑 악보와 가사를 수놓은 페넌트를 선물하였고 그렇게 전달된 아리랑은 일반명령 63호로 그 해 5월 26일부터 미 제7사단 공식 행진곡(Official marching song)이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미군은 아리랑의 선율에 이전 사단가로 사용되던 '대검가'(Bayonet)의 가사를 그대로 이식했다는 점이다. 미 7사단의 별칭이 바로 '대검 사단'(the Bayonet)이었는데, "너의 대검을 높이 들어라"로 시작되는 대검가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 원곡의 정서와는 사뭇 달라졌지만, 사단의 주요 행사 때마다 늘 사단가로 연주되었다.

 

미 7사단이 1956년부터 공식 행진곡으로 사용하는 사단가 아리랑 악보.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미 7사단은 주한미군 감축계획에 따라 1971년 3월 본토로 철수하게 된다. 1971년 3월 27일자 <매일경제>는 미 7사단의 철수광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날 고별식은 30명의 의장대가 사열, 미 7사단의 사단가가 아리랑 곡조가 불려지는 가운데 대검이 그려진 사단기가 내려짐으로써 끝나고 사단장 '무어' 소장과 사단기는 이날 하오 김포공항을 출발 미 본국으로 떠났다."
(여담입니다만, 이 기사에 나오는 '무어' 소장은 헐리우드 영화 '위 워 솔져스'에서 멜 깁슨이 연기했던 할 무어 중령과 동일인이다.)

아리랑이 수록된 미 육군 합창단 앨범

지난 2007년 미 육군 합창단이 발표한 'Songs of the Soldiers'에는 우리말로 부르는 아리랑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콜로라도주 포트 카슨에 전투 병력은 없는 행정부대로만 존재하는 미 7사단 측에 여러 차례 이메일을 통해 '대검가' 음원을 부탁했지만, 안타깝게도 구할 수 없었다. 아마도 부대 해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만 할 뿐이다. 대신 지난 2007년 미 육군 합창단(U.S. Army Chorus)이 낸 '군인의 노래들'(Songs of the Soldier)에 수록된 아리랑을 구할 수 있었다. 미군 병사가 부르는 아리랑이다.


피트 시거,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승화시키다

아리랑의 가장 극적인 변용은 바로 현대 포크 음악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는 피트 시거(1919~)에 의해 이루어졌다. 포크송 그룹인 '위버스'를 결성해서 현대 민요를 융성시켰던 피트 시거는 1964년 아리랑을 그 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발표했는데, 인종차별과 전쟁에 반대했던 그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싱어 송 라이터였던 피트 시거는 벤조(Banjo) 반주로 아리랑을 부르기 전에 자신의 코멘트를 음반에 수록했다.

 

"한국인이 부르는 노래 중에 '아리랑'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러온 노래지만, 일본 식민지 시기에는 부르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내 생각엔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하고 서로 나뉘어 살고 있지만, 두 나라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리랑을 함께 부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아리랑을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를 피트 시거의 코멘트는 정말 인상적이다. 그래서 피트 시거의 아리랑에 대해 김연갑 선생은 "전쟁을 통해서 이 땅을 떠나갔던 아리랑이 반전(反戰)이라는 최고의 가치로 승화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 선생은 또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또 여럿이면서 하나"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수많은 아리랑을 아리랑이게끔 하는 정신은 "저항(抵抗)과 대동(大同), 상생(相生)의 가치"라고 설파했다.

그는 이런 보편적 정신이 바로 아리랑을 우리 민족뿐 아니라 세계인의 아리랑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김 선생은 지난 1990년 남북이 아리랑을 단일팀 단가로 합의했던 사실을 들어 "민족 정서와 민족의 핏줄이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쟁 중 '음탄'이었던 아리랑이 평화와 통일의 전주곡으로 변화해 온 것은 희망의 증거라는 것이디. 정전협정 체결 60년, 남과 북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아리랑의 힘'이라는 김 선생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