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봅시다

정철카피 2008. 11. 26. 19:12

 

 

김서령 칼럼 오늘자에 <손해봅시다> 관련 글이 있어 들고 왔습니다.

 

 

헌 것이 좋다
김서령 2008-11-26 17:25:11 조회수: 14 추천:0
 
 

 길가다 횡재할 때가 있다. 대문앞에 살림을 잔뜩 내다버렸는데  아무거나 필요하면 가려가라는 것이다. 낡은 부엌집기와 헌가구들이었다. 물건도 머리카락과 같아서 있을 곳에 붙어있을 땐 아름답지만 떼어내면 금방 흉물이 돼버린다. 길가에 나뒹구는 살림살이들은 생경하고 처량했다. 첨엔 그 처량을 달래주기 위해 곁에 앉았는데 뒤질수록 새록새록 보물들이 튀어나왔다. 길에서 주워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고급 커피잔도 있고 손으로 빚던 시절의 두터운 유리그릇도 있다. 사연을 알아보니 오래 앓던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손자내외가 들어와 살려고 예전 살림을 모조리 정리한다는 것이다.그날 난  몇가지 ‘엔틱’을 건져왔고 지금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우리집 집기중 아마 가장 고급품 축에 들 것이다.

 

 길가다 횡재한 자랑을 늘어놓는 건 그 물건들이 내게 외치는 메시지 때문이다. 무심코 들고 왔지만 그것들은 얌전히 그냥 따라온 게 아니었다. 묵은 때와 먼지를 닦아내자 연보랏빛 라일락꽃이 숨어있던 영국산 접시는 내게 곧잘 속삭인다.“언젠가는 우리도 헤어지게 될거야!”

 그렇다. 나는 저 접시를 누군가 나보다 오래 살 누군가에게 주는 게 나을 것이다. 저 접시뿐 아니다. 모든 물건들은 내가 죽으면 길가에 섬뜩하게 버려질 걸 막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탐내는 이가 있을 때 선물하는 편이  백번 낫다. 어차피 헤어질 바엔 내 의지로 선택한 이별이 훨씬 의연하고 뿌듯하지 않으냐.

 

   요즘 자주 들르는 블러그 중에 정철의 뇌진탕 블러그라는 곳이 있다. 그 친구가 요즘 벌이는 켐페인 제목이 <손해봅시다>이다.평소 내가 늘 하던 생각에 기발하고 통쾌한 위트를 버무려놓았다.  서랍 속에 지포라이터 5개를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느날 열어보니 불이 아예 켜지지 않고 '집단사망'해버렸다는 '통탄'이다. 진작 친구들에게 나눠줬더라면  나보다 멋있게 불을 붙였을 텐데~를 보면서 똑같은 후회를 서른번이상 경험한 나는 무릎을 친다.

 

 암만 호사를 누려도 우린 결국 여길 떠난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약속되어 있다는 걸 실은 누구나 안다. 대문 앞에 잔뜩 버려졌던 동네 할머니의 살림, 그것들은  내 속 어디선가 뭉클뭉클  탐욕이 솟아오를 때마다 보글보글 애착이 괴어오를 때마다 ‘우린 곧 헤어져!’를 정답지만 준엄하게 속삭인다. 우리집 찬장안에는 수시로 고개를 드는 탐욕과 애착에  죽비를 내리치는 목소리가 들어와 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란 말은  요즘 “식사하셨어요?”란 말보다 더 자주 내 귀에 들린다. 주식 한번 사본 적없고 미국 한번 가본 적 없지만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만지는 모든 물건안에  달러와 주식은 이미 지나치게 틈입해 있다.심지어 내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 또한 '석유'로 만들어져있다는 것을 싫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농업 생산과 유통에  드는 에너지 얘기다)  

 우린 지금  가치기준을 바꿔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가치란 번쩍거리는 새 물건 속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려 만들어진 낡음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왔다.  새 물건을 사들이지 않기만 해도, 있는 것을 닦고 손때 묻히는 일에 공을 들이기만 해도 우리 대부분의 삶은 훨씬 윤택해질 수 있다.오래 묵은 물건의 메시지에 귀기울이자.  피할 수 없어서 즐기는 게 아니라 낡은 물건이 진정 가치가 있어서 즐기는 것이다.

 다들 위기라고 부르짖는다.위기?무조건 낙관할 수도 없지만 덩달아 불안해하지는 말자. 80년대 초반 내가 담임한 학급  60명 아이들 중 살림살이가 제법 괜찮은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기준은 집에 전화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자동차라면...전교에 한 둘 있을까 말까였다. 70년대 후반은 자녀 방이 따로  있느냐 없느냐가 중산층의 기준이었고 70년대 초반만 해도 아아, 식구들이 밥을 굶지 않으면 그만하면 괜찮은 살림이었다.  우린 그런 시절을 지나치게  빨리 뛰어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어려울수록 내가 조금 손해보면 안될까. 뇌진탕의 <손해봅시다> 캠페인은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보다 구체적이고 실속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종부세를 돌려받는다는  상위 몇%라는 그 부자들, 받은 세금을 국가가 굳이 돌려주겠다고 하니 거절할 수야 없겠지. 하지만 받아서 널름 제 주머니에 넣지 말고 힘든 이웃들과 나누는 건 어떨까. 돈으로 나누기가 정 곤란하다면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고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들을 밖으로  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굳이 멀리가서 불우이웃을 찾을 것 없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척, 동료, 친구중에 어려운 사람을 불러  필요한 바로 그것을 나누자. 반드시 종부세 환급받는 부자만 그러라는 법은 없다.누구든 가능하다.심지어 나같은 가난뱅이도 지금 집안에 남는 물건 투성이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바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기쁨, 그건 사회적으로 암만 확산되어도 문제될 게 없는 고급쾌락이다.   물건이란(돈도 물건이겠지?) 어차피 저 라일락 찻잔처럼, 머지않아 우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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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재물도 아래로 흐를 수 있는 세상이라면? 물론 이게 실없는 백일몽이란 건 안다. 그러나 몇몇이 주머니끈을 풀기 시작만 한다면? 환급된다는 종부세 6300억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와 홍수처럼 범람하는 기적을 만들 수는?.........역시... 불가능한 헛소리겠지.

옳습니다!
글 볼 줄 알고 쓸 줄 아는 분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