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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44) 『요사』의 해주를 북청이라 억지 쓰는 이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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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고대사학계의 거짓말잔치

2018. 6. 12.

『요사』의 해주를 북청이라 억지 쓰는 이병도
 
황순종 『매국사학의 18가지 거짓말』의 저자
 
황순종  기사입력  2017/12/06 [14:09]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44) 『요사』의 해주를 북청이라 억지 쓰는 이병도 

비사성이 지금의 랴오허 동쪽 발해의 동북쪽 모서리에 있는 해성(海城)을 말한다는 것은 지난 호에서도 알아보았지만, 『요사』「지리지」‘동경도’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해주에 남해군 절도사를 두었는데 이곳은 원래 옥저국의 땅이었다. 고구려는 사비성을 두었는데, 일찍이 당나라 장수 이세적이 공략한 곳이다. 발해국에서는 남경 남해부라 불렀으며 ··· ”

요나라의 해주는 지금의 해성으로 본래 옥저국의 땅이었으며 고구려는 사비성(즉 비사성), 뒤의 발해는 남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비사성이 해성에 있었다는 사실은 고구려의 강역 및 평양의 위치를 말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같은 곳이라는 기록을 무시하고 두 곳이라 억지 쓰는 고대사학계
그런데 이병도는 비사성을 해성이 아니라 요동반도 끝인 대련(대련만 북안의 대화상산)에 있었다고 하는 한편, 발해의 남경은 함경남도 북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한국사 대관』, 1983, 74쪽). 같은 곳이라고 적혀 있는 『요사』「지리지」의 기록을 봤을 텐데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멀리 떨어진 전혀 다른 두 곳이라고 억지를 쓰는 이병도의 저의가 뭘까?

『요사』에 해주(지금의 해성)가 본래 옥저 땅이라고 했는데, ‘옥저가 함경도에 있었다’는 이병도로서는 해주를 한반도 안인 북청에 갖다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사성은 수나라 수군이 상륙한 곳인데, 해주를 북청이라 해놓고 나니  수나라 수군이 한반도 동해안에 상륙한 것이 되므로, 할 수 없이 비사성을 요동반도의 대련이라고 하여, 다른 곳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일방적 짐작일 뿐 사료의 근거가 전혀 없다. 분명히 『요사』에는 해주가 옥저 땅이면서 비사성이었고 발해의 남경이었다고 했는데도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합리화시키느라 각각 다른 곳으로 만든 것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맹목적 신도들인 고대사학자들이 이런 억지에 대해 찍소리 못하고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데 있다. 그들만의 엉터리 잔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까?

▲ 요사에 기록된 해주와 평양의 위치  

고구려 평양을 현 평양이라면 맞지 않는 상륙지점
이 주장에는 또 하나, 평양이 지금의 대동강변에 있었다면서 수나라 수군이 왜 요동반도로 상륙해야 하는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앞 호에서 『삼국사기』 영양왕 조에 ‘내호아가 비사성을 함락시키고 평양으로 향하려고 하자 왕이 두려워 항복을 청했다’고 했는데, 이는 비사성이 평양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곧 이어 평양으로 쳐들어올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만약 비사성이 요동반도 끝의 대련이고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었다면, 도읍에서 먼 변방의 성 하나가 무너졌다고 항복을 청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뒤에 당나라 태종의 침입 때도 장량의 수군은 역시 비사성으로 상륙했는데, 이 또한 육군과 합세하여 가까운 평양을 치기 위한 같은 이유였다. 당 태종은 고구려 친정에 실패한 후 수 차례 장군들을 보내 고구려를 쳤는데, 그 중 ‘보장왕’ 조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바다를 건너 압록수로 들어와 박작성 남쪽 40 리에 머물러 ··· ”

비사성을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압록수 즉 지금의 랴오허로 들어온 것은 이전과 같은 변함없는 작전이었다. 매국사학의 관점대로 이 압록수를 지금의 압록강으로 본다면, 북한의 평양을 치기 위해 대동강이 아니라 압록강으로 상륙한 것이 된다. 이는 군사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도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호에서도 살펴봤듯이 압록수는 지금의 랴오허이고, 평양은 지금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 현재의 요양이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지금까지 평양이 단 한 번도 북한 지역에 있지 않았으며, 고구려와 중국의 경계인 요수는 지금의 랴오허가 아니라 훨씬 서쪽 베이징 부근의 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최대 강역도 학계에서 주장하는 지금의 랴오허를 넘어 서쪽으로 대폭 확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호에서는 이런 고구려의 강역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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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06 [14:09]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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