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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의 시작-선사문화-동북아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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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고고학

2019. 10. 22.

동북아역사넷

동아시아의 역사

제1장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 선사시대부터 기원 전후까지 자연환경
선사문화 임상택

고전적 신석기시대 개념과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Ⅰ. 고전적 신석기시대 개념과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라는 개념은 덴마크학자 톰센(Thomsen)위키백과이 유물을 그 재질에 따라 나누고 시대구분한 삼시대법(三時代法: 石-銅-鐵)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출발한 것이다. 삼시대법은 고고학적 유물을 기반으로 선사시대를 나눈 최초의 예이다. 삼시대법은 톰센의 제자인 워세(Worsaae)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고, 1860년대에 유럽에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다. 1920년대까지는 아프리카와 구대륙에서도 수용되었다. 그러나 신대륙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다. 석-동-철기 시대는 가장 광의의 기술적 단계 구분이라 할 수 있는데(기술사적 구분), 이것은 사회진화의 수준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석기시대는 영국의 러복(Lubbock)위키백과에 의해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로 세분되었다.
유럽에서는 고고학의 발전에 따라 신석기시대 개념을 단순히 기술사적인 측면에 국한하지 않고 토기 및 간석기의 등장, 농경(목축), 정착생활이라는 복합적 문화요소를 갖춘 시대로 이해하였으며 이러한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위의 신석기적 요소들은 세트로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특히 농경과 정착생활의 등장은 이전 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완전히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이와 함께 후빙기 이후 해수면의 안정화에 따라 해양자원에 대한 적극적 이용 역시 구석기시대와는 차이를 보이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신석기시대의 개념은 유럽적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중국에서는 후빙기 이른 단계부터 농경과 정착생활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한의 학자들도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를 정의할 때 이러한 개념규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아래의 정의를 보면 약간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라고 하면 후빙기 이후 새로이 습득한 식량공급수단, 즉 주로 원시농경(또는 목축)에 의한 식량생산경제를 배경으로 전개된 문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후빙기 이후 지역에 따라서는 농경이 실시되지는 않았으나 토기의 제작이나 마제석기와 같은 신석기문화의 특성을 갖춘 문화가 번성한 지역도 있다. (중략) 즉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홍적세 이후 最古의 토기군 출현부터 금속기의 사용 이전까지 주로 어로와 수렵,채집에 의한 식량공급을 배경으로 전개된 토기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것이다.”(임효재(1997), 『한국사』2우리역사넷)
 
이 정의는 농경이 없는 신석기시대, 그 중에서도 토기의 등장을 중시하는 동북아시아적인 신석기시대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의 동북지역이나 일본열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와는 달리 근동지역, 중국의 화남이나 황하 중류 일부 등에서는 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없지만 농경이 시작되거나 간석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등장하는 등 신석기적 요소가 강한 지역도 있다. 이러한 지역은 소위 무토기(無土器) 신석기시대(또는 Pre Pottery Neolithic)를 설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초기에 설정했던 신석기시대에 대한 고전적 정의, 즉 토기, 간석기, 농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목축), 정착생활의 세트가 존재할 때 신석기시대로 부를 수 있다는 정의에 잘 부합하는 지역은 오히려 적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위의 요소가 세트로 한꺼번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신석기시대의 시작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일체로서의 문화요소가 완비된 것만을 신석기시대로 한정하기보다는 각 요소들 중 해당 지역에 한 두 요소만이라도 나타나는 것을 신석기시대로 규정하는 동아시아의 일반적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중국 황하유역이나 화남지역은 무토기신석기시대를 거쳐 토기가 등장하는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한반도와 일본열도, 연해주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편의적이긴 하지만 토기의 등장을 신석기시대 개시의 가장 주요한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므로 이에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에 통용될 수 있는 신석기시대에 대한 개념정의는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시기구분

초기-전기-중기-후기

 
 

1. 시기구분 : 초기-전기-중기-후기

 

광활한 동아시아 지역을 동일한 시간틀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문화의 변화과정을 크게 네 단계(초기-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신석기문화의 등장과 발전, 쇠퇴를 설명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초(창)기는 토기의 등장을 기점으로 동아시아에 신석기시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기, 전기는 동아시아 각지에 등장한 신석기문화가 지역에 정착하여 각지 나름의 신석기문화를 발전시키는 시기(예 : 자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배리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 노관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신락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신개류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루드나야지도문화, 보이스만문화, 한반도의 조,전기 신석기, 일본의 죠몽 조, 전기 등)로 설정할 수 있다. 중기는 신석기문화가 안정적인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기(예 : 앙소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소주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중층문화군, 자이사노프카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전반,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빗살무늬토기, 죠몽 중기 등), 후기는 각지에서 신석기문화가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시기로 이행하는 시기(중국의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단계, 한반도의 후만기, 죠몽 후만기 등)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기본틀에서 동아시아의 신석기문화 전개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지역구분

황하유역, 양자강유역, 중국동북지역, 화남지역, 한반도, 일본열도

 
 

2. 지역구분: 황하유역, 양자강유역, 중국동북지역, 화남지역, 한반도, 일본열도

 

지역구분은 중국, 한반도, 일본에서 각각 사용되는 다양한 구분안이 있다. 그러나 이를 모두 포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동아시아 전체를 크게 지리적 조건을 중심으로 몇 개의 권역으로 묶어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은 자체 내에서 여러 지구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일단 이를 참고하여 크게 황하 유역, 양자강 유역, 동북지역 및 화남지역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그 내부에서 내용적으로 세분(황하 상류, 중류, 하류 등)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한반도의 동북과 서북지역은 중국 동북지역과 같은 지역권 내에서 다루고, 나머지 지역은 하나로 묶되 내용적으로 소지역 차이를 설명하는 방식(동남해안권, 중서부권, 남부내륙권 등)을 취하고자 한다. 일본열도는 크게 서일본과 동일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동일본과 서일본은 시종일관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1.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개시의 여러 양상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아시아의 신석기시대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시작된다. 먼저 중국의 황하유역에서는 섬서성의 사원유적(沙苑遺蹟)이나 산서성의 아모구(鵝毛口)지도 석기제조장 유적과 같이 무토기신석기시대로 설정된 단계가 존재한다. 사원유적의 석기는 세석기와 박편 위주로, 마연된 것은 매우 적다. 긁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첨상기(尖.器)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화살촉, 세석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석핵(石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이 존재하는데 잔석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위주의 구성이지만 석촉 등 구석기시대를 벗어난 석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아모구 유적은 이와 대조적으로 대형 타제석기 위주이며 비교적 거칠게 제작되었다. 구석기시대적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삽모양의 굴지구나 일부 마제석기 등에서 신석기시대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화북지역은 후기구석기시대 이래 대형석기 전통과 소형석기 전통의 두 가지 계통이 존속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후기구석기적 전통 아래 새로운 기종의 석기(석촉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굴지구우리역사넷 등)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일종의 과도기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중국에서는 무토기신석기시대[前陶新石器時代]로 부르고 있다. 연대는 대략 12000년~10000년 전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토기가 등장하는 이른 단계의 신석기 유적도 알려져 있다. 하북성 남장두(南庄头) 유적지도에서는 승문(繩文) 등을 시문한 여러 점의 토기편이 발견되었으며 이와 함께 갈판, 갈돌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과 추, 골각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찌르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화살촉 등의 도구가 확인되었다. B.P. 9875±160년, B.P. 9690±95년의 측정치를 가지고 있다. 호남성 옥섬암(玉蟾岩) 유적지도에서는 소량의 토기와 함께 비교적 원시적 방법으로 제작된 타제의 긁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뚜르개, 삽모양 굴지구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는 첨저에 승문을 시문한 원시적 토기이다. 14810±230, 12320±120 BP의 연대를 가지고 있다. 화남지역의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유적 중 하나이다. 강서성 선인동(仙人洞)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동굴유적에서는 많은 토기편과 함께 찍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긁개 등의 타제석기가 출토되었다. 토기편은 승문이 주로 시문되어 있다. 시기는 대략 12000~9000년 전이다. 광서성 증피암(甑皮岩)지도 동굴유적에서는 타제석기가 비교적 많고 제작방법도 간단하며 마제석기 유형은 비교적 적다. 토기는 사질의 승문시문 토기 위주이고 항아리종류가 많은데, 굽는 온도가 낮고 재질이 거친 원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10370±870 BP의 연대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중국대륙에서는 황하유역과 장강유역, 화남지역 등지에서 무토기신석기유적 및 초창기의 토기가 등장하는 여러 유적들이 알려져 있다. 토기들은 대체로 소성온도가 낮아 무르고, 승문이 시문된 것이 많다. 대부분 파편으로 출토되어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이 적지만 기형은 분화되지 않고 대체로 단순한 편이다. 석기들은 대부분 타제 위주이며 찍개나 긁개류 등 구석기적 전통을 가진 것도 존재하지만 화살촉이나 석산(石鏟), 갈돌, 갈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 신석기적 요소를 갖춘 것들도 함께 확인되어 과도적 성격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북부의 현 아무르강 유역에서도 초창기의 토기문화가 알려져 있다. 아무르강 중류에서는 노보페트로프카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로 불리는 융기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가 존재한다. 이 문화의 토기는 점토띠를 기면에 붙여 다양한 문양을 시문한 융기선문토기로 대표되며 석기는 각종의 타제석기와 함께 세석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을 이용하여 만든 석인촉이 다량 출토된다. 아무르 하류에서는 오시포프카 문화로 불리는 초창기의 신석기문화가 존재하는데, 토기는 기면을 긁어서 정면한 평저의 조흔문토기(가샤유적)가 알려져 있다. 역시 소성상태가 불량한 편이다. 석기는 세석핵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쐐기형, 원추형), 양면가공첨두기, 스크레이퍼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상 석기, 밀개, 긁개, 나이프 등의 조성을 보인다. 가샤유적은 12960±120과 10875±90 BP의 연대를 보이며, 훔미는 13260±100과 10345±110 BP의 연대를 가지고 있다. 토기를 제외한다면 후기구석기적인 석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한반도에서는 현재 제주도의 고산리식 토기가 초창기를 대표한다. 고산리식토기는 평저에 무문양이 기본이며 점열 기하학문도 소량 존재한다. 고산리식 토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태토에 식물질(초본류)을 섞어 구워 식물질이 타고 남은 흔적이 어지럽게 남은 식물섬유질 태토의 존재인데, 이러한 특징은 시베리아나 일본 등 주변지역 초창기 토기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고산리 단계의 유적들은 현재 제주도에서만 확인되는데 석기상에서는 세석인, 각종 타제석촉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양면가공 첨두기, 갈돌, 갈판 등 과도적 성격을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 연대는 대략 10000년 전이다.
일본열도에서는 대체로 13000BP에 토기가 출현한다. 이때부터 대략 10000년 전까지를 초창기라 한다. 초창기의 토기는 무문양 토기-융선문토기-조형문·승문토기 순으로 대표된다. 무문양토기는 그 양이 미미하나 융선문토기단계가 되면 토기의 양이나 분포범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융선문토기의 문양형태는 횡선문, 격자문, 두립문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며 기형은 주로 환저이다. 융선문토기 이후에는 각지에서 조형문(손톱무늬) 토기가 유행한다. 조형문토기는 융선문토기의 전통하에서 발전한 것으로 본다. 역시 거의 일본전역에서 확인된다. 조형문토기와 함께 원공문 등도 나타나며 초창기 말에 승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초기의 승문은 노끈을 기면에 눌러 시문하는 형태(壓押승문)가 일반적이나 회전승문도 초창기말에 등장하여 이후 대세를 이룬다. 이와 관련하여 미꼬시바, 쵸자구보문화[神子柴, 長者久保 文化, 혹은 석기군]가 알려져있다. 이 석기군은 대형의 창끝형 첨두기와 인기(刃器) 등 후기구석기적 전통의 석기와 함께 대형의 둔중한 타제 혹은 국부마제의 양인석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및 단인석부(丸鑿, 平鑿形)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를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일본의 후기구석기 전통과는 차이를 보이는 석기군이다. 발견 초기에 이 석기군은 시베리아지역과의 관련성이 제기되었고 후기구석기와 죠몽시대 중 어디에 속하는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이 석기군에 토기가 공반되는 것이 알려지면서 죠몽 초창기에 속하는 석기군으로 인정되었다. 주로 혼슈 중앙부에서 동북, 북해도에 분포하나 최근에는 서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출처;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edeah.d_0001_0020_0030_0010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개시의 공통점과 의미

 
 

2.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개시의 공통점과 의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이른 시기에 토기가 출현하고 있다. 대략 13000~10000 BP 사이에 토기가 출현하고 있는데,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 것이다. 동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출토되는 출현기의 토기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아무르 중류의 융기선문토기, 하류의 조흔문토기, 화북이나 화남의 승문계 토기, 한반도의 섬유질태토 토기, 일본열도의 무문, 융선문, 조형문 토기 등이 그것이다. 이 토기들은 기형에서도 원저와 첨저, 평저 등 다양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기종이 세분되지 않고 단순하며 토기의 소성온도도 낮아 매우 무른 편이다. 토기에 초본류, 동물털 등의 비짐을 첨가하는 것도 이 단계의 특징 중 하나이다. 출토되는 토기의 양도 많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 토기제작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출현기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각지에서 공통점과 함께 다양성이 나타나는 것은 동아시아의 토기 출현이 특정 지역에서 발명되어 각지도 확산되었다기보다는 복수의 지역에서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토기의 발명 과정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동아시아에서의 출현기 토기들이 주로 음식의 조리와 관련되는 용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저장용이 아님)을 고려한다면 각지의 식생활과 관련하여 불을 이용한 조리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가운데 등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토기 출현기의 여러 유적들에서 보이는 공통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석기에 있다. 각 유적의 석기들은 역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제기법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특징을 보인다. 구체적 석기기종도 찍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긁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밀개, 찌르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세석핵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으로 대부분 각 지역의 후기구석기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양면가공 첨두기, 양면가공의 화살촉, 세석인촉, 굴지구, 갈돌, 갈판 등과 같이 구석기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종이 등장하는가 하면 마제석기도 소량이나마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동아시아 토기출현기, 즉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개시에는 서로 공통하는 특징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후기구석기시대의 전통을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도구인 토기가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석기상에서도 새로운 기종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I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석기시대와 관련된 새로운 요소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 요소별로 시차를 두면서 나타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시대, 즉 신석기시대의 개시는 토기를 필두로 하여 새로운 타제석기, 마제석기등이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이며 농경과 정착생활은 이보다 후행하여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개시의 특수성이라 할 것이다.
  • 생업활동

  • 집자리와 마을의 구조

  • 토기문화

  • 묘장과 사회발전

  •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종언과 신사회 형성

  • 생업활동

     
     

    1. 생업활동

     

     

     1) 수렵·채집·어로

     

     

     (1) 중국 황하유역

     

    중국 황하유역은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하여 농경사회가 형성되지만 수렵, 채집, 어로 등도 꾸준히 보조식량의 조달원으로서 이루어졌다. 특히 이른 시기일수록 오히려 농경보다 이러한 활동들이 더 중요한 식료조달원이었다. 황하유역에서 확인되는 채집대상물은 낙엽수림의 견과류가 많은데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 등의 도토리류가 많고 개암나리스, 밤, 호두 등도 확인된다. 과실류로는 복숭아, 대추 등이 확인된다. 이외 들깨나 콩류도 확인된다.
    수렵대상물은 사슴과 멧돼지가 많으며 그 중에서도 사슴이 주류를 이룬다. 사슴은 삼림성 동물로 농경의 확대에 따른 삼림의 제거가 사슴사냥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인위적인 삼림제거는 곧 참나무류 등의 이차림(二次林) 형성을 가져오고 이 이차림이 사슴과 동물들을 불러모으는 효과를 가져와 사슴사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유럽의 중석기시대인들 경우에도 이와 같이 사슴사냥을 위해 의도적으로 삼림을 불태워 이차림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앙소문화 등 황하유역에서는 돼지를 중심으로 가축사육이 성행하여 상대적으로 양자강 유역에 비하면 단백질원으로서 가축의 비중이 많은 편이다.
    황하유역에서는 일부시기와 지역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어로활동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이는 당시 유적 주변으로 풍부한 어족자원이 분포하지 않았고, 사냥이나 가축사육을 통해 단백질원을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황하 하류와 발해만 지역은 중국내에서도 어로문화가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그물, 낚시, 작살 등에 의한 어로가 발달하고 산동반도나 요동반도에는 패총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뿐 아니라 회유하는 삼치 등의 어류도 역T자형 낚시바늘의 연승어법 등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포획하였다. 황하 하류에서는 대문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단계까지 악어류도 적극적으로 포획한 증거가 확인된다.

     

     (2) 중국 양자강유역

     

    양자강하류역에서 특히 많이 채집된 것은 마름, 연, 율무 등이다. 이들은 쌀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꾸준히 이용되었다. 이러한 야생식물들은 대부분 수생성으로 호수와 늪지 등이 많은 양자강 하류의 환경에 적응한 식물들이다. 당시인들이 주변에 풍부한 이러한 식물자원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과실류로는 복숭아, 대추, 매실, 감 등이 확인된다. 완두콩, 박 등도 확인된다.
    양자강유역의 사냥대상물은 사슴류가 가장 많다. 양자강유역은 매우 풍부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축사육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황하유역에 비하면 사슴류의 사냥을 통한 단백질원 획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사실 가축사육은 겨울철 사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으므로 자연환경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그렇게 선호되지 않는 생계활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장강하류유역은 황하유역에 비해 수변지구가 풍부하여 그물어로 등의 어로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수도작과 관련하여 수로 등에 서식하는 메기나 잉어과 담수어의 포획이 활발하였다. 이외에 장강유역에 서식하는 악어도 포획대상이 되었다. 장강유역은 수도작과 담수어로, 수변식물의 이용과 사냥이라는 다양한 대상을 이용하는 유기적인 생업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3) 한반도 지역

     

    한반도의 신석기시대는 기본적으로 수렵채집사회이다. 각 지역별로 양상의 차이는 있지만 농경사회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수렵채집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바닷가를 중심으로 어로문화가 잘 발달되었다. 어로문화의 중심지역은 크게 서해안, 남해안 및 강원 영동, 동북해안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발달한 특징으로 인해 신석기 전기간을 통하여 주로 그물을 이용한 어로가 발달하였다. 그물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는 최대 1㎏이 넘는 대형 그물추들이 많은 편인데 이는 파도가 거친 바다라는 특성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그 크기로 보아 그물은 아마도 밀물과 썰물의 반복을 이용하여 갯벌에 고정식으로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서해안지역에서는 해안과 도서지역에 수많은 패총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굴이 중심을 이룬다. 조개류는 선사인에게 단백질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유용한 식량자원으로 역시 신석기 전기간을 통해 이용되었으며 주로 겨울을 중심으로 조개 채취가 이루어졌다.
    남해안지역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해양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북부큐수와의 사이에 대한해협이라는 공통의 어장을 소유한 남해안 신석기인들은 다양한 어로문화를 발달시켰는데, 낚시어법, 그물어법, 작살어법 등이 대표적이다. 낚시는 남해안과 강원 영동지역에서는 결합식 낚시바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라는 독특한 도구가 사용되었다. 이 낚시바늘은 돌로 만든 축부와 뼈로 만든 바늘을 끈으로 묶어 사용하는 것으로 환태평양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낚시도구이다. 작살은 돌과 뼈로 만들어졌는데, 자루에 고정시켜 사용한 것과 대상물이 박히면 촉부분과 끈으로 연결된 자루가 분리되는 분리식작살이 있다. 작살은 상어나 바다 포유류 등 가죽이 두꺼운 대상물을 포획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안에서 잡힌 대상어종은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돔류, 대구나리스, 농어나리스, 복어, 다랑어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많다. 동해안의 경우 실물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회유하는 연어나리스를 일시에 다량 포획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바다포유류로는 바다사자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강치위키백과, 돌고래, 고래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확인된다. 동북해안 역시 어로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서포항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포항유적지도에서는 이음낚시와 외낚시, 각종 작살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두만강하구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러시아의 보이스만문화와 자이싸노프카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단계에 역시 패총이 매우 발달하였다.
    사냥은 단백질을 제공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한반도에서는 주로 해안가 패총에서 출토된 동물뼈를 통해 당시 사냥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많이 포획된 대상은 사슴으로 부산 동삼동 패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동삼동 패총지도에서는 천여점이 넘는 사슴뼈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사슴나리스 다음으로 많은 것은 멧돼지나리스이다. 이 둘을 제외하면 너구리나리스나리스, 곰, 호랑이나리스, 개 등 다양한 동물들이 확인되지만 그 양은 미미한 수준이다. 즉 사슴과 멧돼지가 주요한 식료자원이었던 것이다. 사냥은 고기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가죽이나 털, 뼈 등 다양한 자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생업행위이다. 특히 사슴이나 멧돼지의 뼈는 낚시바늘이나 작살, 화살촉 등 각종 골각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사냥은 연중 행해지지만 여타 생업활동이 어려운 겨울철에 특히 많이 행해졌다. 사냥도구는 주로 활과 화살이었으며 일부 창이 확인된다.
    신석기시대 채집활동의 증거는 도구를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채집활동은 특별한 도구 없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적에 남겨진 식물유체를 통해 그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은 도토리류이다. 한반도는 참나무류가 식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여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도토리류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남해안지역에서는 창녕 비봉리나 울산 세죽 유적 등에서 도토리 저장구덩이가 많이 발견되어 도토리가 집중적으로 이용되었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는 호두나 밤 등의 견과류가 보인다. 견과류는 보존이 용이해 유적에서 많이 남겨졌지만 남아 있지 않은 그 이외의 다양한 구근류나 열매류 등도 채집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은 이와 같이 도토리를 중심으로 한 채집활동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사냥과 어로를 통해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신석기 이른 단계를 제외하면 정착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자원의 다량 획득과 저장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저장은 선사인들이 집단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정착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자 전략이었다.

     

     (4) 일본열도지역

     

    일본열도는 약 1만년 전 대마난류가 동해로 유입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환경적으로도 온난화의 과정 속에서 새로이 형성된 삼림(낙엽활엽수림)에 적응한 동식물상에 대응해 인간집단들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일본열도에 처음 토기가 등장하고 새로운 석창과 석부가 등장하는 죠몽 초창기 단계(미꼬시바위키백과 문화 단계)는 바로 이런 시기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 죠몽인들은 점차 본격적인 정착수렵채집민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식량자원이 된 것은 물론 식물성 식량으로서의 도토리를 중심으로 한 견과류, 동물성 식량 중에서는 특정 시즌에 대량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중심으로 한 어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죠몽시대에 식량으로 이용된 견과류는 도토리류, 밤, 호두 등 다양한데, 도토리류는 일반적으로 탄닌성분을 제거하지 않으면 식용하기 어려우므로 탄닌제거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이 확보되는 것은 죠몽 중기 이후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필요없는 밤, 호두, 개암나리스 등은 죠몽 초창기부터 일찍이 적극적으로 채집되었다. 채집활동은 사냥에 비해 포획의 안정성이 압도적으로 높고 탄수화물을 제공해줄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므로 선사인들에게 기본적인 활동 중 하나이다. 특히 견과류 등과 같이 가을의 짧은 시기동안 수확해야 하는 경우는 집단의 일부만이 아니라 전체가 집중적으로 채집활동에 나섰을 것이다. 실제 죠몽 초창기의 유적에서는 이러한 견과류를 대량으로 저장하였음을 보여주는 저장시설이 발견되고 있다. 견과류는 곡류에 비해서 더 높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좋은 식량자원이며 또한 저장성이 높아 대량 채집 후 년간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하다. 견과류의 대량채집과 높은 저장성 및 칼로리는 죠몽인들이 정착을 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소이다. 죠몽 중기 이후 유적에서 대규모의 도토리류 처리시설(수장시설)이 나타나는 것은 견과류가 당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자원의 대량획득, 저장에 필요한 시설의 축조는 필연적으로 인간이 한 지점에 장기적으로 살게하는, 즉 정착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구석기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이 확립된 것이다.
    사냥은 다른 동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로 사슴과 멧돼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활과 화살 이외에 함정을 이용한 사냥방법도 사용되었다. 함정사냥은 함정의 설치를 위한 초기노동력 투여가 높은 단점이 있지만 한번 설치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고, 함정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어 시간적으로도 유용한 장점이 있다. 연어류는 대량으로 회귀하면서도 포획이 용이하고 처리를 통해 보존이 용이한 장점이 있어 초기 죠몽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었다. 따라서 연어를 대상으로 한 하천어로는 죠몽문화 성립에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견과류와 어류 양자의 조합을 통해 죠몽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농경과 목축

     

    농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과 목축은 고전적 정의에서 신석기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실제 유럽에서는 농경 시작 이후를 신석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지역에 따라 농경의 개시연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위도가 높은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신석기시대의 어느 때쯤부터 대부분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의 농경이 시작된다. 동아시아 농경과 목축의 전개과정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관련된 주요개념들에 대해 정의해두도록 하자.
    농경(목축포함)과 관련된 주요 개념으로는 경작 또는 재배(cultivation), 馴化(domestication), 농경(agriculture)이 있고 이들은 서로간에 구별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작이란 인간의 행위적 측면을 강조한 개념으로 식료자원이 될 수 있는 대상물에 대해 어떠한 관리적 행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벼를 경작한다는 것은 논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며,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행위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작은 재배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자연적 숲에서 밤나무 이외의 경쟁종들을 베어내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밤나무의 번성을 가져와 밤의 수확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관리행위 역시 경작이라는 개념에 포함된다. 즉 경작은 대상물이 재배종인가 여부에 관련 없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순화 또는 재배종화는 이와는 달리 동식물 자체의 외형적, 유전자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야생종은 야생상태에서 살아가도록 적응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야생종의 생활주기에 개입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야생종의 형질이 변화되어 야생상태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순화라 한다. 예를 들어 야생의 벼나 보리 등은 알곡(씨앗)이 익는 기간이 길고 위쪽부터 순차적으로 익어가며 익으면 줄기에서 잘 분리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야생상태에서 자손을 번식시키기 용이하도록 적응한 결과이다. 그러나 재배종의 벼나 보리는 익는 기간이 짧고, 익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야생에서는 좋지 않은 형질(즉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형질)이지만, 수확이라는 면을 생각할 때 이용을 하는 인간에게는 유리한 형질이다(익자마자 잘 떨어져버리면 수확하기 어려움). 재배종의 경우 자손의 번식을 인간이 담당해주므로 이러한 점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즉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로 변화된 재배종은 더 이상 자연상태가 아닌 인간의 개입에 의해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하게 되는 형질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야생종의 생활주기에 인간이 개입하여 인간에 유리한 방향으로 형질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를 순화라 한다. 농경은 재배종을 이용해 경작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1) 황하 및 중국 동북과 양자강유역의 농경 및 가축사육 개시와 발전

     

    중국의 화북지구에서는 아직 초기단계의 농경기원과 관련된 유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초기에 해당하는 하북성 남장두위키백과지도, 북경 동호림(東胡林) 유적 등에서는 다량의 타제석기와 갈돌, 갈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토기 등이 확인되었지만 농경관련 식물유존체는 확인되지 않았고 대부분 야생의 동식물들이 확인되어 수렵채집 위주의 생업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남부지구에서는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이 층위적으로 알려진 유적들이 몇몇 알려져 있다. 이 중 초기의 농경 출현과정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적은 강서성 만년(萬年) 선인동(仙人洞)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과 적통배(吊桶环) 유적이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하층에서는 구석기시대 최말기의 타제석기와 야생벼가 확인되었고, 상층에서는 재배벼로 생각되는 식물규산체가 확인되고 토기가 등장하고 있다. 식물규산체에 의한 재배벼 동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부에서 처음으로 도작농경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호남성의 옥섬암(玉蟾岩)유적지도에서는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원시고재배도(原始古栽培稻)와 함께 농경구로 볼 수 있는 괭이형 석기,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유적에서는 다양한 야생 동식물 유체가 확인되어 도작농경은 생업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야생벼가 출토된 하층은 기원전 80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고재배벼가 출토된 상층은 기원전 6000년(미교정) 무렵으로 측정되었다. 중국 남부지구에서는 이와 같이 아주 이른 단계에 야생벼를 이용하던 단계에서 재배벼로 이행하는 과정이 점차 알려지고 있다.
    기원전 7500~5000년 무렵에 해당하는 신석기시대 전기가 되면 이전과 상황이 매우 달라져 중국 각지에서 본격적인 대규모 취락유적들이 발견되며 이와 함께 전형적인 농경문화가 확인된다. 유적은 초기의 유적들과 달리 주요 하천의 충적대지상으로 확대된다. 중국 요서지구의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 하북 남부 중심의 자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하남성 중심의 배리강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산동성 북부의 후이문화위키백과지도, 관중지구 및 섬서 남부의 노관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키백과 등 황하유역과 중국 동북지구에서 많은 농경문화가 등장한다. 양자강유역에서도 동정호지도 지구의 팽두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항주만 남부의 과호교(跨湖橋)문화지도 등 여러 문화가 등장한다. 이제 황하와 양자강을 중심으로 조(粟) 중심의 전작문화와 수도작문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황하 중하류의 자산(磁山)유적에서는 조를 저장한 80여기 이상의 저장시설이 확인되기도 하였고, 양자강 중류의 팽두산문화 유적인 팔십당(八十塘)유적에서는 1만 점이 넘는 완전한 벼껍질과 알곡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농경도구로는 각종의 삽과 괭이 형태의 굴지구(堀地具)들이 다량 확인된다. 가축도 활발하게 길러져 이때가 되면 주로 돼지와 개, 소, 닭을 중심으로 한 가축사육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석기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5000~2600년 무렵이 되면 농경문화는 더욱 성숙하게 되는데, 황하중류의 앙소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하류의 북신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대문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동북지구의 신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조보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양자강 중류의 대계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굴가령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하류의 마가빈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송택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양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조기 등이 대표적이다. 황하유역에서는 농경취락유적들의 분포밀도가 증대되고 규모도 확대된다. 앙소문화 강채유적은 이러한 취락유적의 대표격이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120여기의 집자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가축우리, 환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덤이 정연하게 배치된 강채유적지도의 예는 성숙한 농경취락의 예를 잘 보여준다. 이제 각지에서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한 농경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배추 등 채소류의 재배 증거들도 확인된다. 양자강 하류의 마가빈 문화에 해당하는 초혜산(草鞋山)지도 유적에서는 기원전 4000년을 넘는 논 유적이 발견되어 가장 이른 단계의 경작유구로 알려져 있다. 논 유적은 관련된 수로 등 관개시설도 확인되어 발달된 수도작농경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4000년 이후가 되면 수도작농경이 산동 등 황하유역까지 확대되고 가축사육도 더욱 진전되어 돼지는 이제 부의 상징으로서 무덤에 하악골이나 머리가 부장되는 사례가 증가한다.
    신석기시대 후기는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로 대표되며 대략 기원전 2600~2000년 사이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하남용산문화인 왕만3기, 후강2기, 산서남부의 도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섬서 중심의 객성장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장강유역의 석가하문화지도, 양저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생산력은 더욱 증대되어 쟁기가 활발히 사용되고 석산이나 석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석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우리역사넷은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양저문화에서는 삼각형의 쟁기날이 보편적으로 확인된다. 인골과 돼지뼈에 대한 자연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이 시기 조를 중심으로 한 소위 C4 식물의 섭취량은 이전보다 훨씬 증가된 것으로 나타나 발달된 농경사회의 양상을 알게 한다. 특히 돼지도 조 등의 곡물을 사료로 섭취하였다는 것은 농업생산력의 증대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외에 주목할 것은 이 시기에 새로운 작물인 보리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석기시대 초기에 수렵채집민의 보조수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초기농경은 전기.후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화북의 조 중심 전작문화, 양자강유역의 벼 중심 수도작 문화라는 양대축을 형성하며 농경사회로 이행하였고, 벼농사의 확대, 가축사육의 증대, 도구개량에 의한 생산력의 증가, 보리라는 새로운 작물의 재배 등 성숙된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중국 신석기문화의 개화에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였고 이어지는 초기문명의 등장에도 밑거름이 되었다.

     

     (2) 농경의 동아시아 확산

     

    중국 대륙 내에서 황하유역과 양자강유역, 화남지구, 동북지역 등 주요한 농경의 발생지 및 중심지들에서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본격적인 농경문화가 형성되어 온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중국 내에서도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수도작 농경은 서서히 북상하여 산동까지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신석기시대 농경문화는 중국의 요동, 길림, 흑룡강, 러시아의 연해주, 한반도, 일본열도로 시차를 두고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중국 동북지역을 먼저 살펴보면 요하를 중심으로 요서지역에서는 전기의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단계부터 이미 농경이 시작되지만 요동지역의 경우는 이보다는 한단계 늦게 조나 기장 중심의 화북농경이 시작된다. 심양의 신락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 기장이 출토된 바 있다. 그러나 요동반도나 길림, 흑룡강성 남부 등 요서의 동쪽에 있는 지역들에 본격적으로 농경이 확산되는 것은 이보다도 더 늦은 신석기 중기 단계가 되어서이다. 요동반도나 요중지역의 소주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중층문화군에서는 농경관련 석기와 함께 돼지뼈도 다량 출토되어 농경과 가축사육이 중기 단계에 본격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4000년기 전반에 중서부지역으로 초기농경이 수용된다. 황해도의 봉산 지탑리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이나 마산리 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 처음으로 따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형 석기와 같은 농경도구와 함께 곡물로서 조가 확인된다. 현재로는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가장 이른 단계의 농경 증거이다. 한반도에서는 이후 기원전 4000년기 후반이 되면 최남단의 부산 동삼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삼동 패총지도에 이르기까지 조와 기장이 확인되고 농경도구도 함께 출토되어 전국적으로 초기농경이 확산됨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초기농경은 화북지역의 특징적인 형태인 따비형석기와 조 및 기장을 세트로 하여 수용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길림성 동부, 흑룡강성 남부, 러시아 연해주 등 요서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극동지역에서도 기원전 4000년기 후반이 되면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한 초기농경이 수용되는 양상이 보인다. 화룡 흥성, 금곡, 북한의 서포항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포항지도 3, 4기, 러시아 연해주의 자이싸노프카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단계의 크로우노프카 I 유적 등에서는 기장 등 곡물이나 따비형석기 또는 곰배괭이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와 같은 농경관련 석기가 출토되고 있어 초기농경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다. 이 지역의 초기농경 역시 요서지역과 관련이 깊다. 조 중심의 화북형 농경은 한반도나 중국 동북, 러시아 연해주 남단과 같이 기존에 수렵채집어로를 중심으로 한 생업을 영위하던 집단들이 커다란 생업상의 변화나 도구상의 개혁, 경작지 조성의 어려움 등이 없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수용할 수 있는 농경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들에서 수용된 농경은 그들의 생업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았으며 여전히 중심은 수렵채집어로였다. 초기농경은 이러한 생업에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일본열도의 경우는 죠몽시대위키백과 만기를 제외하면 본격적인 곡물 농경의 양상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른 시기부터 조롱박 등의 비식료자원에 대한 농경, 경쟁식물을 제거하는 것을 통한 유용작물의 관리와 같은 경작행위 등은 존재하였다. 일본 산나이마루야마[山內丸山] 유적문화유산DB(일본)지도에서는 밤나무의 의도적인 관리행위가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수렵채집민에 의한 채집의 연속선상에 있었던 것으로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양상으로 볼 수는 없다. 죠몽 후기단계에 한반도와 관련하여 쌀농사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한반도에서의 쌀농사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아직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처럼 중국의 주변지역으로 농경이 확산되는 과정은 신석기 중기에 이루어지지만 수용지에서 농경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농경사회로 이행한 예는 없었으며 한반도나 연해주, 일본 등에서는 여전히 신석기시대 전기간을 통하여 수렵채집이 중심을 이루는 사회가 유지되었다. 또 한가지 이들 수용지에서는 돼지의 사육과 같은 가축사육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데, 이 역시 농경사회로 이행하지 않은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집자리와 마을의 구조

     
     

    2. 집자리와 마을의 구조

     

     

     1) 황하유역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집자리는 기본적으로 움집이 주류를 이룬다. 화남지역은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초기 단계에 동굴유적이 많이 확인되기도 한다. 움집은 평면형태에 따라 원형과 방형, 장방형 등으로 나뉘며 각 시기별로 혼용되어 다양하게 사용된다. 움집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중앙에 화덕자리가 설치된다. 중국 황하유역에서는 전기단계부터 본격적인 마을 유적이 형성되는데, 취락 주변에 방어용의 도랑(환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을 설치한 환호취락이 일반적이다. 환호취락은 전세계적으로 확인되며 농경사회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하는 특징이 있다. 농경사회가 되면 가경지의 확보, 수확한 식량의 보호 등의 문제로 인해 이러한 환호취락이 등장하는 것이다.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 반파 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섬서성 강채 유적지도, 요서의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유적 등은 이러한 환호취락의 대표적인 예이다.
    환호취락은 강채유적에서 보듯이 중앙 광장을 둘러싸고 집자리들이 환상(環狀)으로 배치되고 환호 밖에는 무덤구역, 토기생산구역이 나뉘어 자리한다. 반파유적에서도 이러한 구분은 명확하게 나타난다. 강채유적에서 보이는 취락 내의 주거배치가 5개의 군으로 나뉘는 양상은 취락 내 씨족들의 주거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흥륭와 유적이나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단계의 취락 등 요서지역에서는 환호 내에 환상배치 대신 정연하게 열을 이룬 열상배치 형태의 취락이 존재한다. 이 경우에도 각 열에는 가장 큰 주거지가 하나씩 위치하고, 전체 취락 내에서도 가장 대형의 취락이 따로 존재하는 등 취락 내의 위계적 구조가 확인된다.
    도면 1 강채유적 취락 배치도와 복원도(中.社.科.院考古硏究所, 2010)
    황하유역의 전기에는 주로 원형평면의 수혈식주거지가 유행하나 앙소문화단계 등 중기가 되면 이외에도 방형 및 장방형 주거지가 유행하고 지상식 건물도 유행한다. 더불어 2간 이상의 집을 연접한 연간식(連間式) 집자리도 나타나게 된다. 지상식집자리의 출현은 지상으로 벽체가 올라가고 지붕이 지면에서 분리되는 주거의 출현을 말하며 건축학적 기술이 진보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하유역 신석기 후기가 되면 사람들의 거주구역이 확대되어 구릉지대에서 개간이나 경작에 유리한 평지로 진출하게 된다. 주거지의 밀집도도 증가하여 인구증가를 알 수 있다. 주거지 배치도 앙소문화시기의 환상배치와는 달리 열을 지어 배치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 시기는 이미 거의 지상식건물이 주류를 이룬다. 주로 단칸과 2칸의 집이 많다. 벽은 진흙 벽돌을 이용하거나 나무기둥과 흙벽으로 축조하였다. 바닥은 백회를 깔거나 단단하게 다져 처리하였다.
    황하 중하류에서 후기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단계가 되면 각지에 성지가 출현하게 된다. 황하유역에서 가장 이른 성지의 예는 앙소문화 후반 단계의 것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용산문화 단계에 보편화한다. 성지는 흙을 다져 쌓아(판축) 평면 방형으로 축성하였는데 규모는 다양하여 한변 70여 m에서부터 18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하남의 왕성강(王城崗)지도, 평량대(平糧台)지도, 후강(后崗) 유적 등에서 이러한 성지가 발견되었다. 성지 내부에는 주거지, 무덤, 제사시설, 회갱 등이 존재하며 성지에는 문지가 남아 있다. 왕성강 성지 내부에서는 다수의 회갱 내에서 많은 수의 인골이 확인되어 종묘(宗廟)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적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평량대에서는 성내 교혈에서 청동주조의 흔적[銅渣]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산동지역에서도 성지가 확인되는데, 등주(藤州)시 서강류(西康留)지도, 양곡(陽谷)현, 왕가장(王家庄) 유적 등 대문구 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말기에 이미 등장한다. 서강류 성지는 동서 185m, 남북 195m로 약 35,000평방미터에 달하는 규모이다. 왕가장 성지는 용산문화단계까지 사용되는데 동서 120m 남북 320m에 달한다. 용산문화 단계가 되면 성지가 보편적으로 보이는데 성을 축조할 때 기저부에 의도적으로 사람이나 돼지,개 등을 희생물로 묻거나 언과 같은 토기류를 매납하기도 한다. 이 단계의 성지는 규모에 따라 중심성과 소성으로 구분된다. 중심성은 면적 300,000평방 미터 이상의 대규모에 성 내부에는 대형 및 소형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소형기단부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의도적 매납, 회갱내 미사용 토기[豆]의 매납 현상이 관찰되어 일종의 예기적(禮器的) 성격으로 볼 수 있으며 이로 볼 때 소형기단은 종묘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성진에서는 도철문(饕餮文)이 시문된 옥부(玉斧)가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예기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중심성 주변에는 규모 30,000~60,000평방미터의 작은 성이 위치한다. 중심성 주변에서는 취락유적이 비교적 적게 발견되어 성 내부에 인구가 밀집했던 것[城市]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용산문화 단계가 되면 성지가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주동기술이 발전하며, 농업생산력도 증대되고, 사유재산제의 보편화,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의 중층화 현상 등이 심화되면서 전쟁과 같은 사회적 긴장상태가 나타남에 따른 현상으로 생각된다.

     

     2) 양자강유역

     

    양자강 중류에서는 굴가령 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이전까지는 수혈주거가 나타나나, 굴가령 문화단계가 되면 지상건축이 일반화된다. 벽체는 풀과 섞은 진흙을 이용하였으며 내부 바닥은 백회를 깔았으며 화덕자리가 있다. 일부 집들은 약간 높은 기단 위에 지어져 있는데 이는 습한 기후조건에 적응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에서도 굴가령문화 단계부터 성지가 출현한다. 성두산(城頭山)성지지도, 주마령(走馬岭)지도성지, 음상성(陰湘城)지도, 석가하(石家河)성지지도 등이 그것인데 원형이나 방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성밖으로 해자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석가하성지는 120만평방미터에 달하는 이 지역 중심성으로 내부에 종교구, 거주구, 묘장구 등이 구분되어 있다. 강한평원의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이러한 고성들이 위치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황하중류지역의 집단들과 전쟁을 상정하고 이를 고사전설(古史傳說)의 황제 집단의 전쟁과정과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황하유역의 용산문화시기, 장강 중류의 굴가령문화시기에 양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취락조직원리-城-가 등장하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인구증가, 빈부격차, 야동기술발전, 농업생산력 향상 등 다른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음도 분명하다.
    양자강 하류 태호주변의 마가빈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취락은 장방형을 기본으로 하고 습기가 많은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바닥에 점토와 조개가루, 돌가루 등을 섞어 불다짐을 한 흔적들이 확인된다. 또한 기둥자리 밑에 나무판을 깔아 침하를 방지한 시설도 특징적이다. 양저문화에 이르면 대규모 취락유적들이 형성되는데 태호지도의 북, 동, 남쪽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태호 남쪽의 막각산(莫角山) 취락군항주넷지도과 성지는 그 중에서도 중심지구에 해당되는데, 성지는 남북 1,800-1,900m, 동서 1,500-1,700m로 290여만 평방미터의 해당시기 중국 최대규모급이다. 성지는 바닥에 돌로 기초를 깔고 흙을 쌓은 것으로 현재 최대 4m 높이로 남아 있다. 성지의 중앙에는 자연언덕을 이용해 축성한 면적 약 30만 평방미터의 인공 토대가 있는데 이곳이 막각산이다. 토대 위에는 궁전건축으로 추정되는 대규모의 기둥자리들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묘지들이 배치되어 있다. 주변 묘지들[反山, 瑤山]은 중대형묘들로 대형묘의 경우는 부장품이 최대 500여 점이 넘으며 옥종, 옥벽, 옥월 등 예기들이 다량의 토기들과 함께 부장된다. 이 옥기들에는 도철문 등 이후 청동예기의 주요 문양이 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묘지구에는 제단이 형성되어 있다. 상해 복천산 무덤지도에서는 대형묘에 순장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중심궁전, 성지, 대형묘, 예기의 존재는 양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가 중국 신석기시대 말기의 중심지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항주 이남지역에서는 전중기단계에 수변 취락이 유명하다. 지형상 해안 저지에 형성된 이 유적들은 나무기둥을 기초로 세우고 집의 바닥을 공중으로 띄운 고상가옥(高床家屋)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干欄式建築]. 이는 습지에 적응한 가옥형태로 이러한 가옥은 대부분 장방형 대형가옥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절강성 하모도(河母渡)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유적, 전라산(田螺山)지도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하모도 문화 후기에는 기둥 바닥에 나무판을 깔아 초석으로 쓰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는 마가빈문화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3) 한반도 지역

     

    한반도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움집이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종일관 중심적인 집자리로 나타난다. 움집은 전, 중기에는 원형이나 방형이 주류이나 후기가 되면 장방형이 각지에 등장한다. 움집 내부에는 화덕자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반도에서는 환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취락이 신석기시대에 확인된 예는 없다. 한반도의 환호취락은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등장한다. 취락은 2~5기의 집자리로 이루어진 소규모 취락부터 20여기 이상의 대규모 취락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다양하나 일반적으로는 10여기 미만이 주류이다. 취락은 일반적으로 강변 충적지나 낮은 구릉에 입지하는데, 후기로 갈수록 구릉 입지가 현저해진다. 취락의 배치형태는 정형성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일부 열상배치의 형태를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의 예처럼 명확한 환상취락 형태는 나타나지 않아 취락내부구조가 주변지역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에 유행하는 장방형 평면의 집자리들은 가옥의 규모도 커지고 지붕의 형태도 맞배지붕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형태를 기본으로 하며, 내부 생활 공간 분할[거주/저장/식료처리] 양상이 현저해지는 등 앞 시기와 비교해 가옥형태가 발전된 양상을 나타낸다. 취락내 공간분할과 관련해서는 김천 송죽리 유적에서 가옥 및 이에 딸린 외부 저장시설, 토기생산시설이 분리되어 확인된 예가 있다. 또는 일반 취락 내에 소형의 수혈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저장시설?]이 혼재하거나 옥외의 공동 조리시설로 생각되는 야외노지가 확인되는 예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아직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토기요지나 농경관련 경지, 무덤의 조사예가 극히 적어 취락과의 관계가 불명확하다. 따라서 사회조직이나 구성에 대한 연구가 아직은 미진한 상황이다.

     

     4) 일본열도

     

    죠몽시대위키백과의 주거와 마을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나, 최종빙기위키백과 이후의 온난화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식물성 식료의 적극적 이용, 사슴나리스이나 멧돼지나리스 등의 포유류 사냥, 저장전략의 구사를 통한 정주마을의 등장이라는 면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죠몽시대의 집자리는 평면형태가 크게 원형이나 타원형, 방형이나 장방형을 갖는데, 기본적으로는 땅을 파고 축조한 움집의 형태이다. 정주취락은 초창기 융기선문 단계부터 등장하는데 남구주의 가쿠리야마 취락, 관동지역의 무장대(武藏台) 유적군 등 복수의 주거지와 취락으로 구성되는 양상이다. 북해도와 북일본의 경우는 수혈주거 취락은 조기단계에 본격화한다. 조기에는 주거역, 저장혈, 무덤, 광장 등이 공간 분할되어 환상(環狀)으로 배치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전기에 본격화 한다. 특히 관동과 중부고지 일대에는 전기에 환상으로 배치된 주거지군의 내측에 묘역이 형성되어 있는, 묘역을 중심으로 한 취락유적이 널리 분포한다.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죠몽시대 조기나 전기처럼 이른 시기에는 방형이나 장방형이 많고 중기에는 원형이나 타원형이 많다. 늦은 시기로 가면 원형과 방형이 모두 사용된다. 집자리의 규모는 시기가 내려갈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다. 관동지역의 경우는 전기에 대칭구조의 장방형 평면에 지붕이 지면으로부터 분리되는 벽체형 주거가 성립한다. 여기에는 벽가를 두르는 기둥, 중앙의 노지, 토기매설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 그 후 중기에는 구심구조의 원형평면, 4주식 중심기둥, 중앙노지(위석, 토기)를 갖는 주거가 중부고지에서 성립하여 관동지역에 유행하게 된다. 후기초두에는 다시 벽가를 두르는 기둥을 가지는 전기형의 주거가 나타나지만 나머지와 혼재한다. 출입시설은 중기 후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후기 초두에는 돌출된 출입구를 갖는 경병형(鏡柄型) 주거지로 발전한다. 후기 중엽이 되면 방형평면의 주거가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이 시기에는 벽가 기둥이 매우 얇아지는 경향이 있어 이때부터 토벽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형식의 주거는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북해도 지역은 대칭구조가 주류를 이루나 중기 이후 구심구조와 혼재한다.
    죠몽시대 마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마치 도넛 모양으로 중앙을 비우고 주변으로 집과 여러 시설들을 배치한 소위 환상취락이 유명하다. 환상 취락의 기본 구조는 중앙에 광장을 두고 그 외곽에 무덤과 고상가옥, 움집을 방사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치를 중대구조라 한다. 취락의 규모는 큰 것은 직경 150m에 달한다. 환상취락은 주로 중부, 관동, 동북지역의 같은 동일본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조기에 출현해 전기에서 후기까지 지속되나 후기에는 해체되는 양상을 보인다. 환상취락은 당시의 취락 중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거점취락으로 기능하였으며 인구가 집중된 곳이었다. 오랜 기간 중심취락으로 기능하며 각 시설들의 축조에 규제가 강한 탓에 집자리들의 중복관계가 매우 심한 것이 특징이다. 환상취락들은 주거지나 무덤 등 취락내 시설들이 몇 개의 군으로 묶여 분포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이러한 취락구조를 분절구조라 부른다. 취락내에서 나뉘어지는 이러한 분절구조의 각 단위는 혈연에 기반한 집단(즉 씨족)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취락내에 몇개의 소집단이 나뉘어지는 환상취락의 예는 중국의 황하 중류지역 신석기취락에서도 확인된다. 취락의 내부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시의 집단구조를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 토기문화

     
     

    1. 토기문화

     

     

     1) 토기의 제작과 기능

     

    토기는 기본적으로 점토광물을 물과 혼합하여 빚어 만드는 것이다. 알루미나와 실리카가 주성분인 점토광물은 물과 혼합하면 좋은 가소성을 가진다. 이러한 가소성을 가진 점토를 이용해 그릇을 만들어 굽게 되면 점토광물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단단한 상태의 유용한 생활용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토기를 만드는 방식은 점토덩어리를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드는 수날법(手捏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긴 점토띠를 나선형으로 올려가며 빚는 서리기법[卷上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도넛모양으로 한단 한단 쌓아올라가며 만드는 테쌓기법[輪積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일정한 틀을 미리 만들고 여기에 찍어내는 찍어내기법 등이 있다. 물론 늦은 시기가 되면 물레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를 이용해 점토덩어리에서 직접 다양한 모양을 뽑아올리는 방법이 유행한다.
    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의 용도는 크게 조리용과 저장용, 배식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토기의 초기 등장과정과 관련된 것은 아마 조리였을 것이다. 토기는 유기질로 만든 바구니나 목제그릇과 달리 불에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의 조리에 유용했을 것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은 구석기시대로 올라가는 매우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음식 특히 식물성 식료의 조리에는 토기와 같은 형태가 매우 효과적인 바, 토기의 등장으로 인해 인류는 이전과 달리 먹을 수 있는 식료의 종류가 훨씬 더 많아졌을 것이며, 소화도 용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토기의 발전에 따라 저장과 배식용의 토기들도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저장용의 토기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용량을 필요로 하는데 대형토기의 제작은 소형토기에 비해 훨씬 더 높은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에 토기의 발전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목이 달린 토기(항아리)도 역시 복잡한 기형적인 특징상 토기 출현기에는 보이지 않고 제작기술이 발전한 이후 등장하게 된다. 토기는 발전하면서 이제 단순히 조리나 저장, 배식용의 용도에만 그치지 않고, 의례와 관련된 의미를 담거나 사후세계에 부장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죽은 자를 담는 관의 용도로까지 다양하게 분화하게 된다. 신석기시대에 보이는 붉은 칠을 한 주칠토기나 청동기시대의 홍도, 초기 철기시대의 흑도 등은 의례나 부장과 관련된 특수토기의 예이며, 옛 마한지역의 대형 옹관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는 토기가 지배자의 관으로까지 이용된 특수한 예이다. 현대사회에서 토기는 다른 형태로 재질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용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2) 다양한 토기 문화

     

    광활한 동아시아 지역은 그 면적만큼이나 다양한 토기문화가 장구한 시간 속에서 명멸하였다. 토기는 그 형태와 문양 등이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변화하기 때문에 선사시대 각종 문화의 시간적 순서를 밝히는데 유용할 뿐 아니라, 각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우선적으로 알아내는데도 매우 효과적이고 또한 매 유적에서 다량으로 출토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각지의 선사문화를 밝히는데 첫 번째의 분석자료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의 동아시아가 서로 다른 국가들로 나뉘어 있는 상황 속에서 토기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각국의 학문적 전통에 따라 서로 상이한 방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고고학에서는 토기를 포함한 각종의 물질문화(주거지, 무덤, 생산시설, 도구 등)가 특정한 시간폭과 공간적 범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될 때 이를 ‘○○문화’라 명명하고 개별 문화들간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여 왔다. 앙소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하모도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양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등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문화’개념은 유럽에서 정립된 것을 수용한 것이다. 반면 한국고고학에서는 ‘문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물질문화의 특징에 따라 지역을 구분한 뒤, 각 지역 내에서의 토기양상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때 특정한 기형과 문양을 가진 일군의 토기들을 ‘○○식 토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개념화하기도 한다. 암사동식 토기, 영선동식 토기, 오산리식 토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이러한 용례가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다. 반면 일본은 오래전부터 토기편년을 위해 고안된 ‘○○식 토기’라는 수많은 토기 형식을 설정하여 전체 토기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토도로끼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식 토기, 소바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식 토기, 가메가오카지도식 토기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의 설명틀을 가진 지역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일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각 지역에서 발전시켜온 기존개념에 충실하여 대표적인 토기문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기로 한다. 단 신석기 초기 단계는 III장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전기.후기의 양상만을 다룬다.

     

     (1) 황하유역

     

    ① 황하 중류 1 (渭河, 豫西, 晋南 지역)
    황하 중류지역 중 위수 유역을 포괄하는 섬서성의 관중분지, 하남성 서부, 산서성 남부를 포함하는 지역은 소위 仰韶文化의 중심지로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이 지역의 고고문화 흐름은 老官台文化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북수령지도하층유형 또는 대지만지도 문화)-仰韶文化 庙底沟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2期文化 客省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2期文化 및 三里橋2期文化, 陶寺類型의 순이다. 老官台文化는 이 지역 전기 토기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토기는 밑이 둥근 원저의 발형토기, 낮은 굽이 달린 완형토기, 삼족발과 삼족관, 호 등으로 단순한 기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토기의 제법이 원시적이고 소성온도도 낮은 편이다. 토기의 문양으로는 승문이 대표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7200년~6300년 전 사이에 지속되었던 문화이다.
    앙소문화는 중국 중원지역을 대표하는 문화로 중기에 해당되며 半坡유형-史家유형-庙底沟유형-西王村유형으로 세분된다. 토기는 모두 수제이며 전체적으로 이전 단계에 비해 토기의 기종이 다양화된다. 앙소문화 내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기종들이 등장하는데, 초기의 원저발, 평저분, 첨저병, 옹 등에 더해 鼎, 釜, 시루 등이 추가된다. 토기제법도 발달해 늦은 속도로 회전하는 회전판(일종의 물레)을 이용하여 토기를 다듬는 기법이 일반화된다. 토기의 문양은 다양하나 繩文이나 線文이 많다. 앙소문화 시기는 채도가 유행하는데 초기에는 그 수량이 적다가 점차 많아져 전체토기의 15% 정도까지 이르다가 점차 감소한다. 채도는 인면문, 물고기무늬, 원, 삼각, 직선 등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 등이 시문되며 주로 흑색 채색이 많고 붉은 색은 적다. 앙소문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6100년~4400년 사이에 지속되었던 문화이다.
    도면 2 앙소문화 반파유형의 토기(中国社会科学院考古硏究所, 2010)
    庙底沟2期文化는 이후에 전개되는 용산문화시기와 이전의 앙소문화 시기의 과도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早期龍山文化로 불리기도 한다. 이 단계부터 紅陶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는 급격히 줄어들고 灰陶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일반화된다. 문양은 籃文(바구니문)이 성행하고 승문이 그 다음을 잇는다. 채도는 매우 적다. 이 시기는 鼎이 가장 일반적인 기종이 되고 새로이 취사구로서 袋足(속이 빈 다리)을 가진 斝가 등장한다.
    이 지역에서 庙底沟2期文化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신석기시대 후기의 문화는 유적조사의 진전에 따라 3개의 소지역군으로 분화함을 알게 되었는데, 크게 보면 이전에 용산문화로 불리던 시기의 문화들이다. [주] 먼저 客省庄지도2期文化는 陝西龍山文化라고도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섬서성의 渭河 중하류에 주로 분포한다. 토기는 주로 회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중심이고 소량의 흑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와 홍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존재한다. 이 단계에 .의 다리를 제작하는데에 처음으로 模制방식이 등장한다. 문양은 繩文과 籃文이 가장 보편적이다. 기종은 매우 다양화하여 취사기로서 .이 가장 일반화하고 斝, 鬹, 鼎 등이 있다. 이외에도 盉, 豆, 罐 등 다양한 기종이 존재한다.
    하남성(豫) 서부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三里橋2期文化는 하남용산문화의 하나로 토기는 기본적으로 客省庄2期文化와 유사한 점이 많다. 황하의 지류인 산서성 汾河 하류에 분포하는 陶寺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유형은 특히 이른 단계에 釜爐로 불리는 솥과 화로가 하나로 제작된 특징적인 토기가 유행하며 늦은 단계에는 이 대신 甗으로 불리는 취사기(시루와 솥이 하나로 제작된 토기)가 새로 등장한다. 문양은 주로 繩文과 籃文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용산문화단계의 제 문화들은 대체로 지금부터 약 4500년~4000년 사이에 존재한 문화들이다.

    ② 황하 중류 2 (豫中地區)
    황하 중류지역 중 하남성 중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또하나의 개별 문화권을 형성하는데 裵李崗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대하촌문화지도-진왕채유형-王灣유형의 순으로 전개된다. 배리강문화는 鄭州 이남의 豫中지구에 가장 밀집분포하며 토기는 泥質 또는 사질의 홍도가 가장 많다. 대부분은 무문양이며, 문양이 시문된 경우는 점열문, 점열지자문, 침선문 등이 소량 존재한다. 대표적 기형은 원저나 평저의 발, 완, 삼족발, 쌍이호, 정 등이 있고 쌍이호의 수량이 많다. 대략 기원전 5400~4900년 사이에 존재했던 문화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大河村 문화의 토기는 역시 홍도 위주이며, 표면은 마연되고 무문양인 것이 많다. 채도가 일정량 존재하는데, 흰 바탕에 검은 색으로 호선삼각, 원점문 등 다양한 무늬를 시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 기형은 정, 분, 발, 완, 첨저병, 관, 그릇받침 등이며 솥모양 정, 내만하는 홍정발 등이 특징적이다. 늦은 시기가 되면 고배나 시루 등이 등장한다. 배리강문화가 알려지기 전에는 앙소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지금은 배리강문화에서 변화, 발전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秦王寨유형은 대하촌문화에서 발전한 것으로, 토기는 역시 홍도가 많고, 그 다음은 회도가 차지한다. 람문과 루공문 등 새로운 문양이 등장한다. 이 시기에는 채도가 많아지는데, 흰바탕에 붉은색과 흑색으로 문양을 시문한 예가 압도적이다. 채도 문양은 그물무늬, 삼각문, 동심원문, X자문, 별무늬 등 다양하다. 대표기형은 정, 시루, 발, 분, 관, 호 등으로 외반구연의 정이나 동체부가 꺾인 분, 채도관 등이 특징적이다. 늦은 시기로 갈수록 회도가 많아지고 채도가 줄어들며 背壺, 盉(주구 달린 토기) 등 신기종이 출현한다. 지금부터 5000~4500년 사이에 존재한 문화로 앙소문화 서왕촌 유형과 병행한다.
    용산문화시기에 해당하는 왕만유형의 토기는 회도가 위주이고 소량의 흑도가 등장한다. 토기의 제법도 상당히 발전해 물레를 사용하거나 거푸집을 사용한 예들도 나타난다. 문양은 승문, 람문, 격자문 등이다. 기존의 기형 외에 새로이 斝, 鬹 등이 등장한다. 왕만유형은 二里頭위키백과지도문화로 이어지는데, 왕만유형의 늦은 단계부터 夏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다.

    ③ 황하 하류 (豫北, 冀南, 冀中, 山東)
    황하 하류지역은 태행산맥 동쪽지역을 말하며 황하의 좌안과 우안으로 문화구계가 크게 양분된다. 좌안은 남장두 [주] 지도 -자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北福地1期문화)-后岡1기-大司空1기-후강2기문화의 흐름이, 우안은 산동(동방)문화구로 后李위키백과지도-北辛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大汶口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山東龍山 文化의 흐름이 있다.
    황하 좌안 전기를 대표하는 磁山문화는 예중지역의 배리강 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아 처음에는 같은 문화로 묶어보려는 시각도 있었으나 현재는 독립된 문화로 보고 있다. 주로 하북성 남부와 하남성 북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토기는 사질의 갈색도가 가장 일반적이다. 독특한 평저의 盂와 토기받침(枝架)이 특징적이다. 그 외 관, 盤 등이 있다. 무문이 많으나 문양 있는 토기들 중에는 승문이 대표적이다. 늦은 시기(자산 2기)가 되면 배리강문화 토기와 유사한 삼족발, 쌍이호 등이 증가한다. 최근 자산문화 분포지구의 북쪽에서 北福地1期문화로 불리는 문화가 확인되고 있는데 자산문화와 유사하다. 사실상 북복지, 자산문화의 독특한 平底盆(盂)은 큰 틀에서는 北方筒型罐 문화계통 중의 하나라 볼 수도 있다.
    자산문화에 이어지는 중기문화로는 后岡1기, 大司空1기문화가 있다. 后岡1기문화 토기는 홍도가 위주인 점에서 이전과 차이가 나며, 회전판을 이용한 정면이 보편화된다. 무문양이 많으며 문양 중에는 선문, 자돌문, 덧무늬 등이 있다. 소량의 채도가 나타나는데 주로 구연부에 붉은 색의 띠를 넓게 돌리거나[紅頂碗] 집선문 형태의 것이 많다. 대표기형은 紅頂碗, 발, 관, 장경병, 罐形鼎 등이 있다. 이른 시기에는 자산문화 요소인 盂, 支架, 삼족발 등이 이어지나, 늦은 시기로 가면서 이들은 점차 사라지고 시루, 고배 등이 새로이 등장한다. 후강1기문화는 대략 앙소문화 사가유형에 상당하는데 5700~5500 BP정도의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다.
    이어지는 大司空1期 文化는 회도가 위주이며 물레를 이용한 정면이 보편화된다. 표면은 마연한 무문이 위주이다. 문양은 람문 위주이며 이외 승문,격자문 등이 있다. 채도가 약간 남아 있으며 주로 붉은 색으로 문양을 시문한다. 채도 문양은 호선삼각문, 곡선문 등이 주류이다. 기형은 내만, 외반의 발, 완, 절복분, 고령관 등이 특징적이다.
    후기를 대표하는 后岡 2期文化는 회도가 위주이며 제도기술도 발전해 물레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사용, 거푸집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용이 많아진다. 문양은 승문이 가장 많고 그 외 람문, 격자문 등이 있다. 기형은 주로 기존의 것에 더해 새로이 斝, 甗, 鬹 등이 등장한다. 기형상 왕만3기나 산동용산문화와 유사한 것이 많다.
    현재의 산동성 지역은 전술했듯이 后李-北辛-大汶口-山東龍山 文化로 신석기문화가 전개된다. 이 지역 전기는 后李, 北辛문화로 대별될 수 있는데, 후이문화는 주로 태기산맥 북쪽에 분포한다. 토기는 정선되지 못한 태토로 만들어졌으며 갈색도 위주이다. 기형은 주로 원저가 많으며 삼족기는 보이지 않는다. 원저의 심발, 소호 토제, 支脚 등이 특징적이다. 대부분 문양이 없고 일부 덧무늬나 승문이 보인다. 7410±80, 7905±90 BP(미보정)등의 절대연대가 있다.
    북신문화는 주로 태기산맥 남측과 서측에 분포한다. 사질갈색도가 가장 일반적이다. 소량의 니질도는 홍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많다. 기형은 외반 또는 내만의 첨원저정, 지좌, 쌍이호, 발, 분, 작은 삼족이 달린 발이나 부가 있다. 문양은 수직이나 사선의 덧무늬, 능형압인문, 침선문 등이 있다. 채도는 홍정발이 있을 뿐이다. 대략 6700~5600BP의 연대를 가지고 있다.
    산동의 중기를 대표하는 대문구문화는 산동 중남부에 주로 분포하며 이외에도 강소성 북부, 안휘성 북부까지도 분포하며 주변지역에 많은 영향을 끼친 강력한 문화이다. 토기는 홍도 위주이며 회도도 많다. 정, 발, 분, 완, 호, 고배, 고형배, 관, 규 등의 기형이 많다. 특히 각종 형태의 정과 고형배, 대구존, 루공두 등은 매우 특징적이다. 대문구문화의 이른 시기에는 채도가 많은데, 원점문, 호선문, 타래문 등이 대표적이며 앙소문화 묘저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유형과 유사점이 많다. 대문구문화 후기에는 제도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두께 1~2㎜에 불과한 매우 얇은 마연흑도가 등장하며 회도가 일반화되고 물레 사용이 보편화한다. 후기의 기형으로는 대족규(袋足鬹), 화, 배호, 고병배(高柄杯) 등이 특징적이다. 대문구문화는 기원전 4300~2200년 정도의 절대연대를 가진다.
    도면 3 대문구문화의 토기(中国社会科学院考古硏究所, 2010)
    산동성의 후기를 대표하는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는 흑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와 회도를 위주로 하는데, 이미 1920년대에 존재가 알려진 후 주변지역의 유사한 문화들이 각종 유형의 용산문화로 불리기도 하였다(하남용산, 섬서용산, 호북용산, 절강용산문화 등). 이들에 대비해 산동용산문화는 전형용산문화로 불리기도 한다. 전형용산문화는 산동성 전역, 절강과 안휘성의 북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토기는 물레사용이 매우 발달하고 전체적인 조형감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마연흑도는 용산문화를 대표하는 기물이다. 주요기형은 분형정, 관형정, 삼환족반, 고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난각고병배, 규, 언, 화 등이며 난각흑도는 선사시대 제도기술 발전의 최정점에 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우수하다. 삼족기가 주된 기종이며, 이외 권족기, 평저기 등이 다음을 차지한다. 주로 무문양이 많다.

    ④ 황하 상류
    감숙성과 청해성을 중심으로 하는 황하 상류지역의 신석기문화는 크게 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와 제가문화(齊家文化)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로 대별된다. 감숙성의 동부는 마가요문화에 앞서는 앙소문화 단계(반파 및 묘저구 유형)의 유적들이 존재하며 대지만유적에서는 앙소문화에 앞서는 대지만1기문화(위하 중류역의 노관태문화에 해당)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들 마가요 문화에 앞서는 유적들은 기본적으로 황하중류의 문화들과 같은 양상으로 취급될 수 있다. 따라서 감청지구의 독특한 신석기문화는 마가요문화 단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주] 감청지역에서는 동부지역에 상대적으로 이른 단계의 유적들이 존재하고(대지만, 앙소문화 반파유형, 묘저구유형, 마가요문화 석령하유형) 서쪽으로 갈수록 늦은 단계의 유적들이 존재하는 분포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앙소문화의 채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가 황하중류에서 서쪽으로 확산되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이해되고 있는 바, 20세기 초반에 제기되었던 채도문화 동진설(東進說)을 반박하는 주요 논거로 사용되고 있다.
    마가요문화의 토기는 다시 석령하유형-마가요유형-반산유형-마창유형으로 나뉜다. 석령하유형은 마가요문화의 조기단계로 감숙성 동부에 주로 분포하며 토기는 니질 홍도 위주이다. 문양은 승문, 현문, 획문, 부가퇴문 등이다. 채도는 크게 기하문과 동물문으로 나뉘는데 기하문은 각종 선문,파랑문, 연호문 등 다양하며, 동물문은 새의 머리부분을 표현한 것이 많다. 채도는 저부 일부를 제외한 동체 전면에 시문되는 특징이 있다. 대표기종은 내만완, 분, 병, 채도관, 채도호 등이다. 삼족기류가 없다는 점에서 황하 중류와 크게 구별된다. 연대는 5140±160BP의 연대가 알려져 있다.
    마가요유형은 역시 감숙성 동부에 주로 분포하며 영하와 청해에도 일부 분포한다. 토기는 홍도 위주이며 문양은 승문 위주이다. 채도는 비교적 많은 편으로 橙黃色을 바탕으로 하고 흑색으로 문양을 시문한 것이 주류이다. 호선삼각문, 그물무늬, 소용돌이무늬 등 문양종류는 다양하며 기벽 안쪽에 채색을 한 것도 일부 존재한다. 대표기형은 분, 발, 완, 호, 관, 반 등이며 장경쌍이호, 내만소평저발, 장경병 등이 특징적이다. 채도는 장경호에 가장 많이 시문된다.
    반산유형 토기는 홍도가 가장 많고 채도 이외에는 무문이 많다. 채도는 더욱 많아지는데 [주] 흑색과 홍색을 교대로 사용하면서 각종 나선문, 능형문, 동심원문, 삼각문, 그물문 등을 그렸으며 타래문형태가 가장 많다. 대표기종은 호, 병, 관, 완, 고배 등이며 장경쌍이호, 단이관 등이 특징적이다. 마창유형 토기는 역시 홍도 위주이며 그 다음이 회도이다. 일부에 회전판을 이용한 정면양상이 보인다. 문양은 승문, 부가퇴문, 현문 등이 일반적이다. 채도는 여전히 많으며 토기 상반부에 홍색바탕에 흑색으로 문양을 그린 것이 많다. 채도문양은 기하문이 주류이며 원권문, 삼각문, 거치문 등이 많다. 대표기종은 호, 상이관, 장경호, 고배, 옹 등이다. 마창유형의 절대연대는 약 4000~3800 BP으로 마가요문화 전체는 석령하유형부터 볼 때 약 1000여년의 존속기간을 가진다.
    마가요문화의 제유형에 이어지는 제가문화는 동서상 위수상류에서 하서회랑까지, 남북상 내몽고 남부에서 한수상류에 이르기까지 분포한다. 토기는 니질과 사질의 홍도 위주이다. 문양은 승문, 람문, 획문, 부가퇴문 등이다. 채도수량은 적은 편인데 삼각문, 그물문, 능형문 등이 있다. 기형은 單耳鬲, 斝, 시루, 관, 분, 화, 고배 등으로 쌍대이관이 가장 특징적이다. 삼족기류가 소량 존재하는 것 역시 특징적이다. 절대연대는 대략 3800~3600 BP이다.
    이와 같이 황하 유역의 여러 토기문화들은 크게 보면 전기에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기종구성을 하고 있고 원저의 기형이 많으며 삼족기(발, 완 등), 관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태토는 정선되지 않은 사질의 갈도, 정선된 니질의 홍도가 병존한다. 중기에는 홍도가 위주가 되며 회도가 증가한다. 기종이 다양화하고 기형이 복잡해지며 토기제작에 있어서도 회전판을 사용하는 것이 증가한다. 채도가 가장 번성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감청지역의 채도비율이 높다. 전기에 비해 정과 부 등 취사기가 새로이 등장한다. 후기에는 회도가 일반화하고 새로이 취사기로 가, 력, 언, 규 등의 袋足을 가진 삼족기류가 등장한다. 채도는 거의 사라지는 대신 산동 용산문화에서는 난각흑도와 같은 높은 제도기술이 발휘되며 물레사용이 고도로 발전한다. 문양은 전체적으로 무문양이 많으며, 문양이 있을 경우는 주로 승문이 보편적이다. 이외에는 늦은 단계로 갈수록 격자문, 람문 등이 많아진다. 이와 같이 황하유역 제문화들은 감청지역의 마가요문화와 같이 삼족기가 없이 독자의 특징을 보여주는 곳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 독특한 토기문화를 가지고 변화하여 왔으면서도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아 변화의 방향이 유사한 길을 걷게 된다고 볼 수 있다.

     

     (2) 장강유역

     

    ① 장강 중류
    장강 중류지역이란 호북, 호남성을 중심으로 사천 동부, 강서와 강소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장강 중류지역의 신석기문화는 彭頭山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皂市하층문화와 城背溪문화-大溪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屈家岭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石家河문화지도, 靑龍泉3期문화, 桂花樹3期문화의 순으로 이어진다. 팽두산문화의 토기는 홍색이나 갈색을 띠며 태토에 벼껍질을 섞어 토기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문양은 승문 위주이며 입술부분이나 외면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기종은 쌍이호, 발, 부, 완, 지가, 분, 삼족관 등이 있는데 대부분 원저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연대는 대체로 약 8500~7500년 전이다.
    조시하층문화와 성배계문화는 동시기의 인접한 문화로 조시하층문화는 호남성의 서북, 성배계문화는 호북성의 서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조시하층문화의 토기는 협사도 위주이며 문양은 승문과 각획문이 중심이 된다. 기형은 원저가 기본이며 권족기와 평저기는 그 다음이다. 주요기형은 권족반, 평저분, 쌍이평저관, 원저관, 발, 부, 지가 등이 있다. 약 7200~7000년의 연대를 갖는다. 성배계문화 토기는 태토에 대량의 탄화물이 존재하는데 이는 벼껍질과 잎 등 초본식물을 비짐으로 넣어 불완전 연소한 결과이다. 문양은 승문, 자돌문, 각획문 위주이다. 기형은 역시 원저 위주로 원저관, 발, 권족반, 고복부, 지가 등이 있다. 연대는 7420±110BP의 측정치가 있다.
    대계문화 토기는 홍도와 흑도 위주이다. 기형은 권족기 위주이며 평저와 원저기는 그 다음이다. 부, 지좌, 정, 궤, 발, 반, 통형병, 세경호 등이 대표기종이다. 문양은 무문이 많고 채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일정수량 존재한다. 채도 문양은 관대문, 평행조문, 호선삼각문, 태양문 등 다양하다. 대계문화의 채도는 앙소문화 묘저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유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연대는 기원전 4400년~2700년 무렵이다. 굴가령문화의 토기는 이른 시기에는 흑도가 많고 늦은 단계로 가면 회도가 많아진다. 수제 이외에 윤제도 많아진다. 이제 기형은 매우 다양해져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며 난각흑도배, 삼족반, 주칠 흑도 등이 특징적이다. 문양은 무문이 일반적이다. 채도는 대계문화에 비해 증가하는데, 홍지흑채가 일반적이다. 굴가령문화의 만기가 되면 .가 등장하는데, 이는 다음 시기로 이어지는 과도적 양상을 잘 보여준다. 중원의 묘저구 2기문화에 상당하는 시기이다.
    석가하문화지도는 한수 중하류 강한평원에 분포하는데 토기는 니질회도 중심이며 문양은 람문이 가장 많다. 장편족부형정, 규, 나팔형 배 등이 대표기종이다. 청룡천3기문화는 한수 상류에, 호북 서북, 하남 서남지구에 분포하며 토기는 역시 회도 위주이다. 무문양이 많고 문양으로는 람문이 가장 많다. 채도 수량은 매우 적다. 정, 부, 규, 증 등의 취사기, 완발, 두, 반 등의 식기 등이 대표적이며 .가 새로이 출현한다. 계화수3기문화는 호북성 남부와 호남성 북부를 중심으로 분포하며 토기는 회도 위주이며 소량의 니질 황백도가 특징이다. 방격문, 람문, 승문 등의 문양이 중심이다. 삼족기와 권족기가 발달하는데 정, 규, 증, 두, 반, 존 등이 일반적이다.

    ② 장강 하류
    장강 하류의 신석기문화는 薛家崗문화, 北陰陽營문화, 태호주변의 馬家浜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松澤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良渚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항주 이남 영파, 소흥일대의 河姆渡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문화 등이 있다. 설가강문화는 호북동부에서 안휘성의 장강 북안 일대에 분포하는데 토기는 이른 시기에는 홍도가 많으나 점차 회흑도 위주로 변화한다. 주요기형은 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 증, 관, 분형두 등이며 문양은 무문이 주류이다. 늦은 단계에 甗이나 鬹가 나타난다. 연대는 기원전 3100년 전후를 중심으로 한다. 북음양영문화는 남경에서 진강 일대에 분포하는데 문양은 무문위주이며, 문양은 승문이 많다. 채도 수량이 많다. 채도문양은 삼각문, 호선문, 그물문 등이다. 기형은 삼족기와 권족기 위주인데 뿔모양의 파수가 붙은 삼족관이 큰 특징이다. 정, 부, 두, 화, 배, 존 등이 대표기종으로 정이 주요 취사기이다.
    마가빈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는 이른 시기에는 홍갈도 위주이고 만기로 가면서 협사나 니질 홍도, 회도 등이 증가하고 회전판정면이 나타나게 된다. 무문 위주이나 문양 중에는 각획문, 승문 부가퇴문 등이 있다. 부, 지가, 화, 분, 발 등이 있고 부는 동체에 요즘의 솥과 같이 부뚜막에 걸 수 있도록 돌출된 부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늦은 단계에 정, 배 등이 출현한다. 연대는 약 6900~5800년전으로 하모도문화와 병행한다. 항주 이남의 하모도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는 장강 하류의 도작농경문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토기는 협탄, 협사 흑도와 회도 중심이며 늦은 단계에 홍도가 많아진다. 태토에 벼껍질을 다량 포함하는 협탄흑도가 특징적이다. 토기 기벽이 두텁고 질이 무르며 흡수성이 강하다. 문양은 승문위주이며 이외 각획, 추가, 현문 등이 있다. 흑도의 위에 백색을 바른 채도가 특징적이다. 기형은 부, 지가, 관, 발, 반, 두 등 다양하나 부와 관이 기본적 기형이다. 대부분 원저이며 정, 화 등의 삼족기는 늦은 시기에 등장한다. 부의 구연을 화문식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 중 하나이다.
    태호지역에서 마가빈 문화에 이어지는 숭택문화 [주]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토기는 협사홍도가 이른 시기에 많고, 만기로 갈수록 흑도, 회도가 많아지게 된다. 기면은 무문이 일반적이다. 정, 부, 증 언, 관, 분, 두 등이 대표기종이며 정과 증이 합쳐진 언이 특징적이다. 연대는 5300~5000년 전 무렵이다.
    도면 4 양저문화의 토기(中国社会科学院考古硏究所, 2010)
    장강 하류를 대표하는 신석기문화 중 하나인 양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의 토기는 니질흑피도, 협사회흑도 위주로 물레를 사용해 제작하여 기형이 정치하다. 기형은 권족과 삼족기 위주이다. 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취사기로 대표적이며 중, 만기에 규가 출현한다. 이외에 귀달린 고령호, 루공두, 분, 권족반 등이 대표적이다. 연대는 5000~3700년 전 무렵이다.

     

     (3) 중국 동북 및 러시아 연해주 지역

     

    ① 요서지역
    요서지역은 요하의 중상류에 해당하며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조보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소하연문화로 이어진다. 흥륭와와 조보구문화에서는 협사갈도가 유행하며 통형관이 기본적인 기형이 된다. 무문은 거의 없고 지자문, 격자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가퇴문 등이 기면에 가득 시문된다. 조보구문화에서는 새 등의 도안이 새겨진 존형기가 큰 특징이다. 요서지역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의 토기는 협사도 이외에 니질 홍도가 많다. 기형은 통형관 위주이나 이전에 비해 깊이가 얕고 넓어진 변화가 보인다. 문양은 지자문 중심인데 점열로 성기게 시문되는 것이 특징이다. 저부에 돗자리문이 찍힌 것 역시 큰 특징이다. 니질 홍도는 매우 잘 만들어진 토기로 외면에 채색을 한다. 채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양은 삼각소용돌이문, 평행선문, 능형문 물고기문 등 다양하다. 채도 기형은 쌍이관, 장경관, 평저완, 곡복분, 발 등이 있다. 홍산문화단계까지 이 지역에서는 지자문토기의 전통이 계속 유지되며, 홍산문화단계에 채도가 등장하여 중원지역과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다.

    ② 요동, 한반도 북부, 길림, 흑룡강, 연해주 지역
    요하의 동쪽지역, 길림성 및 흑료강성 일대, 연해주 일대는 지역적으로 매우 광활하고 문화적으로도 몇 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먼저 요동과 길림성 서부 신석기문화는 크게 신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하층문화, 소주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하층문화, 후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하층문화-소주산 중층문화-소주산 상층문화 순으로 이어진다. 신락하층문화, 소주산하층문화, 후와하층문화는 기본적으로 요서지역의 흥륭와문화와 유사한 지자문토기문화를 소유한 문화들이며 지역적으로 각각 요중, 요동반도 남단, 압록강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토기는 협사갈도 위주이며, 기형은 통형관이 압도적으로 많고 사구기와 소량의 발 등이 있다. 문양은 지자문이 중심을 이루며, 그 외 집선문, 각획문, 현문 등이 있다. 소주산중층문화군은 지자문토기전통이 소멸하고 각획문(침선문) 중심의 토기문화가 유행한 시기이다. 토기는 협사갈도 위주이고 기형은 역시 통형관 위주이다. 문양은 지자문이 사라지는 대신 격자문, 어골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문, 자돌문 등의 각종 각획문이 유행한다. 이 단계에 요동반도는 산동반도의 대문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 문물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소량의 채도가 대표적이다. 채도는 니질홍도에 흑채한 것으로 문양은 호선삼각문이 있다. 소주산상층문화는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분포하며 토기는 협사흑갈도 위주이다. 소량의 흑도가 있다. 문양은 각획문, 부가퇴문, 현문 등이 있으나 무문이 많다. 이때는 산동반도의 용산문화 영향이 강렬하게 되어 산동용산문화기물들이 많이 나타난다. 루공두, 삼환족반, 분형정, 규, 배 등이 대표적이다.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북부 송눈평원 일대에는 신석기전기문화로 앙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계 신석기문화가 알려져 있다. 토기는 협사황갈도 위주이며 태토에 조개가루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토기문양은 부가퇴문이 대표적이며 각획삼각문, 승문 등이 있다. 기형은 관과 분이 기본으로 매우 간단한 구성이다. 흑룡강성 동부 삼강평원 일대에는 신석기전기문화로 신개류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알려져 있다. 토기는 협사회갈도 위주이며 문양은 기본적으로 눌러 찍어 시문(압날문)한 것으로 능형문, 삼각문, 어린문 등을 다양하게 복합하여 시문하였다. 이러한 문양은 소위 아무르편목문이라 불리는 것이다. 기형은 통형관과 발이 기본으로 간단하다. 이 지역에서 신석기 중후기가 되면 역시 압날문이 사라지고 침선(각획)에 의한 어골문, 사선문, 타래문, 뇌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이 유행하게 된다. 연해주 지역은 삼강평원과 유사한 압날문에 의한 아무르편목문 문양이 주류를 이루는 루드나야지도문화, 압날에 의한 점선열문을 주체로 하는 두만강 하류의 보이스만문화 등 전기의 문화가 나타난다. 중, 후기에는 침선에 의한 어골문, 타래문, 뇌문 등을 주체로 하는 자이사노프카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가 나타난다. 자이사노프카문화는 한반도 북부의 서포항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포항유적지도 3, 4기 문화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이 지역들 토기 기형은 모두 통형관을 기본으로 하며, 발과 완 등 간단한 구성을 하고 있다. 권족기나 삼족기와 같은 기형은 발달하지 않는다.

     

     (4) 한반도 지역

     

    한반도의 신석기토기문화는 중국과 달리 각종 ‘문화’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 않다. 그 대신 토기의 여러 특징에 근거하여 지역을 구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는 크게 서북부지역, 동북부지역, 중서부지역, 강원영동지역, 남부내륙 및 남해안지역(이하 남부지역)으로 세분되어 설명되고 있다. 서북부지역과 동북부지역은 토기상에서 각각 요동지역, 길림 및 연해주지역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히 언급하고 중서부 이남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시기구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크게 전-중-후기로 대별하여 살펴본다.
    도면 5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한국고고학회, 2007)

    ① 서북지역
    서북지역은 주로 압록강 중하류에서 청천강 이북지역에 해당된다. 기본적으로 서북지역은 요녕지역, 특히 요동지역과 유사한 문화권이므로 평저토기 전통지역에 해당된다. 전기에는 요동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자문토기가 유행한다. 중기가 되면 침선문계 토기가 나타나는데 요동의 마성자, 후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유적등과 같은 횡침선을 돌린 토기 등이 유행한다. 중기의 후반에는 어골문이나 격자문, 각종 침선문이 유행한다. 후기에는 요하 하류 심양지역에 중심분포를 두고 있는 편보유형 계통의 덧무늬토기가 이른 단계에 나타나고(당산 상층), 마지막 단계에는 신암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신암리지도1식 토기로 대표되는 장경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를 특징으로 하는 토기문화가 발달한다. 신암리1식 토기의 문양은 각종 기하학문이 많은데 특히 번개무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가장 특징적이다. 이 역시 압록강 대안의 북구문화 등과 유사점이 많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서북지역은 요동지역과 같은 계통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② 동북지역
    동북지역은 두만강 중하류지역에 해당되는데, 이 지역은 서포항 유적의 조사를 통해 편년이 확립되었다. 이 지역 토기는 모두 협사갈도 위주이며 기형 역시 통형관(심발)을 주체로 하고 그 외 발, 완, 호 등이 나타나는 단순한 구성이다. 모두 평저토기 위주이다. 크게 서포항 1, 2기를 전기, 3기를 중기, 4기를 후기로 볼 수 있다. 서포항 1, 2기는 연해주의 보이스만문화와 기본적으로 같다. 서포항 3기가 되면 침선에 의한 어골문이 유행하고, 타래문의 호형토기도 등장한다. 타래문의 등장은 요서지역의 채도 영향으로 보기도 한다. 4기가 되면 무문양이 증가하는 가운데, 번개무늬가 등장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서북지역과 마찬가지로 번개무늬는 후기를 대표하는 문양 중 하나이다.

    ③ 중서부지역
    중서부지역은 평남과 황해도, 서울, 경기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서북 및 동북지역과 달리 첨저토기문화가 번성한 지역이다. 암사동유적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토기는 일부 소형토기를 제외하면 모두 밑이 뾰족한 첨저토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토기는 사질점토계 태토가 중심이며 기형은 기본적으로 포탄형의 심발과 발, 소형 평저발 등이 있다. 문양은 전기에는 구연, 동체, 저부에 각각 다른 문양을 시문하는 구분계 토기가 유행하나 중,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엄격한 시문규칙이 사라지고 기면전체에 동일한 문양을 시문하는 동일계 토기가 늘어난다. 또한 후기로 갈수록 무문양이 많아지는 경향이 현저하다. 문양종류는 단사선문, 점열문, 어골문, 격자문, 타래문 등이나 어골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④ 강원영동지역
    강원영동지역은 신석기전기에 융기문토기와 오산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재청지도식평저토기, 중, 후기에는 첨저의 빗살무늬토기가 유행한다. 융기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는 평저를 기본으로 하며 동체부에 평행선문, 삼각집선문, 두립문 등을 문양을 시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종은 심발과 발, 호 등이 있다. 오산리식토기는 역시 평저를 기본으로 하며, 문양은 주로 기면 상부에 시문된다. 시문방식은 누르거나 찍은 것인데, 점열, 직선, 삼각문 등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시문한 것이 특징이다. 기형은 저부가 좁고 아가리가 넓은 심발이 중심이고 이외 발과 호류가 있다. 이 지역 중기 이후에는 중서부지역 집단의 이주가 이루어져 중서부지역과 동일한 토기문화가 등장한다. 즉 구분문계의 뾰족밑 침선문토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이러한 침선문토기가 남해안과 유사해져 태선문계(후술)토기를 거쳐 점차 문양이 사라지는 후기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⑤ 남부지역
    남부지역 전기는 융기문토기와 영선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지도식토기를 특징으로 한다. 융기문토기는 현재까지 남부지역에서 가장 이른 단계의 토기문화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해안 및 도서지역, 제주도, 강원 영동지역까지 분포한다. 기면에 점토띠를 덧붙여 여러 가지 문양을 시문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문양은 주로 동체부를 중심으로 시문되는데 크게 평행융기문과 기하학적 융기문으로 나뉜다. 기형은 평저 위주이며 주로 심발과 발, 호 등이 있는데, 심발류가 많다.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6000~4500년 정도이다.
    융기문토기의 다음 단계인 영선동식토기는 주로 전라와 경상 해안지역에 분포하며 일부는 금강 하구의 서해안까지도 나타난다. 영선동식토기는 덧무늬와는 전혀 달리 기면에 시문구를 찌르거나 눌러 당겨 각종의 기하학문을 시문한 것이 특징이다. 문양은 주로 횡주어골문(생선뼈무늬), 격자문, 손톱무늬 등이 많고 대부분 구연부에만 시문된다. 구순부(입술부분)에 도구를 이용해 눌러 각목을 시문한 것이 많이 보이는 것이 큰 특징이다. 기형은 주로 원저가 많으며 심발, 발, 호가 중심이다. 목부분에만 어골문 등을 시문한 장경의 소형호가 이 단계의 특징적인 토기 중 하나이다.
    남부지역 중기는 수가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재청지도1식토기를 특징으로 한다. 남해안은 물론 경상, 전라도의 남부내륙에도 분포한다. 수가리1식토기는 첨, 원저의 기형을 큰 특징으로 하며 구연부와 동체 이하에 서로 다른 문양을 시문하여 결과적으로 기면 전체에 문양을 시문하는 것이 이전과 다른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구연부에는 시문구를 눌러 시문한 단사선문, 침선에 의한 삼각 및 능형집선문, 제형집선문 등이, 동체부에는 거의 침선에 의한 횡주어골문이 시문된다. 수가리 1식 단계의 침선문은 굵기가 매우 굵고 선의 양단을 깊게 눌러 문양효과가 뚜렷한 편인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태선침선문토기로 불리기도 한다. 이 단계에는 대형의 저장용 토기가 증가하며 기형은 심발, 발, 천발, 호로 구성된다.
    남부지역 후기는 수가리2, 3식 토기를 특징으로 한다. 이 단계의 큰 특징은 문양이 서서히 퇴화되어 결국 무문양화한다는 점이다. 수가리2식 단계에는 구연부에만 집선문이나 격자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시문하는 것이 특징이며 문양이 중기에 비해 가늘어지고 정연함이 퇴색된다. 이 단계에 남부내륙지역에서는 봉계리식토기로 불리는 외반구연에 동체상부까지만 문양(주로 격자문이나 점열문)을 시문한 토기가 중심적으로 분포한다. 수가리 3식 단계가 되면 사질계 태토가 유행하게 되고 토기색도 회색조의 어두운 것이 많아진다. 대부분의 문양은 사라지며 구연부에 일부 사단선문, 장사선문 등만이 잔존한다. 이 단계에는 구연부에 점토띠를 한겹 더 둘러싼 이중구연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유행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상과 같이 한반도 지역은 중국 동북지역과 같은 평저토기문화권에 해당하는 서북 및 동북지역, 첨저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 이남지역으로 크게 양분될 수 있다. 중서부 이남지역도 전기단계에는 일부 평저토기가 존재하나 중기 이후에는 시종일관 첨저토기가 유행하는 것이다. 이는 주변지역의 토기문화가 대부분 평저토기임에 비추어볼 때 특징적인 것이다. 니질도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주로 사질점토 태토가 압도적이며, 기형적으로도 다양하지 않고 주로 심발과 발, 호라고 하는 기본세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도 특징이다. 문양은 이른 시기에는 다양하고 정연하게 시문되나 점차 무문양화되어간다. 이러한 점은 중국동북지역과 유사한 양상이기도 하다.

     

     (5) 일본열도

     

    일본열도의 신석기시대에 상당하는 수렵채집사회 단계는 죠몽시대[繩文時代]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죠몽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로 불리는 토기의 특징에서 따온 것이다. 죠몽[繩文]이란 새끼줄 문양이라는 뜻으로 토기면에 꼰 새끼줄을 누르거나 굴려서 문양을 시문한 토기를 죠몽토기라 한다. 현재는 죠몽토기는 죠몽시대에 속하는 토기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꼭 새끼줄문이 시문되지 않더라도 죠몽토기의 범위 안에서 다루고 있다.
    죠몽토기는 앞장에서 설명한 초창기를 시작으로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만기의 여섯 단계로 시기 구분되고 있다. 이것은 주로 문양의 변화를 기초로 한 것이며 여기에 형태와 기종변화를 더해 시기에 따른 토기문화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고 있다.
    초창기의 무문양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무문양토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융기선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조형문토기, 다승문계 토기를 이어 죠몽 조기의 토기문화가 전개된다. 승문은 초창기 후반부에 처음으로 나타나지만 조기에 발전하기 시작한다. 초창기의 승문이 눌러 시문한 것[押壓繩文]인데 비해 조기를 대표하는 연사문토기(撚絲文土器)는 꼰 실을 막대에 감아 굴려 시문한 것이다. 이외에도 꼰 실을 그대로 토기면에 굴려 시문하는 죠몽토기 특유의 회전승문도 조기에 나타난다. 이 시기의 토기로는 이외에도 전국적 분포를 보이는 압형문토기(押型文土器)가 있다. 이 토기는 둥근 막대모양의 시문도구에 마름모나 타원, 삼각형 등 여러가지 무늬를 새긴 후 이것을 토기면에 굴려 문양을 시문한 토기이다. 조기의 토기는 주로 밑이 뾰족한 첨저토기가 많다. 이 시기까지는 아직 토기의 형태도 단순하고 기종도 깊은 바리[深鉢]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하나로 단순하다. 토기가 아직은 주로 음식조리에만 사용되던 단계이다. 기원전 7000~5000년 사이에 해당된다.
    전기는 다양한 승문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로 진정한 의미의 죠몽토기가 성립되는 단계이다. 죠몽토기에 특징적인 파상구연, 즉 구연부가 크게 굴곡진 형태도 조기에 등장하나 전기에 본격화한다. 동북지역을 중심으로는 원통토기가 발달하고 관동에서는 다양한 승문이 장식된다. 큐슈에서는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융선문계의 도도로키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식토기나 침선계의 소바타토기가 발달한다. 소바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토기는 기형과 문양, 태토 등에서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죠몽전기단계에는 일부 원저도 있지만 평저토기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며 기종도 배식용의 소형 바리나 접시 등이 추가되어 다양화한다. 기원전 5000~3000년 사이에 해당된다.
    중기는 죠몽토기가 가장 번성한 시기이다. 문양면에서도 매우 호화롭고 입체적인 문양이 두드러지며 조형미가 뛰어난, 가장 죠몽적인 토기문화가 개화한 시기이다. 동일본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러한 토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발현된다. 동북북부의 원통상층식(圓筒上層式), 관동 동부의 가소리(加曾里 [주] )E식문화유산DB(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토기들은 구연부에 인면이나 뱀 등의 동물문, 각종의 화려한 입체장식이 베풀어진다. 이러한 토기들중 가장 장식성이 뛰어난 것은 니이가타현을 중심으로 발달한 화염문토기문화유산DB(일본)이다.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듯한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은 죠몽토기 발전의 정점을 보여준다. 서일본지역은 상대적으로 장식성이 덜한 후나모토식[船元式] 토기가 긴키에서 큐슈까지 널리 퍼진다. 중기토기는 조리용의 심발형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이외에도 향로나 주구토기와 같은 다양한 기종이 만들어진다.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에 해당한다.
    도면 6 일본의 죠몽토기(화염문토기)
    후기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중기토기에 비해 훨씬 정적이고 평면적인 토기가 유행한다. 마소승문(磨消繩文)문화유산DB(일본)으로 불리는 흑색의 토기가 대표적인데 동일본에서 서일본에 걸쳐 전역에서 유행한다. 마소승문은 침선으로 구획된 문양의 안이나 밖에 승문을 시문하고 나머지 부분은 마연하여 윤을 낸 것으로 문양의 대비가 선명하다. 그러나 점차 문양이 구연이나 동체상부로 국한되고 무문양토기 부위가 늘어나 단순화하는 분위기가 현저하다. 동일본에서는 주전자형 토기 등 다양한 기종이 계속 만들어지나 서일본에서는 심발과 발 등으로 기종이 단순화한다. 이러한 토기문화의 변화 또는 쇠퇴는 기후 한랭화에 따른 식료자원의 변동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실제 유적의 수나 규모는 중기에 비해 후기에 급감하는 현상을 보인다.
    죠몽토기의 마지막 단계인 만기는 동일본과 서일본에 다른 토기문화가 전개되는데, 동일본에서는 동북지방의 가메가오카문화유산DB(일본)지도식[龜ケ岡式] 토기가 대표적이다. 마소승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구름무늬 등의 정교하고 세련된 문양들을 시문한 토기가 유행한다. 주구토기나 동물모양 토기, 칠을 입히거나 채색한 토기 등 다양한 토기가 만들어진다. 서일본에서는 무문양화가 크게 진전되어 두줄의 점토띠를 구연부에 두른 돌대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발달한다. 쿠로카와식[黑川式]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나 야마노테라식[山ノ寺式]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유우스식[夜臼式]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토기가 그것이다. 이시기는 이미 한반도가 무문토기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로 진입한 시기로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공열문토기(孔列文土器)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북부 큐슈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 단계를 끝으로 죠몽문화는 종말을 고하고 농경사회로 이행하게 되는 바 새로운 시대인 야요이시대가 그것이다.
     
    주 007
    송택문화
    주 008
    加曾利
    주 003
    최근에는 중국내에서는 용산문화단계에 純銅 제품이 사용되는 점을 근거로 이 시기를 신석기시대에서 분리하여 銅石倂用期로 설정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주 004
    Ⅲ장 참조
    주 005
    물론 마가요문화의 제유형들을 앙소문화 계통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마가요문화에 감청지역만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다.
    주 006
    일부 무덤유적에서는 출토유물의 80%를 차지하기도 한다. 대체로 많을 경우 30~50%에 달한다.


  • 묘장과 사회발전

     
     

    4. 묘장과 사회발전

     

    死者를 매장하는 방식(葬法)은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관의 종류에 따라 목관, 석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옹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으로 나뉘기도 하고 시신을 묻는 방식에 따라서는 앙신직지, 측신굴지, 부신 등으로 나뉘기도 하며, 재장 여부에 따라 일차장, 이차장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관을 둘러싼 또 다른 시설(곽)의 유무에 따라 목관, 목곽, 석관, 석곽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무덤의 종류 역시 매우 다양한데, 기본적으로는 매장주체부에 돌을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크게 토광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목관포함)와 석관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로 구분될 수 있다.

     

     1) 중국

     

    무덤의 형식, 즉 묘제를 살펴보면 중국 황하유역의 대부분 지역은 전시기 동안 토광묘가 주류를 이루며, 유아의 경우는 옹관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를 많이 사용한다. 신석기시대에 확인된 가장 이른 무덤유적으로는 초기단계에 해당하는 북경 동호림유적이 있다. 약 1만 년 전 무렵에 해당되는 이 유적에서는 몸을 구부려 묻은 굴장의 인골이 별다른 시설이 없는 구덩이에서 발견되었으며 조개목걸이와 석인(石刃)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을 박아넣은 골도(骨刀)가 부장품으로 확인되었다.
    신석기 전기가 되면 각 지역 고고문화들 내에서 수많은 무덤유적이 확인된다. 대지만지도문화에서는 앙신직지의 토광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유아용 옹관묘도 확인된다. 묘지는 취락 가까이에 위치하며 규모는 크지 않다. 무덤은 일정 구역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배리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에서는 현재까지 700여 기 이상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토광묘이며 배리강유적에서 보듯이 배치가 규칙적이다. 부장품은 석산이나 석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석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우리역사넷, 갈돌, 갈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이 주류를 이룬다. 북방지구의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에서는 토광묘 이외에 주거지 바닥에 매장을 하는 거실장(居室葬)이 확인되는 점이 특이하다. 이 중에는 돼지를 함께 묻은 것도 확인된다. 전기단계 장강유역의 팽두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도 이미 취락과 분리된 공동묘지가 등장하는데, 토광묘 이외에 이차장의 양상도 확인되었다. 부장품은 소량의 토기가 대부분이다. 전기단계 무덤의 양상을 통해 볼 때 부장품의 격차는 별로 크지 않다. 반면 성에 따른 부장품의 차이는 두드러져 남성에게는 주로 석부나 석산 등의 농업관련도구, 여성에게는 갈돌과 갈판 등 식료처리구가 많이 부장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직 사회적 위계의 분화가 두드러지지 않은 반면 성에 따른 노동분업은 분명하게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중기의 앙소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관련 무덤은 이미 2,500기 이상 조사되었다. 대부분은 토광묘이며 옹관묘는 1/4 정도를 차지한다. 토광묘는 주로 성인, 옹관묘는 유아의 무덤으로 사용된다. 공동묘지는 취락 가까이에 위치하는데 앙소문화 반파유형지도의 대표유적인 강채유적지도에서는 환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둘러싸인 취락의 바깥쪽으로 씨족 공동묘지가 174기 확인되었으며 북수령지도유적에서는 370여기의 무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무덤 부장품은 많지 않아 몇 개의 토기와 석기가 부장되는 것이 보통이다. 매장방식은 신전장, 굴장 등 다양하나 주로 신전장이 많다. 사가촌에서는 4~51인의 인골을 추려 재매장한 이차장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후강1기문화의 서수파유적에서는 인골 좌우에 많은 조개로 용과 호랑이를 묘사한 무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무덤출토 인골 감정결과에 의하면 앙소문화 시기 성인평균수명은 약 30세 전후이며, 영아사망률은 40%에 육박하였고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산동의 북신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에서는 토광묘와 함께 석관묘가 유행하는 점이 특징적이고 발치풍습, 돼지부장 등의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다. 북신문화에 이은 대문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묘장은 2,200여 기가 조사되었는데, 왕인 유적 한곳에서만 900기 가까운 무덤이 조사되었다. 개인의 토광묘 위주이며 신전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다인장(多人葬)도 상당수 확인된다. 돼지머리와 개를 부장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부장품은 많지 않지만 대문구문화 후기로 갈수록 무덤간 격차가 두드러져 일부 무덤에서는 160건 이상의 부장품이 확인되고 순장이 확인되기도 한다. 요서의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는 적석총이 유명한데 우하량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유적에서는 세 지점에서 여러기의 원형 또는 방형 적석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우하량 2지점에서는 동서 150m, 남북 80m의 범위 안에 6기의 적석총이 축조되어 있다. 각 적석총에는 석관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복수로 확인되며 그 중 일부에서는 다량의 옥기를 부장한 인골이 확인되기도 한다. 우하량에서는 여신묘(女神廟)로 불리는 중심적 제사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도 확인된 바 있다.
    장강유역에서는 대계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 1,000기 가까운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토광묘 위주에 단인장 위주이다. 매장방식은 신전장과 굴장이 있는데 다양한 굴장의 유행은 대계문화의 특징이다. 굴가령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역시 토광묘 위주이나 신전장 위주이고 굴장은 소수라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무덤에서는 옥기와 석기, 토기 등 100기가 넘는 유물이 부장되어 무덤간 격차가 확인된다. 장강하류의 마가빈문화 역시 토광묘 위주이나 시신을 엎어서 묻는 부신장(俯身葬)이 유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장강하류에서도 하모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나 마가빈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는 빈부격차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숭택(崧澤)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단계가 되면 무덤 부장품에서 격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로 대표되는 신석기 후기가 되면 황하유역에서는 이전까지 보이던 다인합장묘는 사라지고 개인묘나 남녀합장묘가 증가한다. 대부분의 유적에서 무덤간 격차가 명확하여 대, 중, 소로 갈라지며 대형묘에는 호화로운 부장품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 묻히게 된다. 산서 도사유적에서는 1,300여기의 무덤이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일부 대형묘는 관과 곽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내에 주사(朱砂)가 발라져 있으며 채회도, 채회목기, 옥석예기, 돼지 등 풍부하고 화려한 부장품 이외에 석경(石磬), 토제북[土鼓]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여타 무덤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악기가 부장되거나 순장의 존재도 확인되는 등 수장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일반 소형 무덤이 부장품이 거의 없는 것과 비교할 때 사회적 빈부 및 권력 격차가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빈부격차의 존재는 이미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되었다는 반증이며 전기이래 발달해 온 농업기술의 진전과 이에 따른 생산성 증가가 경제적 뒷받침이 되었다.
    한편 용산문화 단계에는 황하유역에서 회갱 내에 마치 버려지듯이 묻혀진 인골이 확인되는가 하면(섬서 객성장 2기의 객성장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목이나 허리가 절단된 채 매장되거나 두피가 벗겨진 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확인되는 등(예북 후강2기의 洞.유적) 전쟁이나 의도적 살해와 관련된듯한 흔적들이 증가한다. 이는 집단간 긴장관계의 고조, 즉 사회의 복합화에 따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석기 후기의 장강 중류의 석가하(石家河)지도문화 묘장은 약 200여 기가 조사되었는데, 주로 토광묘와 옹관묘이다. 초가옥척(肖家屋脊)지도 유적 7호 무덤과 같이 100점이 넘는 석기, 다량의 토기가 부장된 대형묘들과 중소형 묘들이 명확히 구별된다. 옹관묘는 성인과 아동 모두에 사용된다. 일부 무덤에서는 머리가 없는 인골도 확인되어 전쟁 등 사회적 긴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양자강 하류 신석기 후기를 대표하는 양저(良渚)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문화 묘장은 약 500기를 상회하는데, 인공적으로 쌓은 토대 위에 토광묘를 설치한 고대식(高臺式)과 평지에 설치한 평지식 토광묘가 있다. 무덤은 규모와 부장품 등에서 최소한 4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최고위급 무덤은 고대식이며 제단과 무덤이 함께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무덤에는 다량의 미려한 옥기(琮, 璧, 璜 등)가 주로 부장된다. 고급무덤인 요산(瑤山)지도 7호 무덤에서는 148건의 옥기가 부장되기도 하였다.
    차상위급 묘장은 최고위급 묘장과 유사하나 옥의 부장에서 종이나 벽이 주류를 이루어 간략화된다. 제3급 묘장은 고대식과 평지식이 모두 보이며 소량의 옥기만이 부장된다. 최하위급 묘장은 옥기부장이 없고 일상용 토기만이 부장된다. 양저문화의 최고위급 묘장에서는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다량의 옥예기(玉禮器)와 함께 군사적 권위를 상징하는 옥월(玉鉞) 등이 함께 출토되어 이들이 세속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함께 가지고 있는 지배층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장강유역도 신석기 후기가 되면 사회 내부의 위계화와 사회적 긴장관계가 심화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도면 7 양저문화의 대형무덤(中国社会科学院考古硏究所, 2010)

     

     2) 한반도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무덤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동북의 웅기 송평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과 같은 토광묘, 남부지역 울산 처용리지도와 같은 토광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남해안 지역의 패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유적들에서 주로 보이는 토광묘와 같이 주로 별다른 시설 없이 토광을 파고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확인된 부산 가덕도유적의 경우는 50기 가량의 집단무덤이 확인되어 한반도 신석기시대 매장유적으로는 최대 규모를 보이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울진 후포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는 다수의 마제석기를 함께 부장한 다인이차장(多人二次葬)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춘천 교동에서는 바위그늘을 무덤으로 전용한 사례도 확인된다. 동삼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삼동 패총지도과 진주 상촌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에서는 옹관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옹관묘는 주거지 근처에서 확인된다.
    무덤들은 처용리나 후포리와 같이 독립적으로 주변이 잘 조망되는 구릉정상부에 입지하기도 하고, 연대도나 가덕도와 같이 해안가에 인접하여 공동묘지로 조성되기도 한다. 부산 범방패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지도이나 통영 욕지도패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지도 등과 같이 패총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무덤은 기본적으로는 1인을 묻는 단인장이 주류를 이룬다. 이외에 전남 안도 유적과 같이 남녀합장무덤도 존재하고, 후포리와 같은 이차장의 형태도 보인다. 장법은 기본적으로 신전장이 우세하나 가덕도에서는 굴장이 다수를 차지해 차이를 보인다. 무덤의 부장품은 풍부하지 않은 편이다. 주로 토기와 석기가 소량 부장되며 일부 유적에서는 옥제 목걸이나 귀걸이, 조개팔찌, 상어이빨과 같은 장신구 등이 함께 부장되기도 한다. 옥제품과 조개팔찌 등은 일부 인골에서만 확인되어 일반적 장신구라기보다는 집단내 특수계층 혹은 상위계층의 사람들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아직까지 일부 해안지역을 제외하면 매장유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아 자세한 양상을 알기 어렵다.

     

     3) 일본열도

     

    죠몽시대위키백과의 무덤은 크게 보아 땅을 파고 주검을 묻은 토광묘(土壙墓)와 돌을 이용해 무덤을 만든 조석묘(組石墓), 옹관묘(甕棺墓)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이 있으며 개별적으로 산재한 무덤 이외에 일정구역에 묘역을 정하고 무덤을 집중 배치한 공동묘지도 존재한다. 폐기한 집을 무덤으로 전용하는 폐옥묘(廢屋墓)도 나타난다. 공동묘지는 죠몽시대의 전기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중기의 환상취락에서 중앙 광장을 둘러싸고 위치하는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나가노현 아구(阿久)유적에서는 직경 90~120m, 폭 30~40m의 범위에 약 300기에 달하는 조석묘가 축조된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이 취락의 내부에 축조되던 공동묘지는 후, 만기가 되면 취락의 외부에 만들어지게 된다. 동일본지역에 보이는 환상열석(stone circle)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 축조된 무덤들이 그러한 예이다. 이외에도 홋카이도에서는 죠몽후기에 직경 수십미터의 지면을 움집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장서각디지털아카이브처럼 파내고 그 흙을 주위에 담장처럼 돋아올린 후 그 내부와 주위에 많은 무덤을 조성한 소위 환상주제묘(環狀周堤墓)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환상열석이나 환상주제묘는 대규모의 노동력이 투여되는 시설로 당시 정착 수렵채집민이었던 죠몽인들의 인구규모나 사회구조가 매우 크고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장법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은 일반적으로 몸을 바르게 펴묻는 신전장과 인위적으로 시신을 굽혀 묻는 굴장이 모두 나타난다. 관동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폐옥묘의 경우는 모두 신전장을 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주검을 바로 묻는 일차장 이외에 뼈를 추려 묻는 이차장도 보이는데 이바라키현 나카즈마[中妻] 유적에서는 단일 구덩이 안에 100여구의 인골을 추려 묻은 예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옹관묘의 경우도 유아묘에 국한되지 않고 성인 인골을 추려 묻은 이차장의 사례가 확인된다. 화장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사례도 죠몽 중기 이후 츄부, 호쿠리쿠, 토카이, 긴키 등지에 확인된다. 이와 같이 죠몽시대의 무덤종류와 장법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정착취락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하게 된다.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종언과 신사회 형성

     
     

    5.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종언과 신사회 형성

     

    동아시아 선사사회는 기원전 2000년기로 접어들면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황하와 양자강유역에서는 새로운 사회구조와 규모를 가진 정치체들이 출현하여 중국문명의 초기단계를 형성하게 되고,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새로운 물질문화를 기반으로 한 청동기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한반도 역시 기원전 2000년기 후반이 되면 빗살무늬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빗살무늬토기문화가 종언을 고하고 무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무문토기와 농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을 기반으로 한 청동기시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청동기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일본열도는 이보다는 늦은 단계에 야요이시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키백과라고 하는 역시 농경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가 개시된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사회는 지역별로 전개과정이나 진입시기 등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기원전 2000년기 이후 신석기시대의 발전과정을 마치고 더욱 위계화되고 복잡해진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황하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양자강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동북지역, 화남지역 등에서 각각 중심을 가진 신석기문화가 수천 년간 존속되며 발전하였다. 발전과정 중에 서로간에 밀접한 교류와 영향관계를 지속하며 문화적 융합과 창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3000년기 후반이 되면 황하 중류를 중심으로 한 중원지구가 인구와 지리적 이점 등을 토대로 주변지구에 비해 중심적인 위치를 점차 차지하게 된다. 중국 학자들은 이를 다원적 기원과 상호교류, 중원 지구의 핵심지위 획득과 통일성 확보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중원지구가 중국문명의 발상지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새로운 고고현상, 즉 농업생산력의 증가와 잉여생산의 증가, 수공업의 전업화, 성지의 출현과 중심 대성(大城)의 존재, 각 문화 대형묘로 대표되는 군장 또는 수장의 존재와 사회의 위계화, 무기의 발달과 빈번한 전쟁, 군사권의 상징으로서의 옥월의 존재, 종교제사의 제도화를 표상하는 각종 옥제 예기(禮器)들의 존재 등과 같은 현상들을 통해 각 지역 중심 정치체의 출현을 상정하고 있다. 용산문화시기로 대표되는 하남용산문화, 산동용산문화지도, 도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석가하지도문화, 양저문화 등 중심지구 고고문화들이 이러한 현상들을 대표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초기국가(邦國)로 설정하고 방국형 문명사회로 인정하고 있다. 아직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포괄범위가 작은 이러한 방국들이 결국 하(夏)위키백과, 상(商)위키백과과 같은 왕조형 국가로 이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신석기 후기단계를 방국형국가로 설정하고 왕조형국가로 발전하는 과도적 형태로 이해하는 이러한 인식은 최근 중국에서의 문명 등장과정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도식이 되고 있다.
    중국동북지역에서는 신석기 후기 이후 소지역별로 새로운 문화들이 태동한다. 요서지역에서는 신석기 최후단계인 소하연문화가 끝나고 하가점(夏家店)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하층문화, 고대산(高台山)지도문화가 성립한다. 요동반도 서부에서는 소주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상층문화 이후 산동의 악석지도문화와 관련이 깊은 쌍타자2기문화가 등장한다. 요서지역에는 중원의 전통적인 조리용기인 삼족(三足)의 정(鼎)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력(鬲), 언(甗)이 등장하게 된다. 요동반도의 동부, 압록강하류역에는 이러한 삼족기류는 수용되지 않는다. 하가점 하층문화 단계에는 이제 성지(城址)가 출현하게 되는데, 집단 내부의 긴장관계의 고조와 관련한 현상으로 이해된다. 하가점 하층문화의 대전자(大甸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지도 무덤에서는 중원 초기왕조단계인 이리두위키백과지도문화(二里頭文化)의 토기들이 보여 양지역의 관련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중국동북지역에서는 기원전 2000년기 이후 기존의 재지적인 신석기문화가 종언을 고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중원과 관련된 문화요소가 등장하기도 하고, 재지적 변화를 거치기도 하면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는 청천강 이남지역에서는 신석기문화가 끝나고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문화가 전개된다. 평저의 돌대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공열문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이중구연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등으로 대표되는 무문토기문화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빗살무늬토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빗살무늬토기를 대체하고 새롭게 확산되며 이와 함께 본격적인 잡곡농경문화가 성립하게 된다. 한반도에서의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환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설명이 어려운데, 이는 연속적인 변화를 보이는 유적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동북지역보다는 약간 늦은 기원전 2000년기 후반부터는 확실하게 무문토기문화가 성립, 발전하게 된다. 무문토기문화는 빗살무늬토기문화에서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북방으로부터의 새로운 문물의 확산과 수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일본열도는 한반도보다 더 늦은 단계에 역시 수렵채집사회인 죠몽사회가 종언을 고하고, 농경문화에 기반을 둔 야요이사회가 성립하게 된다. 야요이문화의 성립에는 재지적 전통과 함께 한반도로부터의 강력한 영향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반도 남부의 무문토기문화(토기와 농경관련 석기, 지석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묘제, 환호취락)가 북부 큐슈를 중심으로 먼저 등장하게 되고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열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는 기원전 2000년기 이후 지역에 따라 구체적 전개양상과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신석기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가 전개되어 중원지역에서는 초기왕조 단계가 시작된다. 중국 동북 및 한반도, 일본열도에서는 청동기시대가 전개되는 바, 그 기반에는 농경문화의 확산과 정착이라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 이와 함께 동아시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활발한 교류와 영향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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