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 매경 칼럽입니다.
[세상사는 이야기] 집을 줄여가는 행복 | |||||||||
그런데 왜 이 글 제목이 `집을 줄여가는 행복`일까? `집을 줄여가는 안타까움`이나 `이사 스트레스`가 아니라 왜 이런 뚱딴지 같은 제목을 붙였을까? 물론 집을 줄여가는 이사와 행복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처럼 가까워지기 어려운 단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늘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환경이 바뀌는 데서 오는 생활의 작은 변화들을 찾아보면 행복이라 이름붙일 만한 놈들도 틀림없이 머리를 내민다. 저도 있는데요, 하면서. 엊그제 일이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우리 집에 왔다. 아내는 거실과 주방에 놓여 있던 몇 가지를 주섬주섬 챙겨서 그녀 품에 한아름 안겨줬다. 집을 줄여간다는 것은 그만큼 살림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미리미리 조금씩 실천하는 것이리라. 마음이 아니라 현실이 시켜서 하는 나눔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나눔에 인색했던 우리가 나눔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졌다. 집 크기를 늘려가는 이사였다고 생각해 보라. 늘어나는 공간 채울 생각부터 먼저 했을 테니, 이런 낯선 행복을 맛보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닥칠 행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사를 하고 나면 방 하나와 욕실 하나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거실, 주방, 베란다 할 것 없이 모든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 식구 저녁 먹으며 소주 한 잔 할 식탁은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고, 누워서 뒹굴며 TV 볼 공간도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고, 창문 열어놓고 담배연기 쫓으며 글 쓸 공간도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고,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화분 몇 개 데려올 공간도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다. 집이 줄었으니 생활도 그만큼 줄어들어야 할 텐데, 이 모든 생활이 그대로 살아남는다니 이 또한 행복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불필요한 공간을 너무 많이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볼록 나온 뱃살을 단숨에 덜어내며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그리고 나 혼자 히히히 속으로 웃고 있는 비장의 행복이 또 있다. 관리비, 생활비 줄어드는 것? 아니다. 출퇴근 시간 줄어드는 것? 아니다. 그건 바로 청소다. 집안일 절반을 하는 (일주일에 한 번 청소기 드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 나는 이제부터 청소기를 잡으면 훨훨 날아다닐 것이다. 오랫동안 헉헉거리며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던 선수가 이제부터 쇼트트랙 링크를 누비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나만을 위한 특별 보너스가 하나 더 있다. 이사할 집 코앞에 있는 벌교꼬막 파는 소줏집. 벌써부터 행복한 군침이 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행복도 불행도 찾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만 내 것이 된다는 사실, 우리의 여덟 번째 이사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집을 줄여간다는 것은 다음엔 집을 늘려갈 확률이 조금 더 커졌다는 뜻이니까. 아내도 이 억지스러운 글을 읽고 픽 웃으며 이사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정철 카피라이터] [ⓒ 매일경제] |
집을 채우고 있는 공기만 따뜻하다면야 무슨 상관이랍니까?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행복도 불행도 찾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만 내 것이 된다는 사실......
일단 가슴에 꼭꼭 재겨둡니다.
그래도 쥐새끼에게 느끼는 불만은
불만을 넘어 테러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렬하니
지금의 저는 그 새끼때문에 불행합니다. S-Pa~~
아내분 역시 정카피님의 마인드를 가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집에서 청소 좀 하는 사람이면 그냥 딱 아는거지...
말로만 하는 무소유. 아니죠?
법정스님왈.. 무소유는 무엇을 안가지는 것이 아니고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것 !
법정스님이 '부활'했네요 ! 짝짝짝......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