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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중국의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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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력사/-[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8. 6. 7.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중국의 개방

등소평,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다

요약 등소평은 1980년대 이후의 중국의 실권자가 되어 중국을 개방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해 오늘날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 연구를 철저히 하면서도 중국의 사회주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 박정희, 피격 사망; 전두환, 12 · 12 사태로 군부 장악
1980년 : 5 · 18 광주민주화항쟁 발발; 최규하 하야; 전두환, 11대 대통령 취임
1981년 : 5공화국 출범; 전두환, 12대 대통령 취임

목차

  1. 실용주의 노선, 중국의 개방시대를 이끌다
  2. 유소기,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해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성공하다
  3. 주은래, 중국사 곳곳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다
  4. 등소평, 시장경제를 도입해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다
  5. 모택동 측근 세력이 대두해 권력을 장악하다
  6. 모택동의 시대의 끝, 등소평의 시대가 오다
  7.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도 사회주의 이상을 지키다
  8. 홍콩의 반환을 대비하며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다
  9. 은퇴 후에도 건강한 삶을 살다

실용주의 노선, 중국의 개방시대를 이끌다

중국공산당의 지도자 중 실용주의 노선의 대표자로 유소기, 등소평, 주은래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택동과는 또 다른 대척점에 서서 중국 사회를 이끌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으로 타격을 받았다가 1976년 모택동 사망 이후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중국의 개방시대를 이끌게 된다.

유소기,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해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성공하다

유소기는 모택동, 주은래, 주덕과 함께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중국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소련에서 유학했고 주로 도시의 노동운동을 주도했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모택동이 물러난 뒤 그는 국가 주석이 되어 이른바 조정정책, 즉 약간의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인민을 기근으로부터 구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중에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수정주의자'로 몰려 희생되었다. 주석 직위를 잃었고 1968년에는 당에서 제명까지 당했다.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중 홍위병의 자택 습격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난방도 되지 않는 가택에서 폐렴이 악화되어 1969년 사망하였다.

주은래, 중국사 곳곳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다

주은래가 중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한 번도 권력의 일인자를 탐한 적이 없는 그는 노련한 외교관, 유능한 행정가, 헌신적 혁명가, 실용적 정치가로서 국공합작과 비동맹회의, 미중 수교 등 곳곳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관리집안 출신으로 '최후의 만다린(궁정관료)'으로도 불리는 그는 일찍이 고아가 되어 고학으로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하였다.

주은래중국사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1인자를 탐한 적은 없는 유능한 외교관이자 혁명가, 정치가였다.

 

 

그는 모택동의 뒤에서 관념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최대한 완화하도록 노력했으며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홍위병들의 파괴로부터 많은 문화유적지를 보호하고 동료들의 숙청을 줄이고자 노력하였다. 청빈하고 성실하게 평생을 살았던 그는 방광암이 발병한 말년에도 모택동의 경계와 4인방의 공격을 받으면서 끝까지 총리직을 수행하다가 1976년 모택동의 사망 8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려는 시도를 하던 중국사회과학원에 경고를 표하고 훗날 동북공정으로 나타나게 되는 중국의 국수주의를 우려하여,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침략을 공식사과하기도 했다.

등소평, 시장경제를 도입해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다

등소평은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실권자가 되어 중국을 개방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오늘날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150cm의 단신인 그는 수많은 정치적 역경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재기하여 작은 거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항일전 시기의 등소평(덩샤오핑)그는 여러 차례 정치적 역경을 겪었으나 오뚝이처럼 재기에 성공하여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끌었으며, 최고지도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은퇴하여 중국의 한 공민으로 살다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

 

프랑스 유학 중에 뒷날 영원한 동지가 되는 주은래와 만났다. 귀국 후 20년대 말부터 모택동과 함께 활동했으나 30년대 초 모택동이 밀려나자 함께 해임되었고, 장정 도중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의 노선이 인정받게 되자 핵심요직에 들어갔다.

유학 시절의 등소평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의 등소평.

 

 

항일 전선에서 싸웠고 신정권 수립 이후 사회주의 건설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공산당 서열 6위였다. 그러나 대약진과 인민공사화 과정에서 집단경제 체제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현실적인 대안을 추구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유명한 발언이 나오게 된다. 즉, 국민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체제면 어느 것이든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문화혁명 때 등소평은 유소기만큼 중죄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홍위병들이 발행했던 소책자에 거론된 그의 죄명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당의 총서기로서 월권행위가 있었고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은 모택동의 권위를 깎아내렸으며, 농업정책에서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의 주장을 했다···."

당시 그의 아들은 북경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죄상을 밝히려고 했던 홍위병들이 그에게 아버지의 죄목을 자백하기를 강요하자 3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사람들의 사고를 촉진하고, 우리들의 단점을 인식하게 해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의 낙천성이 잘 드러난 말이다.

모택동 측근 세력이 대두해 권력을 장악하다

문화대혁명으로 실용 당권파가 제거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을 띤 모택동의 우상화 경향이 강화되자 모택동 측근 세력이 대두하였다. 인민해방군 임표와 모택동의 처 강청을 비롯한 4인방이 그들이다. 임표는 모택동에 의해 공식적 후계자로 임명되어 2인자의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모반사건에 이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고, 4인방이 잠시 권력을 장악하였다.

 

북경의 한 공식행사에서 나란히 모습을 나타낸 모택동과 임표

 

임표는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업고 세력을 키우던 중 모택동의 경계를 샀다. 모택동은 1971년 9월 남부를 시찰하며 임표를 비판했고, 임표는 이를 자신의 제거신호로 보고 공군의 작전부장으로 있던 아들과 함께 모택동 암살, 혹은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소련으로 망명하던 중 몽골상공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가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며 체포되어 북경으로 끌려갔다는 설도 있어서 불명확한 점이 많다.

 

임표모택동의 후계자였던 임표.

 

이후 강청 등 4인방이 노쇠한 모택동을 대신하여 사실상 권력을 독단하게 되었다. 4인방이란 강청, 왕홍문, 장춘교, 요문원 4명을 가리킨다. 강청은 예술단원 출신으로 1938년 모택동과 결혼했다. 1973년 당 부주석에 선출된 왕홍문은 문화 혁명기에 활발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장춘교는 대약진운동의 이론가로 '붓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요문원은 그의 문장실력으로 문화대혁명의 불을 지핀 사람이다.

모택동의 시대의 끝, 등소평의 시대가 오다

그러나 이들은 당의 실질적인 운영경험이 없기 때문에, 임표시대에 추방되었던 원로들이 다시 복귀하여 주은래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주은래를 경계하게 된 이들은 1976년 주은래가 사망하자 천안문 광장에 모인 추도 군중들을 배후조종했다는 죄목으로 등소평을 다시 추방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이 사망하자 후계자로 등장한 화국봉에 의해 이들은 제거되었다. 모택동 사후 채 한 달이 안 된 시점이었다. 그들의 급격한 몰락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인방 권력의 원천은 오로지 모택동 한 사람뿐이었다.

화국봉은 단결과 경제건설을 강조하는 한편, 4인방의 체제하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이때 등소평도 화국봉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그는 곧 중앙관직에 다시 복귀했다. 모택동의 시대가 끝나고 등소평의 시대가 찾아 온 것이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도 사회주의 이상을 지키다

정치에 복귀한 등소평은 1978년 주요 인재들을 서유럽 5개국 시찰단으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자본주의 강국들을 방문하여 직접 주요 산업시설들을 시찰하였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전에 자본주의 경제 연구를 철저히 하고 중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준비한 것이다. 그는 '삼보주()' 목표를 세워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기했다. 우선 제 일보인 '원바오'는 '인민이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초보적인 단계'이고, 제 이보인 '샤오캉'은 '생활 수준을 중류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며, 제 삼보인 '대동사회의 실현'은 중국의 현대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중국은 지금 제 삼보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중국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금융위기가 터지고 문제점이 표출될 때에도 중국은 국가의 개입과 주도, 장기적 계획 등으로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는 차별성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등소평1980년대 이후 중국의 실권자가 되어 오늘날 중국을 대국으로 이끈 지도자.

 

최근 중국에서도 자본주의 경제의 취약점인 부의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과감한 경제 특구의 개발, 계획적인 시장경제의 성공적인 운영으로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1993년 아흔 살에 가까운 등소평은 새롭게 등장한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 혁명가로서의 긴장감을 놓지 않고 날카로운 지적을 하였다. 혁명은 양극분화가 심화될 때 터지는 활화산과 같은 것이다.

홍콩의 반환을 대비하며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다

등소평은 1997년 홍콩의 반환 시점에 대비한 1984년의 교섭에서 국토는 반환받되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시킴으로써, 영국 자본의 동요를 막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반환되는 홍콩 땅을 밟는 것이 소원이라던 등소평은 반환 5개월을 남겨두고 사망하였다.

은퇴 후에도 건강한 삶을 살다

아울러 등소평은 노 간부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중앙고문위원회 조언자로 남게 했으며, 자신도 5년 후에 물러남으로써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새로운 관례를 만들었다. 1989년 11월 9일 등소평은 은퇴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건강한 삶을 살았다. 한 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고 수영을 즐겼으며, 지인들과 카드놀이를 즐겼다. 서재 책상 밑에서 손자들이 뛰어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고, 인민들과 함께 자신을 닮은 나무를 끊임없이 심었다. 대가족이 모인 집안에서 그는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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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 3. 23.책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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