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생각

정철카피 2010. 6. 19. 11:31

 

오늘 자 매경 칼럼입니다.

 

[세상사는 이야기] 축구의 마력

다시 세계가 축구에 빠져버렸다. 이젠 이 축제의 단골손님이 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설이나 한가위 때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온 국민의 시선이 월드컵이 열리는 그곳으로 대이동한다. 이 기간 모든 얘기는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난다. 차고 뛰고 다시 차고 뛰는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스포츠에 우리는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물론 축구가 긴박감, 속도감, 그리고 통쾌함을 잘 비벼놓은 스포츠이기 때문이겠지만, 축구와 연결된 자신만의 경험이나 추억도 한몫하는 듯하다.

어릴 적,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축구였다. 고무로 만든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다른 장비나 시설은 필요 없었으니까. 우리는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축구공을 쫓아다녔다. 상급생들에 의해 운동장에서 밀려나면 골목길에서 축구를 했다. 이땐 책가방 두 개가 골문이 되고, 골목길 양쪽 벽은 그대로 터치라인이 되었다. 쉬는 시간엔 복도에서 축구를 했다. 걸레가 축구공이 되었고, 누군가는 축구를 참으며 선생님이 오시는지 망을 봐야 했다. 축구만 할 수 있으면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그냥 배가 불렀다. 그렇게 거의 매일 서산에 지는 해를 원망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고무공 시절을 지나 가죽으로 만든 축구공을 처음 들고 나온 친구는 그야말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발끝만 겨우 감싼 가난한 운동화나 고무신을 신고도 발 아픈 줄 모르고 가죽공을 차고 또 찼다. 가죽공에 바람이 빠지면 모두가 바람 빠진 아이처럼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 넣는 기구를 들고 나타났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축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기어코 찾아냈다. 그 무리 속엔 멕시코 청소년대회 4강 신화를 썼던 노인우와 한때 국가대표 공격수를 지냈던 여범규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엔 축구 이상의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에도 학교는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공부가 반장을 만들었고, 반장은 권력이 되어 반 아이들을 지배했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반장이 곧 선생님이었다. 떠든 친구들의 이름을 칠판 한 귀퉁이에 적어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는 것은 약과였고, 선생님의 매를 대신 들고 친구들을 체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권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운동장이었다. 이곳에서만은 축구 잘하는 아이가 왕이었다. 반장에게 패스할 이유도 없고, 공부 잘한다고 스트라이커 자리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나 헛발질 몇 번만 하면 공격에서 수비로, 그리고 결국 골키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러니 축구공이 구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권력의 서열이 바뀌는 것이다. 운동장의 권력은 교실로 이어졌다. 반장은 다음번 체육시간을 위해서라도 축구 잘하는 친구들과 권력을 나눠 갖는 수밖에 없었다.

공부라는 서열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마법 같은 운동이 바로 축구였다. 그것은 축구에서 골이 주는 통쾌함 이상이었다. 내가 노인우나 여범규 같은 친구의 이름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건 이들이 축구공 하나로 우리 반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남아공월드컵과 함께 다시 살아난 거리응원. 이곳에도 강요된 질서는 없다.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된다. 어린 시절 권력을 파괴했던 축구의 매력이 거리응원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거리응원을 자신들의 호주머니 채우는 데 이용하려는 볼썽사나운 애국심 마케팅. 모처럼 질서에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자본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굴복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퇴장당하고 말 것이다.

[정철 카피라이터]

[ⓒ 매일경제]

 

 

이등병 시절... 저의 축구실력을 본 고참이 말하길 "이 놈은 신이 내렸다!"
그렇습니다! 저는 신이내린 "개발(犬足)"이었습니다.
그 뒤 볼차면 알아서 군장챙겨 근무교대 해주러 나갔다는...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납니다.
내 별명은 분데스리가였는데...
(필시 공부도 잘하고 공도 잘찼다는 말씀을 하고계신게야.... -_-;;)
(서울대가 집에서 너무 멀어 안 갔다니까...)
(공은 좀 찼습니다.)
(은, 이라는 조사 조금 걸림..)
퇴장이 없는 동네 축구에서 난 축구 기술이 바닥이었음에도 언제나 주전이었습니다.
왼쪽 수비수였는데 반드시 나 있는 쪽으로 오는 공 또는 사람 둘 중 하나를 힘껏 찼습니다.
고의는 아니었고 공을 찬다고 찼는데 둘 중 하나가 맞은 것이지요.
덕분에 상대 공격 루트는 단순해졌고 우리는 이길 수 있었습니다.
꼭 뛰어나야 주전이 되는 건 아닙니다.
(싫다는 날 축구하자고 괴롭혀서 전투화에 제대로 차인 김영환 하사 이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뭐하고 있나?)
김영환 하사는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자유박멸이라는 아이디로 활동중일 겁니다.
자유박멸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