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해외여행

반짝이 2018. 7. 20. 10:43

         1. 소꼽장난 같은 아파트 생활


  뉴질랜드에 온지도 어언 10여 일이 지났다. 머무르는 곳은 이 나라 도시로는  가장 크고 항구인 오크랜드이다. 이 나라는 크게 북섬과 남섬이 있는데 이 도시는 북섬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 인구가 450만이라는데 그 삼분의 일에 근접한 140만 인구가 이 도시에 산다. 중심부를 제외하면 아파트가 거의 없고 모두 크고 작은 정원이라도 다 갖추고 사는 단독주택에 살아서인지 도시가 엄청 넓고 집들도 어지간히 많아 보인다. 차도 인구에 비해서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홍수를 이룬다. 서울 인구가1000만 명에 거의 버금 간다고 보면 서울에 7분의 1로 상상하면 되겠는데 그게 그렇지 않고 모든 면이 예상을 넘어 훨씬 규모가 크다,

  방을 하나 얻어 방짝과 생활을 한다.  한 서너달 살기로 작정하고 왔다. 11년 전에 이 도시에서 두 달, 8년 전에 남섬인 클라이스트처치에서 세 달 살아보았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전번에는 두 번 다 일반 가정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는데 이를 여기서는 flat이라고 한다. 방세는 월세가 아니라 주마다 계산하는 주세이다. 이곳은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다. 12월 말인데 지금이 한창 여름이다. 5월 말의 날씨에 해당한다. 집집마다 정원에 꽃들을 심어 놓고 마을길도 꽃이 많아 산책을 하면 처음보는 예쁜 꽃들이 많아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며 찍곤했다. 

  이번에도 그런 집을 예상하고 여러 달 전부터 방을 구했으나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그리 방을 구하지 못하여 포기하려고도 했다. 어찌어찌 간신히 구하고 보니 소위 downtown이라 불리는 시내 중심가의 아파트였다. 그나마도 감지덕지였다. 알고는 갔지만 막와 보니 너무나도 작다. 방을 빌려 준 사람(교포)이 혼자 살며 방을 하나 쓰고 우리가 하나 쓰는데 어찌나 작은지 침대 놓인 이외의 공간이 아주 비좁다. 겨우 작은 책상을 놓을 공간이 침대 옆으로 있다. 그 책상도 노트북에 책 몇 권 놓으면 빈 자리가 없다.

  부엌은 거실에 붙어 있다. 주인이 혼자 사는데다 거의 부엌을 사용하지는 않아 그나마도 다행이지만 어찌나 작은지... 게다가 전기 레인지가 두 개인 데다 냉장고까지 꼬마이다. 가지고 간 밑반찬도 별로여서 사나르는 몇 가지 반찬으로 꾸려 간다. 식탁도 걸맞게 작다. 반찬 몇 가지 놓으면 꽉 찬다. 의자도 딱 두 개다, 밥 먹고 말끔하게 치우고 나면 꼭 애들 소꼽장난 하다 끝내는 것 같다. 허허. 그뿐이랴. 냉장고가 작으니 하루 아니면 이틀 꼴로 꼭 시장을 봐 와야 한다. 방이 네 개나 있는 춘천의 아파트에 살다가 졸지에 이렇게 단칸방 신세가 되어버렸다. 195~60년대에 단칸방 얻어 새 살림 시작하며 설음도 많았다는 얘기 귓전으로 많이 들었지만 당시의 신혼생활이 이랬을끼?  이리 구차하게 살려고 왔나? 하고 혀도 찼다. 어차피 왔으니 참고 편하게 살자고 마음을 달래었다.

   그러나 그렇게 집 흉볼 일만은 아니었다. 막상 살아보니 그런대로 살만하다. 우리의 거처는 17층인데 거실에서 내려다 보면 유람선 기착지가 바로 눈 앞이다. 아침에 바라보는 항구는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저녁 나절의 행렬 지어 지나가는 요트도 장관이다, 불야성의 밤풍경은 어떻고. 다 이 아파트에 사는 덕분에 바라보며 즐기는 덤이다.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은 어디를 가고 싶을 때 이용하는 visitor information 센터가 바로 코 앞에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개근하다시피 한다. 어디를 가던 꼭 거기 들려 물어보고 지도도 얻어 온다. 특히 이 나라는 먼 곳 가려면 시외 버스나 호텔 예약은 필수인데 의뢰하면 거기서 다해 주니 짧은 영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우리 처지에서는  아주 구세주이다. 이미 장거리 여행 코스를 하나 예약하여 놓았다. 10여 분 걸어가면 항구인데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생선을 파는 상점이 있다. 규모가 크다. 자주 들려 생선 사다 구워먹고 찌개꺼리 싸게 사다 해 먹는 재미도 있다. 관절에 좋다는 그린 홍합은 갈치와 함께 단골 메뉴이다.

  이 도시의 시내 버스는 어디든 모두 이 중심가에서 떠난다. 출발점이 20여 군데 있고 그 중 그 중심 센터에는 10여 곳이 몰려 있다. 그곳도, 그밖의 출발지도 모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어느 곳을 가던 걱정이 없다. 유람선 떠나는 기착지도 그곳에서 가까워 주변 섬을 유람하는데도 참으로 편리하다. 오늘도 ferry 배를 타고 가까운 화산섬을 둘러보고 걸어서 집에 왔다. 그래 이런 게 다 여기에 사는 장점이로구나.

(2015.12. 28)

              

           2.대중교통 이용하기


  이 나라는 인구에 비해 땅이 넓다. 남섬과 북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땅의 넓이는 한반도보다도 넓은 27만 제곱km이다. 인구는 고작 456만여 명이다.(2015년 통계). 인구는 적고 땅은 넓으니 자연 어디를 가든 교통 수단이 문제가 된다. 경관이 좋은 곳이라 알려진 곳도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 많다. 그러다보니 예서 살려면 자가용은 어찌보면 필수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같은 단기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렌트카 제도도 잘 구비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통 시스템이다. 이 나라는 차선의 오른쪽 방향으로 차를 몰아야 하는 세계 몇 안 되는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이다. 자동차 핸들도 당연히 차의 오른쪽에 있다. 젊은 사람은 은 시간에 적응하여 차를 잘 몬다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는 적응에 자신이 없다. 길을 건너려 해도 차 방향우리나라와 달라 늘 헷갈리는데 우리나라와 반대방향으로 차를 몰 자신이 정말 없다. 여행을 즐기려 와통사고라도 난다면 그건 즐기려 온 것이 아니잖는가? 별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이 나라의 최대 도시인 오크랜드이다. 이 도시의 대중 교통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오크랜드는 이 나라 인구의 거의 삼분의 일인 145만여 명 ( 2015년 통계)이 산다. 천여 만 명이 사는 우리나라 서울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차선이 적어서인지 상상 이상으로 차가 많이 다닌다. 이곳 차엔 자국산이 없다.  여러나라 차의 뒤범벅이다. 간혹 현대나 기아 자동차도 보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차들을 과속으로 모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았다. 차 방향이 서툴러 길을 건널 때 주행차를 잘못보기라도 할양이면 째려본다. 일부러 클랙션을 누르기도 한다. 물론 건너가라고 손짓하는 차도 많다. 출발 신호가 끝나자마자 무섭게 속력을 낸다. 교통사고가 나도 운전자 우선 주의법을 시행하는 나라여서 치료나 보상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인구가 적으니 철도가 발달되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는 철도도 운행횟수가 아주 적다. 예서 이 나라의 수도 웰링톤까지 가는 기차도 일주일에 세 번만 간다. 내가 탔을 때 보니 그것도 식당 칸까지 합쳐 여섯 칸만 달고 있었다. 장거리 기차는 북섬에는 이 기차뿐이다. 남섬은 픽턴에서 크라이스트 처치, 크라이스트 처지에서 그레이스마우스 가는 기차 두 개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거리가 짧은 편이다. 느린 주제에 기차비도 제법 비싸다.

  그래도 시내버스 운행 시스템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운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시내버스가 이 도시의 중심지인 down town을 시발로 한다는 점이다. 버스 주차장이 따로 없다. 그 거리의 어느 정류장이 바로 종점이자 출발 지점이다. 이런 출발 지점이 방향에 따라 어림잡아 20 몇 개의 노선으로 분산 배치되어 있다. 그 중심이 되는 센터의 이름이 Britomat Transfer이다. 그곳에는 출발 정거장의 거의 반이나 되게 10여 곳 이상이 몰려 있다.

  그런데 가는 방향(오클랜드의 서부지역, 북부지역  등)따라 출발 정거장 번호가 다르다. 그 번호가 있는 곳에서는 또 방향이 같은 곳의 몇 노선 버스가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물론 차에는 또 종점과 연관이 있는 번호가 앞에 뜬다.) 자연 우리 같은 방문객은 내가 탈 차의 거리에 있는 종점과 연관이 있는 번호를 확인하고 타야 한다. 자신이 없으니 꼭 내가 내릴 지점을 전기사에게 물어 인을 하고 타는 것이 좋다. 이곳 이외의 나머지 출발 정거장 10여 곳도 중심가 거리 이곳저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Britomat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엔 출발지점을 물어볼 수 있는 안내소가 있고 노선에 따르는 출발 정거장 번호와 거리명이 기재되고 요일 별 운행시간도 기재된 약도가 준비되어 있다. 탈 곳을 묻는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그곳이" How Can We Help You"라 쓰인 안내소이다. 그 약도에는 예를 들어 동물원을 가려면 Wellesley Rd를 찾아 가고 거기서 7081번이라는 번호가 있는 정거장을 찾아서 기다리다 차 앞에 크게 뜨는 시그널인 030번이나 49번 차가 오면 타야 한다고 약도에 줄을 그어 표시를 해 준다. 물론 그 정거장에도 가는 곳과 시간이 요일 별로 게시되어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곳에는 어느 정도까지 방향이 같은 차들의 공동 종점이고 시발점이다. 따라서 어느 종점을 가는 차는 보통 한 시간에 한 대가 예사이고 30분 배차도 있지만 어느 종점이 아니고 중간에 내린다면 거기까지는 번호가 달라도 중복되는 차가 있기 마련이어  대개는 일찍 타기는 한다. 토요일은 운행 횟수가 줄고 일요일과 공휴일은 더 줄어든다. 여하튼 버스 출발점이 있는 지도는 항시 지참하고 다녀야 한다.

  이 Britomat에는 40분 내지 한 시간 여 시내를 운행하는 기차(우리나라 전철 역할, 지하로 내려감) 노선 네 곳도 있다. 건물 지하로 내려가기는 해도 기차는 지상으로 다닌다. 좌석이 넓고 깨끗하다.

  또 고약한 게 있다. 버스를 타도 정류장 안내가 없다. 자신이 알아서 내릴 정류장 지나기 전에 내릴 신호를 누르고 세워주면 내려야 한다. 그러니 우리 같이 지리를 모르는 방문객은 꼭 운전 기사에게 내릴 정류장을 말하고 알려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이것 참. 우리나라와 같이 정류장을 알려 주고 그 다음 정거장도 미리 알려주는 방송 안내 제도는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늘 차를 탄다. 그 안내 방송 장치는 어렵지도 않을 텐데 왜 설치를 하지 않을까? 다만 관광객을 위해 시내를 도는 Inner  Link  Bus나 Outer  Link  Bus는 정류장 이름을 알려 준다.

  버스비가 비싸다. 구역 별로 다르게 받는데 한 구역이 3불, 두 구역이면 4.5불 등을 내야 한다. 한 시간 여 타고 내리면 보통 8불 내지  9불까지 내야 한다.(이곳 1불은 우리나라 800여원임) 3불이라면 2400원, 9불이라면 7000원이 넘는다. 전자 카드를 이용하지만 현금을 우리 나라 사람보다는 많이 내고 탄다. 영수증을 발행해 주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두 시간 이내에 타면 그 영수증을 다시 이용하여 공짜로 탄다.

  카드를 사서 이용할 수도 있다. 어느 범위까지 이용하느냐에 따라 값의 차이가 많이 난다. 도시 전체를 이용할 카드를 사면 아마도 혀를 내두를 만큼 비싸다. 기억으로는 한 달에  256달라인가였다.

  시외 버스는 일정한 노선이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어디서 어디로 한정된 버스가 아니다. 완행버스나 지방버스처럼 지치는 도시에서 내리고 탈 수가 있다. 가령 오크랜드에서 웰링톤까지는 버스로 10시간 넘게 가는데 이 차도시마다 쉬며 손님이 내리고 타면서 웰링톤까지 간다. 한 두 시간 안에 정류장에서 쉬는 시간을 준다. 점심 시간은 길게 주어 정류장 가게에서 사 먹는다. 여행객이 많아서 큰 짐들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짐칸이 아주 크다. 그러나 반드시 예약이 필요하다. 기차도 마찬 가지로 예약이 필수이다. 버스보다 빠르지도 않은 기차지만 버스보다 요금은 비싸다. 시외 버스나 기차 예약은 꼭 출발 지점에 갈 필요는 없다. 인터넷으로 가능하기도 하고 비지터 센터에 의뢰해도 된다. Ferry 배 타는 터미날도 브리토마트와 이웃해 있다. 크투즈 배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이곳 페리 터미널을 해야 한다.


   3. 뉴질랜드 여행기


   2015년 12월 15일 우리나라에서 출국하여 이 나라의 오크랜드 도시에 와서 지내며 여행도 하곤 하다 정확히 삼 개월만인 2016년 3월 14일에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3개월까지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기한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다. 딸 모녀가 1월 10일 경 우리와 합류할 예정이었다. 중간에 먼저 가게 예정이 되어 있어 딸이 오면 함께 여행하려고 오크랜드 주변만 20여 일 넘게 맴돌고 ( 도시 주변에 돌아볼 곳이 참 많다. 섬도 있고) 가끔 골프도 치며 보내었다. 

  그리 보내면서 딸과의 여행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대체적인 구상은 북섬의 북부를 시작으로 중부, 이어서 이 나라의 수도인 남부의 웰링톤까지 세 지점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오크랜드 주변도 우리 부부가 안내해야 하니 남섬까지는 무리이고 북섬만을 관통하는 여행계획이었다. 그런 구상 중에 이 도시 중심가 인 스트리트를 걷다가 우연히 한국 여행사  간판이 눈에 뜨여 들어갔다. 마침 이 여헹사에 중부를 2박 3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되었다 싶어 예약을 하였다. 패키지가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어도 우리 교포의 여헹사여서 우선 말이 잘 통하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시원한 생각이 들었다. 이 섬의 북부는 배가 많이 드나드는 Ferry Terminal의 근처 여행사에 가서 여러 프로그램을 보고 이 나라 여행사를 통하여  Bay Of Islands 크루즈만 하루 돌기로  다음 날 예약을  하였다  이리 두 곳을 예약을 하고 보니 가 보고 싶은 중부의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남쪽 끝인 이 나라의 수도 웰링톤만 남게 되었다. 이 두 곳은 네 식구가 배낭여행으로 돌아보기로 하고 일정을 짜서  방문센터를 찾아가  교통 편과 숙소 예약을 의뢰하였다.

  이리 시작된 이 나라에서의 여행을 우리 부부와 딸 모녀와의 여행을  세 편으로 , 우리 부부만의 여행은 두 편만 썼기에 총 다섯 편을 사안 별로 나누아 여행기 1~ 5 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뉴질랜드 여행기 1. 와이토모/로토루아/타우포


    제1일(1월 10일) : 오클랜드 -> 와이토모 -> 로토루아


   여행기 1은 북섬의 중부에 위치해 있는 세 곳의 투어이다. 와이토모는 동굴에 사는 반딧불이가 유명하고 로토루아는 온천과 간헐천으로 유명하고 타우포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호수로 주위 경관이 좋아 유명하다. 외국 여행객이라면 으레 들리는 필수에 가까운 코스이다.

   8시 40분에 집 근처로 봉고차가가 왔다. 기다리던 일행 13명을 태우고 다시 공항으로 가 한국에서 온 두 명을 더 태워 15명이 한 팀을 이루어 떠났다. 조금 가다 10명을 태운 다른 봉고차를 만났다. 이 여행은  이렇게 25명이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전 일정을 함께 하였다. 

  몇 시간 달려 경관 좋은 곳에서 점심 잘 들고 먼저 와이토모로 갔다. 먼저 석회석 동굴로 들어섰다. 갖가지 형태의 종류석과 석순 사이를 지난다. 우리 부부는 18년 전 이곳을 이미 들렸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게 전혀 없다. 그저 반딧불이 본 기억만 남아있다. 동굴의 규모는 큰 편은 아니었다. 석회석 동굴은 우리나라에도 여럿이 있고 미국과  발칸의 슬로베니아에서 세계적인 큰 동굴을 이미 보았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이어 배를 타고 반딧불이 서식지로 들어섰다. 우리나라 반딧불이와는 딴판인 종류지만 편의상 그리 부른다. 유충으로 9개월을  바위에 붙어 살면서 그리 빛을 내고 끈끈한 줄을 내리어 동굴에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입구에서 늘어뜨린 촘촘한 줄들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그들의 본거지로를 배를 몬다. 와! 동굴의 천정이 마치 거대한 밤하늘의 은하수같이 나타났다. 우주에 무수한 별들이 빛을 내는 공간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그리도 많이 살까? 딴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 한참이나 계속되어 넋을 잃다가 깨어났다고나 할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니 인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이어 로토루아에 입성하였다. 여기도 18년 전과 12년 전에도 들려 온천욕을 하였는데도 그 당시 보았을 이색적인 건물을 보았을 터인데도 처음 본 듯이 낯설다. 늙은이의 기억력이라니. 한국식당에서 녹색 홍합 찌개 곁들여 포식하고 규모가 세계적이라는 폴리네시안 스파 간판의 온천에 들어가 여독을 풀었다. 노천탕이었다. 탕이 여러 곳이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온천욕 잘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예상을 넘은 정갈한 방이어 뒷맛이 상큼하였다. 둘이 자는데 더불 침대가 둘이나 되는 큰 방이었다. 내일도 이곳에 머무른단다.

 

    제2일(1월 11일) 


 아그로돔(양들의 쇼) -> 레인보우 스프링스 ->곤도라 타고 스카이라인

(중식) -> 썰매타고 내려오기 -> 타우포호수 조망 -> 후카폭포 -> 다시 로토루아  


  아그로돔의 양들의 쇼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1998년 패키지로 처음 왔을 때도 양들의 쇼를 구경하였는데 그 행사는 예나 제나 이어져 오는 관람쇼였다. 허나 당시에는 야외에서 관람하였으나 오늘보니 아예 공연장을 크게 지었다. 좌석이 많은데도 각국의 관람객으로 꽉 찼다. 쇼를 이끄는 리더가 인사 후 나라 별로 호명하면 손을 들라 하였는데 글세 깜짝 놀랬다. KOREA" 하니 거의 반이나 되는 관람객이 손을 흔들어댄다. 대단도 하다. 

  대표성을 띤 여러 종의 양을 설명 곁들여 보여준다. 잘도 생기고 크기도 하다. 양몰이 개의 쇼도 보여준다. 호각따라 척척이다. 젖소도 등장하고 끝으로 양털깍기로 끝을 맺는다. 야외로 나와서는 실제로 개가 양을 모는 실연을 잠간 보여준다. 아주 기업화된 쇼였다.

  이어서 레인보우 스프링스로 이동하였다. 당도해 보니 기억이 난다. 옛날에도 이곳 돌며 아주 큰 무지개 송어도 보고 징그럽게 큰 뱀장어도 보았지. 오늘 보니 이곳 스프링스는 규모도 놀랄만큼 확장하여 수목림 코스며 여러 종의 새 관람 코스며 물놀이 차도 타는 코스 등 환골탈태한 시설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돈벌이 시설이 구태의연하면 되겠는가?

  관람이 끝나니 곤도라 태우고 산마루의 스카이라인으로 인도한다. 전망 좋은 곳의 식당으로 갔다. 뷔페식당이었다. 성찬이어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 골라 포식하였다. 이어 딸, 손녀와 경사진 곳에서 내려오는 썰매타기 시간도 가졌다. 방짝은 손사레를 쳤고 난 한 번만 탔으나 딸과 손녀는 세 번이나 타며 급경사에 도전하기도 하며 즐긴다. 세대 차 이렇게 나네.

  이어 이동한 곳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호수인 타우포였지만 이날따라 날씨가 잔뜩 흐려 쪽빛 호수의 특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저 멀리의 눈을 이고 있는 통가리 국립공원 산도 보이지가 않아 기대하고 가지고 간 무거운 카메라도 보람이 없었다. 별 수 없이 호숫가의 오리 떼와 새끼 데리고 주위에서 왕노릇하는 고니 부부의 사진만 찍어댔다. 주어진 자유 시간이 지루하였다.

  마지막 코스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후카폭포였다. 그 폭포야말로 쪽빛 물이었다. 폭포라긴 그렇고 좁은 계곡에 거센 물살이 몰아쳐 흘러가는 양상이었다. 한 곳이 몇 m 정도 높이에서 흘러내리는데 폭포라고 보아 그렇지, 그리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쪽빛 급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리 급하게 흘러내리는 계류란 말인가? 다시 로토루아에 왔다.이색적인 서구풍을 띤 박물관 건물이 있는 소위 거버먼트 가든에다 내려 놓는다. 저녁은 다른 한식집이었는데 음식이 어제만 못하였다.

 

    제3일(1월 12일)

 

 선상 크루즈하며 조식 뷔페 (비가와서 조망이 시원찮았음) -> 레드우드

산림욕(대단한 비를 맞남) -> 마오리 민속쇼 -> 포후투 간헐천 -> 마오리 전통 음식 항이 ->

마마쿠 블루베리 농원 -> 오크랜드


  어제도 잔끅 찌프린 날씨였지만 비는 그래도 오지 않아 타우포 호수의 진면목은 못 보았어도 그런대로 식구들과 여행을 즐겼다. 오늘은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며 뷔페식을 한다고 일찌감치 서둘렀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배에 타니 더 쏟아진다. 별 수 있나. 음식 골라다 먹으며 흐린 차창이나 쳐다 볼 수밖에. 간간이 좀금씩 내리기도 하여 사진 몇 장 찍었다. 여행의 복은 역시 화창하여야 함을 새삼 떠올린다.

  다음은 Redwood 숲의 산림욕이 기다린단다. 인공조림이 이 나라의 역점 사업의 하나라고 한다. 원산지가 아메리카인 이 나무도 시험재배로 들여왔다고 한다. 미국의 공원에서 천 년 넘어 살고 있는 몇 아람드리나 되는 나무를 많이 보았는데 이 나라에 와서 처음보니 반갑고 신기하였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이 나무숲에 당도하니 억수로 아주 쏟아붓는다. 가이드가 가면서 희한한 나무가 있다고 운을 뗀다. 우산 받쳐들고 가 보니 희한하고 희한도 하였다. 쓰러진 레드우드 나무에 다섯 그루의 레드우드 나무가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었다. 헌데 그 쓰러진 나무도 살아 있는 나무 빛깔과 똑 같으니 아니 놀라운가? 아마도  나무가 갑자기 뿌리채 뽑혀 넘어지고 그 나무의 잔가지가 살아남아 누워있는 밑둥까지 자양분을 공급하며 공생하는 게 아닐까?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시상에. 

  이제는 원주민 마오리가 관장하는 포후투 간헐천으로 향하였다. 들어가 그들의 민속쇼를 먼저 관람하였다. 판에 판을 박은 공연이라 그런지 그저 그런 공연으로 비친다. 비는 그쳤으나 구름이 잔뜩 끼었다. 간헐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바라보고 사진도 찍었다. 하늘이 맑아야 간헐천 수증기와 파란 하늘이나 하늘의 구름 곁들이면 멋질 텐데 수증기와 구름이 구별이 안 되니 이것 참. 관람이 끝나자 그들의 일상식이라는 항이  음식으로 아듀를 했다. 맛도 그렇고 푸짐하지도 않은 평범한 점심이었다.

  자, 이제는 오크랜드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뉴질랜드로 패키지 여행 오면  꼭 둘러보는 이 세 곳을 다 관광하였으니 당연히 흡족해 하며 가야지. 아마도 개인적으로 갔으면 비용이 훨씬 더 들었을 것 같다. 하나 더 있지. 빠져서야 되나? 가이드가 안내하는 쇼핑 코스가 있지. 불루베리 농원이었다. 한 상자 사 들고 나오는데 귀여운 당나귀가 근처에서 서성이네.


    뉴질랜드 여행기 2 : Bay Of Islands (1월 14일)


  북섬에 머무르는 동안 북섬의 북쪽을 자세히 돌아보고 싶었다. 12년 전에 가기는 했어도 하루 여행에 불과하여 아쉬움이 남아 있었고 더구나 크루즈가 빠졌었다. 해변 길이가 무려 90마일이어 유명한 90마일 비치까지 떠올렸으나 너무 북쪽이고 교통 편도 마땅치 않아 거기까지 가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오크랜드에서 서너 시간 거리인 파이히아나 러셀에서 베이 오브 아일랜드를 일주하고 돌아올까? 하고 1박 2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Ferry Terminal에 들려 안내 책자를 여러 개 들고 돌아와 검토하여 보았다. 전일정으로 하루에 도는 안내가 보였다.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였지만 눈 딱 감고 예약을 하였다. 일인 당 246불이란다. 네 사람을 곱하니 1000불에서 16불이 빠지는 984불이었다. 돌고래까지 볼 수 있다니 손녀가 좋아할 테지.  

  Sky city에서  1월 14일 7시 30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중에  어느 공원에 들려 800살이나 된다는 거목 앞에서 잠시 쉬었다. 위용이 대단하다. 이런 거목을 벌목하여 운반하던 차도 거목을 실은 채 전시하여 놓았다. 잠시 거목의 숲이었을 그때를 떠올렸다. 한 번을 더 쉬고 파이히아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곧장 배를 타고 크루즈를 하는 줄 알았다. 선상 런취도 기대하였는데 각자 점심을 해결하란다, 그리 비싼 돈 지불하였는데도 점심도 안 준다. 

  한 시 되어 줄 서서  배를 탔다. 출발이다. 배분해 주는 주변 지도를 보니 다도해였다. 우리나라 남해를 연상해 보았다. 우리나라 다도해처럼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맛은 없었지만  간간이 작은 섬 나타난다. 배가 크고 빠르게 질주하니 시원, 상쾌하였다. 배가 빠르니 바람도 세차다. 돌고래까지 보며 유람한다는 크루즈였으니 모두들 돌고래에 관심을 쏟는다. 억센 바람 마다하고 연신 뱃전에 나와 본다. 선장은 몇 번이나 배의 속도를 줄이어 주위를 돌며 돌고래를 찾는 모양이나 보이지 않는다. 승객들 모두가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는 수 있나. 배를 되돌린다. 일주하고 돌아와 배가 정박하기 전에야 겨우 녀석들이 나타난다, 뱃전을 차지하지 못하고 인파 뒤에서 돌고래를 찍어대자니 번번이 바다만 찍어댔다. 겨우 몇 마리 출현에 사진도 못 찍어 좀 아쉬웠다. 그래도 드넓은 바다에 간간이 떠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시원스럽게 바다를 가르며 도는 이 크루즈배는 역시 한 번쯤 타 볼 만은 하였다. 배에서 내렸다. 두 시간 반이 지나갔다. 네 시간을 도는 배도 있었다. 이제는 오크랜드까지 그저 세 시간에 걸친 버스 타기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는 이 북섬 특유의 우거진 산림과 초원에 간간이 소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끝없이 바라보며 가겠지. 하루 일정의 이번 여행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많이 비쌌다.

 

   뉴질랜드 여행기 3 : 오크랜드에서 웰링톤(1월 18일 ~ 22일)

 

  (1.) 웰링톤 -> 통가라로 국립공원


  제1일(1월 18일)

 

  9시에 오크랜드의 스카이 시티에서 출발하여 National Park역  부근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20여 분 늦은 3시 20분 경이었다. 여기서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출발 본거지인 와카파파까지는 픽업버스로나 가능한데다 날씨도 흐려 저녁나절은 시골 마을 치고는 제법 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마트도 만나 찬거리도 사곤 했다. 호텔은 이곳이나 공원 입구인 와카파파에 많이 있다는 건 소개 책자에서 이미 읽었지만 국립공원 입구역답게 호텔이 참 많았다. 호텔은 220딜라나 지불한 가족용 룸이어서 식구들이 다 대만족을 한다. 더블 침대방은 우리 부부가 쓰고 싱글 침대가 둘인 다른 방은 딸과 외손녀 차지였다. 주방도 잘 갖추어져 있어 요리도 잘 해 먹었다. 다만 세찬 바람 불어대고 초저녁부터 비까지 밤새 억수로 쏟아 부우며 그치질 않으니 내일 산행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제2일과 3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9시에 여관 주인이 픽업해 주는 차를 우리 가족만 타고 와카파파로 향하니 햇빛까지 쏟아진다. 날라랄라~ 얏호! 사실 이 국립공원의 출발지인 와카파카는 오크랜드에서 시외버스로 오다 타우포나 투랑이에서 내려 하루에 2회 왕복한다는 지방 버스로 갈아 타고 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기차역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통가리로 내셔날 파크를 버스로도 간다는 말을 듣고는 이제는 버스가 와카파파까지 가는 줄 알고 예약을 해 버렸다. 아뿔사. 나중에 알고보니 전에부터 있었던 기차역 이름이었다. 다행히 거기서도 좀 비싸지만 셔틀 버스가 왕복 운행을 해 준다고 하여 안심은 하였다. 호텔에 문의하니 자기네 차가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픽업해 준다고 하여 마음을 놓았다. 덕분에 이틀을 편하게 잘 다녀왔다.

  세걔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세계 문화 유산인 이 공원은 약 8만ha에 루이페후산(2797m), 나우루호에산(2291m), 통가리로산(1986m)을 포함하고 특히 루이페후산은 겨울에는 스키도 탈 수 있는 산이며 1995년에는 화산이 폭발하기도 한 활화산이다. 1887년 옹가티 투아레토아 원주민 최고의 지도자가 유럽 이주민의 무자비한 개발을 막고 정부 차원에서 마오리의 성지인 이곳을 보존해 줄 것을 전제로 정부에 기증하면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다. 

  산악인이 등반할 수 있는 코스가 여럿 있지만 일반인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코스로는 통가리로 크로싱이 있다. 17km 편도로 정상의 분화구를 보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코스다. 정상에서 리턴하여 올 수도 있다. 우리 부부만이었다면 택하였겠지만 중1인 외손녀까지 등반하기에는 무리여서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제외하였다.

  비지터 센터에서 제일 먼저 물어본 곳이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가는 리프트를 지금도 탈 수 있느냐였다. 1150m 지점에서 2000m에 이르는 곳을 리프트 타고 가면서 보는 경관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카운슬러에게 그 코스를 가느냐고 물어보니 오늘은 안 간다는 말이 알쏭달쏭하다. 다음 날은 갈 수도 있다는 건지, 나 참. 어쩔수 없이 가이드 북에서 읽은 코스 택하여 타라나키 폭포를 끝 지점으로 타원형으로 순환하는 쉬운 코스를 택하였다. 2시간 반이 걸린단다.

  간단없이 산행인이 이어진다. 수풀도 지나고 원시림도 지나며 인도 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들으며 걸으니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화산지대이니 어떤 때는 마치 제주도의 올레길을 걷는 기분도 든다. 또다시 수풀 지나다 굉음의 폭포를 만났다. 타라니키 폭포였다. 20여 m라는데도 제법 웅장하게 보인다. 어제의 많은 비 탓인지 물소리도 우렁차다. 한참을 사진도 찍기도 하며 쉬다 윗길로 접어들어 내려왔다. 이 윗길 루트는 계곡이 보이지 않았다.

  이 폭포 이후의 정상으로 가는 산행은 나무도 없이 풀이나 자라는 돌밭길을 걸어야 하나 숲길 우거진 루트를 타원형으로 도는 이 루트야말로 황금 루트라고나 할까? 더구나 짧은 코스이지만 화산의 특색은 다 본 듯하다.

  와카파파 빌리지로 돌아와 준비해온 점심을 들었다. 김밥만으론 부족하다 싶어 무얼 더 곁들이려고 상가를 찾았다. 국립공원 출발지이니 상가가 있을 법도 한데 찾고보니 음료나 과자 등을 파는 구멍가게 하나밖에 없었다. 아래편에 음식점이 하나 있다는 표시도 있고 카페 간판도 보이니 그곳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주위 음식점이 그게 전부이니 너무도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많은 숙소나 캠핑 이용자는 음식을 미리 다 준비해 와야 하는 빌리지였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입구의 즐비한 음식점의 다양성에 익숙한 탓이겠지. 철저한 자연보호 위주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았다. 산행인에겐 더없이 불편할 것 같았다.

  점심 후에 왕복 두 시간 코스라는 Silica Rapids로 다시 접어들었다. 계곡 물소리 이어지는 가운데 원시림을 뚫고 지나가다 화산 바위에 물이 고여 있는 제주도의 곶자왈을 연상시키는 곳도 지나고 다시 원시림 속에서 폭포도 만난다. 실리카는 이산화 규소고 래피드스는 급류란 뜻이니 규소가 많은 곳인 모양이다. 그리고 어쩐지 물쌀이 세더라니. 돌아오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아침 나절의 화창한 날씨가 이리도 변할 줄이야. 허, 참.

  와카파파 빌리지로 돌아오니 픽업 차와의 약속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비지터 센터에 들어가 이 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시물과 영상물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식구 모두가 이 산행을 만족해 한다.

  다음 날이다. 후 세 시에 웰링턴 버스를 타게 된다. 그 남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 공원 말고 다른 곳이 있나 하고 책을 뒤졌지만 결국 픽업차로 와카파파 빌리지로 다시 갔다. 어제의 좋은 인상의 코스 한 번 더 돌자였다. 폭포 다달아 방짝과 외손녀는 게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와 딸은 둘이서 한참이나 그 위 코스까지 가다 시간 재보고 내려왔다. 오후 두 시 15분에 픽업차를 타고 다시 국립공원역 근처에 도하여 웰링톤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어제보다 더 짧은 워킹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마냥 흡족하였다. 잘 거라, 통가리로 국립공원이여!


   (2.) 통가리로에서 웰링톤 다시 오크랜드


   일정 : 1월  20일: 오후  통가리로 국립공원역  버스 -> 중간에 Bus 환승 -> 웰링톤

                 21일: 웰링톤 전일 투어

                 22일: 기차 ->기차 사고로 중간에 버스 -> 오크랜드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잘 돌아보고  웰링톤 방향으로 가는 터미널에서 예약시간 맞추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늦는다. 도착할 때도 20분이나 연착하였기에 그쯤은 그러려니 하였다. 웬 걸. 30분 넘어 40분, 50분.  꽤나 걱정이 된다. 진작부터 틀림없이, 틀림없이 사고가 있었으리라고 단정을 하고 별별 걱정을 다 하였다. 1시간도 넘어서야 버스가 도착한다. 운전 기사의 눈치를 살펴 보았다. 허나 운전 기사의 표정으로 보아 아무 일도 없이 그저 단순히 늦어진 사태인 것 같았다. 사고가 있었다거나 너무 늦은 데에 대한 운전기사의 사과만 있었어도 좀 누그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리 태연하당가? 뉴질랜드 이미지가 변색을 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기다리던 승객들도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니 그도 희한하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란 말 맞나? 예약이 필수인데도 이리 늦고?

  그 이후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들도 내내 그런 자세로 불평 한마디 없었다. 중간에 버스를 바꿔타야 했다. 운전기사에게 사정을 말하니 "Don't worry" 한마디로 딱 끊는다. 그곳에서도 이미 탑승객이 타고 있는 버스가  우리 환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은 그런 일이 다반사임에 틀림 없다고 단정을 내렸다. 이런 한심한 나라의 교통 행정이여!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였다. 이런 사태나면 난리버거지가 났을 것이다. 아마 환불도 받았을 것이다. 이 차도 10분이나 늦어 8시 20분 도착 예정이  9시 30분이 넘었다. 택시 불러 타고 예약한 호텔에 들어 문 닫는 마트에서 저녁거리 사다가 허겁지겁 겨우 저녁 해결하니 밤이 이슥해졌다.

  이튿날이다. 어제 늦게 도착하여 늦게 잤으니 식구 모두가 늑장을 부린다. 나도 관광 적게 하면 되지. 하고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2004년에 이 도시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당시 지도를 보고 이 도시를 다닐 만큼 다녀보아 오늘도 그려려니 하고 서두르지를 않았으나 막상 중심가로 나오니 그게 아니었다. 자꾸 길을 잃는다. 만사 제쳐 두고 식물원을 찾았다. 좀 빠르게 가려고 택시를 찾았으나 뭐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한참이나 우왕좌왕하여야 했다. 겨우 택시 타고 가서 관람이 시작되었다. 

  이 도시는 산을 끼고 만들어진 도시인지라 오름길도 많다. 식물원도 산 중턱인지라 정문으로 입장하면 올라오면서 관람하여야 한다. 처음부터 반대길을 택하였다. 자연 내려가며 둘러보았다. 울창한 나무 숲길 따라 조성된 이꽃 저꽃 보며 사진도 찍어대다 아래로 내려왔다. 전에도 감탄하였지만 웰링톤을 들리면  이 식물원을 반드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문을 나와 옆길로 들어서 장미 가든도 둘러보았다. 인상에 남아 있던대로 우아한 장미 동산과 온실을 다 돌아보았다. 여기도 필수코스다.

  점심 때가 지났다. 오늘은 스테이크로 한턱 쏜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 근처엔 없었다. 별 수없이 택시 잡아타고 정부 청사며 국회의사당이며 다 제쳐 두고 중심가로 내려왔다. 전문 스테이크 집은 아니었으나 이 나라에서는 제법 이름이 난 MOONSOON  POON 들려 각자 취향대로 스테이크다 뭐다 시키고 맥주 곁들이니 150 달라가 넘었다. 먹고 나와 해안가며 중심가 조금 돌아보다가 국립 박물관을 들렸다. 내세울게 없어서인지 국립이란 글자 무색하게 그닥 많은 유물이 진열되어 있지는 않았고 자연사 박물관도 겸한 것 같았다.

  박물관 견학을 끝으로 적당한 음식점을 찾는데 재밌는 식당가를 찾았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밀집식당이 보였다. 오크랜드에도 있어 재밌어 하였는데 잘 되었다. 예서 취향 따라 음식 골라 먹자. 어휴, 각 나라의 음식 참 다양하고 여러 인종 들끓고 시끄럽고 난리버거지면서도 재미 있었다. 식사 끝나고 호텔이 언덕 중턱에 있어 힘들어 하며 올라왔다.

   다음날이다. 오크랜드 가는 교통은 기차로 예약을 해 놓았다. 그 기차는 예정대로 정확히 7시 58분에 출발하였다. 차 안의 치장이 제법 세련되었다. 12년 전에 타던 후줄근 하던 기차와는 도색은 물론 좌석까지 아주 딴판으로 환골탈태한 모습이다. 어쩐지 버스보다 비싸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옆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이 지껄여 대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자꾸 눈총을 주고 눈살을 찌푸려도 눈치채지도 못한다. 아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더 맞을 것 같다. 분명히 이 나라 사람들이었다. 할 수없이 나와 집사람은 종이로 귀마개까지 하였을까?  오크랜드에서 시내 버스를 타도 그리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이 많아 얼굴을 찡그려대기 일수였는데 기차에서도 또 이런 일이 다반사인 모양이네. 우리나라보다 한술 더 뜨는 교통도덕 수준이 아주 낮은 나라였다. 하긴 8년 전도 그랬다. 나아지질 않았다.

  그리 참은 것도 잠간이었다. 두어 시간 여 달리던 기차가 어느 역에서 멈추더니 무어라고 한참이나 방송으로 떠들어댄다. 몇 마디 단어로 짐작 하기에 어느 곳의 선로가 문제가 되어 갈 수 없다는 말로 짐작되는데 그 자세한 상황까지는 영어가 짧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짐을 들고 밖으로 나선다. 이런 젠장. 이 나라 사람들은 다 들 착한가 보다.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없다. 맡겼던 큰 짐까지 찾아들고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윽고 대기한 버스에 다시 짐을 맡기고 차례대로 팄다. 갈 때는 버스였지만 올 때는 기차로 여유롭게 차창 밖을 조망하려던 낭만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비좁은 버스에서 10여 시간을 넘게 가면서 휴식 시간 주면 쉬고 점심 시간 주면 점심 사 먹고 하면서 저나절에 오크랜드에 예정시간보다 또 훨씬 늦게 도착했다. 우리 네 사람의 기차 요금이 버스보다 정확히 141이 비쌌다. 비싼 요금 내고 기차로 못오고 버스에 부대끼며 그것도 몇 시간이나 늦게 왔는데 변상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따지지않고 변상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기차 종점에서도 우리 내리는 버스에 철도 직원이 몇이나 나와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사과 한마디 없다. 참, 어쩜 이런 교통행정일까? 뉴질랜드에 또 한 번 실망했네. 

  이 투어를 끝으로 딸과 외손녀는 귀국을 하고 다시 우리 부부만의 생활이 이어졌다. 다시 도시락 싸들고 교외 이곳저곳 돌아보고 골프도 치곤했다. 식물원 규모가 크다. 두 번이나 다녀왔다.


뉴질랜드 여행기 4 : 코로만델 반도  (2월 21일)


   이곳 교민의 주간지가 문제였다. 교민 식품점에서 얻어온 주간지에서 피지, 통가를 크루즈로 떠나는 여행 광고를 보았다. 전화를 걸었다. 통가는 이미 예약이 끝났고 피지는 주초에 사무실로 전화를 걸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예서 통가나 피지가 가까운 이웃나라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여행사가 딴전을 핀다. 아마도 여행사에 할당된 자리가 없는 모양이다. 광고를 낸 다른 여행사에도 걸어보니 그 여행사도 확인해 보고는 좌석이 없다 한다. 이 나라에 와서 이웃나라 여행도 한다고 잔뜩 부풀었던 가슴이 푹 꺼지는 순간이다.

  코로만델은 오크랜드 이웃에 있는 반도다. 주민이 적게 살고 해안도 절경이고 숲이 우거져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는 걸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하루 여행에 180여 불이 든다고 하니 아니꼬와 차일피일 미루다 별 수 없이 여행사에 들리니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젠장! 언제는 신청자가 적어 못 간다고 하더니 이젠 만원이라고 뱃짱이다. 이미 둘러본 오크랜드 교외도 다녀오고 가까운 거리를 오가는 기차도 타 보고 식물원도 들리고 골프장도 기웃거리며 보냈다. 그러면서 느긋하게 일주일 남짓의 장거리 여행계획을 세우고는 Visitor Information에 예약을 의뢰하였다. 제법 여행비가 많이 나온다.

   갑자기 여행사에서 코로만델 좌석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에 2박3일을 잘 안내하여 인상 좋았던 여행사였다. 2월 21일이란다. 일요일에 떠난다니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차를 타고 보니 이해할만 하였다. 영어 연수 온 초등학생과 돌봐 주러온 학부모 합하여 10명이 타고 있었다. 그밖에 역시 영어 연수 온 여대생 둘과 우리 부부에다 내 눈을 의심하게 한, 이곳 학원에서 영어 연수를 하고 있다는 60대 후반의 할머니 등 15명이 한 팀이었다.

   한동안 팀 구성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초등학생 자식 영어 연수에 부인까지 동반시키며 허리까지 휘며 뼈빠지게 돈 벌어 학비 대기 바쁠 기러기 아빠 모습, 그런 연수를 하고서도 영어는 늘 하위권이라는 한국, 옷차림부터 눈쌀을 찌프렸지만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르는 영어 연수 여대생 둘, 취미로 영어 공부한다며 여기까지 와서 학원에서 연수하는 머리가 허연 60대 후반의 할머니, 70대 후반인 이제까지도 외국 여행에 푹 빠진 우리 부부. 허허, 다들 정상인가?

  오크랜드를 빠져 나와 얼마를 달리니 해안이 나타난다. 도로는 비좁은 이차선에 왼쪽이 바다이고 오른쪽은 산림이 우거졌다. 코로만델 반도의 시작이란다.  5,60년 전 우리나라의 동해안 바닷가 바로 옆을 꼬불꼬불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고 연상하면 딱 맞는다. 한참 해안을 달리다 산길로 접어든다. 이제는 강원도 어느 산골을 달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성 싶다. 기어오르던 차가 고갯마루에 선다. 양쪽의 바다가 다 보이는 망이 좋은 곳에서였다. 가는 곳마다 목장인 이 나라에서는 특이한 해안가요, 산속이었다. 어렵쇼, 그러면 그렇지. 없을 리가 있나. 가다보니 이 산골에도 목장이 눈에 뜨이네.

   12시 경, 숲속의 Waterworks 팻말의 작은 공원에 차가 멈추어 서고, 가이드가 준비해온 점심 도시락 하나씩을 나누어 주며 각자  점심 들며 관람하다 1시 20분에 모이라고 한다. 이곳은 이 공원을  만든 할아버지가 물의 원리를 이용한 갖가지 작품을 곳곳에 세워 놓았다. 물시계, 물로 바퀴가 도는 자전거, 물레방아 ... 등등. 세련된 작품은 아니었다. 숲속에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돌아볼 수준이었다. 도시락은 먹을 만하였다.

  이어서 소문 난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그마한 코로만델 마을을 지나 한 시간 여의 협궤열차를 탔다. 이 열차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공이 재료인 흙을 운반하려고 만든 열차였다고 한다. 높은 산길을 지그재그로 기차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였다. 중간 중간 차가 돌지를 못하는 곳에 이르러서는 옆길에 또 선로를 만들어 전수가 기차의 뒤에 설치된 기관으로 돌아가 운전을 하기도 하면서 번갈아 몇 번을 앞뒤로 가서 운전하며 가야했다. 굴도 지나간다. 숲이 우거져 좋았다. 완전히 정글이다. 전망대에 도착해서는 한참을 쉬는 시간도 있다. 내려다 보는 해안 전망이 아주 좋았다.

  지도를 보면 코로만델 반도가 아주 길다. 우리가 들린 곳은 서해안 일대 일부분에 국한하였다. 이곳 동해안의 경관은 그림의 떡인가 보다. 그곳 어떤 곳은 해안가를 파면 뜨거운 물이 솟아나와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한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곳이어 부자들의 별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끝마무리가 온천욕이었다. 준비해 간 수영복을 입고 온천욕을 하기도, 큰 풀장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온천물에서 수영을 하고 나니 몸도 개운하고 마음마저 산뜻해지는구나. 따져보니 여행비 180여 불이 비싸다는 생각을 지워야 했다.  Waterworks 입장료 24불, 협궤열차비 35불, 온천욕비 14불에, 먹을 만한 도시락값까지. 남는 장사는 도저히 안될성 싶었다. 그래도 좀 남나보다.

 여행 잘 다녀왔다.

                             (이곳 뉴질랜드 달라 환율은  1불 : 800원 정도임)



     뉴질랜드 여행기 5 :  북섬 오크랜드에서 남섬 크라이스트 처치 지나 조셉빙하

                                     (2016. 2월 24 ~ 3월 2일)


 

  화산 폭팔로 바닷속 땅이 융기하여 육지가  태어났단다. 그 육지가 바로 남북섬 뉴질랜드이고 삼천만 년 전 일이란다. 지구의 나이 45~6억 년이고 그리고 바다가 융기하여 육지가 된 땅의 나이도 억 년이라는 딱지가 붙는 곳이 허다한데 고작 3천만 년이라니 육지 탄생으로 보면 정말 갖난애기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 연유로 뉴질랜드 땅은 일반적으로 뻘흙으로 덮여 있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기 쉽고 가물면 땅이 딱딱하고 쩍쩍 갈라지기 일쑤다. 잔디가 심어진 골프장도 살펴보면 필드의 땅이 여기저기 갈라져 있다. 재미난 일화가 있다. 이 나라에 와서 가끔은 골프를 친다. 어느 골프장의 10번 홀이었다. 잘 날아간 공이었다. 200여 m는 족히 간 것처럼 보였다. 가 보니 그 근처 어디에도 공이 없었다. 한참을 찾다 포기 하였다. 그 부근에서 예비 공으로라도 치려고 공을 놓고 그린을 쳐다보니 그린 못 미쳐에 공이 하나 보인다. 혹시나 하고 가 보았다. 허, 내가 친 공이었다. 320m 파4홀이니 적어도 290m 쯤 거리에 공이 가 있었다. 200m 부근에서 ㄱ자에 가깝게 왼쪽으로 비스듬히 꺽인 코스인데 거기서부터는 완만하기는 하나 경사가  있는 내리막 코스였다. 이 공이 딱딱한 뻘흙에 맞고 튀어 힘을 받고 경사를 타고 마냥 굴러간 듯싶다. 허허. 내 평생 가장 비거리가 긴 공을 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이런 땅이니  농사가 잘 되는 지역이 드물단다. 자연 목축, 산림이 주축을 이루는 나라이다. 어딜 가나 풀밭이고 이 풀밭엔 소나 양이 풀을 뜯고 있다. 그렇지 않은 높은 산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산림이 우거져 있다. 간혹 평지나 낮은 구릉에도 산림이 있다. 그런 산림은 대부분이 가로 세로가 반듯하게 심어진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인공 조림지역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쥐꼬리만한 상식 앞세워 이 나라의 특색을 이리 늘어 놓았다. 일차 산업이 주축인 이 나라를 이번에는 내가 거처하는 북섬의 오크랜드에서 남섬까지 이어지는 여행을 하려고 일정을 짰다. 그런 산야가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자연을 즐겨 바라보며 여행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런 시간에 잠이나 자는 여행객을 보면 괜히 측은하다.

   삼개월을 기약하고 방 얻어 놓고 방짝과 지내다 보니 이 나라에 온지도 어느덧 2개월이 지났으니 1개월 후면 고국으로 돌아간다. 11년 전 이  도시에서 2개월( 2003년12월 ~4년 1월), 8년 전 남섬 클라이스트 처치에서 3개월( 2007년 12월~8년 2월)을 보냈다. 이 나라 뭐가 이리 좋아 이리 오래 지낸담? 내 마음 나도 몰라라. 고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북섬에서 남섬까지 짧게라도 가보고 싶었다. 남섬의 최남단 밀포드 사운드는 두 번이나 돌아본 일이 있으니 제처 두고  남섬의 전에 살았던 클라이스트 처치까지 여행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그 도시는 몇 년 전 큰 지진이 났었다. 그 후의 도시가 궁금하여 더 가 보고 싶기도 하였다. 전에 못 가  보아 늘 마음에 걸리던 빙하지대도 이 참에 추가하였다. 자! 출발이다


  (1) 2월 24일 : 오크랜드 -> 해밀턴

 

   Sky City(오클랜드 downtown 안의 스카이 탑이 있는 주변)에서 Intercity 버스에 몸을 실었다.여행을 가면 늘 일찍 출발했는데 오늘은 가까운 지역에서 일박한다고 9시 버스를 예약하였다.서 두 시간 남짓 거리인 해밀턴까지였다. 이 나라의 네 번째 큰 도시에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니 늘 스쳐지나갈 수만은 없었다. 

  해밀턴 도시가 자리한 이곳 와이카토 지역은 다른 땅과 달리 비옥하다고 한다. 바로 화산 폭발 때의 부유물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와이카토강이 흐르는 이 지역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토지가 비옥한 지역으로 낙농과 원예가 유명하다. 어딜 가나 평지거나 평지에 이어진 낮은 구릉이다. 구릉일지라도 평지처럼 까까머리 일색이다. 군데군데 몇 그루씩 나무가 서 있다. 그 까까머리엔 풀들이 자란다.

  하루 자기로 한 백패커 찾아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다. 식물원이 시내에서 걸어 가기엔 거리가 있다기에 웬만 해서는 타지 않는 택시 잡아 타고 해밀턴 가든을 찾았다. 이 가든은 식물원이긴 하지만 여러 나라의  정원의 특색을 살려 배치한 이채로운 가든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일본 정원은 있어도 우리나라 정원은 볼 수 없었다. 르네쌍스식 이태리 정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허브 정원, 식용 가능한 치킨 정원도 끼어 넣은 규모가 큰 정원이었다. 장미 정원은 따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바쁘게 돌아보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이 부근에 와이카토강을 유람하는 선착장이 있었다. 타 보려 하니 늦은 시간이어 매표가 끝났다 하여 아쉬웠다. 시내버스도 진작에 끊어져 다시 택시 불러 타고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건물의 외양이 특이하게 지어져 인상적이었다. 마침 폐관 시간이 가깝다는 바람에 1층의 마오리 예술 작품을 허겁지겁 돌아보는데 그쳤다. 가까운 거리라도 여행은 일찍 출발하여야 한다. 후회막급이었으나  때는 늦었다. 마오리족의 전시관인 1층은 조각품 위주였다. 마오리족은 철제 도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 그들의 에술은 목공예 위주였지만 그들의 작품은 다른 남태평양의 어느 민족보다도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근래의 그들 작품은 철제보인다. 1층엔 특이하게 배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영국과의 전쟁 때 원주민이 사용하던 배라고 한다. 복원을 잘해 놓아 원형에 가깝다는데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화려한 일종의 카누 배였다.

  이 도시 이름인 해밀턴은 마오리족과 싸우다 전사한 영국 장교의 이름이다. 역시 영국인의 입장에서 지은 도시 이름이지만 제삼자인 우리가 보기에는 마오리족의 슬픈 역사를 더 떠오르게 한다. 영국의 식민지로 태어나게 한 와이탕가 조약이 1840년 2월 6일 조인되었다. 그 조약에는 마오리족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그 권리를 인정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영국은 이주민이 정착할 수 있게 토지를 분양해 주었는데 점차 이민 인구가 늘어나자 분양해 줄 수 있는 땅이 한계에 이르렀다. 특히 이 지역은 유달리 토지가 비옥하니 이주민들이 잔뜩 눈독 들이는 땅이었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많은 땅을 차지하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지만 그들이 그 땅을 팔리가 없었다.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영국 정부는 강제로 토지를 매각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 마오리의 땅에 백인 이주민을 정착시켰다.

  마오리족의 저항으로 이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1860년이었다. 국지전이었겠지만 12년이나 끈 전쟁이었다. 물론 영국이 승리하였다. 조약에 위배되는 악법을 만들어 전쟁 일어났으나 강자가 이겼다. 이때 죽은 영국 장교 해밀턴을 이 도시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억울하게 당하고 죽어간 마오리족의 영혼은 어디에서 위로받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본격적으로 뽑아내기 시작한 본보기이다. 일본의 아베도 아마 지구 도처에서 만행을 저지르며 식민정책을 펴고 착취한 서구 여러 나라의 제국주의 역사를 잘 알기에 그리 아시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대동아 전쟁도 침략이 아니라고 한사코 부정하며 약자를 얕보며 저리 날뛰겠지. 후안무치!

  박물관을 나와 와이카토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강이 깊은지 시퍼렇다. 강의 한편은 도심이고 반대편은 주택가가 자리잡은 도시란다.마침 여러 명이 노를 젓는 카누가 보이기에 한 컷 찍는 것을 끝으로 바로 옆의 시내 중심가로 나와 둘러보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도시 전체의 규모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여튼 얼핏 보기에는 웬지 평온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2) 2월 25일 : 해밀턴 -> 웰링톤


   웰링톤으로 가는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특이하게 이층버스였다. 제법 높았다. 이런 2층버스는 처음 타 본다.  일반적으로 이 나라의 시외버스는 시간을 잘 안 지킨다. 몇 정류장 지나면서 차차 늦어진다. 그런데 이 차는  몇 분 전에 도착하여 9시 15분, 정확히 출발 시각에 떠나서 놀라웠다. 이런 버스도 있네.

  도시를 벗어나니 높지 않은 구릉 곳곳에 띠엄뛰엄 나무들이 서 있는 평원이 끝없이 전개된다. 풀밭 일색이다. 간혹 옥수수 밭이 눈에 뜨여 이채롭다. 식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체연료 만드는 케이스로 시험 재배도 한다고 들었다. 11시에 어느 조그만 도시에 버스를 정차시키고 한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준다. 오크랜드에서 일찍 떠나 그런가? 점심 먹기엔 일렀으나 별 수 있나? 사 먹어야지.

  좌우정렬이 뚜렷한 인공 조림지역이 간간이 보인다. 목재 수출국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조림에 신경 쓰는 나라라곤 미쳐 생각하지 못하였다. 다시 출발한지 한 시간여가 지나니 호수를 끼고 있는 타우포시였다. 호수가 워낙 유명하니 도시 이름도 그대로 타우포란다.15분을 쉰단다. 그럴려면 아예 전 도시에서 조금 쉬고 여기에 오면 12시 쯤이어 점심 시간도 딱 맞는데 기사의 시간 처리가  참으로 못마땅 하였다. 

  터미날 바로 뒤에 보이는 호수로 급히 달려가 쪽빛 호수 몇 장 찍고는 되돌아와 버스에 올랐다. 타우포 호수는 분화구로 뉴질랜드에서는 제일 큰 호수이다. 싱가포르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단다. 지난 1월 초 패키지 여행으로 이곳에 왔으나 잔뜩 흐려 그 큰 호수의 장관이 희미하여 실망하였는데 오늘은 맑은 날씨여서 너른 쪽빛 호수에 건너 편의 눈덮인 산도 잘 보여 아주 관망이 좋았다. 1998년 패키지 여행 중에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데 난 전혀 기억이 없다. 방짝은 쪽빛 호수가 기억이 난단다.

  한 달 전쯤 웰링톤을 버스로 오가면서도 못 본 이 호수를, 똑같이 웰링톤을 가는데 이 차는 아예 호수를 옆에 끼고 달린다. 연신 호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조망하기에 바빴다. 오크랜드와 웰링톤을 오가는 버스일지라도 버스길이 지난 번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조금 후에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나타난다. 지난 번에는 멀리 조금 보였었다. 이번에는 공원 끝자락으로 죽 이어 달린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속하는 준수한 나우루호에산도 가까이 보이고 눈 덮인 루아페후산이 줄곧 옆으로 쫓아온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또다른 모습을 보는 뜻하지 않은 횡재였다.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눈이 많은 호사를 하였다.

  드디어 저녁나절 웰링톤에 입성했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린 맞은 편에 예약해 놓은 백배커가 있었다. 어제도 그랬지만 백배커 숙박은 이번 여행이 처음이다. 허나, 공동숙소가 아닌 더블 룸을 사용하니 모텔보다 방값이 그리 싸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공동 취사장에서 젊은이 틈에 끼어 방짝이 요리도 하고 그들 신경 안 쓰고 그들 옆에서 식사도 하였으나 그리 불편한 것은 없었다. 우리가 잔 이곳 더블 룸에는 화장실, 욕실이 갖추어져 있고 룸에 커피도 비치되어 있다. 어제보다는 아주 대접 받는 시설이어 기분 좋았다. 아마도 호텔을 개조하여 등급을 낮춘 탓에 그리 방이 좋았지 않았나 싶다. 하긴 방값도 어제보다 꽤 비싸기는 했지.

 

웰링턴 백패커의 부엌

 

요리하는 방짝

 


   (3) 2월 26일 : 웰링턴 -> 크라이스트 처치

 

  일찌감치 셔틀버스 타고 페리호 선착장으로 향했다. 남섬으로 가는 배다. 그저 그런 배려니 했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말 배가 컸다. 연신 차가 배로 들어간다. 타고 가면서 보니 물경 10 층이나 되는 큰 배였다. 북섬과 남섬 사이의 해협을 지난다. 양안이 좁은 줄 알았더니 좀 지나니 바다만 보일 정도로 넓다. 해안이 다시 나타난다. 아름다운 해안가를 한참이나 달린 끝에 남섬의 픽턴에 정박한다. 3시간 여의 크루즈였다. 역시 여행객은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았다. 그리고 젊은이도 끼어 있으나 노부부가 주류이다. 더 한 가지.노소 불문하고 흑인도 동양인도 아주 드물었다.

  남섬의 가장 큰 도시 클라이스트 처치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행객이 그리 많이 배에서 내려 혹여 버스 놓칠까 허겁지겁 왔는데 버스 터미널이 한산하다. 우리 부부처럼 버스로 여행하는 여행객이 적은 게 분명해졌다.  이 나라 여행객은 자가용을 이용하겠지만 외국 여행객이라도 대부분 렌트카 이용하는 게 분명해졌다. 다시 한번 놀랬다. 

  남섬은 북섬보다 크면서도 인구가 북섬의 삼분의 일밖에 안 된다. 북섬보다 땅도 넓고 고산 준봉도 많고 당연히 목장도 많다. 이번 여행하면서 특이한 걸 발견했다. 1998년 처음 이 나라를 여행할 때에는 양의 수가 5천만이고 소가 3백만이라더니 얼마 전 여행 때의 교민 가이드의 말로는 소가 5백만, 양이 3천만 마리라고 들려 준다. 세계적으로 양모의 수요가 줄고 있단다. 숫자로 보아 육류나 낙농 수요는 늘어났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차창에 비치는 목장을 보면 숫적으로야 양이 더 많을 줄은 모르겠지만 소를 키우는 목장이  더 많이 눈에 뜨인다. 남북섬이 다 그렇게 보인다.

  특이한 농산물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포도 재배가 눈에 뜨인다. 어떤 재배지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포도를 그물로 덮어 키우고 있었다. 새들이 쪼아 먹는 걸 막는 설비인가? 얼마를 지나 쉰 곳이 고래 관찰지로 이름난 카라코라였다. 8년 전에 클라이스트 처치에 머무를 때 고래 구경한다고 기차 타고 여기에 와서 날씨 탓에 배가 출항하지 않아 헛걸음 하여 아쉬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약한 기차 시간까지 시간 허비하느라 저녁나절까지 애도 먹었지. 평지보다 높은 산이 많이 보여도 다 까까머리 목장이다. 해안가를 꽤나 달리다 얼마를 지나서야 산중으로 차가 들어선다. 거기도 민둥산이다. 저기도 예전엔 산림이 우거졌겠지. 백인들이 정착할 때 목장 만드느라 그 너른 산야에 산불은 얼마나 놓았을까?

   다섯 시간이나 달려온 끝이 8,9년 전에 3개월 머물며 골프에 몰두했던 그리고 2011년엔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남섬의 최대 도시 클라이스트 처치에 들어선다. 도시 초입부터 정원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 집마다 꽃들을 잘 가꾸고 있었다. 도심으로 들어서니 무너진 건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기도 하고 옛날 같으면 건물이 늘어선 곳이었겠지만 너른 주차장으로 변해 있는 곳이 여러 군데 보인다. 산뜻한 새 빌딩도 눈에 뜨인다. 당시 지진으로 아수라장이었을 참혹한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아! 큰 지진이 강타한 지 5년이 지났어도 복구하기는 그렇게 더딘가보다. 이곳에 살아 보았으니 남다른 감회로 찡한 가슴으로 연신 두리번 거렸다.

  이름도 유명한 해글리 공원 근처의 YMCA 백배커에 짐을 내렸다. 친절한 버스 기사를 만났다. 근처 여관을 돌며 여행객을 내려 준다. 짐 운반까지 도와주며. 이런 친절에 정말  놀래었다. 더구나 연세도 많은 노인이었다. 그와 맞물려 트렁크를 열어 주기만 하며 운전석에 앉아 승객이 짐을 다 싣기를 기다리는 춘천의 택시 기사를 떠올렸다. 열에 아홉의 춘천 기사는 다 그랬다. 아니, 더 될 것 같다. 그래도 택시 뒷면엔 스마일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4) 2월 27일 ~ 28일 : 클라이스트 처치

 

   사흘 간 줄곧 빠듯한 스케줄이었으니 오늘은 여유롭게 클라이스트 처치를 돌아보게  하루를 비워놓았다. 느즈막이 일어나 우선 바로 옆의 해그리 공원을 찾았다. 이 도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규모가 커 유명한 공원이다. 우리가 생각해도 도시 중심부에 이리 너른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저 경이롭다. 8년 전 이 도시에 3개월이나 머물렀으니 기억이 제법 남아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그리도 공원이 생소할까?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나무가 즐비하고 너른 잔디밭이며 식물원이며 박물관이며 그저 새삼 혀만 내둘렀다. 강이라 할지 너른 개울이라 할지 공원을 가로지르는 물에서는 보트도 즐긴다. 그제서야 어렴풋이 이 공원 기억이 되살아 난다.

   잘 가꾼 식물원을 한참이나 돌았다. 장미 정원은 해밀턴의 장미원처럼 규모가 컸다. 그리고 보니 오크랜드도 해밀턴도 웰링턴도 이곳도 장미 정원을 다 특별하게 다 잘 꾸며 놓았네. 이 나라와 뭐 연관되는 이유가 있나? 이리저리 돌아보니 시간이 제법 지났다. 싸 간 도시락을 풀었다.

   공원을 나와 곤도라 타러 가는 길 안내를 받으려고 방문 센터를 찾았다. 예서 살 때 타 본 기억이 어렴풋 하다. 도심 벗어난 산에 설치하여 바로 산 아래의 리틀턴 항구와 이 도시 전모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는 기억도 난다. 그래도 그냥 스칠 수가 없어 다시 타보기로 했다. 영어로 말하니 대번에 우리말로 한국인이냐고 안내 아가씨가 묻는다. 참, 반가웠다. 6년 전에 이 도시에 와 산단다. 참, 친절하다. 우리 큰딸과 나이가 비슷하다    

   이렇게 늙은 우리 부부가 배낭 짊어지고 여행 중인 걸 보고 혀를 내 두른다. 이 나라에선 우리나라 유학생이나 교민들을 자주 만나는데 우리 부부가 골프를 치다 만나도 다들  놀래고 배낭 메고 자유 여행을 한다고 하여도 놀랜다. 3개월 지내다 간다면 더 놀랜다. 그리곤 끝말이 부럽단다. 하기는 이 나라에 오면 이 나라의 노부부,서양의 노부부들이 참 많이도 여행을 즐긴다. 70 넘은 동양의 노부부들은 정말 보기 힘들다.

  곤도라 한 번 타러 가는데 제법 돈이 든다. 안내소 바로 앞에서 떠난다는 차를 기다리는데 예의 그 교포 안내양이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나와서 차 이름까지 알려 준다. 그래도 곤도라 타기를 잘 했다. 도시 전경이며 해안이며 잘 보고 간다. 휘이 둘러보고는 안내 버스에 다시 몸을 싣고 중심가 이 도시에서 제일 크고 명물인 성당 을 보려고 근처에서 내렸다. 성당 탑이 자랑이었던 이 성당은 탑이 무너지고 철근이 그대로 드러난 채였다. 복원도 새로 지을 엄두도 없어서인가? 이렇게 방치해 두고 문을 닫아놓은  큰 교회여서인지 더 썰렁해보인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밤 미사를 올린 기억을 떠올렸다. 성호를 그었다. 지진에 무너져 내린 당시의 참혹상을 줄곳 연상하며 아픈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시가지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고풍스런 건물은 아직도 복원 중인 건물이 많았다. 아직도 교회처럼 당시 그대로인 채 폐쇄되어 방치된 빌딩, 짓고 있는 빌딩, 빈 터도 곳곳에 있는가 하면 현대식 감각의 산뜻한 빌딩도 적잖다.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이렇게 어수선 하고 활기차야 할 대도시가 지진 난지 5년이 지났어도 도심지도 한산하기만 하니 아픈 가슴에 산란까지 엄습해 온다. 사실은 이 지진이 일어나는 해에도 이곳에 다시 오려고 방을 구하였었다. 구하다 못해 포기하였다. 5년 전 방을 구하여 이곳에 살았다면? 하고 상상하니 더 아찔해진다.

  내일은 이름도 유명한 트란츠 알파인 열차를 탄다. 일찍 자자. 기차역이 시내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 합승 택시를 타야 한다. 예약은 미리 해 놓았다.

 

  (5) 트란츠 알파인 열차 탐승( 2월 28일)

 

 Christchurch -> Greymouth -> Pranz Josef 빙하 마을

 

Tranz Alpine Express


   *** 아주 멋스런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첨단 유행이라도 걷듯 화려한 빛깔로 도배를 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세련미가 넘친다. 이게 아니었는데... 8년 전 이 열차를 탔을 때가 생생하다. 꼭 통일호를 연상시키는 외양에 느린데다 비싸기는. 지금은 더 비싸졌다. 당시보다 배가 넘게 비싸졌으니 더 아니꼽다 해야 할까? 자국민을 위한 열차라기보다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을 위한 열차의 성격이 짙어졌으니 예까지 와서 설마 그냥 가겠나? 타기 싫으면 그만 둬라'인가? 그렇기야 하겠나. ' 잘 치장한 열차 타고 즐거운 기분으로 좋은 경관 잘 보시요.' 하는 이 의도가 더 맞겠지. 내가 너무 색안경 썼나?  어떻든 230km 거리의 요금이 내가 예약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북섬의 오크랜드까지의 한 시간도 더 걸리는 비행기 요금보다비쌌다. 또 공휴일엔 더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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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가 드디어 발동이 걸렸다. 이름도 유명한 트랜츠 알파인 열차가 뛰기 시작한다. 서부 해안 Greymouth를 향하여 잘도 뛴다. 오밀조밀한 마을 벗어나 드디어 이름도 유명한 남섬의 간판 켄터베리 대평원을 향하여 돌진한다. 여북해 남섬의 가장 이름난 대학교가 그 이름을 딴 캔터베리 대학교일까?

 얼마를 달리니 이제는 주위의 산도 보이지 않고 오직 평평한 벌판의 연속이다. 목장이 많이 보이는 다른 지역과 달리 농작물을 많이 심나? 유난히 밭들이 많다. 하긴 어쩌다 목장도 보이긴 하는구나. 대평원을 얼마나 달리었을까? 끝이 없는 줄 알았는데 드디어 험산으로 돌진한다. 산악을 주로 달린다고 이름까지 흔히 산악열차라 하는데 드디어 이름에 걸맞게 산속을 헤집는다. 

  두 칸이나 마련되어 있는 유리창도, 좌석도 없는 전망 칸이 만원이다. 잽싸야 한 자리 차지한다. 열차는 간단없이 짧은 굴을 드나든다. 나올 때마다 계곡 사이로 강물이 흘러간다. 비얼강이란다. 환상이라 해야 할까? 과연 대자연의 신비로다. 너도나도 협곡 사이의 강을 바라보거나 사진찍기에 정신이 없다. 협곡 사이의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넋을 다 빼앗겼다.
  한숨을 돌릴 시간이다. 인가가 나타나자 차가 쉬어간다. 한 집만 보이는데  그래도 정차하는 역인가 보다. 깊은 산속이어서인지 꽃밭이 유별나게 다가온다. 이제는 또 물줄기는 작아지고 모래, 자갈로 뒤덮인 넓은 개울이 앞에 전개된다. 강이라 하긴 그런 상류이다. 얼마를 다시 달리니 많은 사람이 내릴 준비를 한다. Arthur's Pass 국립공원역이다. 관광객이 잠시 내려 돌아볼 시간을 준다. 예서 내려 국립공원으로 트레킹을 가는 이도 좀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다시 탈 사람들이다. 한숨 돌리고 기념 사진도 찍는다.
  거대한 산맥이 열차를 가로 막는다. 남섬의 등줄기 서던 알프스 산맥이다. 이 산맥이 남섬의 동서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서라는 토목 기사가 우마차라도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이를 기념하는 역이 아서스 패스역, 이를 기념하는 공원이 바로 아서스 패스 국립공원이다. 그러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드디어 굴을 파기 시작하였단다. 장장 15년의 공사 끝에 8.5km의 오티라 터널을 완공했단다. 그 해가 1923년이고.

  승객이 다시 타자 열차는 막고 있는 산맥을 뚫은 긴 오티라 터널을 지난다. 얼마를 지났을까? 밖이 훤해지며 다시 서던 알프스 산맥의 서부로 열차가 얼굴을 내민다. 고봉이 즐비한 주변의 풍광에 매료된다.높은 산 사이에 드넓은 벌판이 펼쳐져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전개되기도 하니 이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식당 칸이 운치 있고 여유롭다. 그래 예서 맛도 한번 느껴보자꾸나. 와인 한잔하며 창가의 풍경에 물아일체를 느껴본다. 모아나 마을을 지나자니  쪽빛 호수에 그림 같은 요트가 지나간다. 산하가 어울려 정말 아름답구나. 점차 강물이 불어나고 넓어진다. 그레이마우스강이란다. 다시 카메라 들고  전망 칸을 찾는다. 장장 네 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렸지만 어느 사이에 종착역에 왔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에도 감탄에 감탄을 했지만 세계 유수의 기차여행 중 몇 손가락 안으로 꼽히는, 아니 여섯 번째라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겨울철 눈을 이고 있는 연봉들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도 별천지라는데 이리 여름철에만 타 본 게 아쉽지만 어쩌랴!
  그레이마우스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조셉 빙하 마을로 긴다. 두어 시간 걸리는 산골길이다. 기차 여행 여운 지우고 여장을 푼다. 마당에 나와 멀리 바라다보니 눈덮인 빙하지대 산봉오리가 빠꼼하게 눈에 뜨인다. 내일이면 그곳을 간단다. 맥주 한잔 하며 푹 쉬자. 기다려라, 너 빙하!


    (6) Pranz Josef Glacier( 프란츠 죠셉 빙하 : 2월 29일) 탐험

 

  어제 저녁나절 숙소에서였다. 빠꼼히 얼굴을 내민 눈 덮인 빙하의 봉우리가 서녁 하늘에 햇빛을 받고 나타났다. 얼른 망원 렌즈로 찍어댔다. 사실 이번 뉴질랜드 여행의 마지막이 될 남섬까지의 여행계획을 짜면서 몇 년 전 타본 인상깊은 트랜츠 알파인 급행열차를 다시 타고가 게서 이어지는 코스인 웨스트랜드 국립공원의 빙하탐사를 이 여행의 하이 라이끝마무리로 여행 계획의 매듭을 지었다. 전에 가 볼 수도 있는 기회를 놓지고 늘 후회하였는데 잘 되었다. '그래 클라이막스는 빙산탐사로 대단원을 내리자.'
  가이드 인솔 아래 걸어 다니며 빙하탐사하는 안내가 있었다. 본래의 내 계획서에는 이 코스를 택하여 탐사하기로 적어 놓았다. 우리 같은 서민에게 헬리콥터 탐사는 분에 넘치고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타는 우리 부부의 요금이 600여 달러라니 아니 그런가? 오클랜드의 비지터 센터에 가서 예약을 의뢰하였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손수 다 하기에는 벅찬 버스, 숙소, 기차. 페리, 심지어 빙하탐사까지, 국내외 가는 항공기 예약을 제외하고 여행과 연관 있는 예약은 전부 해 준다. 참, 본받을 만한 좋은 제도다. 첫날부터 8일 간의 여행 예약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빙하탐사 예약만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헬리곱터 탐사가 내 머리를 비집고 들어와 나가지를 않는다. '그래, 그렇게 요지부동이냐?' 좋다.

 

 " 헬리콥터로 바꿔요." 

 

  이런 사연으로 오늘 헬리곱터를 탄다.

  오늘의 헬리콥터 출발  예약 시간은 아침 10시 반이었다. 어제 들리니 오늘 30분 전에 오란다. 도착하니 안내자가 " Maybe? " 한다. 그러잖아 내내 좋던 날씨가 아침에 가는 비가 왔다. 10시에 개인다고 하기에 안심하고 갔는데 '어! 불길한데?' 11시 20분으로 연기가 되었다. 별 수 없이 동네서 가까운 30분 숲길 코스 걷기를 마치고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오후 1시로 delay. 점심 들고와선 3시 반으로. 별 수 없이 또 두 시간 여 워킹 코스를 돌고와서도 뜰 수 없다기에 그만 예약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그게 세 시였다. 높은 산봉우리가 짙은 구름으로 내내 뒤덮여 있으니 어쩌랴. '와, 그리 좋던 날씨가 오늘따라 이리 짓굿다냐?'

  이럴 줄 알았으면 도보탐사 예약이나 했어야 했는데. 후회막급이다. 방짝은 4km나 된다는 빙하 입구라도 걸어갔다 오자고 한다. 허망했다. "차라리 잘 되었지. 590달러 벌었네." 방짝의 힘 없는 위안 삼는 말소리다. 5시 반이나 되었을까? 모텔에서 나와 보니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산봉우리도 흰 구름만 살짝 걸쳐 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였다. 따라나온 방짝이 헬리콥터 날아가는 것을 방금 보았다고 한다. 주섬주섬 옷을 껴 입고 부리나케 달려가니 비행기가 뜰 수 있댄다. 두 부부가 예약을 하기에 우리도 다시 신청을 하였다.

  탑승 인원은 모두 합하여 세 부부 여섯이었다. 헤리곱터는 처음 타 보지만 무서운 생각은 전혀 없었다. 프로펠라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빙하로 향한다. 느려 보이는 헬리콥터가 참 빠르기도 하다. 조셉 빙하가 금방 나타난다. 사방을 조망하랴 연신 카메라를 드리대랴! 바쁘다 바빠. 드디어 눈 덮인 빙하지대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마음이 흥분덩어리가 되었다. 끝없는 감격이 밀물처럼 덮친다.

  빙하는 으레 얼음덩어리인 줄 알았더니 온통  눈더미 지대였다. 만져 본다. 좀 녹은 눈이 손에 잡힌다. 눈덩이가 갈래갈래 갈라져 있는 곳도 있고  클레바스처럼 움푹 파인 곳도 있다. 내려서도 연신 사방을 둘러본다.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쪽빛 하늘에 흰 뭉게구름 둥실!  산봉우리에도 한자락! 어쩌면 두 시간 사이에 이리 날씨 맑아지고 흰구름이 빙산을 감싸게 바뀌었나?  순식간의 변화로다. 오묘하다.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누군가 알 수 없는 영험이  '조금만 참아, 조금만 기다려.'  하며 늦춰 주다가 이런 진경을 보여주려고 그리 delay가 되었지나 않나? 하고 자위하며 환호작약 한다. 그 누구에겐가 감사하고 싶다. "얏호!"  금새 8분이 지나간다. 다시 타라 한다. 옆쪽의 폭스 빙하지대를 돌아 삽시간에 되돌아온다.     

  꿈만 같다. 미련을 못 버린 것도 그렇지만, 날씨 좋아졌다고 급히 안내소로 달려간 처사도 정말 극적이다. 이 순간의 그런 행동이 없었더라면 이런 경험 어디서 다시 할까? 참, 사람의 마음이란 요상도 하지. 특이한 경험을 해 보고 싶은 호기심의 발동이여! 돈이 들긴 했지만 누구보고라도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진다. 이들 두 빙하가 매일 조금씩 해안으로 밀려간다고 한다. 30여 년 동안 1.7km나 이동하였다나? 네팔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며 끝없이 펼쳐진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을 바라보던 경이로움보다 규모야 비교가 안 되겠지만 직접 맞대어본 이 경이로움이 훨씬 더 짙게 가슴에 와 닿는다. 모텔에 들어와서도 흥분이 진정되지가 않는다. 입이 자꾸 벌어진다. 그만 둘이 서로 얼싸 안았다. 방짝이 여한이 없댄다.

  이 나라 여행의 끝마무리 클라이막스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나도 이젠 북섬의 오크랜드 셋집으로  돌아가  짐 꾸려 내 나라로 돌아가야지. 길다면 길 삼개월의 뉴질랜드 생활도 어느 사이 흘러가 10일이면 끝난다.

 

 *** 다음 날 다시 버스에 이어 트란츠 알파인 기차 타고 클라이스트 처치에 왔다. 하룻밤 자고 버스로 8년 전에 머물던 동네에 갔다. 우리 부부가 3개월 머물던 집이며 늘 이용하던 시장이며 산책하던 해안가 배회햐며 옛날을 회상하다가 버스 타고 도심의 종점에 오니 환골탈태한 현대식 터미널이 우릴 맞는다. Transfer 역할만 하던 터미널 건물이 지진으로 폭삭하였다더니 잿더미는 이리 변할 수도 있구나! 오크랜드는 예약한 비행기 탸고 왔다. 10여 일 후 우리 부부 고국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여행이야기 덕분에 저도 눈으로 여행합니다.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잘 보셨다니 기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