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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64> 텐지천황과 텐무천황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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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2009. 2. 6.

텐지와 텐무, 난형난제(難兄難弟)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64> 텐지천황과 텐무천황 ②

기사입력 2009-02-04 오전 8:44:15

 

(2) 텐지와 텐무, 난형난제(難兄難弟)

열도 쥬신(일본)의 고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형제 천황은 텐지(天智) 천황과 텐무(天武) 천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텐지 천황은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의 중심인물로서 텐무 천황은 중앙집권체제(中央集権体制)를 확립에 주력하여 고대국가와 천황제(天皇制)의 기초를 견고하게한 천황으로서 유명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텐지 천황은 각종 호족세력들을 제압하여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국력을 동원하여 백제를 구원했던 분이고 텐무 천황은 텐지 천황이 구축했던 왕권을 제도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여 천황권을 체계화 시킨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천황에 대한 출생과 죽음 등의 수수께기가 너무 많아서 오늘날까지도 온갖 의문이 끊이지 않고 각종 학설과 이론, 억측들이 난무합니다.

먼저 텐지와 텐무의 출생에 관한 의혹은 '형제설(『일본서기』)', '이복형제설(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름)', '형제교체설(형과 아우의 순서가 바뀜 : 『일본서기』의 일부 기록)', '비형제설(이 둘은 형제가 아님)' 등의 문제로 요약할 수가 있고, 출자문제에 있어서 조메이 천황의 부여계의 적통이 누구인가 하는 점, 외교 정책면에서 친백제계인 텐지와 친신라계인 텐무의 대립 과정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의 학교 교과서에서는 물론 텐지천황과 텐무천황은 친형제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일본서기』에서는 텐무 천황이 텐지 천황의 친동생이며 그 어머니는 사이메이 천황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 이후 쓰여진 『황년대약기(皇年代略記)』등의 여러 책들에 하필이면 남동생인 텐무천황이 형인 텐지천황보다 3~4세 나이가 많은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텐무 천황이 서거했을 당시 나이가 73세, 65세, 56세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만약 이 가운데서 평균을 잡아 65세라고 해도 텐무 천황의 태어난 해가 621년이 되어 텐지천황(626~672)보다도 나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텐무 천황은 텐지 천황이 그 무수한 활약을 하던 시기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텐무 천황 즉 오샤마(大海人) 황자는 텐지 천황이 중병이 들어 서거하기 직전에 텐지 천황이 그의 손을 잡고 후사를 부탁하는 장면에 나오고 있습니다.9) 그 시기의 텐무는 못잡아도 40대는 되었을 나이지요. 만약 텐무 천황이 텐지 천황의 친동생이라고 한다면 형이 하는 일에 너무 무관심했던 셈이고, 텐무천황이 텐지천황과 아버지가 다른 형이라고 한다면 텐무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지요.

이 연령 모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사자코쿠메이(佐佐克明)로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신라의 왕족인 김다수(金多遂)야말로 텐무(天武)라고 주장합니다.10) 이에 봇물처럼 많은 학자나 논자들이 여기에 참여합니다.

문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보황녀(宝皇女)는 다카무카왕(高向王)이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야(漢) 황자를 낳았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입니다. 만일 이 아야 황자가 텐무라면 텐무는 텐지의 이부형(異父兄)이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분명히 조메이 천황의 직계가 아니니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지요. 아야 황자가 텐무라는 견해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물론 없습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논자로는 오와이와오(大和岩雄), 토요타아리츠네(豊田有恒) 등이 있습니다.11)

오와이와오는 다른 사서들의 기록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연령의 순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12)

▲ [표 ①] 텐지와 텐무의 연령관계

『일본서기』에는 텐지 천황이 조메이 천황 13년(642)에 16세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출생 연도가 626년이 되는 것이죠(서거한 해는 672년입니다). 다만 『일본서기』에는 천황의 구체적인 나이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알아둡시다. 킨메이 천황 이후에는 나이가 거의 표시되어있지 않습니다. 이상한 점은 오히려 센카(宣化) 천황 이전에는 나이가 분명히 기록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즉 센카·킨메이 천황을 기점으로 무엇인가 숨길 것이 많았다는 말이 되겠지요.

다음으로 미즈노유(水野祐) 교수는 텐지와 텐무가 오히려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라고 추정합니다.13) 다만 미즈노유 교수는 이 논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텐무의 어머니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나아가 텐지와 텐무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흐름은 크게 두 부류가 있는데 한 흐름은 신라계 도래인으로 보는 경우이고14) 다른 흐름은 다소 엉뚱하지만 연개소문을 텐무 천황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15) 또 다른 견해로는 텐무를 사이메이 천황이 조메이 천황과 결혼하기 전에 소가씨(蘇我氏) 계열(?)의 황족과 관계를 맺어 얻은 자식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16) 참고로 『일본서기』에도 보면 텐지 천황에게 불려가서 황위를 받으라는 일종의 협박에서부터 텐무 천황을 구했던 사람도 소가노오미야스마로(蘇賀臣安麻侶)로 소가씨였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텐무천황이 조메이 천황·사이메이 천황의 자손이 아니라면 부여계 황통은 크게 흔들리는 셈입니다. 먼 후일 텐지 천황의 손자로 제49대 천황인 고닌 천황(光仁天皇 : 770~781)이 등극하면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셈이 됩니다. 고닌 천황의 황후가 바로 야마토노니카사[화신립(和新笠)]이고 이들 사이에 난 분이 바로 저 유명한 칸무천황(桓武天皇 : 781~806)입니다.

야마토노니카사는 무령왕의 왕자인 순타태자(純陀太子)의 직계후손인 야마토노오토쓰구[화을계(和乙繼)]의 따님입니다. 야마토노니카사 황후에 대해 『속일본기』에서는 일본 조정은 '천고지일지자희존(天高知日之子姬尊)'이라는 극존(極尊)의 시호(諡號)를 바치면서 "백제의 옛 조상인 도모왕(都慕王 : 동명왕)은 하백(河伯 : 물의 신)의 따님이 태양의 정(精)을 받아서 태어났다. 황태후는 그 후손이다."라고 이례적으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2001년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나 자신으로 말하면 칸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으로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씌어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혈연을 느끼고 있습니다."17)라고 말하여 한국과 일본과의 황실에 있어서 혈연적 고리를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언급하여 큰 파문을 낳았습니다. 칸무 천황은 현재의 교토 땅을 고대 일본의 새로운 도읍지인 헤이안경(平安京)으로 개창(794)하고 헤이안 문화시대(794~1192)를 꽃피게 한 제왕이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렇게 복잡한 출생 문제에 관한 논쟁이 지금도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텐지 천황과 텐무 천황은 아버지는 동일하더라도 어머니가 다르다는 미즈노유 교수의 견해가 가장 타당할 것이라고 봅니다(이 부분을 앞으로 충분히 해설해 드릴 것입니다).

이제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한번 검증해보도록 합시다.

"보황녀(宝皇女)는 다카무카왕(高向王)이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야(漢) 황자를 낳았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상으로만 본다면 아야 황자의 아버지인 다카무카왕이 누군인가라는 점이 문제의 핵심일 수가 있는데 고바야시야스코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다카무카왕을 나라 박사인 다카무카노구로마로(高向玄理)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상으로 나타난 그의 이력을 보면 보황녀가 그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카무카노구로마로(高向玄理)는 견수사(遣隋使)에 유학생으로 수행(608)했다가 640년 귀국했고, 나라 박사[国博士]에 취임(645)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카무카노구로마로가 수나라로 떠날 당시에 보황녀(594~661)는 겨우 14살이고 설령 이 당시 결혼하여 아기를 낳았다해도 텐지나 텐무보다는 거의 스무살 정도 연령이 높아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다카무카노구로마로(高向玄理)는 텐지나 텐무의 아버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다카무카왕(高向王)은 다카무카 지역의 족장이나 호족으로 판단이 됩니다.18)

다카무카왕이 어떤 사람인지 추적하기란 『일본서기』의 기록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제 시각을 달리해서 다시 추적해 봅시다.

텐무 천황의 행적을 보면 친신라 정책을 시행한 점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니 텐지 천황의 아들인 오토모(大友) 황자의 정권을 찬탈한 텐무의 쿠데타(진신노난)를 두고 친신라계와 친백제계의 전쟁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기록상으로 신라계 도래인들이 텐무를 직접적으로 지원한 흔적은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텐무 천황의 친신라정책은 외교적인 행태를 통해서 찾아봐야 합니다.

『일본서기』를 분석해 보면, 텐지 천황 시기(662~671)에 당(唐)에서 일본을 방문한 사신단은 5회, 신라로부터 온 사신단은 4회입니다. 그런데 텐무 천황의 시대(672~686)에는 당나라에서 온 사신단은 없고 신라로부터 온 사신단은 무려 15회에 걸쳐있습니다.19) 그러니까 텐무 천황의 시기에 반당(反唐)·친신라 정책이 눈에 띠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당시 신라는 당나라와 일전을 치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텐무 천황의 정책과 신라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일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당나라의 대군을 몰아내려는 신라와 텐지 세력을 물리치려는 텐무 천황의 입장이 같은 처지였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먼저 텐지 천황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많은 호족들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많은 세력들이 한편으로는 그를 두려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증오했습니다. 텐지 천황은 대표적인 반신라·친백제계입니다. 그래서 전국력을 동원하여 반도부여(백제)를 지원합니다. 이 지원이 참패로 끝나자 국내에서는 많은 불만들이 나타납니다(상세한 내용들은 『일본서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천황의 등극도 미룬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텐무가 텐지 천황의 분명한 라이벌로 부각되었다면, 텐무는 고토쿠 천황의 남은 자식인 아리마(有間) 황자의 운명처럼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텐지 천황이 서거할 때까지 텐무는 철저히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자세를 유지하다가 텐지 천황의 사후에 바로 행동을 개시한 것이죠.

텐무 천황의 입장에서는 부여계 가운데서도 반텐지(反天智) 계열과 신라계 도래인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돈독히 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텐지 천황에게는 친반도부여(친백제)나 친신라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죠. 단지 자신의 절대권력의 형성에 방해되는 그 누구도 살려두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텐지 천황 = 친백제계, 텐무 천황 = 친신라계'라고 보는 것은 텐지 천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죠. 텐무를 지원한 세력들은 그저 반텐지계(反天智系)였다고 보면 타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텐무는 단지 신라와 신라계 도래인, 나아가 각종 부여계 들을 이용했을 뿐입니다(주요 부여계 호족들은 이미 텐지 천황에 의해 궤멸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텐무계의 움직임에 대해 신라는 적극 호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시점에 신라는 대당전쟁(對唐戰爭)을 이겨야 하는데 일본은 신라에게는 주요한 배후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배후에 있을 경우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는데 이 점이 큰 골칫거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나라의 대군이 한반도에 장기적으로 묶여있으면 위구르나 티벳 방면의 방어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20) 결국 매소성 대전(676)과 기벌포 해전(676)에서 신라는 당나라를 격파하고 당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텐지 천황은 매우 성가신 존재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텐지가 서거(672)한 것이죠(그래서 일부에서는 텐지천황 암살설이 나오고 있죠).

▲ [그림 ③] 매소성 전투(한국 민족기록화 : 전쟁기념관)

이와 같이 텐무 천황측과 신라의 입장이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은 당연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텐무를 신라계 인사의 아들이라고 보거나 아야 황자를 텐무로 보면서 다카무카왕(高向王)을 신라계 왕족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텐무가 조메이 천황과 완전히 무관하다면 천황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단기간에 그 많은 지원세력들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텐지천황과 텐무 천황은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요? 이제부터 그 비밀을 풀어봅시다.

필자 주

(9) 『日本書紀』「天智」10年. 참고로 『일본서기』의 기록을 인정하는 川崎傭之는 "정확히 그 무렵부터 오샤마(大海人) 황자는 그림자의 형태에 따르듯이 나카노에(中大兄) 측에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고토쿠 천황을 나니와경에 두고, 나카노에와 함께 그가 大和로 끌어올렸을 때는 그도 벌써 약관(23)의 청년이 되어 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川崎傭之『天武天皇』(岩波新書98 : 昭和49).
(10) 佐佐克明에 따르면, 『日本書紀』에 근거하면 天智의 생년은 626년으로 알 수 있는데 반해 天武는 불명확하지만, 『一代要記』에는 天武의 생년은 622년으로 되어있어 거의 4세의 나이 차이가 난다. 『本朝皇胤紹運録』에는 天武의 生年이 623년으로 没年齢이 65세로 되어 (天武의 没年이 686년으로부터 계산해보면)1년의 차이가 있다. 佐佐克明은 이외에도 『上宮聖徳法王帝説』의 기록["乙巳年六月十一日、近江天皇〈生廿一年〉殺於林太郎□□以明日其父豊浦大臣子孫等皆滅之."(□는欠字)]도 제시하고 있다. 佐佐克明「天智・天武は兄弟だったか」『諸君』(昭和 49年8月号(文藝春秋社 : 1974). 佐佐克明은 이 같은 연령모순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텐무를 신라인 김다수로 파악하고 있다. 佐佐克明「天武天皇と金多遂」『東アジアの古代文化』18号(大和書房 : 1979)
(11) 大和와 豊田도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지만 漢皇子의 아버지인 高向王에 대한 견해는 나눠진다。高向王에 있어서 小林는 遣隋使로 隋나라에 갔다가 隋의 滅亡후에도 中国에 머물러 있었던 高向漢人玄理로 보고 있고、大和는 『日本書紀』통해 用明天皇의 孫이 되는 것으로 보고[大和岩雄『天武天皇出生の謎』(六興出版 : 1987)], 豊田은 『常陸国風土記』에 등장하는 東国惣領의 高向臣(이름은 不明)으로 하고 있다. [豊田有恒『英雄・天武天皇』(祥伝社 : 1990)]
(12) 大和岩雄「天智・天武非兄弟説と異父兄弟説」『東アジアの古代文化』67号 (大和書房 : 1991)재구성
(13) 水野祐「天智・天武『年齢矛盾説』について」『東アジアの古代文化』6号(大和書房 : 1975)
(14) 井沢元彦도 처음에는 텐무를 신라도래인과 가까운 유력씨족의 長으로 보았지만[井沢元彦『隠された帝』(祥伝社 : 1990)追記(2000.9.10)], 후에 오히려 텐무를 텐지의 異母兄으로 하고 텐무의 아버지는 新羅人이 아닐까 추정하였다. 井沢元彦『逆説の日本史2 古代怨霊編』(小学館 : 1994).
(15) 小林惠子는 처음에는 天武를 漢皇子와 동일인물로 보았다가[小林惠子「天武の年齢と出自について」『東アジアの古代文化』16号(大和書房 : 1978)], 후에 天武를 高句麗의 高官인 泉蓋蘇文으로 보았다[小林惠子『白村江の戦いと壬申の乱』(現代思潮社 : 1986) 및 小林惠子「天武は高句麗から来た」『別冊文藝春秋』1990年 夏号(文藝春秋社 : 1990)]. 李寧煕도 같이 天武를 泉蓋蘇文으로 보았다[李寧煕『天武と持統』(文藝春秋社 : 1990)].
(16) 關裕二『古代史』(관정교육재단 : 2008) 217쪽.
(17) 『朝日新聞』(2001.12.23)
(18) '高向'이라는 곳은 『지명사전(地名辞書)』에 따르면, 河内国錦部郡長野村(高向村)에 있고 이 곳에는 '高向王'의 묘도 있다고 한다。가와치(河内)의 이시가와(石川) 상류의 좌측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 기록들이 이와 유사한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일본서기』에 "高向臣宇摩"(「欽明即位前紀」), "高向臣国押"(「皇極 2年 11月」), "高向朝臣麻呂"(「天武」10年12月), "難波朝廷刑部尚書大花上国忍"(『続紀』和銅元年閏8月)등을 들 수 있다.
(19) 『일본서기』에 따르면, 唐에서부터 온 사신단은 664・665・667・669・671년의 5회, 신라에서 온 사신단은 668, 669, 671(2회) 등이다.
(20) 堀敏一『中国と古代東アジア世界』(岩波書店 : 1993)


/김운회 동양대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출처;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129104334&Section=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