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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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한국 고대문화의 비밀-마상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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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이형구의한국고대문화의비밀

2015. 7. 25.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

마상무예

 

소년기에 본 ‘흑기사()’라는 영화는 백마를 탄 두 기사가 긴 창을 옆구리에 끼고 양쪽에서 마주 달려오면서 서로 상대방을 찌르는 대결장면이 퍽 인상적이었다. 영국에서는 이 경기를 조스팅(jousting)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기창도 삽화조선시대 정조의 어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말 타고 창을 다루는 기창 그림. 이 같은 기마자세는 고구려 마사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마상경기()는 영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마상 경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훨씬 뒤에야 알았다. 한 예로 조선조의 『무예도보통지()』 권1에는 말 타고 창을 다루는 기창보「()」가 있고, 그 가운데 기창교전보()에 기창도()가 실려 있다. 이 경기는 150보를 사이에 두고 말을 탄 두 기사가 창을 옆구리에 비스듬히 세워 끼고 상대방을 향해 달려가면서 창을 서로 부딪치면서 승부를 결정짓는다. 『무예도보통지』에는 기창이나 기창 교전 이외에도 말 위에서 양손에 칼을 들고 재주를 부리는 마상쌍검, 말 위에서 긴 청룡도를 휘두르는 마상월도(), 말을 타고 도리깨 모양의 곤봉을 휘두르는 마상편곤(), 구장()에서 말을 타고 긴 채[장()]로 공을 치는 운동인 격구(), 그리고 맨손으로 말에 올라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 등이 있다. 조선조 초기의 『경국대전()』[1398] 병전에 기창과 격구는 기사()와 함께 무과 시험 과목으로 되어 있다.1)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그림이나 사냥하는 그림은 벽화의 중요한 소재이다. 이러한 벽화고분으로는 만주 지방의 집안 춤무덤[무용총]·삼실총·마선구 1호분·통구 12호분·장천 1호분 벽화 등이 있고, 평양 지방에는 약수리 고분·대안리 1호분 그리고 덕흥리 벽화고분 등이 있다.

 

 

 

통구 12호분 무사도이 고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견된 집안시 벽화고분 중의 하나이다. 북실의 왼쪽 벽에 전투도가 그려져 있는데, 갑옷을 입은 한 무사가 한 포로의 목을 막 베고 있다.

 

 

통구 삼실총 기마공성도갑옷으로 무장한 2명의 무사가 말을 타고 성문을 향하여 맹렬히 달려들고 있다. 말에도 갑옷과 마면을 씌웠다.

 

 

 

이 중 408년에 제작된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 벽화고분의 기마 궁술 경기대회 장면의 그림이 유명한데,2) 마치 조선조의 무과시험에 나오는 기사()를 방불케 한다. 벽화를 그린 화가의 자작 그림의 제목은 ‘마사희()’다.

 

고구려 기마궁술대회도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고분의 현실 서쪽 벽면의 상반부에 그려진 기마궁술대회 그림. 화가는 말 위에서 활쏘는 경기라고 하여 그림 제목을 마사희(馬射戱)라고 썼다. 이는 고구려인의 마상무예 훈련으로 보이지만 고구려 무과시험의 기사시(騎射試)인지도 모르겠다.

 

덕흥리 고분벽화의 현실 서쪽 벽의 상반부에 가득하게 그려진 기마궁술대회 장면은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서는 처음으로 알려진 것으로 매우 흥미롭고 귀중하다. 그림에는 5개의 과녁이 세워져 있고 신중하게 경기 성적을 기록하는 사람, 미소를 머금은 2명의 심판, 초조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기사, 질서 있게 경기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경기자가 말을 타고 질풍같이 달려 나가면서 각각 목표물[과녁]을 쏘았는데, 5개의 과녁 중에서 오른쪽 끝에는 “말 타고 활 쏘기 경기하는 사람[西 ]”이라고 먹으로 씌어 있다.

특히 고구려의 기마궁술 경기대회에서 5개의 과녁을 사용하여 시사()하고 있는 점은 조선조의 『경국대전』 병전에 보이는 무과의 기사에서 채용된 과녁의 숫자와 일치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경국대전』에는 “5개의 과녁을 사용하되 과녁과 과녁의 간격을 35보”라고 했다. 고구려의 기마궁술 경기대회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덕흥리 고분 벽화에는 마사희 그림 외에 현실의 동·남·북 삼 면의 천장 부분에 걸쳐 수렵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에는 기사[사냥꾼]와 말의 자세가 매우 다양하다.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을 당기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말을 달리다가 머리를 뒤로 돌리면서 화살을 당기는 자세를 취한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매우 동적이다. 이보다 이른 시기의 무용총의 수렵도에서도 이러한 표현법을 찾아볼 수 있다.

덕흥리 고분과 비슷한 시기의 벽화로 추정되는 평안남도 대안시 약수리() 고분의 현실 서쪽 벽에 그려진 벽화는 대표적인 고구려 수렵도의 하나이다. 이 그림은 한편에서는 말을 탄 악대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사냥의 흥을 돋우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활을 당기며 호랑이·곰·사슴 등을 쫓는 기마인물이 있다. 또 산기슭에는 짐승을 쫓는 몰이꾼이나 사냥꾼들이 달려들고 있다. 그 표현 방법이 매우 사실적이고도 생동감 넘치게 그려져 있다. 이와 비슷한 분위기는 집안 지방의 장천 1호분의 산림수렵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집안 춤무덤[무용총] 수렵도 모사도

 

 

집안 장천 1호분 수렵도 모사도. 집안박물관 동장부 모사무사는 고구려 특유의 절풍()을 쓰고 호랑이를 잡고 있다. 그러나 곰은 신단수() 아래 굴속에 모셔져 있어 마치 단군신화를 보는 듯하다.

 

 

 

고구려의 말 타고 활 쏘는 기마궁술() 경기도 씨름이나 태권 못지않게 고구려 사람들이 즐기던 경기다. 그래서 『구당서()』 동이전 고(구)려조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각처의 큰길가 네거리마다 경당()이라고 하는 큰 집을 지어 이곳에서 청년 자제들을 모아놓고 밤낮으로 독서하고 활 쏘기를 익혔다[   ]”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사람들이 말타기와 활쏘기·수렵을 즐긴 데 대해 『조선역사유물』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높은 민족적 긍지와 씩씩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외래 침략자들의 침입으로부터 언제나 나라를 굳건히 지켜냈다.”3)

그리고 『고구려문화』에서는 “그것은 전쟁이 빈번했던 당시 정세 요구에 비춰 일상적으로 군사시설을 익히고 몸을 단련하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졌다”고 했다.4)

 

부여 능산리 능사지(陵寺址) 출토 금동용봉봉래산향로 기마수렵도기마무사가 회두사전(回頭射箭)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달리던 말도 덩달아 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다.

 

한편, 1993년 충청남도 부여읍 능산리 능사지()에서 발굴된 백제 위덕왕(, 이름은 창()) 때[525~598] 만들어진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뚜껑에 여러 형태의 인물도가 부조()형식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두 필의 기마인물도가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한 필은 앞을 보고 걸어가는 기마인물도이고, 다른 한 필은 말을 탄 채로 상채를 뒤로 돌린 자세로 한 손으로 활을 잡고 한 손으로는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달리던 말도 주인처럼 말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는 모습이 매우 희화적()이다. 이와 같은 회두사전()형의 기마자세의 기마수렵도는 집안의 춤무덤[무용총], 장천() 1호분 그리고 평양의 덕흥리 고분의 벽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국내성 지방에서 발견된 삼실총 벽화의 기마전투도 중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까지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이 손에 긴 창을 비껴들고 찌를 듯한 기세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그림은 천마총의 긴 창을 든 기마인물도와도 비교될 만하다.

기마수렵의 유풍은 신라에도 전래되고 있다. 1973년 경주시에서 발굴된 천마총()에서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채화판()의 원판 그림에 기마인물도가 보인다.5) 백마를 탄 기사가 창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이 조선의 『무예도보통지』에 보이는 기창도()그림과 비슷하다.

 

경주 천마총 출토 채화판(彩畵板) 기마인물도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채화판에 그려진 기마인물도. 5~6세기경의 작품.

 

5~6세기 무렵 신라시대의 기마인물도는 백제시대의 기마 수렵도에 고구려의 유풍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지만 후대의 조선조 『무예도보통지』의 기창보 중의 한 자세인 ‘석전일자세()’와도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조선조에는 국가에서 장려한 무과의 필수과목으로 마상 무예 가운데 기사·기창·격구가 시험되고 있었다. 조선 후기 기록에 의하면 이와 같은 마상 무예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나 백제·신라의 유물을 통해서 기마나 기마수렵 풍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이는 기마수렵도는 중국의 한나라 벽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대개 기마 행렬도가 자주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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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책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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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형구 교수

    1962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하에서 수학했다.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대만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발해연안 고대...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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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마상무예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