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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한국 고대문화의 비밀-대장장이 신과 제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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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이형구의한국고대문화의비밀

2015. 7. 25.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

대장장이 신과 제륜신

 

고대 중국 사회에서 동방민족을 흔히 ‘동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를 동방의 오랑캐라고 인식하기 쉬우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자는 큰 대()자와 활 궁()자의 합문[회의()]으로, 이는 큰 활을 잘 쏘는 동방의 민족을 지칭한 것이다.

『죽서기년()』·『국어()』 등 중국 고문헌 중에는 중국의 동북쪽에 있는 숙신()이 활과 화살촉을 만들어 주()나라 무왕()에게 보냈다고 하는 기록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보아 당시 동방민족들은 무기를 잘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조에는 “고구려의 별종들이 소수에 의지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그 나라를 소수맥이라 한다. 이곳에서 좋은 활이 나오는데 이를 곧 맥궁이라 한다[    ]”고 했다. 이는 고려[고구려]의 활을 ‘맥궁()’이라 이름하여 일찍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음을 말해준다.

발해연안의 동이족들이 일찍이 무기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살펴봤다. 발해연안 북부의 대릉하 유역과 요하 유역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초기 청동기가 출현하고 있는데, 이들 청동기는 칼, 끌, 화살촉 등과 같이 비교적 작은 무기류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요동반도를 포함한 고조선시대의 강역에서는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일명 비파형단검]이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이 그 특징이다.1) 고조선시대 후기에 내려오면 철기()가 출현하는데, 동방의 철기는 대개 중국 전국시대에 유행하던 새로운 금속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구리 다음으로 철을 사용함으로써 발달된 문명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도 철의 생산은 곧, 국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한나라 때 허신()이 편찬한 『설문해자()』에 보면, 철을 흑금()이라 하고 철()자의 옛 글자를 ‘’로 썼다. 이를 직역하면 곧, ‘이()의 금()’이라는 뜻인데, 이()는 바로 동이()다. 발해연안의 철기시대 유적의 분포를 보면, 주로 발해연안 북부의 중국 하북성 난평()·흥륭()·승덕(), 요녕성 금주() 그리고 요동반도의 무순()·안산()·여대() 등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고 있음을 중국의 고고학적 성과로 알 수 있다.2)

발해연안의 철산지() 중에서도 우리의 주목을 끄는 곳은 요동반도의 안산이다. 안산은 바로 요양() 부근으로, 이 지역은 고조선시대의 강역이다. 고구려시대에는 국력의 근간이 되는 철의 주생산지가 바로 이 지역이었다. 물론 이곳에는 지금도 중국 굴지의 안산제철소가 있다.

4세기 무렵 고구려가 요하선을 확보하고 요동 지방을 차지한 뒤 비로소 철의 생산이 가속화되었다. 이 지방의 철의 생산력 증가는 당연히 고구려의 국력 신장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문헌에는 고구려에서 생산되는 철이 자체의 수요를 충당하고 남아 주변국으로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그래서 이용범()선생은 「고구려의 성장과 철」3)이라는 글에서 “고구려의 요동성 부근의 철광이 고구려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며, 그 노력의 유산이 현재까지도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막대한 철을 확보함에 따라 고구려는 철제 무기의 생산이 활발해졌으며 당연히 국력이 증강되고 팽창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 설매동 제12호묘 출토 인골에 박힌 철제 화살촉고구려는 무기의 제작이 활발해 동북아에서 최강국이 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적의 척추뼈를 꿰뚫은 이 철제 화살촉은 당시 고구려 무기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철촉의 길이 9.4cm.

 

고구려의 철제 무기는 문헌기록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 또는 고분 벽화에도 보이는데, 살상무기와 방어무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살상무기는 활과 화살·쇠뇌[노()]·칼·창·갈고리·도끼 등이 있다. 그리고 방어무기로는 갑옷과 투구를 비롯하여 방패·말갑옷[마갑()]·말 얼굴 가리개[말 투구, 마면() 혹은 마주()]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활과 화살은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동이족의 전형적인 무기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활 쏘는 그림이 많이 있는데, 특히 앞에서 ‘마사희’를 통해 고구려인의 기마 궁술 훈련을 살펴봤다. 그만큼 고구려의 활은 ‘맥궁’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까지 잘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였다.

고구려의 활[궁()] 유물로는 평양역 구내 고분에서 2개가 출토된 것이 고작이지만, 활[화살]촉()은 고구려 전기 수도인 집안 일대와 후기 수도인 평양 부근의 유적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활촉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특히 평양에서 발견된 활촉[화살촉] 하나는 적의 허리를 관통해 척추에 박힌 채로 발견되었다. 이는 고구려 화살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안악 제2호분의 수문장도[왼쪽]와 모사도[오른쪽][오른쪽은 상도] 안악 제2호분은 벽화의 원숙성과 세련미 면에서 고구려 벽화 중 가장 뛰어난 것 중의 하나이다. 문지기는 머리에 차양이 달린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는데, 가슴에는 3개의 방울을 달고 있다. 오른손으로 칼을 막 뽑으려고 하는 모습이다. 5세기 말 6세기 초의 그림.

 

무기 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되는 것이 칼이다. 고구려의 긴 칼은 대개 길이가 1m 정도의 철제이다. 고구려 칼의 특징은 유물이나 고분 벽화의 칼 그림처럼 모두 칼자루의 뒤끝이 둥근 고리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길림성 집안 통구 12호분의 북실 좌벽에 그려진 전투도는 말에서 내린 갑옷 입은 무사가 신채준무()한 표정으로 긴 칼을 한 번 휘둘러 적군의 목을 간단하게 떨어뜨리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쓰러진 병사들의 앞에는 긴 창이 떨어져 있다.

특히 길림성 집안 통구의 삼실총 고분 벽화에 그려진 무사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는 긴 창[혹은 극()]을 세워 잡고 허리에는 고리 달린 긴 칼을 차고 왼손으로 그것을 잡고 있다. 고구려의 고리 달린 긴 칼은 백제·신라·가야에서 모두 발견된다.

 

집안 삼실총의 칼을 든 갑주(甲胄) 무사도[오른쪽]와 모사도[왼쪽]만주 집안 통구 삼실총에는 개마무사가 성문을 공격하는 공성도와 함께 갑주무사가 긴 칼을 든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서 고구려 무기의 일단을 볼 수있다. 벽화는 4세기 말 내지 5세기 초의 그림이다.

 

근접 무기인 창은 긴 막대기 끝에 끼워 사용하는데, 이미 고조선시대부터 사용되던 무기이다. 고구려의 창 끝은 뾰족창·넓적창·갈고리창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고구려 무사가 창을 든 것은 황해도 안악 3호분, 평양 약수리 고분·대안리 고분 등의 노부도(簿, 행렬도())의 기마 무사와 시위 무사에 보인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방어무기로는 갑옷과 투구가 있다. 고구려 유적에서 갑옷 유물이 발견되기는 집안 동대자() 유적뿐이다.

 

안악 3호분 노부도(鹵簿圖, 행렬도(行列圖))[모사도]고구려왕의 행차에 따르는 군졸들의 무기(武器)가 다양하다. 왕의 수레 좌우에는 개마무사가 정렬했다. 그리고 군악대의 악기 행렬이 또한 장관이다.

 

그러나 고분 벽화에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기사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집안 삼실총을 비롯하여 평양의 감신총()·약수리 고분·대안리 1호분·쌍기둥무덤[쌍영총]·팔청리() 고분 그리고 황해도 안악 1호분·2호분·3호분, 수산리 고분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수산리 고분 연도 서벽의 벽화에는 갑옷과 투구를 쓴 기사[문위무사(), 수문장()]가 왼손으로 긴 창을 잡고 있는데, 창 끝에는 어형기()가 달려 있다. 이와 같은 어형기는 얼마 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읍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 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

 

 

 

강서 수산리() 고분 벽화의 수문장과 창과 어형기()평남 대안시 수산리 고분 벽화의 연도 동쪽 벽 수문장도에는 고리자루의 긴 칼과 긴 창이 있다. 창에는 일종의 어형기()가 달렸다. 이런 기는 오른쪽 신라 고분 벽화에서도 보이는데, 일본에선 지금도 고이노보리()라 하여 유행한다. 5세기경 그림.

 

 

영주시 순흥읍 고분 벽화의 창과 어형기

 

 

 

고구려 갑옷은 쇠로 만든 수많은 패쪽을 나란히 꿰어서 만든 이른바 비늘 갑옷 또는 찰갑()이라고도 하는데, 찰갑은 신라와 가야 지방에서도 빈번히 출토된다.

그 밖에 고구려의 방어무기로 말 갑옷과 말 투구가 독특하다. 말 갑옷과 말 투구를 갖춘 대표적인 고분 벽화는 통구 12호분을 비롯해 삼실총 그리고 덕흥리 고분과 개마총(), 안악 3호분이 유명하다.

고구려의 무기에 관한 유물이나 고분 벽화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다양한 철제 무기의 발달과 고구려인의 상무정신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철제 무기의 생산은 경제력의 증강과 더불어 정치적인 안정을 가져왔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길림성 집안 통구의 오회분 제4호묘와 제5호묘의 야철을 다루는 대장장이 신[야철신()]과 철제 수레바퀴를 만드는 제륜신()을 그린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철의 신’은 동방에서 처음 보는 신이다. 이로써 고구려의 철에 대한 숭배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의 대장장이 신(왼쪽)과 제륜신(오른쪽)만주 집안시 통구의 이른바 오회분() 제4호분의 북실 벽면에 그려진 고구려의 철신상(). 6세기 작품. 고구려는 동북아 최대의 철 생산국으로,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 신[야철신()]과 철제 수레바퀴를 만드는 제륜신()을 모시는 철 숭배사상은 고구려에만 있다.

 

 

 

 

오회분 5호묘 제륜신()길림성 집안시 통구 5회분 제5호분 현실 천장 서남 제1말각 석면에 그려진 제륜신이다. 수레바퀴를 만드는 신의 모습이 제4호분의 제륜신과 매우 비슷하다. 제륜신 앞의 인물상은 아마 대장장이 신[단야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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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책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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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형구 교수

    1962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하에서 수학했다.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대만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발해연안 고대...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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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대장장이 신과 제륜신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