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한국서지연구소 2012. 11. 12. 18:29

전용뷰어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 중에서)







BB 야마토


전장:263m
전폭:38.9m
흘수:12m
기본배수량:19,000톤
기준배수량:64,000톤
만재배수량:72,800톤
주 무장:18.1인치 3연장 주포 3기(460mm 최대사거리 45,000m)
6인치 3연장 주포 2기
25mm3연장 고각도포 48기
13mm2연장 기관포 8기
적재 함재기 2기

방어능력: 측면장갑 410mm
갑판장갑 200mm
최대장갑(주포탑전면) 650mm

승조원:3,000명
최대 기관출력:152,000마력
최대 속도:27노트
최대항속거리:7200해리


'덴이찌고(천일호:天一號)작전


1945년에 들어 미군은 이오지마(硫黃島)를 점령하고 점점 본토로 다가와 오키나와에 상륙하려고 하자 다음은 큐슈와 혼슈차례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일본군은 다가오는 본토결전에 앞서 미군의 세력을 어떻게라도 좀 더 줄여보기 위하여 필사적인 저항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우시지마 중장 예하의 일본군이 필사적인 저항으로 미군을 지역에 묶어두면, 그를 지원하는 항공모함기동부대를 비롯한 미군의 대함대는 근처에 묶일 것이고, 장점인 기동성을 잃고 한 지역에 정박해 있는 함대를 공격하여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본토 결전때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는 생각으로 '텐고(天考)'작전이 계획됩니다.


작전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군 함대를 공습할 수 있는 숙련된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필리핀 전역에서 시험삼아 사용해보아 생각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전투방식인, 가미가제 - 자살공격 - 로 해결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능력 부족은 피로 메꾼다는 섬뜩한 생각이라고 하면. 텐고 작전 내에서, 이 가미가제를 이용한 미국 함대에의 공습작전 한 번 한 번은 '기꾸스이(菊水) 작전'으로 이름붙여집니다. 1945년 4월 1일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하고, 4월 6일에 기꾸스이 1호 작전이 발동됩니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숙련 조종사들을 함대에 접근하기 전에 떨어뜨릴 미국 항공모함기동부대의 요격기들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끌어들일 미끼가 필요한 것이었죠.

일본해군의 최고 수뇌들은 작전의 일환으로서 해군에게 희생적 행동을 강요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가끼 중장 지휘하의 특공기가 오키나와 주변지역의 적 함정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많도록 하기 위해 초대형 전함 야마토(大和)와 경순양함 야하기(失 ) 그리고 8척의 구축함 -이소카제, 하마카제, 아사시모, 카스미, 하츠시모, 후유츠키, 스즈츠키 그리고 유키카제 - 등 제2함대의 나머지 병력을 모두 출격시켜, 제58기동부대의 항모군을 오키나와 근해로부터 유인한다는 작전을 말한다. 미군 함재기와의 전투에서 이들 군함 중 한 척이라도 살아남으면 오키나와 근해까지 항해를 계속하여 그곳 백사장에 스스로 좌초되어 불침포대(不沈砲臺)로서의 구실을 다하여 미군 함대를 포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함포의 포탄이 바닥나면 해군장병은 미군들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친 생각은 연합함대 선임작전참모 "기미 시게노리" 대좌의 머리에서 나온것이다.

'적의 우세한 과학기술과 공업생산력은 야마토정신(大和魂:일본정신)으로 무찔러주겠다! 희생이 생길수록 야마토정신은 단련돼서 승리에 이바지할 것이다. 영웅적으로 산화한 영령들은 자비로운 신들과 손잡고 기적적인 반격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 중대한 판국에 설사 하찮은 짓이라도 신이 가호를 보내 주실 것이다..... 이 얼마나 명예로운 죽음의 길인가!' 라는 논지였다.

결국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요다 소예무(豊田副武)대장과 해군의 일부 참모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 야마토를 내해(內海)에 대피시켜두고있기보다는 차라리 대담한 공격작전에 출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도요다 대장은 참모들의 극심한 항의가 빗발치는 가운데 제2함대 사령관 이또 세이이치(伊藤整一)중장에게 4월 6일 러일전쟁당시 도고의 구절을 삽입한 운명적인 지령을 내린 것이다.

"황국(皇國)의 흥폐(興廢)는 바로 이 일거(一擧)에 달려 있다."

야마토를 비롯한 함대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면한 도꾸야마(德山)항에서 마지막 항해를 준비했다. 야마토는 4월 5일 오후부터 밤 사이에 걸쳐 1170발의 주포용 탄약과 4000t의 연료 - 오키나와까지의 편도(片道)분량 -를 실었다. 그날 밤 푸짐한 주연(酒宴)이 벌어졌다. 이 때의 분위기에 관해 요시다 미쯔루(吉田滿)소위는 그의 저서 '전함 야마토의 최후'에서 '부레이꼬오(상하 구별없이 즐기는 술자리)'라고 쓰고 있다.

경순양함 야하기의 함장 하라 다메이찌 대령은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 게이조오 소장과 실컷 마셨다. 두 사람은 마침내 취한 끝에 큰 소리로 울었다. 하라 대령은 창틀에 매달려 "만세!"를 외쳤다. 야마토에 탑승할 하사관 이하 수병들에게는 전별 기념으로 국화의 문장(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온시노 다바코(임금이 하사한 담배)"가 내려졌다.

다음날인 4월 6일 함대는 도꾸아먀 만을 출항하여 시코쿠와 큐우슈우를 갈라놓은 좁은 해협인 붕고(豊後)수도를 누비듯이 빠져나가 일로 오키나와를 향해 남쪽으로 달려갔다.

야마토의 마지막 출격의 요도



다음날인 4월 7일 아침 기꾸스이 1호 작전의 해상부대, 강대한 전함 야마토를 중심으로 한 함대가 미군 제58기동부대 항공기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전속력으로 항행하고 있었다. 미군은 일본함대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함대가 붕고 해협을 나서자 2척의 미군 잠수함 스레드핀과 해클백이 추적하여 즉시 그 위치를 제58기동부대에 통보했다. 오전 832시 일본군 함대는 항모 에섹스에서 출격한 비행기에 포착되었고 그 직후 PBM 마틴 마리너 비행정이 발견하여 추적을 계속하였다. 이에 특공함대는 위장기동이 통하지않음을 알고 원래대로 오키나와를 향해 직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미군측에서는 견해차가 표면화하고 있었다. 제5함대 사령관 스프루언스 제독은 오키나와 근해에 있던 대규모의 미군 함정 선단을 동원하여 야마토를 격파할 생각이었다. 미군 군함의 수병들은 최근 수 개월동안 해안 포격이나 항모 호위 등의 임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함대함(艦對艦) 전투를 별로 경험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제58기동부대의 지휘관 미처 제독은 휘하의 함재기 조종사들이 세계 최강의 군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보이고 싶었다. 그는 참모장인 알레이 버크 준장에게 명하여 "특별한 명령이 없는 한 정오에 야마토 부대에 공격을 가하기로 한다"는 뜻을 스프루언스에게 통보하게 했다. 버크는 좀 더 간단명료하게 전보를 쳤다. "귀하가 하느냐? 우리가 하느냐?' 스프루언스는 양보하여 대답하여 왔다. "귀하에게 맡기겠다"


미군이 공격을 준비하는 사이인 0900시경에 구축함 야마구모가 레이테해전당시 입은 손상으로인한 엔진 트러블이 생겨 함대에서 점점 뒤쳐지게 된다.


10시, 미처는 대규모의 첫 번째 공격을 가했다. 1천파운드(453kg) 폭탄이나 500파운드(227kg) 폭탄을 탑재한 커티스 SB2C 헬다이버나 MK 13어뢰를 탑재한 TBF 어벤저 등 350여 대가 출격했다. 하늘은 흐리고 날씨는 나빠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공격부대는 일본군 대공화기의 사정권을 벗어나 구름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선회할 수 있던 미군 비행정의 유도를 받으며 마침내 이또 중장의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1232시 야마토의 레이더가 내습하는 적기를 포착했다.(주2) "천탐실(電探室) 실장 하세가와(長谷川)는 그 특유의 흐린 목소리로 적기가 떠 있는 상공의 거리와 각도를 알렸다"라고 야마토 함교에서 전투배치에 임해있던 요시다 소위는 나중에 쓰고 있다.

"즉시 함대의 각 함 앞으로 긴급신호를 발했다...... 확성기가 그 사실을 알리고 나자 함내는 오히려 조용해졌다...... 대공전투 박두, 탐지방향에 대해 각부는 감시를 집중했다."

회피기동중인 야마토




이윽고 감시원이 미군기를 포착하였다. 야마토의 항해장이 외쳤다."적기는 100대 이상, 현재 돌진해오고 있음."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야마토와 호위함들의 포가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일제히 불을 뿜었다.

미국의 항모 베닝턴과 호넷호에서 발진한 132대의 전투기와 50 기의 급강하 폭격기, 98기의 뇌격기가 가려진 구름을 뚫고, 하얗게 물보라를 길게 끌며 항진하는 커다란 괴물을 향해 기수를 내리 꽂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은 300 대에 달하는 온갖 종류의 미국 항공기들이 내는 윙윙거리는 소음과 늦게 나마 야마토가 쏘아 올린 대공포화의 검은 연기와 폭발음으로 가득했다.

제58기동함대 제1지대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은 항모 호넷 소속인 '에드먼드 콘래드'중령의 지휘아래 일본함대 상공을 반시계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일본함대는 제각기 흩어져 잔잔한 바다위에 큰 S자형 항적을 남기며 회피항진을 시작했다.

선두의 순양함 야하기가 속력을 내며 함대전방으로 돌진해나갔다. 19km북쪽에는 기관고장인 아시시모가 홀로 뒤쳐져 있었다. 4척의 구축함은 야마토의 양옆을 질주하고 나머지 3척은 야하기를 쫓았다.

콘래드중령은 항모 베닝턴소속의 헬다이버들에게 명령했다.
"덩치 큰 저놈을 잡아라!"

항모 베닝턴 소속의 '휴 우드'소령은 헬다이버 4대를 거느리고 야마토의 함미상공에서 급강하했다. 1241시 2대의 휴 우드(Hugh Wood)가 이끄는 미국의
SB2C 헬다이버 급강하 폭격기들이 약 900 m 상공에서부터 급강하에 돌입해, 고도 240 m 에서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당시 우드의 비행대원으로 참전한 프란시스 페리(Francis R. Ferry)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적함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우드소령의 기체는 명중탄을 맞아 연료파이프가 두곳이나 절단되고 왼쪽의 급강하보조날개가 조금 날아갔다. 그런데도 그는 곳장 야마토의 고물을 겨냥하고 긴 상갑판을 가로지르며 폭탄을 투하하고 급상승했다. 뒤돌아보니 야마토의 굴뚝뒤에 폭탄이 명중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그는 연료가 새는 기체를 달래며 겨우 귀함했다.

우드소령을 따른 나머지 3기도 총탄을 맞았으며 그중 한 대는 바다에 추락해 폭발했다. 그러나 이 4기가 투하한 폭탄은 야마토의 주위에 높은 물기둥을 솟구치게 하면서 2발이 명중했고 이는 야마토의 메인 마스트 부근에 명중 그 뒤편의 레이더실을 파괴하고 8명의 수병을 죽였다. 그리고 4분 후 어벤저가 발사한 어뢰 하나가 이 거대한 전함의 좌현 앞 부분에 명중했으며 또한 2발의 폭탄이 야마토의 우현을 명중시켜 야마토의 25 mm 대공기관포들이 파괴되었다. 연이어 2발이 더 명중 이번에는 야마토의 6 인치 포탑을 날려버렸다

카게로급 구축함("유키카제"가 카게로급)


한편 항모 베닝턴의 전투기편대들은 콘래드중령의 명령에 따라 구축함들을 공격했다.
항모 호넷의 급강하폭격기들은 정확한 기총사격을 받아 4대가 공중폭발하고 한 대는 바다에 불시착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항모 베닝턴의 나머지 헬다이버들은 야하기에 폭탄3발을 명중시키고 4척의 구축함에 각 1발씩 명중시켜 피해를 넓혀갔다.

경순양함(CL) 야하기 뒤로 야마토가 보인다



이어 항모 베닝턴소속의 어벤져뇌격기 3대가 공격기을 피하기 위해 소나기구름 아래로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야하기의 대공포화를 뚫고 접근했다. 그들은 치열한 탄막속에서도 비행코스를 잃지 않고 접근하여 야하기의 우현에 어뢰 한발을 명중시켰다. 이 한발로 야하기의 주기가 멈춰버렷고 꼼짝달싹못하게된 야하기에 다시한발의 어뢰가 명중하자 키와 스크류마져 떨어져나가 행동불능에 빠진채 폭격을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전투시작 12분만이었다.

몇 초 뒤, 항모 호넷에서 출격한 8대의 뇌격기들이 폭포수가 거꾸로 치솟는듯한 탄막을 뚫고 야마토의 좌현을 노리고 돌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포탄파편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해면에서 150m의 고도로 몇분동안 목숨을 건 저공비행을 감행했다. 정확히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6대의 뇌격기가 피탄되었고 그중 한 대는 야마토의 이물 근처에 추락, 높은 물기둥을 올렸다. 그러나 큰 피해를 보면서도 어벤져들은 어뢰를 투하했다. 4발의 어뢰가 야마토를 향해 정확하게 달려갔고 곧이어 어뢰 2발이 좌현에 작렬했다

경항모 샌 저신토호에서 발진한 헬캣전투기들이 그에 앞서 아사시모호에 공격을 가했다. 기관고장인 아사시모는 속수무책으로 암담한 상태였으나 완강히 저항했다. 전투기들은 갑판높이의 고도까지 내려와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그들은 아사시모호의 앞을 가로질러 질주해오다가 꼬리를 흔들어 감속을 하면서 기총소사를 했다. 전투기들이 두서너번 파상공격을 감행하자 아사시모의 갑판에 불길이 일기 시작하면서 대공포화가 잠잠해졌다.

구축함 아사시모



그때 8대의 어벤져뇌격기가 사방에서 어뢰를 투하했다. 기관고장으로 어쩔도리가 없는 아사시모호였지만 그래도 어뢰를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느릿느릿 오른쪽으로 침로를 바꿔 2발을 살짝 피했다. 4발은 구축함의 고물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그러나 나머지 2발이 선체에 명중, 그 폭발로 아사시모호의 이물이 공중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다시 바다위로 떨어지는 순간 바다속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다시 공중으로 튕겨졌다.



헬다이버 폭격기의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야마토



13시 제2파의 미군 공격기 편대가 내습이 시작되었다. 1337시와 1344시에 일단의 어벤저뇌격기가 5발의 어뢰를 야마토에게 쏘아대었다. 모두가 좌현에 명중했다. 그것은 양현에 골고루 어뢰공격을 먹엿다가 도리어 함의 균형을 맞춰줘서 격침되는데 시간이 더걸려버렸던 무사시의 교훈에서 얻은 "때린데 또 때리기"공격법이었다.

"일본해군에서 으뜸가는 '야마토'의 탄막은 융단 모양으로 펼쳐지는 빨강, 보라, 노랑, 녹색 등 극채색으로 작렬하여 적지않은 위협을 주기는 했으나, 그 위협은 탁상에서 계산했던 것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라고 요시다 소위는 쓰고 있다.

좌현에 집중타를 맞은 야마토는 좌현으로 16도 기울어져버렸고 항진속도도 18노트로 떨어져버렸다. 이에 대하여"연속 피뢰(被雷)로 응급 담당자들의 사상(死傷)이 많아 방수차방(防水遮防)작업이 어려워졌다"라고 요시다소위는 썼다.
어쩔수없이 보수를 포기하고 우현의 기관실과 보일러실을 역침수시켜 5도를 회복할수 있었다.



회피기동중인 야마토 좌현으로 기울어 있는상태이다



1407시 야마토는 다시 어뢰 1발을 우현에 맞았다. 그로부터 10분도 지나기 전에 3발의 어뢰가 망신창이가 된 좌현에 명중했다.
다시 기울기는 16도가 되었고 우현을 역침수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역시 계속되었다. 하지만 함의 손상으로 비상대피의 연락이 제대로 되지않아 300여명의 수병이 갖혀버린채 익사해버렷다.

이에 요시다소위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당직 기관 담당병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순간 비말의 한 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그들은 그 순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안하고 다만 한 덩어리가 되어 녹았고 소용돌이가 되어 흩어졌다."

게다가 이조치는 부작용또한 수반했다 야마토의 속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조타장치가 사용 불능이 되었으며 속력이 떨어지자 야마토는 좌현 방향으로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 때 야하기는 전투시작 12분만에 단 1발의 어뢰로 항행불능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다시 이 무력한 경순양함을 미군기가 습격했다. 다시 6발의 어뢰와 10발이 넘는 폭탄이 야하기에 치명타를 가했다. 1405시 야하기는 침몰하였다. 야하기 함상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 게이조 소장은 가라앉고 있던 함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에 시계를 들여다 보아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빠져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슬며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그의 옆에는 기름으로 얼굴이 새까매진 사나이가 한 사람 있었다. 야하기의 함장인 하라 다메이찌 대령이었다.


그 무렵까지 야마토의 기울기는 30도를 넘어 계속 기울고 있는 중이었고 이제 완전히 옆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었다. 함장인 아리가 고오사쿠 대령은 함과 함께 가라앉을 각오를 굳히고 나침반의 대좌(臺座)에 자신을 묶었다. 그는 이또 세이이찌 중장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장군님은 귀중하신 몸이십니다. 아무쪼록 승무원과 함께 퇴함하십시오." 그러나 이또 중장도 목숨을 끊을 각오였다.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는 사령관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부장(副長)인 노무라 지로(能村次郞) 대령은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함에 걸린 일왕의 사진이 떠내려가서 미군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함장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노무라는 함내 통화장치로 연락을 취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제9분대장 핫도리 신로꾸로(服部信六浪) 대위가 이미 일왕의 사진을 떼네어 자기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틀어박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일왕 사진과 더불어 가라앉을 각오였던 것이다.



1423시 야마토는 전복했고 1.5톤짜리 주포포탄이 탄약고벽에 부딫쳐 유폭하고 거대한 불기둥을 하늘높이 뿜어올렸다. 폭발로 인한 버섯구름은 6000m상공까지 솟아올랏고 폭발의 충격파는 그 상공을 비행하던 미군함재기 몇기를 피격시켰다. 그것은 북동쪽으로 200km 떨어진 규우슈우 남단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거함은 가라앉았다.



야마토의 마지막 폭발 모습



노무라 대령은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밑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라앉는 도중 주변의 바다는 투명하고 그 속에서 다른 사나이들이 '하늘하늘 춤추는'것이 보였다. 더욱 깊이 빨려들어감에 따라 바다는 어둡고 끝모를 깊이를 가진 청색으로 바뀌어갔다. 그 때 갑자기 빨간 섬광이 몇 줄기 깊은 곳을 달렸다. 훨씬 아래쪽에서 야마토의 나머지 탄약고가 폭발한 것이었다. 바닷물이 요란하게 흔들려 그에게 '천지가 뒤집히는'느낌을 가지게 하였으나 그것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바닷물이 세차게 솟아 올랐기 때문에 노무라는 수면에 떠 올랐다. 그는 하늘을 향해 드러 누운채 떠 있었다.


침몰을 면한 후유츠키호의 제41구축함대 사령관 '요시다 마사요시'대좌는 선임 지휘관으로서 연합함대 사령부에 무전을 보냈다.

['야마토', '야하기', '하마카제'침몰. '아사시모', '스즈츠키' 행방불명. '이소카제', '카스미' 대파. 다른 함정은 운행가능. 생존자 구조임무 후 임무를 수행하도록 건의함.]

그사이 16시55분, 후유츠키는 항행이 곤란한 '카스미'호에 어뢰를 쏴 침몰시켰다. 유키카제는 22시40분에 역시 꼼짝못하는 자매함 '이소카제'를 포격으로 가라앉혔다.

회답 전문을 기다리는 동안, 호위 구축함들은 생존자를 끌어올렸다. 구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도(地獄道)와 같았다고 요시다 소위는 말하고 있다. 이미 구조된 표류자로 꽉 찬 구조정의 승무원들은 자기 배를 살리기 위하여 뱃전에 매달리는 표류자들의 손을 일본도(日本刀)로 가차없이 내려쳤다고 한다. 야마토의 승무원중 구조된 인원은 총269명이었다. 전사자는 제2함대 사령장관 이토 세이이치중장, 야마토함장 아리가 고오사쿠대좌를 비롯해 3063명을 헤아렸다. 제2수뢰전대에서는 1187명이 전사했다.

살아서 구출된 최고위의 장교는 저녁때가 다 되어 구출된 고무라 소장이었다. 전투지휘를 다시 할 생각으로 그는 몸에 묻은 기름을 씻어내고 군복을 빌려입고는 제1유격부대의 지휘를 승계했다. 그는 3척의 구축함을 거느리고 북상중인 손상함의 수색을 개시했다.

4월 8일 새벽 1시23분, 연합함대사령부는 '작전중지. 사세보로 귀항하라' 는 답신을 보냈다.

얼마후 격침을 모면한 구축함들이 하나하나 사세보로 귀항했다. '후유츠키'는 아침 8시45분에, '하츠시모'와 '유키카제'는 그보다 1시간 15분 늦게 돌아왔다.

오후 2시30분 행방불명으로 보고되었던 불침의 '스즈츠키'가 뱃머리를 6m나 날린채 후진으로 사세보만에 미적미적 돌아왔다. 아직도 스스로 항행 할 수는 있었지만 화재는 여전히 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천 1호'작전은 이렇게 끝났다.


이리하여 해군의 해상부대가 감행한 기쿠스이 1호 작전은 처음에 있던 10척 중 6척과 야마토에서만 2700명 이상의 승무원을 잃은 채 목표지점까지 아직도 340km나 남긴 위치에서 끝났다. 이 작전에 의한 미군측의 피해는 조종사 12명과 헬켓 3대, 헬다이버 4대 그리고 어밴저 3대가 전부였다.

기꾸스이 1호
작전 참가함

BB 야마토 (격침)
2498명전사

2수뢰전대 -기함
CL 야하기 (격침)
446명전사

2수뢰전대 -17호위분함대
DD 이소카제(격침)
DD 하마카제(격침)
DD 유키카제(주3)

2수뢰전대 -21호위분함대
DD 아사시모(격침)
DD 카스미(격침)
DD 하츠시모

2수뢰전대 -41호위분함대
DD 후유츠키
DD 스즈츠키

분함대내 구축함중 4척격침 721명 전사


주1)43년 트럭환초에서 당한 뇌격으로(단1발로) 3000톤의 침수가 생겼고 이것이 야마토급의 구조적 문제를 나타내는 예시가 되기도 한다.

주2)43년경부터 일본해군도 레이더를 장착하기 시작했으며 대표적인 13식 대공 레이더는 함교탑 최상부의 측거의 위에 장비되었으며 탐지거리는 집단에 대해 80~90km, 단기에 대해 50km 정도였다고 한다.

주3)유키카제는 종전시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카게로급 구축함이다. 온갖 산전수전을 겪엇지만 살아남은 행운의 구축함으로 해자대가 아껴두고 있는 함명이다.


야마토급의 문제점

1.주포의 3식탄발사의 효용성과 대공포의 급탄방식문제


A : 사람이 입고있는 옷이 찢어지고 일시적으로 기절하는 정도의 압력 (1.16kg/㎠)
B : 탑재 수상기가 파손되는 정도의 압력 (0.5∼0.8kg/㎠)
C : 함재 단정이 파손되는 정도의 압력 (0.28kg/㎠)


야마토급은 설계시부터 주포 발사시의 폭풍과 충격파를 고려해 대공무장을 모두 포탑화 했다. 단, 1943년의 개장시에 추가된 대공포들은 개방식 포좌였기 때문에 주포 폭풍에 대해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무사시의 경우 레이테해전 당시 개방형대공포의 광학 조준경이 전투초반 주포의 3식탄발사의 충격파로 모두 고장나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레이테 해전 종결후 일본 해군은 무사시의 침몰에 충격을 받아 야마토의 대공무장을 대폭 보강한다. 사진은 레이테 해전 당시와 그 후의 모습, 하지만 결국 무사시나 야마토나 결과는 다를바없었다..
그리고 미군함재기 파일럿들의 증언에 따르면 3식탄은 폭발하는 타이밍이 약간 늦어서 피하기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대공포역시 급탄방식이 탄창식이라 연사에 문제점이 있었다.(위의 영상에도 나오지만 탄창에 몇발 안들어간다;)
즉 탄막이 잠시 걷혀지는 순간이 생긴다는 것



2.기술,구조적인 문제

영국의 빅커스강판의 카피본으로 장갑을 둘렀다고 알려져있으나 일본제철기술의 부족으로 원하는만큼의 방어력을 얻기위하여 함이 커지고 무거워지는것을 피할수는 없었다
게다가 주기제작기술의 부족역시 주기의 크기증가를 불러왓고 함의 거대화를 부추겻다. 그리고 18인치포 역시 기술부족으로 인하여 아이오와급의 16인치포 보다 위력이 떨어졌다고 알려져있다.
또한 전폭이 넓어지면서 항공기에대한 피탄면적증가, 조함에서의 기동성저하등의 악재들까지 안게된다
또한 방수격벽의 부실로 인하여 43년 트럭섬 인근에서는 어뢰한발에 선체의 접합이 풀어져 3000톤이 침수되기도 했고 마지막전투에서도 전투초반 어뢰에 몇발이 명중되자 반대측을 역침수 시켜야해서 전투초반부터 부담을 안게되었다.
이는 야마토 뿐 아니라 동형함인 무사시 역시 마찬가지여서 어뢰한발에 2000톤이 침수되기도 했다.




3.머리가 굳어버린 일본의 연합함대사령부

자신들이 만들어낸 전쟁교리에 자신들이 당해버렷다..아니 당해줬다고 해야하나.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무사시도 비행기 앞에는 일개 목표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함대라도 비행기 없는 함대는 무기 없는 장군이나 다름이 없다. 세계 최대 불침함임을 자랑하던 무사시도 이에 굴복했다. 모든 것은 불초 본인이 부덕한 소치이다. 죽음에 앞서 본인의 마지막 소원은 아무쪼록 일본 해군이 항공기 생산과 조종사 양성에 힘쓰기를... 오후 7시, 기울어져가는 무사시 함교에서 함장 이노구찌 대좌.」

위는 야마토에 앞서 격침된 야마토급 2번함 무사시의 함장이던 이노구찌 대좌가 남긴 유서이다...
게다가 그전에 자신들도 항공전력을 이용 진주만을 털기도했고 레펄즈와 POW를 격침시킨 바 있었다..
하지만..이러한 교훈에도 불구 야마토도 같은 운명을 걷는다..

출처: http://ultan.egloos.com/1695223
(↑)(↑)(↑)(↑)(↑) 바-로가-기 클-.-릭

- 오리_지_널 바_다 이야기 (우*리*바*이*야*이*기)

- 무_료 만.원 제.공

- 고.래 한.번 봐요.

- 입+금 보+너+스 10% 제공 하고 있습니다.

운+영+자 인간성 좋고 입_출_금 깔끔하게 해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