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8해,신시배달5919해 단기 4354해,서기 2021해, 대한민국 102해(나뉨 73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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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7]광개토대왕의 아버지 고국양왕을 재평가한다

광개토대왕의 아버지 고국양왕을 재평가한다 임기환 입력 : 2017.04.13 15:10 ▲ 요동성총의 요동성 성곽도. 고구려는 요동 지배의 거점인 양평(襄平)을 차지한 후 요동성(遼東城)으로 이름하였다. 요동성 성곽도는 1953년에 평안남도 순천시 북창면 용봉리에서 발견된 벽화고분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4세기말 5세기초 요동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사 명장면-17] 고구려 중흥의 기틀을 만든 소수림왕, 고구려를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자리 잡게 한 광개토왕. 이 두 왕 사이에 고국양왕이 있다. 소수림왕의 아우이며, 광개토왕의 아버지이다. 형과 아들이 워낙 빛나는 업적을 쌓아서인지, 역사책에서 고국양왕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게다가 고국양왕은 불과 8년 동안만 왕 노릇을 했다. 사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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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6]국가 대개조작업 성공한 소수림왕 리더십의 실체

국가 대개조작업 성공한 소수림왕 리더십의 실체 임기환 입력 : 2017.03.30 15:01 ▲ 필자가 소수림왕 왕릉으로 비정하는 천추묘. 국내지역에 남아있는 가장 규모가 큰 왕릉이다. 계단식 석실무덤으로 왕릉의 무덤 양식도 새롭게 바뀌어서 소수림왕 때 새로운 문풍이 일어났음을 짐작케 한다. [고구려사 명장면-16]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오늘날 우리가 주변 국가와 전쟁을 여러 차례 치르고 두 번이나 큰 패배를 당하였다고 해보자. 그것도 보통 패배가 아니라 한 번은 서울이 적에게 함락돼 황폐화되고 서울 사는 주민 상당수가 적국으로 끌려갈 정도로 충격적 패배였다. 그 뒤 겨우 힘을 회복해서 다시 또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이 나라 또한 강력하게 반격해와 내 땅에서 국가 지도자가 전투에서 전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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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5]안악3호분을 해부한다(4) - 공무 생활과 행렬도

안악3호분을 해부한다(4) - 공무 생활과 행렬도 임기환 입력 : 2017.03.16 15:01 ▲ 앞방 남벽 서측 악대 그림 [고구려사 명장면-15] 안악3호분은 지난 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 귀족의 저택을 재현하는 공간과 벽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살림집의 구체적인 모습은 앞방의 동, 서 곁방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앞방과 널방에는 저택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무덤 주인공의 공적인 활동과 관련된 그림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서쪽 곁방에 그려진 무덤 주인공 부부의 초상을 통해 안채와 사랑채의 상황을 추정했지만, 이 무덤 주인공의 초상은 단지 저택 내에서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공적인 공간에서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서쪽 곁방으로 들어가는 벽면의 좌우에는 '장하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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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4]안악3호분이 알려주는 고구려 귀족저택의 모습

안악3호분이 알려주는 고구려 귀족저택의 모습 임기환 입력 : 2017.03.02 15:13 [고구려사 명장면-14] 안악3호분은 무덤방 크기에 있어서도 고구려 벽화고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또한 널길과 앞방, 좌우 곁방, 널방, 그리고 널방을 'ㄱ'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회랑 등으로 가장 복잡한 내부 구성을 하고 있다. 더욱 무덤 내부에 4각 기둥과 8각 기둥이 여러 개 설치되어 공간을 나누는 구실을 하는데, 널길과 앞방 그리고 회랑은 통로로 연결된 독립 공간이 아니라 기둥과 사이 벽으로 구성되어 전체 평면은 마치 두 칸처럼 보인다. 공간의 분할과 통합이 적절하게 이뤄져 마치 귀족 저택과 같은 느낌을 충분히 자아낸다. ▲ 안악3호분 평면도/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특히 앞방 동쪽과 서쪽 곁방 2곳에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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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3]안악3호분을 해부한다(2) - 동수의 관직에 숨은 비밀

안악3호분을 해부한다(2) - 동수의 관직에 숨은 비밀 임기환 입력 : 2017.02.16 16:03 [고구려사 명장면-13] 지난 회에 잠시 인용했던 동수 묘지 묵서명 중, 이번 회에 필요한 동수의 관직 부분만 다시 환기해보자. "사지절(使持節) 도독제군사(都督諸軍事) 평동장군(平東將軍) 호무이교위(護撫夷校尉) 낙랑상(樂浪相), 창려·현도·대방태수, 도향후(都鄕侯)" 묵서명에 보이는 동수의 관직은 언뜻 보아도 호화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고구려 땅 평양 남쪽 재령강 유역에서, 그것도 전연에서 쫓겨온 망명객인 주제에 어떻게 이런 거창한 관직을 역임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고구려 땅에 살다 묻혔는데, 정작 고구려 관직은 전혀 보이지도 않고 중국식 관직만 잔뜩 나열하고 있다. 도대체 동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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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2]안악3호분을 해부한다(1) - 황해도 안악3호분의 주인은?

안악3호분을 해부한다(1) - 황해도 안악3호분의 주인은? 임기환 입력 : 2017.02.02 15:01 [고구려사 명장면-12] 1949년 황해도 안악군에서 3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3호분이 눈길을 끌었다. 무덤의 규모가 크고 벽화의 보존 상태도 좋았을 뿐 아니라 무덤 안에는 250여 명의 인물로 이루어진 대행렬도 등 다양한 벽화가 벽면 가득 담겨 있었다. 실로 고구려 생활사 자료의 보고였다. 여기에 더하여 7행 68자로 된 동수(冬壽)라는 인물의 묘지 묵서명(墨書銘)은 안악3호분을 해방 이후 북한 최고의 발굴로 자리매김하게 한 최고의 명문 자료였다. 그리고 그 묵서명이 후일 국제적 논쟁거리가 되리라곤 발굴 당시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 묘지 묵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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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1]시련을 겪은 비운의 군주, 고국원왕은 누구일까

시련을 겪은 비운의 군주, 고국원왕은 누구일까 임기환 입력 : 2017.01.19 15:01 [고구려사 명장면-11] 고구려사를 읽다 보면 좀 비장하게 느껴지는 왕이 있다. 고국원왕(故國原王)이다. 흔히 고구려 하면 활발한 정복 활동이나 치열한 전쟁의 장엄한 승리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런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시련을 겪었던 인물이 고국원왕이기 때문이다. ▲ 태자성. 중국 요녕성 신빈현 소재. 성곽의 전체 모습은 가운데가 낮고 양쪽이 높은 말안장 형태를 하고 있다. 고구려 남도 길을 방어하는 산성의 하나이다. 고국원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 고구려는 떠오르는 동방의 신흥 강국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위에는 그런 신흥 강국이 둘이나 더 있었다. 바로 전연(前燕)과 백제(百濟)였다. 고국원왕대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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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사 명장면] [고구려사 명장면-10]왕, 백성을 위해 정치하라 고구려가 전한 바른 정치

왕, 백성을 위해 정치하라 고구려가 전한 바른 정치 임기환 입력 : 2017.01.05 15:02 [고구려사 명장면-10] 293년 9월, 봉상왕의 아우 돌고는 자결하고, 그의 아들 을불(乙弗)은 도망하여 민간에 몸을 숨겼다. 아우가 자신의 왕위를 넘볼까 두려워한 봉상왕이 돌고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전 해에 봉상왕은 즉위하자마자 삼촌인 안국군 달가(達賈)를 죽였다. 달가는 서천왕 때 변경을 침입한 숙신을 제압하고 복속시키는 큰 공을 세운 인물로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는데, 이에 불안감을 느낀 봉상왕이 삼촌을 음해하여 죽인 것이다. 그런데 중천왕과 서천왕 때에도 왕의 동생들이 반역을 꾀했다는 죄명으로 죽음을 당한 것을 보면, 연이어 삼촌과 아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