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영광을

정우산기 2007. 4. 3. 11:10

한민족사의 최고 비밀 7진국사


1. 북진한北眞韓


47대 2096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단군조선[BCE2333~BCE238]은 삼한관경제로 나라를 다스렸으니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이다. 삼한이란 “삼신의 광명이 비추는 땅”이란 뜻이니, 마한은 천일天一, 번한은 지일地一, 진한은 태일太一을 상징한다.


환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진한의 첫 수도는 아사달이니 지금의 하얼삔으로 만주, 내몽골, 시베리아 일대가 그 관경이며, 번한의 첫 수도는 오덕지니 옛 험독에 있는 왕검성으로, 지금의 개평부 동북 칠십리에 있는 탕지보이다. 그 관할하는 영역은 요동, 요중, 요서, 하북, 산동지방을 비롯한 중국 동부 일대가 그 관경이며, 마한의 첫 수도는 백아강이니 지금의 대동강에 있는 평양으로 한반도와 대마도, 일본 구주 일대가 그 관경이다.


진한은 대단군이 직접 통치를 했고, 마한과 번한은 부단군을 두어 대리 통치를 했으니, 진한의 대단군이라야 말로 참된 주인主人이 된다.


일설에 의하면 진한의 주인인 진주眞主 의식은 세속의 노름판에도 전수되고 있다고 한다. 한양조선의 대표적인 노름으로 가구판 노름이 있는데 갑오甲午를 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이 갑오를 다른 말로 진주라고 불렀으니, 갑오는 오행五行의 수로는 3과 7로 합하면 10이다. 3이란 삼신三神을 뜻하며 7이란 칠성七星을 뜻하니 그 합한 수 10은 우주를 주재하는 절대자 상제님上帝任을 뜻한다. 갑오甲午는 가장 크게 용사하는 황극皇極을 뜻하고, 그 황극의 본원은 경진庚辰이 된다.


그러므로 노름판의 진주인 갑오의 역사적인 기원은 진한의 주인인 단군檀君을 뜻했으니, 주인인 갑오와 단군은 10무극 상제님을 받드는 최고 높은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하지만 이 갑오와 단군은 외적인 진주를 뜻한다. 내면에도 진주가 있다. 이 때의 진眞은 삼진三眞이 되는데 삼진은 우리가 삼신 하느님에게 부여받은 ‘성性, 명命, 정精’을 뜻한다. 그러므로 진주란 마음과 기운과 몸을 잘 받아 삼신에게 부여받은 본래의 ‘성명정’을 되찾은 사람을 뜻한다. 이것이 곧 내면의 진주다.


2. 진국辰國


단군조선의 진한眞韓은 달리 진한辰韓, 진국辰國으로도 불린다.


먼저 단군세기에는 진한의 기록이 두 군데 보이니 모두 진한眞韓으로 기록했다.


단군세기의 4세 단군 오사구 임인 19년의 기록인 “식달에게 명하여 람진변藍眞弁 3부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하나라를 정벌케 하다”와 6세 단군 달문의 임자 35년의 기록인 “진한眞韓이 나라의 중심을 세우니 다스리는 도리는 오직 항상 새로움이라.”의 기록이 그것이다.


그 다음 삼한관경본기에는 진한眞韓이 진한辰韓, 진국辰國으로 혼용되어 쓰였다.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의 “진국辰國은 천제의 자손이 다스리는 곳”, 번한세가 하의 “진번眞番 이한二韓의 병사들과 더불어 협공”, 마한세가 하의 “진한辰韓이 스스로 무너졌다”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도경전본훈에는 두 군데 모두 진한辰韓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땅에는 삼한三韓이 있으니 진변마辰弁馬 삼경지한三京之韓이다. 한韓은 즉 황皇이요 황皇은 즉 대大요, 대大는 즉 일一이다”라는 기록과 “‘저울대는 부소량’이라 함은 곧 진한辰韓의 옛 도읍을 일컫는 것”의 기록이 그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의 불후의 업적인 전후삼한고에서 전삼한과 후삼한을 이야기했으니, 전삼한은 단군조선의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을 말하고, 후삼한이란 서기전 194년 번한의 기준이 망한 후, 삼한의 유민이 한수 이남으로 몰려들어 건국한 삼한을 말한다.


아울러 전삼한은 북쪽 대륙에 있었으므로 북삼한이라고 하고, 후삼한은 남쪽 한반도에 있었으므로 남삼한이라고 한다. 단재 선생은 단군조선이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이유를 삼신 사상 때문이라고 하였다.


3. 진조선眞朝鮮


단군조선 중기[BCE1285~BCE426]인 22세 색불루 단군 때에 이르러 단군 조선 초기[BCE2333~BCE1286]의 삼한관경제는 삼조선 체제로 바뀌었으니, 진한은 진조선으로, 마한은 막조선으로, 번한은 번조선으로 바뀐다.


삼한관경본기의 “삼한을 고쳐 삼조선이라 하였는데 조선이란 토경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진조선眞朝鮮은 천왕이 스스로 다스렸으되 땅은 옛 진한辰韓 그대로였다. 정사는 천황으로 말미암았는데 삼한이 모두 한결같이 통솔되어 명령을 받들었다.”의 기록은 삼한 체제가 삼조선 체제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삼한관경본기 말한세가 하’의 “여원흥을 명하여 마한馬韓으로 삼아 막조선莫朝鮮을 다스리게 하고, 서우여는 번한番韓으로 삼아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를 통 털어 단군관경이라 이름하니, 이가 곧 진한辰韓이요, 역사에서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 일컬음이 이것이다.”의 기록은 삼조선 체제가 아직 과도기임을 뜻한다. 그 까닭은 위의 기록에서 삼한과 삼조선을 혼용되어 쓰여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한, 번한은 나라 이름이자 왕호임(한韓은 황제皇帝다. <소도경전본훈>)으로, 관경이 막조선, 번조선 체제로 바뀌면 왕호도 또한 막조선, 번조선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 마한, 번한으로 불리우고 있음으로 이 것은 아직 제도가 미비 되었음을 뜻한다.


때문에 삼조선 체제는 22세 색불루 단군 때 처음 나왔으나 단군 조선 말기[BCE425~BCE238]인 44세 구물 단군 때에 비로소 완비 되었으니 소도경전본훈의 다음 기록은 그 명백한 증거가 된다. “삼조선이란 이름이 단군 색불루 때에 처음 나왔으나 그 때는 미비하였는데 단군 구물 때에 이르러 비로소 완비되었으니, 삼한이란 뜻은 분조를 두어 토경을 관리한다는 것이고, 삼조선이란 뜻은 분권을 행하여 토경을 관리하는 제도를 뜻한다.”


4. 남진한南辰韓


신라[BCE57~AD935]의 시조 박혁거세가 진한 6부의 추대로 거서간居西干이 되었으니 그 나라 이름이 진한辰韓이다. 그 주체 세력인 진한 6부는 북진한의 이주민임으로 나라 이름을 진한이라 하였다.


이 남진한은 박혁거세 이전의 진한과 박혁거세 이후의 진한으로 구분되는데 전 진한은 북번한의 상장 탁이 세운 남마한의 간접 통치를 받는 체제를 말한다. 이 때 남마한은 북삼한의 전통에 따라 나라를 크게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이것이 곧 남한의 마한, 진한, 변한이다.


남마한은 훗날 백제의 시조 온조에 의하여 정복됨으로 인하여 훗날 남진한은 마한으로부터 자연 독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박혁거세의 진한이다.


고구려국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진한 6부 사람들이 공히 존경하여 사로시왕을 거서간으로 삼아 도읍을 서라벌로 삼았다. 나라 이름을 칭하여 진한辰韓이라 하였으니 역시 가로되 사로라고도 한다.”


5. 대진국大震國


광개토대제 때에 이르러 삼한을 통일하고 구환을 복속시켰던 고구려[BCE58~AD668]는 개화 27년 9월 21일에 수도 평양성이 함락됨으로 28대 726년 만에 망한다.


그 뒤를 이어 일어난 진국振國장군 대중상은 고구려의 동북쪽을 도모하여 동모산에 도읍하고 국호를 후고구려라 하니 연호는 중광이었다. 그리고 태조 고황제 대조영이 제위를 계승하여 국호를 고쳐 대진으로 삼고 연호를 세워 천통이라 하였으니, 진국震國은 곧 고구려의 후예를 뜻한다.


규원사화에서는 “고왕의 꿈에 신인이 금부金符를 주면서 말하길 ‘천명天命은 너에게 있으니 나의 진역震域을 통일統一하라’고 함으로 국호를 진震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발해의 정식 국명은 대진大震이다. 진震의 뜻은 문왕 팔괘인 ‘건乾, 감坎, 간艮, 진震, 손巽, 이離, 곤坤, 태兌’ 중에서 진震 괘를 상징한다. 진괘란 벼락을 뜻하며 오행으로는 목木을 방위로는 정동방正東方을 상징한다.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의 원리 제9장 신비의 행로 411쪽을 보면 그리스 신화 해석이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신들의 제왕 제우스(Zeus)는 장남인 진괘를 상징한다. 아울러 제우스는 번개[震]를 들고 있으니 번개는 제우스의 힘의 원천이며,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진震괘를 가리켜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 하였다. 제출호진이란 “상제님께서 진방에서 출세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상제上帝란 하느님이란 뜻이니 대한제국 시대의 애국가를 보면 ‘하느님이 보우하사’가 아니라 ‘상제님이 보우하사’로 되어있다. 진괘震卦는 12지로는 진辰에 해당된다. 삼극 원리로 진辰은 황극皇極의 뿌리 자리로 술戌과 더불어 태극太極의 축이 된다.


황극이란 12지로는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의 전 과정을 뜻하니, 시간 질서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낳아서 기르는 전 과정을 뜻한다. 그러므로 도법세계에서는 진리를 전하여 길러내는 그 모든 과정이 황극의 역할이니, 그 황극의 첫 기원은 환웅에게 있었던 것이다. 환웅桓雄이란 광명의 스승이란 뜻이니, 환桓이란 하늘광명의 빛과 열로서 인간과 만물을 기르는 존재이며, 웅雄이란 스승이란 뜻이니 진리로서 백성을 길러내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환웅이 이 땅 진방震方의 태백산太白山에 오심으로서 황극의 기운이 활짝 열렸으니, 우리가 사는 이 곳은 12지의 정동방正東方인 진방辰方이며 참된 방위가 된다.


진한眞韓을 진한辰韓이라 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천하를 통치하는 참 주인은 황극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곳은 바로 광명이 떠오르는 정동방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황극의 자리는 태일太一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니, 동황태일東皇太一이란 정동방의 황극 정신을 집행했던 동방의 황제 단군성조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황제가 황극皇極의 자리를 대신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대한 민족은 열성조를 중심으로 진방의 후손답게 동방의 패자로서 군림하였고 전 세계의 종주국이 되었다. 하지만 신시 개천 5,905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진방을 남에게 모두 내어 주고, 겨우 남조선의 남한 땅 조그만 곳에 둥지를 틀고 있을 뿐이다.


이제 옛날을 회고해 보면 인류 문명의 뿌리는 동방 한민족이니, 그 문명의 창시자는 태호 복희씨이다. 그 복희씨가 전수한 문명의 핵심은 주역에 있으니, 그 주역의 문왕 팔괘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간방艮方이다. 극동極東의 동북방東北方이 바로 간방이기 때문이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간艮은 동북지괘야東北之卦也니 만물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고故로 왈曰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고 함으로서 이 구석진 자리 동북 간방에서 전 인류의 문명이 끝맺고 다시 시작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일시일종一始一終 회복回復 기其 진야眞也”라 하니, 이는 우주의 역사는, 매순간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맺음이 삼신의 참됨을 회복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간艮은 진眞과 표리 일체 관계에 있으며, 진眞의 완성은 간艮에서 이루어진다.


좀 더 그 까닭을 살펴보면 문왕 팔괘는 후천 개벽에 이르러 정역팔괘가 되는데 간방艮方은 진방震方이 되고 만다. 이것을 역학에서는 진변위간震變爲艮이라고 한다. 이것을 다시 말해 동북 간방에 사는 우리가 정동방인 황극의 자리를 다시금 꿰차게 되어 전 세계를 주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주, 시베리아, 중국과 연륙된 황해는 다시금 우리의 땅이 된다.


신시본기에서는 동북 간방을 가리켜 “동북은 신명이 머무시는 집이다”라 하였으니, 태양은 광명의 모임이고, 삼신은 광명 속에서만 머무시므로, 삼신이 강림하는 곳은 크게 사람이 광명한 나라인 대한조선大韓朝鮮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은 삼신오제본기에 있다. 그 글에 “삼신산은 천하의 뿌리이다. 산山에 삼신三神이란 이름을 붙인 까닭은 대개 상세 이래로 모든 이가 삼신이 이 곳에 강림하여 삼계三界를 뜯어고쳐 360만 대주천大周天을 베푸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곧 삼신상제가 이 땅 동방에 출현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세계의 사무친 원한의 불길을 끄고, 상극相克의 질서를 고쳐 상생相生의 질서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 광명이세光明理世,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세계가 이루어지는 뜻은 다시 주역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제출호진帝出乎震’이다.


6. 마진국摩震國


궁예가 발해의 남쪽 신라 땅에 세운 나라[AD896~AD918] 이름이 마진국摩震國이다. 궁예가 처음 나라를 세워 후고구려라 했다가 고친 이름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북쪽의 발해 시조 대중상이 나라를 세워 후고구려라 한 것을 대조영이 나라 이름을 고쳐 대진국大震國이라 한 것은 비슷하다.

 

궁예는 나중에 자신을 미륵불이라 하며 머리에 금책을 쓰고 또 스스로 불경 20권을 지어 간혹 정좌하고 강설하였다. 하지만 승 석총으로부터 “모두 사설 괴담이라 교훈될 것이 없다”는 말을 듣자, 궁예는 화를 내며 쇠뭉치로 석총을 쳐 죽인다.


여기서 중 석총은 후신라의 가장 유명한 고승 진표眞表의 법맥을 이은 사람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표는 망신참법을 통하여 미륵불을 친견한 후, 말세에 이르러 미륵불이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을 굳게 믿고, 그 미륵의 모습 그대로 밑 없는 시루 위에 금산사 금미륵을 세운 인물이다.


그 진표의 미륵신앙은 “고대 신교의 삼신산에 삼신이 강림한다는 믿음”과 결합하여 광범위하게 퍼졌으니 그 법맥을 이은 법상종의 고승 석총이 궁예를 보았을 때는 궁예는 미륵불이 아니라 불법을 어지럽히는 한갖 마구니였던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미륵불의 말을 빌려 진표가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훗날 도솔천에 태어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7. 대진국의 후예들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고 나라의 폭이 9,000리에 달하던 대진국[AD668~AD918]은 애제 13년에 이르러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홀한성忽汗城이 거란에게 포위되자 함으로 15대 259년을 끝으로 망하고 만다.


대진국 멸망한 원인으로 규원사화에서는 청평 노인의 말을 빌려“항상 하느님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내더니, 자손에 이르러 교만해지고 방자해짐에 점차 이를 폐지하고 도리어 유교와 불교를 섬기니, 나라가 드디어 쇠잔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백두산 폭발이 발해 멸망의 결정적 계기였다는 자연재해설이 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백두산은 총 세 번 화산 폭발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한철학에 있어서도 진震에는 지진地震이란 뜻이 있다.


대진국이 망하자 발해 황자 대광현을 비롯한 많은 무리들이 동족의 나라 고려에 투항했다. 그리고 그 뒤 발해의 옛 땅에는 대진국 부흥 운동이 일어났으니, 그 나라 이름은 정안국, 흥요, 대발해국이다.


정안국定安國[97?~97?]은 발해의 옛 땅 서쪽 변두리를 차지하고 세운 나라 이름이다.


흥요興遼[AD1029~AD1039]는 고려 16대 현종 원문대왕 20년에 대진국 태조 고황제의 7세손인 거란 동경장군 대연림이 세운 나라 이름이다. 연호를 천경이라 하였다.


대발해국大渤海國[AD1116~AD1116]은 고려 16대 예종 문효대왕 11년 정월에 발해사람인 동경 비장 고영창이 요동 50여주를 점거하고 세운 나라 이름이다. 연호를 융기라 했다.


이 대진국의 후예들은 대진국의 부활을 동족의 나라인 고려 조정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고려는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국 이 발해의 모든 부흥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것은 대진국 광성문황제 대흥 45년에 고구려의 후예인 치청절도사 이정기가 당에 대항하자, 군대를 파견하여 제나라를 건국하도록 도와 준 것과 극히 대조된다.


생각해 보면 대진국을 멸망시킨 글단契丹의 뿌리는 15세 대음 단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군세기에 “기미 40년(BC 1622]에 단군께서는 동생 대심을 남선비南鮮卑 대인으로 봉하셨다”고 하였으니, 거란의 뿌리는 또한 조선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리고 대진국의 백성이 되었던 여진女眞의 조상 말갈은 숙신의 후예이니 곧 신지씨의 후손이다. 규원사화에 “단군 왕검께서는 신지씨의 후손에게는 북동쪽 땅을 주니 산하가 장엄하고 풍세가 강하여 속진국 또는 숙신肅愼이라 했다”고 전한다.  


더불어 옛 일을 더듬어 보면 우리 고려의 북방에는 항상 거란과 여진의 두 북방 민족이 이웃하여 있었으니, 거란은 글단契丹이니 단丹은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단檀과 동음임으로 단군의 후예라는 뜻을 가진다. 그리고 여진女眞의 여女는 고려高麗의 려麗와 부여夫餘의 여餘와 동음이며, 眞은 진한眞韓의 진眞과 일치하니 여진은 진한, 부여, 고구려의 후예라는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