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8해,신시배달5919해 단기 4354해,서기 2021해, 대한민국 102해(나뉨 73해),

이형구;한국 고대문화의 비밀-고구려의 유민과 성당(盛唐) 문화

댓글 0

책, 연재/이형구의한국고대문화의비밀

2015. 7. 25.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

고구려의 유민과 성당() 문화

 

문화라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예나 지금이나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문화는 강물과 달라서 역류하기도 한다.

동북아시아의 고대 문화는 발해연안에서 발생하여 그 한 갈래가 중국 중원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 크게 발전했다가 중세에는 다시 발해연안 쪽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쌍기둥무덤[쌍영총(雙楹塚)]의 고구려 인물도[모사도]평안남도 남포시 용강읍 쌍기둥무덤[쌍영총]은 전실과 후실[주실]과의 사이에 세워진 두 개의 용트림 기둥이 유명한데, 주실에 그린 또 하나의 인물도가 특징적이다. 남자 인물상은 고구려인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새 깃털을 꽂은 절풍(折風)을 쓰고 있다. 5세기 말경의 작품.

 

중국에서는 동한()이 망하고 위()·촉()·오() 삼국시대와 진()나라 시대가 이어지는데, 이 시기[3~4세기]는 중국의 국내 정세가 매우 불안정했던 시기이다. 이런 때에는 많은 지식인과 문화 예술인들이 밖으로 이주하게 된다. 반면 고구려는 2세기 초 태조왕에 의해 정치적인 안정을 이룩하고 영토 확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4세기 초에는 마침내 한반도의 서북 일부 지방에 잔류하였던 낙랑()과 대방()을 몰아내 그 강역이 요동반도는 물론 요하에까지 이르러 동북아시아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전란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에 몰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중원의 수준 높은 정치기술과 문화 예술이 따라 들어왔을 것이다. 그것이 고구려의 정치적인 안정 아래 경제적 생산력과 맞물려 고도의 고구려 문화를 창출해냈다. 이로부터 300여 년간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 고분 벽화이다.

그러나 중국 중원 지방에는 아직도 난세가 계속된 상태로 5, 6세기에는 5호 16국이 혼전하고, 이어서 남북() 6국()이 난립하고 있었다. 6세기 말엽에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를 복속시키려는 전쟁만 일으키다가 39년[581~619] 만에 자진하고 말았다. 현재 알려져 있는 수대() 벽화는 겨우 3기에 불과하다.1) 뒤를 이은 당()나라도 초기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한 전쟁으로 모든 전력을 소모했다.

이 같은 혼란만 거듭되는 시기에는 이렇다 할 만한 문화가 성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오늘날 중국의 고고학 발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전란이 덜 미쳤던 서북 변방[돈황() 지방]에서 불교사원이 조성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이 시기에 중국을 대표할 만한 문화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시기에 발견된 것으로는 당나라 초기의 이수(, 577~630)의 무덤이나 당 고종 이연()의 소능() 정도이다. 이수는 당나라 고종 이연의 사촌동생으로 ‘회안왕()’에 봉해졌던 인물인데, 그의 무덤이 1973년에 섬서성 삼원현()에서 발굴되었다.2) 이 무덤의 묘도와 묘실에는 농경도·무악도·수렵도·출행도 등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벽화는 당나라 궁중예술이면서도 구도면에서나 인물, 동물 또는 사물의 묘사는 물론 채색에서도 고구려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중국 섬서성 삼원현 당나라 초기 회안왕(淮安王) 이수(李壽, 577~630)의 묘 수렵도

 

중국의 미술사가 염려천()은 “이수의 벽화는 초당()에서 성당()으로 진입하기 전의 과도기적인 벽화로서 간략하게 분위기만을 살렸다”고 말했다.3)

그로부터 70~80년 후인 8세기 초에 중국 문화의 절정기인 이른바 성당시기[712~763]가 도래하는데, 이 시기에 당나라 회화[고분 벽화]는 극치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당 고종 이치()와 무측천()의 둘째 아들인 ‘장회()태자’ 이현(, 654~684)의 무덤과 중종(, 이현())의 장자인 의덕()태자 이중윤(, 682~701)의 무덤,4) 그리고 이중윤의 누이동생인 영태()공주 이선혜(, 684~701)의 무덤이다. 이 세 무덤은 모두 고종의 건릉()에 함께 매장되었다.

이들 성당시기의 왕릉 회화는 ‘황가() 미술’의 집대성으로, 당나라의 대표적인 예술이다. 이들 벽화는 당시의 궁중생활을 비롯해 궁녀도·빈객도()·출행도·기마인물도·야회수렵도·산수도 등이 주요 내용인데, 예술적 표현방법은 전에 보지 못하던 독특한 기법이다. 회화 내용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표현기술이 정교하고 필법이 강건하며 채색이 호화 장려하다. 마치 고구려 고분 벽화의 신태()를 방불케 한다. 이와 같은 벽화가 완성된 시기는 바로 고구려가 멸망한 지 불과 3, 40년 이후의 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섬서성 건현 성당시기 장회태자 이현의 묘[706]의 기마인물상기마인물상이 마치 남포시 강서구역 약수리 고분 벽화의 고구려(5세기) 수렵도에 보이는 화풍을 연상케한다. (강서 약수리(藥水里) 고분벽화의 수렵도(狩獵圖) 참조)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668]조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9월 21일, 신라의 모든 군사들은 당()의 대군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오므로 고구려왕(보장왕())은 먼저 천남산()을 이적()에게 보내 항복을 청했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덕남()과 대신 등 20여만 명을 데리고 당나라로 돌아가자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 등이 따라갔다.”

 

또, 『자치통감()』 권201 당기() 17 총장() 2년[669]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5)

 

“여름 4월에 고구려인들 중에는 이반자가 많이 생겨 이 중 3만 8,200호[약 20만 명]를 칙명으로 강회[, 회수()·장강() 유역] 이남과 당경() 이서의 황무지에 이주시켰다. 남아 있는 빈약자들은 안동()을 수호하도록 하였다[    西   使].”

 

저자의 생각으로는 『삼국사기』나 『자치통감』 기사에 보이는 고구려인 20여만 명[3만 8,200호] 중에는 고구려의 문무백관은 물론 화가·음악가·문인 등 예술가와 건축가·영조장인()·공인() 등 고급 기술자들이 징발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그중에서 경서(西) 즉, 당경() 이서(西) 지방인 지금의 서안(西) 지방으로 옮겨진 고구려 유민() 가운데에는 서안 근교의 당 고종 건릉()의 영조에 참여한 자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렇다면 고종의 아들인 이현과 손자 이중윤·손녀 이선혜의 무덤을 영조하는 데에도 이들이 참여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장회태자[추증()] 이현의 무덤은 1972년, 중국 섬서성 건현 북문 밖 6km 지점의 양산()에서 발굴되었는데,6) 709년 건릉[태종과 무측천의 합장묘]에 천장하여 조성된 이현 묘의 묘도와 전실, 후실의 벽면에 당시 궁중생활과 대외관계 등을 나타내는 그림이 호화롭게 그려져 있다.

 

당나라 이현 묘의 고구려계 사신도(使臣圖)중국 섬서성 서안 서북부의 당나라 장회(章懷) 태자 이현(李賢) 묘의 벽화에는 고구려계의 인물이 보인다. 가운데 인물은 머리에 절풍(折風)이라고 하는 고구려 특유의 모자를 썼다.

 

 

양(梁)나라 직공도(職貢圖)의 백제국사양(梁)나라 원제가 형주 자사로 있을 때(526~536), 36개국의 외국 사신을 영접한 장면을 그린 직공도. 그중 백제국 사신의 그림이 한 면에 마련되었다.

 

묘도의 동벽에 그려진 빈객도는 당나라 관원 3인이 외국 사절 3인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당나라 관원들은 당나라 관복을 입었는데, 머리에 롱관()을 쓰고 흑령()을 단 넓은 소매의 주의()를 땅에 끌리도록 입었다. 그 뒤편의 3인의 빈객 중 가운데 한 사람은 ‘쌍우첨상관모()’를 쓰고 위에는 홍령()에 넓은 소매의 흰 단포[일종의 짧은 두루마기]를 입고 띠를 둘렀는데, 아래에는 통이 넓은 바지에 황화()를 신고 양손은 한데 모아 넓은 소매 안에 감추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눈이 깊고 코가 큰 대머리의 서역인(西)으로 두꺼운 갈색 외투를 걸쳤다. 또 한 사람은 털모자를 쓴 북방인으로 황포 위에 녹색의 얇은 외투를 가볍게 걸쳤다.

이 중 모자 좌우에 새의 깃털을 꽂은 모양의 쌍우 첨상 관모를 쓴 사람의 모자는 우리가 고분 벽화에서 늘 볼 수 있는 이른바 절풍()이라고 하는 고구려 특유의 모자와 같다. 홍령에 짧은 바지를 입고 단포를 두른 모습이 ‘양직공도()’에 나오는 백제국사(使)의 모습과도 비슷하나, 그 시기가 다소 차이가 있어 비교되기가 어렵지만 우리의 관심을 끈다. 혹, 이 인물이 신라 사신(使)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7)

그러나 『위서()』 고구려조를 보면, “  ”라고 하여 절풍에 새의 깃털을 꽂아 귀천을 구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조우관()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 인물의 복장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고구려 복장과 일치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평양 부근의 용강에 있는 5세기말경의 쌍기둥무덤[쌍영총()]의 인물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 소련 우즈벡공화국 사마라칸트 아후라샤프(Afraciab) 궁정터에서 발견된 소크트 시대의 벽화[7세기 후반]에는 고구려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인물상이 보인다. 머리에는 절풍을 쓰고 허리에는 환두대도()를 차고 있다. 고구려는 이 무렵 대외외교 활동이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 소련 우즈벡공화국 고대 궁전 발견 고구려계 사신도(使臣圖)[왼쪽]와 모사도[오른쪽]

 

특히 이현 무덤의 묘도 동벽에 그려진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빈객도’의 맞은편 서벽에 그려진 소나무 그림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또한 이현 묘의 묘도 서벽에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열을 지어 그려져 있는데, 마치 실제의 소나무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큰 감동을 일으키는 분위기가 꼭 평양 진파리 1호분의 벽화에서 보는 소나무의 분위기와 같다. 진파리 1호분의 소나무 그림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를 선과 색을 훌륭하게 배합하여 나타내었고, 곧게 솟아 오른 소나무 줄기에 여러 갈래의 가지마다 풍성한 솔잎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당시 사람들의 씩씩한 기상을 보여 준다. 이는 고구려가 망한[668] 이후 당나라에 끌려간 화가, 건축가들의 심태()가 배어나는 듯 하다. 지금도 진파리 동명왕릉묘역에 있는 소나무의 건강한 모습에서 이와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평양 진파리 1호분 소나무 그림

 

 

진파리 1호분이 있는 동명왕릉묘역의 소나무 숲. 2003년 8월 저자 촬영

 

 

 

후세의 사람들은 이때의 요동을 ‘소고구려()’라고도 칭한다.8) 이현의 무덤에 나오는 인물[고구려계 사신]은 고구려가 망한 이후 8세기 중엽에 발해() 문왕()에게 귀속될 때까지, 고구려 보장왕의 후손에 의해 다스려지던 요동 지방의 ‘안동도독’ 또는 ‘고려조선왕’의 사신이 당나라의 ‘내지지번()’의 빈객으로 이현과 관계되는 당나라 조정의 어떤 예식에 첨가하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7세기 중엽 당나라 고조 이연의 동생인 ‘회안왕()’ 이수(, 577~630) 묘의 벽화는 그 회화적인 기법이 매우 치졸하다. 그러나 8세기 초엽의 성당()시기의 고조의 아들 ‘장회태자’ 이현()의 묘[706년 조성]의 벽화에서는 매우 정치한 색감각과 유려한 선의 필치 등 회화적 기법이 고구려 고분 벽화를 연상시킨다.

 

당나라 이현 묘 소나무그림

 

4~7세기의 동북아시아 최고의 고구려문화가 중국의 중원() 지방으로 흘러간 예가 바로 이 이현 무덤의 벽화일 것이다. 문화는 역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문화교류인 것이다. 오늘날의 한류()의 원조격이다.

 

 

 

연관목차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 40/61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책보러가기

고구려, 부여, 발해의 찬란한 역사가 되살아난다! 중국과 북한 유적·유물에 대한 실증적 연구로 한·중 역사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화제의 역사서! 만주 지역에 산재한 빗살무늬토기, 돌덧널무덤과... 자세히보기

 

 

  •  

     

     

     

     

    저자 이형구 교수

    1962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하에서 수학했다.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대만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발해연안 고대... 자세히보기

     

  •  

    제공처 새녘출판사 제공처의 다른 책 보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의 유민과 성당(盛唐) 문화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