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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인터넷 블로거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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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사상/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2008. 11. 11.

촛불과의 대화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인터넷 블로거들과의 만남
  2008-11-05 오전 7:35:24
  이 글은 촛불시위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 7월 15일 오후 7시, 수유리 화계사에서 이루어진 필자와 20명 남짓한 인터넷 블로거들과의 토론 내용을 필자가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촛불과의 대화
  
  삼각산 화계사에서 스무 사람 남짓한 인터넷 블로거들 '촛불'과 만났다.
  
  화계사 주지 수경(收耕) 스님의 인사말이다.
  
  '우리는 도반(道伴)이다. 앞으로 함께 길을 가자. 어린이, 청소년, 여성 속에서 생명의 소리가 나온 것 아니냐!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다를 것 없다.
  
  촛불은 <화엄경(華嚴經)>이다. 우주적 영적 네트워크다. 집단지성이 바로 그것 아니냐. 큰 문명을 개벽하는 소리다. 생활, 생명, 생태의 수없이 많은 작은 이야기들의 강물 속에 큰 문명의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 아니냐! 세상이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함께 그 길을 가자. 절집은 언제나 환히 열려있다.'
  
  나는 말보다 그 말들의 기록을 맡고자 했다. 저녁 내내 계속된 말들은 역시 순서가 없었다. 환원주의나 변증 따위와는 아득히 먼, 처음도 끝도 중간도 없는, 거의 시끄러운 장터같기도 한, 무수한 그물코마다 저마다 보살들이 일어나 진리를 법문하는, 그렇다! 그 역시 하나의 작은 화엄경이었다.
  
  ● '집단지성'이 문제다. 지성 앞에 집단이 붙어 있는 것이 문제다.
  
  ● 촛불은 하나의 사유과정이다. 여럿이 켜는 촛불은 결국 집단적 사유의 표출이다.
  
  ● 조직 역량으로서의 시민은 없었다. 한 사람도 없었다.
  
  ● 일반 국민의 평소의 긍정적 사유가 긍정적 집단지성의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 촛불이다. 부정적인 것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다.
  
  ● 촛불이 앞으로 어떻게 매일매일의 실생활로 연결되는가가 문제다.
  
  ● 직접민주주의로 제도화될 수 있느냐도 문제다.
  
  ● 촛불을 지배한 것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열망이었다.
  
  ● 컴퓨터가 놀라울 만큼 긍정적 작용을 했다.
  
  ● 십대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창조적 주체가 되었다. 사고와 판단 능력에서 불쑥 어른이 되었다. 앞으로의 큰 가능성이다. 문제는 콘텐트다. 그것만 해결된다면 집안만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도 행동에 옮길 수 있다.
  
  ● 어떤 여고생은 물대포 맞고 집에 가면 공부가 잘된다고 했다. 스스로 나아가 물대포 맞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는 어떤 끌 수 없는 힘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 명박산성 때다. 모래를 가져오는데 '줄을 섭시다' 하니까 어린이,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웃으며 웃으며 명박산성 앞 모래성에 주욱 하니 줄을 섰다. 능동성과 평화가 함께 있었다. 그때 모두들 '이 싸움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 2002년 6월 '붉은 악마' 때도, 그 해 12월 '효순이 미선이 촛불' 때도 참가했는데 연속성이 분명한데도 그때와는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 그렇다. 그것이 '집단지성'이다.
  
  ● 집단지성의 출현은 이번 촛불에서 직접민주주의 가능성의 근거로, 인터넷이란 기능을 제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국민소환제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 그것이 친구, 가족을 그 큰 마당에 함께 있게 하였다.
  
  ● 이번 경험에서 가장 싫었던 것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간에 폭력이다.
  
  ● 종교계가 그 폭력을 몰아냈다. 감동이었다.
  
  ● 앞으로는 콘서트, 비보이, 청소년과 가족들 문화 잔치가 더 본격화되었으면 한다.
  
  ● 카페에서는 '춤과 노래를 한 차원 더 승화시키자. 상처 많은 마음에서, 민족의 어두운 마음에서 춤과 노래로 촛불을 켜자'는 논의가 계속 있었다.
  
  ● 7월 5일 이후, 그러니까 종교계의 '새 촛불' 이후 모이는 분들의 성향은 어땠을까?
  
  ● '첫 촛불'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상처받은 사람들(쓸쓸한 대중)이 많아졌다.
  
  ● 생명의 메시지와 평화적 행동 방식이 응집력의 초점이었다.
  
  ● 그 힘은 인터넷의 열린 공간과 현장에서 직접 글을 쓴 블로거들의 영향이 많았다.
  
  ● 하늘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좌악 퍼지고 있었다.
  
  ● 대운하 같은 큰 싸움을 미친 소 때문에 미리 해결했다고들 말했다.
  
  ● '춤추고 노래하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나는 ID '풀뜯는 소'다.
  
  다 좋은데 '재미'가 없으면 마음이 안 가게 된다. '재미'란 게 무엇인가? 재미가 있으면 평소 무관심한 사람들도 서서히 정치ㆍ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촛불의 핵심은 아무래도 춤과 노래다.
  
  ● 확실히 '감동'은 새로운 사상의 모태인 것 같다. 앞으로 조그만 촛불들이 아파트 단지나 자기 집에서도 켜져야 할 것 같다. '촛불' 하나가 교회요 절인 것 같다. '촛불'은 사람을 조용히 타오르게 한다. 이상하다. 이것이 새로운 삶의 길이 아닐까!
  
  ● 대다수 광장 사람들이 '우리는 살기 위해 나왔습니다'라고 했다.
  
  ● 대운하는 재앙이다. 우리는 이 국토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손님일 뿐이다. 그럴 권리 없다. 그래서 MB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재미있는 것은 인터넷에서 박터지게 싸우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함께 웃고 손을 잡았다. 안과 밖이란 문제 다시 생각했고, 말과 몸이란 것 다시 생각했다.
  
  ● 이제껏 앞만 보고 살아왔다.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살아야겠다. 함께 살아야겠다. 이제는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집단지성'의 힘 아닐까!
  
  ● 촛불과 6.10항쟁은 전혀 다르다. 촛불의 기본 동력은 생명의식, 생명감각이다. 여성들, 엄마들이 촛불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 '스텐팬-엄마들 프라이팬'은 못 막는다. '엄마가 뿔났다'다. 도저히 중지할 수가 없다.
  
  정치가 아니라 애들 생명 문제다. 거꾸로 말하면 애들 생명, 그 생명을 보호하려는 모성, 이것이 도리어 오늘의 정치, 생명정치다. 그러므로 촛불과 6.10항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일어나는 것. 생명지향이므로 폭력으로 전환하지 않고 평화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 자체가 평화지향이고 싸움질에 익숙하지도 않고.
  
  ● '먹거리' 문제에서 시작해 '조중동 광고 압박 건'에서는 '나 잡아가라'로 발전한다. 생명운동은 비폭력ㆍ평화 운동으로, 무저항 운동으로 나가는 것이 자연 추세인 것 같다.
  
  ● '검찰 페이지'에 '나 잡아가라'고 자기 주소를 올려버리는 이상한 운동이 바로 촛불이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나 잡아가라'?
  
  ● 나는 정치 같은 것 모른다. 우리 아이 건강 때문에 참가한 것이다. 그런데 하는 것 보니 점점 MB가 미워진다. 이제껏 자제해 왔으나 이대로 가면 '물러가라' 소리가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만약 MB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다면 내 마음이 다시 가라앉을 것 같다.
  
  ● 박정희가 그럴 때 자주 울었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그때마다 다 용서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그때마다 울고 나서는 나쁜 짓 했다. MB는 다를까? 독재자의 눈물은 믿을 수 없다.
  
  대화는 운동론으로까지 승화되었다.
  
  ● 인터넷을 통해 촛불의 의미를 자기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희망했고 무엇을 했으며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 어찌할 것이냐를 토론하고 공부해야 한다.
  
  ● 집단지성은 불교의 화엄사상과 흡사하다. 아니면 다윈의 사회생물학파의 유전자 중심의 전체적 통섭(統攝)론이나 온 생명의 중추신경계에 의한 개체 생명의 통제론 따위에 악용되고 생태 위기 때엔 에코 파시즘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검토해야 되지 않을까?
  
  ● 그것 중요하다. 매우 신경 쓰인다. 그것 벗어나려면 촛불이 너무 정치 문제에만 달라붙지 않고 생활자치 운동으로 국면 전환을 해야 한다.
  
  ● 생활ㆍ생명ㆍ생태운동과 함께 춤ㆍ노래를 통한 문화운동, 문명전환운동도 해야 한다.
  
  ● 어린이, 청소년, 여성, 외톨이 상처 입은 사람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그 중에도 중심은 역시 여성, 젊은 엄마들이다. 흔들림 없는 중심이다. 촛불에서 확실히 증명되었다.
  
  ● 역시 생명이 중심주제다.
  
  화두인 것 같다. 이것이 진짜 기도 아닐까?
  
  ● 프락치들, 꾼들이 머리 아프다. 이용해 먹으려든다. 이 폭력꾼들 문제에 대해 우리는 평화적이지만 효력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 인터넷이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줄기차게 제기하며 일종의 철학 교실이 돼야 한다. 생명ㆍ평화ㆍ폭력ㆍ광장 화백ㆍ풍류 이런 것들 모두!
  
  나는 이 대화에서 특이한 젊은이 한 사람과 부딪쳤다. 그것은 분명 만남이 아니라 부딪침이다. 그의 발언은 한 편의 성장 소설이다.
  
  '내 ID는 '타도MB'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으레 엘리트의식 소유자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자신의 지성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고 십대 청소년이나 여성들의 능력을 아주 우습게 보았다.
  
  그 기준은 지적 능력에 있었다. 특히 여성들은 공부나 성실한 삶에는 거리가 멀고 사치스럽고 유치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촛불이 켜진 뒤 광장에서 나는 아연 놀라기 시작했다. 나는 5월 3일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여성들과 그 청소년들이 놀라운 성실성과 기막힌 재능과 인내력,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참으로 탁월한 '모심'의 정신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여러 번 숨죽여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다. 가슴이 뜨겁고 감동해서다. 새로운 세계를 본 것이다. 그들은 내게 사랑 이상이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오직 생명을 위해서 그렇게 굳게 닫았던 마음을, 그리고 그렇게 내팽겨쳐버렸던 세상과 정치와 메스컴 따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동지나 친구가 아니라 이미 그들과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경찰에게 얻어맞기 시작했다. 나는 뒤집어졌다. 내 몸이 바로 매질 아래 얻어터지고 내 마음이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폭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의라고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ID는 '타도MB'다.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앞으로 많은 산과 강을 건너야함을 알고 있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는 비폭력ㆍ평화의 길을 가는 생명주의자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나의 길은 정의인가?
  
  괴롭다.'
  
  나는 착잡했다.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깊이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우선 '모셔야' 한다. 그 생각, 그 괴로움 자체를 '모심'으로서만 그 빛과 그늘, 그 빛과 그늘의 숨은 차원으로부터 올라오는 새로운 대답을 기다리는 일이다. 모심은 단순한 선의(善意)가 아니라 참선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 계획에 대해 코멘트한다. 그때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도 계획돼 있었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그렇게 과시적으로 하시는 것보다는 서울 주변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만나 함께 끊임없는 마음의 촛불을 창조적 방식으로 다양하게 켜는 것이 좋지 않은가!
  
  ●나는 옛날 사람이다. 절집의 옛 관행을 따라 수행할 수밖에 없다.
  
  ●너무 고태종교(古態宗敎)적이다.
  
  ●..........................................................
  
  ●촛불과는 또 다르다.
  
  ●..........................................................
  
  ●기존 종교는 무엇인가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여기에 내가 한 마디 끼어들었다.
  
  -동학 역사에는 포접(抱接)이라는 실천 양식이 있었다. 포는 여러 종교인들이 비조직적으로라도 도움말, 보호, 지원, 피신 등을 도와주는 '소쿠리'이고 접은 동학꾼 농투산이들로서 일하고 살고 서로서로 돕는 '품앗이꾼'들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의 관계인 포접을 두고 옛날 노인들은 '소쿠리 메고 품앗이 간다'고 표현했다. 촛불이 스님과 관계 맺는 방식은 포접. '소쿠리 메고 품앗이 간다'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강원도 영월에서 환경운동 한다는 한 젊은 목사가 말한다.
  
  -나는 산 속에 살면서 강을 지키기 위해 미친 시멘트, 쓰레기 시멘트와 싸우고 있다.
  
  인터넷의 긍정적인 힘을 이번 촛불에서 잘 보았다. 힘 없는 개인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매체요, 행동의 길이 될 수 있다. 모든 개개인들이 자기의 삶, 괴로움, 억울함, 그리고 희망과 의견 등을 전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김지하/시인

출처: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1030171343&s_menu=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