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8해,신시배달5919해 단기 4354해,서기 2021해, 대한민국 102해(나뉨 73해),

10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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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5. 여러나라 시대 5.3 〈설득력 더해가는 '삼국의 대륙존재설'〉~ 5.6 〈“고구려 수도 평양은 북한땅에 없었다” 거란 역사서 ‘요사(遼史)’ 의 놀라..

5.3 2008년 3월 17일 플러스코리아 〈설득력 더해가는 '삼국의 대륙존재설'〉 이종호(과학저술가) 『기록에 나타난 고대 천문현상 관측지 추적 일반적으로 고대의 사서에는 자연의 특이 현상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의 변화가 인간과 사회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고대인들의 믿음 때문이다. 기록된 자연 현상 중에서도 특히 천문현상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사서의 기록은 위정자나 집필자의 주관에 의해 선별되고 변조되며 후대에 갈수록 윤색될 수 있다. 그러나 천문현상은 큰 틀에서 뉴턴의 자연법칙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사서에 기록된 내용을 정확하게 검증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후대에 가더라도 변조가 불가능하고 설사 조작이 있었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01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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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요(거란) 거란족- 몽골제국의 선배가 된 유목민 집단,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거란족 몽골제국의 선배가 된 유목민 집단 목차펼치기 1.고구려의 골칫거리, 수나라와 손잡다 2.당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거란족의 반란 3.영웅 야율아보기의 등장 4.중원을 지배할 뻔했던 거란족 5.송나라와의 전쟁과 대립, 그리고 타협 6.여진족의 반란 7.거란의 마지막 불꽃, 서요 8.변발 문화와 과일 꼬치 유명한 여행가인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책인 《동방견문록》에서 중국 북부를 ‘카타이’라고 불렀고,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도 각각 1575년과 1607년에 중국에 도착해서 중국을 ‘카타이’라고 했다. 카타이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중국 북부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였고, 오늘날에도 ‘카타이’ ‘케세이’ 등이 중국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사용되고는 한다. 이 이름들은 200년 동..

18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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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신라(사라,사로) 신라-가야 적석목곽분 주인은 선비모용씨

신라-가야 적석목곽분 주인은 선비모용씨 고구려군에 쫓긴 1만 5천 선비군대의 경주유입과 가야.일본으로의 이주 윤복현 저널리스트 1.흑해연안에서 한반도.일본열도까지 분포된 적석목곽분과 금장식문화 가야와 신라.일본의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유럽지역의 스키타이.아시아 흉노문화와 동일함으로 이들은 본래 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원한 유목민들임을 알 수 있다. 북만주 초원지역에서 시작되는 아시아 유목민들을 그리스에서는 스키타이,중국에서는 흉노(선비.돌궐.몽골)라 불렀다. 스키타이.흉노.선비.몽골.돌궐(터키).거란 모두 족속이름만 다를 뿐 동일 혈통의 아시아 유목민족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단고기]때에는 단군조선시대에는 단군천황의 남동생들이 진조선(진한)의 제후국들에 해당하는 몽고리(몽골).흉노.선비 등 ..

26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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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신라와 야마도 왕국의 쇠망(衰亡) - 왕조의 멸망

신라와 야마도 왕국의 쇠망(衰亡) - 왕조의 멸망 홍원탁 승인 2005.07.15 00:00 [홍원탁의 동아시아 역사 바로보기] 9세기, 야마도 왕국의 귀족 씨족들과 거대한 사찰들은 장원(莊園)을 만들기 시작했고, 10세기에 와서는 국가 토지소유제와 함께 중앙정부의 권위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을 했고, 주변의 영향력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뭉쳤다. 농민들은 귀족 부재지주보다는, 귀족 출신을 자처하는 지방 토착의 실력자를 선호하였다.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도태 과정을 거쳐 전문 싸움꾼으로 진화하여, 사무라이라고 불리는 전문적 무사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사무라이는 중세 일본의 새 지배자가 될 운명이었다. 왕족 후손인 미나모도(源) ..

25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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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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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예맥 퉁구스와 말갈-여진 퉁구스의 연합

예맥 퉁구스와 말갈-여진 퉁구스의 연합 홍원탁 승인 2005.03.30 00:00 [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The Union of the Ye-mack Tungus and the Mohe-Ruzhen Tungus 광개토왕대왕 이후, 고구려는 250여년간 흑수말갈을 포함하여 동부 만주의 말갈족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말갈 병사들이 고구려가 멸망 하는 순간까지 고구려를 위해 싸웠던 기록들이 여러 정사(正史)에 나타난다. 발해(689-926)의 출현은 예맥 퉁구스와 말갈-여진 퉁구스가 다시 한번 연합을 하여 200년 이상 만주 전역을 지배한 왕국을 유지했음을 의미한다. 말갈-여진의 금과 청나라가 출현하면서 순수한 예맥-퉁구스의 존재는 한반도에 한정되게 되었으며, 만주에 남게 된 예맥 친족..

10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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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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