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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한국 고대문화의 비밀-씨름과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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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이형구의한국고대문화의비밀

2015. 7. 25.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

씨름과 태권도

 

단오()는 우리나라 5대 명절의 하나로, 옛날에는 지금보다 꽤나 호사스런 날이었던 것 같다. 수릿날, 천중절()이라고도 하는 이날은 세시풍속 중에 가장 행사가 많던 날이다.

조선조 유득공()이 정조·순조 때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책으로 엮은 『경도잡지()』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 보면, 5월 단오날 풍속은 먼저 임금이 애호()라고 하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를 각신()들에게 나눠 주어 악귀를 물리치게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하였다.1)

임금은 단오선()이라고 하는 부채를 신하나 궁인들에게, 어른은 아랫 사람에게 나눠 주어 여름철의 더위를 쫓도록 했다. 아녀자와 소녀들은 창포탕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를 즐긴다. 그러나 단오날에 빼놓을 수 없는 놀이는 뭐니뭐니 해도 남정네들의 씨름이다.

씨름은 예로부터 흔히 각력() 또는 각저([])라고 했는데, 중국에서는 ‘쑤와이 지아오()’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스모()’라고 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단오절의 씨름 놀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서울의 젊은이들이 남산 기슭에 모여 씨름을 하는데, 그 방법은 두 사람이 마주보고 무릎을 굽혀 서로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또 저마다 왼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다리를 잡은 다음 일시에 일어나면서 서로 넘어뜨리려고 한다. 이때 쓰는 기술로는 안걸이[내구()]·바깥걸이[외구()]·둘러매기[윤기()] 등 여러 수가 있다. 중국 사람들도 이를 배워 노는데 고려기 또는 요교()라고도 한다.”

 

씨름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각지에서 성행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민속놀이다. 씨름은 기록으로뿐만 아니라 조선조 후기의 김홍도()의 풍속도로도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도 씨름이 널리 유행했던 사실은 『고려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씨름 경기에 대한 기록은 4~5세기경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다. 그 첫째가 유명한 씨름 무덤[각저총()]의 씨름 그림이다. 씨름 무덤은 1940년 만주 집안 통구에서 춤무덤[무용총()]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 무덤의 현실 동쪽 벽면에는 고구려 특유의 화법으로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두 씨름꾼이 서로 허리를 잡고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한쪽 옆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심판을 보고 있다. 심판이 지켜보는 아래에서 씨름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천하장사 씨름 대회를 방불케 한다. 씨름꾼들의 머리 위 하늘에는 새 모양무늬[조문()]가 있고 나뭇가지에도 여러 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통구 각저총(角抵塚)의 씨름 그림만주 집안시 국내성 부근에서 발견된 각저총의 씨름 그림은 5세기 초에서 6세기 초 사이에 그려진 고구려의 대표적인 벽화이다. 심판이 지켜보는 가운데 씨름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방불케 한다. 곰(오른쪽)과 호랑이(왼쪽)가 나무 아래에서 등을 지고 앉아 있다. 단군설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 나무와 새의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보다 오늘날의 씨름에 더욱 접근하는 벽화가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집안시의 장천 1호분이다.2) 이 고분의 전실 북쪽 벽면에는 백희기락도()와 산림수렵도()가 백묘법()으로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 백희기락도의 왼쪽 위 모서리에는 막 한판 승부를 가릴 것 같은 씨름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건강한 두 씨름꾼들은 모두 머리를 상투처럼 묶고 겨우 팬티만을 걸친 알몸이다. 이들은 서로 머리를 상대방의 왼쪽 어깨에 엇갈리게 처박고 오른팔은 상대방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쑤셔 넣은 채 두 손은 상대방의 띠[샅바]를 움켜쥐고 왼쪽 다리를 뻗어 상대방의 사타구니 밑으로 집어넣어서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두 벽화의 씨름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민속씨름과 너무도 똑같다.

 

장천 1호분 전실 북벽의 씨름 그림[왼쪽]과 모사도[오른쪽]중국 집안시 국내성 동북 25km 지점 장천 마을에서 최근 발견된 1호 고분에는 전실의 북벽 상단에 백희기락도(百戱伎樂圖), 하단에 산림수렵도(山林狩獵圖)를 다채롭게 그렸다. 왼쪽 상단 모서리에 씨름 그림이 보인다. 5세기경에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씨름 그림보다도 이른 시기의 씨름에 대한 기록이 『후한서』 동이전 부여조에 보인다. “한나라 순제() 영화() 원년[136]에 부여왕이 한나라 서울[장안]에 내조하였을 때, 순제가 황간(, 내시)으로 하여금 북을 치고 피리를 불게 하고 씨름놀이[각저희()]를 즐기도록 한 후 돌려 보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57년 중국 섬시성 서안 남쪽의 객성장()이라는 곳에서 한 무제(, 기원전 140~87)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41호분]이 발굴되었는데,3) 그곳에서 뚫음[투조()] 기법으로 조각된 씨름 조각이 발견되었다. 길이 13.8cm, 폭 7.1cm의 장방형 부조 요대()에는 양 옆의 나무에 당나귀가 한 마리씩 매어져 있고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이 맞붙어 씨름하고 있다. 인물은 코가 크고 장발인데, 서로 상대방의 한쪽 다리와 허리춤을 움켜잡고 힘을 겨루고 있는 씨름꾼의 머리맡에서 새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고구려 씨름 무덤[각저총]의 씨름꾼 머리 위에 그려진 새 모양과 퍽 대조적이다.

 

서한(西漢) 때의 씨름 조각서안[西安, 한나라 때의 장안] 남쪽 객성장 41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한무제(기원전 140~87) 이전의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진 장방형 투조동식(透彫銅飾)이다.

 

 

『무예도보통지』의 권법도[삽화]조선시대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보(拳法譜)에는 마치 오늘날 태권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동작들이 설명과 함께 묘사되어 있다.

 

씨름과 함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투기의 하나로는 태권()이 있다. 태권은 맨주먹으로 힘을 겨루는 경기라서 일명 수박()이라고도 한다. 조선조의 『무예도보통지()』[1790]에 권법()이라고 하여 38세()의 기본 자세가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 당시의 태권을 잘 알려준다.4) 이 시기에는 태권이 왕명으로 훈련될 만큼 국가적으로 중요시된 운동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무인집단에서 태권을 숭상하였음을 『고려사』를 통해서 익히 알 수 있다. 『고려사』 열전에는 이의민()·두경승() 등이 태권을 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최충헌()은 태권을 크게 장려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태권 그림은 역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씨름 무덤[각저총]과 함께 유명한 춤무덤[무용총]이다. 무용총의 현실 북쪽 벽면에 그려진 태권하는 그림은 팬티만 입은 두 사람이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서로 마주 서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한 손을 높이 쳐들어 상대편을 치려는 자세를 취한 모습을 그렸다.

 

집안 춤무덤[무용총]의 수박희(手搏戱)만주 집안시 국내성 춤무덤[일명 무용총]의 천장부에 수박희를 겨루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알몸에 겨우 사타구니만 가리고 머리는 뒤로 동여맸다. 5세기 초에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황해도 안악 3호분에서도 전실 동쪽 벽면에서 태권하는 그림이 발견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예도보통지』에서 보는 조선조의 권법과 매우 일치한다. 이에 대해 북한의 미술사가 주영헌은 “이 그림은 다른 벽화에 비해 예술적 고장이 풍부하고 회화적인 해학성이 풍기는 점에서 이채를 띤다”고 했다. 고구려에서 널리 유행했던 수박희와 비교될 만한 벽화가 1961년 중국 하남성 밀현() 타호정() 동한묘에서 발견되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5) 두 역사가 수박희를 겨루는 모습이 마치 고구려에서 널리 유행했던 수박희와 비교될 만한 이 그림은 머리는 상투처럼 틀어 올리고 검은색 장화를 신은 두 사람이 태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왼쪽의 역사는 종려색으로 배를 감싸고 붉은색 팬티를 입고 있으며, 오른쪽의 역사는 반대로 붉은색으로 배를 보호하고 종려색 팬티를 입었다. 수박희를 겨루는 모습이 마치 안악 3호분의 수박희 그림을 방불케 한다. 안악 3호분 벽화의 인물의 회화 기법은 앞에서 본 것처럼 매우 고구려적인 화법이다. 백묘법()이나 프레스코(fresco) 화법에서 풍기는 예술적인 분위기는 중국의 벽화와는 다르다.

 

 

 

황해도 안악 3호분의 수박희

 

 

동한() 때의 수박희중국 하남성 밀현 타호정에서 발견된 동한시대(서기 2세기 말) 고분 벽화에 보이는 수박희 그림.

 

 

 

고구려에서 특별히 유행되었던 씨름이나 수박희()가 갖는 투기로서의 본질은 중국에서 이미 보이지만, 고구려에서는 고구려인의 상무() 정신과 결합하여 용맹하고 건장한 모습으로 고구려화하였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수박의 후신인 태권도가 오늘날까지도 남북 모두에게 우리나라의 국기()처럼 되지 않았겠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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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형구 교수

    1962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하에서 수학했다.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대만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발해연안 고대...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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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씨름과 태권도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