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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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한국 고대문화의 비밀-사신도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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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이형구의한국고대문화의비밀

2015. 7. 25.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

사신도의 아름다움

 

인류는 예로부터 따뜻한 곳을 좋아했다. 고대 인류는 해안가나 강줄기를 따라 나지막한 남향받이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으며, 또 그들의 주검을 묻었다. 햇살이 잘 비치는 따뜻한 양지면 그곳이 바로 훌륭한 명당이 되는 것이다. 거기다 물을 얻을 수 있고 바람까지 막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오늘날 고고학 조사를 통해 얻은 지식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의 집자리가 그렇고, 청동기시대의 묘자리[고인돌무덤] 또한 그렇다.

 

재령평야의 강서삼묘(江西三墓) 원경2000년 9월 중추가절의 재령평야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 물결 옆으로 코스모스가 살짝 미소짓고 있다. 영락없는 남쪽 풍경이다.

 

동물[인간]이 따뜻한 곳을 찾는 것은 본능이다. 인간은 그것을 후세에 풍수()라 이름하여 오늘까지 전하고 있다. 풍수에는 집자리를 정하는 양택()이 있고, 묘자리를 고르는 음택()이 있다. 좋은 자리를 정하는 행위를 복택()이라고 하며 그와 같은 일을 풍수지리()라 일컫는다.

풍수지리의 본질 중에서 집자리나 묘자리의 등진 방위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향을 정한 좌향이 제일이다. 음양을 논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좌향은 태양의 운행과 하늘의 별자리에 따라 구분되는 28수(宿)에 의해 정해진다. 28수를 다시 7개로 묶어서 동·서·남·북으로 4개의 별자리 모양으로 나눠 천문에서는 사방위()라고 한다. 그리고 사방위의 성수 이름을 음양오행설()에서는 사신()이라고 하였다. 사신은 사방의 방위신()으로 방위를 대신한다.

사신에 대한 명칭은 한()나라 때에 유가()의 고례에 대하여 적은 『예기()』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여기에는 “    ”라고 했다. 군대가 행군할 때 전후좌우의 포진을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 등 사신의 이름으로 정하고 각 방위에는 사신의 형상을 그린 기치를 표지로 삼았다. 따라서 사신은 각 군의 표지임은 물론 사방을 방어하고 수호하는 신의 역할을 담당한다. 중앙은 노란 황룡이다.

 

강서중묘 백호도강서중묘 사신도의 서쪽 벽면에 그린 백호는 예리한 어금니를 드러내고 허공을 응시하며 땅을 박차고 비상하고 있다.

 

사신에 대한 신앙은 대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음양오행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대()에 와서는 군진의 방위와 기치에 이용했다가 차차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한대의 거울이나 기와류에 사신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사신사상이 가장 적극적으로 신앙된 것은 고구려에서이다. 고구려 후기의 고분 벽화는 사신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는 처음에는 묘주인의 생활을 위주로 그린 인물 풍속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중기에 들어와서는 벽화의 중심 화제인 인물 풍속도에 상상화나 신선도와 함께 천장 부분에 부분적으로 사신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차차 인물 풍속도와 사신도가 절반씩 차지하게 되면서 벽면을 아래위로 나누어 위에는 인물을 그리고 아래에는 사신을 그리기도 하고, 또는 북벽에 현무와 인물을 그리고 나머지 벽면에 청룡·백호·주작을 그리기도 했다. 후기에 와서는 반대로 인물 풍속도가 천장의 한구석을 차지하다가 마침내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사신도만이 모든 벽면을 차지하게 된다.1)

 

백제의 백호도공주 송산리 6호분의 백제 사신도이다. 축조방법은 벽돌로 만든 고분[전축분(塼築墳)]으로 무령왕릉과 비슷하다. 네 벽에는 진흙을 바르고 백분으로 사신도를 그렸다. 백호의 구도가 고구려의 사신도와 비슷하다. 6세기 후반의 작품.

 

고구려의 사신신앙은 사자의 영원한 안식과 영혼의 안녕을 위하여 추구된 것이다. 북한의 조수호 씨는 “3세기의 무덤으로 편년되는 로산동 1호 무덤, 무산리 3호 무덤에 벌써 사신도만을 주제로 했거나 사신도 위주의 벽화가 그려졌다는 것은 그 이전 시기부터 사신에 대한 신앙관념이 고구려 사람들 속에서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였다.2) 사신신앙은 대개 4세기 말부터 고분 벽화에 출현하기 시작하여 7세기 후반까지 이어진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사신도가 그려진 무덤으로는 중국 길림성 집안 지방의 춤무덤[무용총]을 비롯해 삼실총, 환문총(), 통구 4호분, 5회분 4호묘·5호묘, 사신총 등이 있고, 북한 지방에는 남포시 강서구역 약수리 고분을 비롯해 순천 요동성총, 용강 쌍기둥무덤[쌍영총], 대안리 1호분, 대동 덕화리 1·2호분, 은산() 천왕지신총(), 평양 내리() 1호분, 진파리() 1·4호분, 고산리() 1·9호분, 개마총(), 호남리() 사신총, 남포시() 강서대묘(西)·중묘(), 온천() 수렵총[사신총], 성총(), 그리고 황해도 안악() 복사리() 고분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저자가 수차에 걸쳐 직접 참관한 통구 오회분 5호분은 고구려 후기의 대표적인 벽화고분으로 전기의 벽화고분과는 달리 단칸무덤[단실묘()]이다. 봉분 안에 연도가 있고 문을 열면 바로 현실이다. 현실은 잘 다듬은 큰 화강암으로 대형 석실을 축조하고 천장은 가운데로 좁아지는 이른바 말각() 천장이다. 벽화는 화강암 벽면을 물로 잘 연마한 다음 직접 채석을 했다. 금방 묻어날 것 같은 붉은 색채가 선명하다. 사신도는 현실 사면의 대형 화면에 가득차게 그렸는데, 입구 좌우 안벽에는 주작을, 그리고 동서벽에는 청룡[또는 창룡()]과 백호를, 북벽에는 현무[거북]를 그렸다. 현실 안에 들어가면 마치 어떤 성소()에 와 있는 느낌이다.

 

강서대묘 현무도강서대묘의 북쪽 벽에 그린 현무도.

 

강서 고분군은 3기의 석실봉토분이 한데 모여 있어 흔히 ‘강서삼묘(西)’라고 한다. 그중에서 벽화가 있는 무덤은 대묘와 중묘이다. 저자가 2002년 9월에 직접 현지를 답사한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보면서 고구려 화가들은 비록 환상적인 사신을 그려야 했던 조건에서도, 고구려적인 기상과 성품을 가지고 무서운 힘으로 내닫고 날아가는 억세고 사나운 짐승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낸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감동하였다. 그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더불어 실제 살아 있는 짐승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구체적인 사생에 기초하여 억센 힘과 사나운 성질을 가진 동물의 기질을 고구려 사람들의 용감하고 진취적인 기상과 성품에 맞게 일반화함으로써 사신을 더욱 박력과 생동감이 넘치게 하였다. 특히 강서대묘의 청룡도와 현무도가 걸작 중에 걸작이었다. 청룡도는 힘찬 앞발, 날카로운 발톱, 불길처럼 펼쳐진 날개, 전진하는 모습의 앞가슴, 그야말로 기운생동하는 그림이다. 특히 목에 감은 ‘고리’가 퍽 인상적이다. 그리고 강서대묘의 현무도는 현실의 북벽에 북방 방위신으로 거북을 그렸다. 거북을 감은 뱀의 포물선은 우주의 현묘함을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 사신도의 극치이다. 고구려 사신도 가운데 백호도는 강서중묘의 백호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백호의 용맹한 모습이 백두산 호랑이 같고 고구려인의 기상과도 닮았다. 섬세하고 호탕한 채색과 함께 입체감과 운동감을 표현한 회화기법은 최고 걸작이다.

 

오회분(五盔墳) 5호묘 주작도(朱雀圖)길림성 집안시 역전에서 동북쪽으로 380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5기의 고분군[오회분] 가운데 하나인 5호묘는 4호묘와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인 벽화고분이다. 묘실 안에는 네 벽에 사신도(四神圖)를 그렸는데 남쪽 입구 좌우에 2마리의 주작이 마주보고 하늘로 날아갈 듯이 날개짓을 하고 있다. 6세기 말의 작품.

 

이병도의 「강서 고분벽화의 연구」에 의하면 “사신도가 대개 평양 환도 이후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평안도 방면의 고분에 많이 보이고 통구 무덤으로 생각되는 평안도 방면의 고분에 많이 보이며 통구 방면에는 사신총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러한 것은 더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사신총도 후기의 것 같다”고 하였다.3) 그리고 『조선미술사 1』은 이들 20여 기의 사신도 무덤에 대해 “청룡·백호의 발가락을 3개로 그렸고, 청룡의 목에는 줄띠를 장식했으며, 청룡·백호의 가슴에 불날개를 달고 있는 것과 같은 독특한 형상은 고구려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것이다. 사신도들 가운데에서 예술적으로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강서대묘의 청룡과 현무, 강서중묘의 백호와 주작 등이다”라고 했다.4)

고구려 화가들은 사신을 고구려식으로 독특하게 그렸으며 여러 가지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즉, 사신이 상상의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청룡과 백호의 발가락을 3개로 그렸으며 힘차게 날아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가슴에 불꽃처럼 생긴 날개 같은 것을 그리고 날개 깃까지 그렸다. 청룡이나 백호의 목은 물론 주작의 목에는 독특한 띠를 둘렀다. 이와 같은 특징은 모두 고구려 사신도에만 있는 고유한 것이다.

 

강서대묘 청룡도평안남도 대안시 삼묘리 강서3묘 중의 하나인 대묘는 사신도가 유명하다. 동벽의 청룡도, 7세기경의 작품.

 

고구려 사신도의 유풍은 백제·신라·일본에까지도 전래되고 있다. 백제에서는 1933년에 발굴된 공주 송산리 6호분이 벽돌로 축조된 무덤인데, 벽화는 그림을 그릴 부분만 먼저 고운 진흙으로 바르고 그 위에 호분()으로 사신을 그렸다.5)

 

신라의 주작도경주 천마총(天馬塚)에서 발견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원반에 그린 칠기그림. 천마총의 천마도와 함께 5~6세기경 작품.

 

그리고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는 표면을 잘 간 넓은 편마암으로 축조한 장방형 석실의 네 벽에 사신도를 그렸으나 지금은 거의 마모되고 백호의 머리 부분과 천장의 연꽃 무늬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신라에서는 사신도의 하나인 주작도 한 쌍이 앞에서 본 바 있는 기마인물도와 함께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주작도는 원반을 6구분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2면으로 모두 주작도 그림이다. 마치 고구려 사신도와 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일본에서도 1972년에 다까마쓰쯔까()에서 사신도[주작은 없음]가 발견된 바 있다.6) 특히 청룡의 목에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에서처럼 띠[삼륜(), 일종의 ring]를 두른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의 청룡도1972년 일본 나라(奈良)에서 발견된 다까마스쯔까(高松塚)의 벽화 중 동쪽 벽의 중앙에 그린 청룡도는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에 보이는 청룡도와 매우 비슷하다. 특히 청룡의 목의 띠[삼륜(三輪)]가 그것을 더욱 증명하고 있다.

 

고대 동방의 사신사상()이 처음으로 나타난 시점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이나, 인간의 영혼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적극적으로 표현되기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에서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사신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세 세계회화사에 있어서도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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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책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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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형구 교수

    1962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하에서 수학했다.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대만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발해연안 고대...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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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사신도의 아름다움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