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흙사랑-이천기 2018. 12. 5. 15:31



< 정호다완 >

土魂 정호다완 (井戶茶碗) 이천기李千基 원작 

1519년 겨울, 능하요菱荷窯에 불을 지핀 것은 바람이 조금 부는 맑은 날 아침이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려 산과 들이 온통 하얗게 덮여 있다. 집 앞 야트막한 산에는 노루와

산토끼들이 가끔씩 내려와 먹이를 찾아 움직일 뿐, 인적이 드문 산 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지난밤에 눈발이 날려 입구가 막힌 가마 봉통(아궁이)을 눈삽으로 치우고 난 후, 정호는

전날 미리 넣어 둔 솔가지에 불을 붙였다.

예열칸 가마의 연기는 유약이 발린 사기들을 헤치고 굴뚝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겨울의 찬 공기를 데우며 연기는 춤을 추듯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장작을 쌓아 둔 창고에도

아침햇살이 흘러들기 시작한다.

정호는 봉통 칸에 긴 나무를 넣어 놓고 몇 시간 후 칸불에 사용할 장작을 지게로 나르면서

부처님 전에 올릴 찻사발과 지허스님께 드릴 발우를 생각했다. 얼마 전 새로 찾아 낸 흙으로

구울 발우와 찻사발이 원하는 대로 잘 구워지기를 염원해 본다. 정호는 쉬지 않고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나무를 옮기고 있다. 지영섭은 ‘쿨룩쿨룩’ 기침을 하면서

방문을 열고 나와 가마 아궁이 앞에 앉아 장작을 나르고 있는 정호를 보고

“정호야! 밤새 눈이 많이 왔구나. 그래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다행이다. 사기沙器를 굽기에는

좋은 날이다.”
“일어 나셨습니까. 아부지.”
“그래, 너도 잘 잤느냐?”
“예.”
“내가 불을 볼 테니 너부터 아침을 먹고 오너라.”
“아닙니다. 제가 불을 볼 테니 아부지 먼저 식사를 하세유.”
“그렇다면 어무이한테 말해서 밥상을 여기로 가지고 와서 같이 먹자. 눈이 왔어도

불 앞이라 따뜻하다.”
“예, 알겠습니다.”

정호가 나간 후 봉통안의 불길이 잦아지는 것 같아 영섭은 큰 장작을 몇 개 뽑아

봉통 안에 다시 던져 넣었다. 순간 허리의 통증이 느껴진다. 가마에 손을 짚고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만큼 정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세를 바로 했다.

오래전 관헌에 끌려가 매를 맞고 난 후부터 생긴 허리의 골병이다. 오늘처럼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나타난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짐을 느낀다.

“아부지, 밥상을 어디다 놓을까유?”
“여기 봉통 앞에 놓아라.”
“너무 뜨겁지 않을까유?”
“오늘따라 허리가 많이 아프구나. 불 가까이 있고 싶어서 그런다.”
“불은 제가 땔 테니까 밥 먼저 드시고 칸불을 넣을 때까지 방에서 좀 쉬세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유…”

“…내가 알아서 하마. 저녁까지 불 때려면 힘들 텐데 많이 먹어라.”
“예, 아부지도 많이 드세유.”

지영섭은 정호와 함께 가마불 앞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불빛을 받아 발그스레한 정호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봉통(아궁이)속의 불꽃을 바라본다. 기억 저편 관요官窯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젊은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관요에서 머슴처럼 물레를 차면서 사기를 만들던 그 시절, 도자기를 좋아하는 세도가

구具대감의 눈에 띄었다. 그 후 구대감이 만든 가마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 양인兩人의 딸인

김선희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정호를 낳았다. 지난 시간들의 아슴한

기억들이 불꽃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부지, 봉통 속으로 불길이 잘 빨려 들어가는 것 같네요.”
“그렇지? 불 파도가 일지 않은 걸 보니 이번 분청은 잘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성燒成 날을 잘 택한 것 같네유.”
“그래, 이번 가마에 네가 만든 찻사발과 발우도 잘 구워졌으면 좋겠다.”
“예, 저도 기대가 큽니다유.”
“백자와 분청은 늘 해오던 것이라 그런대로 괜찮게 나오는 것 같은데 네가 꿈속에서 본

그 빛깔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다. 흙과 유약을 잘 선택해서 수 십 번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예.”

 


늦은 밤이 되어서야 세 번째 굴의 백자 유약이 녹았다. 정호는 찻사발의 불보기(시편示片)를

여러 개 꺼내 물에 담구었다가 식힌 후 다시 색깔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짙은 회색과 조금

검푸른 색만 눈에 뜨일 뿐, 그토록 원하는 비파색은 아니다. 고온을 견디지 못한 유약이

 아래로 흘러 내려 있다.

“정호야! 이번 흙도 아마 불에는 약한 것 같다.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그래도 발우는 흙발우 색깔과 비슷해서 그런대로 나온 것 같다만…”

“예, 그런 것 같네유.

열에 강한 흙을 다시 찾아 봐야 겠네유.”

마지막 가마굴의 유약이 녹자 영섭은 정호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호는 가마주변의 장작을 옮겨 놓고 먼저 꺼낸 불보기를 손에 잡았다. 그리고 나서

가마 안에서 붉게 달구어진 발우와 찻사발에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었다.

오래 전, 정호는 금빛 옷을 입은 보살이 부처님 전에 차를 올리는 꿈을 꾸었다.

찻사발을 양손에 잡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차를 올리는 보살의 모습이었다.

그때 꿈속에서 본 찻사발의 빛깔은 살구색 또는 비파색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정호는 그 찻사발을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정호는 수없이 산 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찾아낸 온갖 종류의 흙으로

찻사발과 발우를 만들어 보았다. 흙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유약도 만들어 보았다.

가마는 보통 두 달에 한 번씩 불을 지피는데 그때마다 구워져 나오는 것을 잘 살펴보고

있지만 지금까지 원하는 색깔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봄이 되자 정호는 다시 새로운 흙을 찾기 위해 산으로 갔다.

불에 강한 흙은 아무래도 찾기가 힘들다. 산의 허리와 계곡을 따라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생각처럼 원하는 흙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허스님이 살던 중방골, 그 골짜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우천 북쪽에 있는 진개골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흙을 찾았다.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가마로 돌아와 토물을 받아 꼬막을 밀고 물레에 올려 성형을 시작하자 점력이 없는 흙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선 흙의 성질을 알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레를 차며

성형을 해보아야 한다. 수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초벌을 마치고 다시 재벌 가마에

불을 땔 수가 있는 것이다.

드디어 가마에 불을 때는 날이다. 칸불에 땔 장작을 나르고 있는 정호앞에 상처투성이

얼굴을 한 노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여기가 능하요 맞재? 영섭이가 사기를 만드는 곳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만…”
“영섭인 어디 있는고?”
“저기 가마에 불을 때고 있습니다.”
불대장 방노인은 불을 때고 있는 영섭을 금방 알아보았다. 넘어질듯 다리를 절룩거리며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어이, 영섭이! 나야.”
“아이고, 형님. 이게 몇 년 만인가유? 살아 계셨구만유.”
“내가 왜 죽어! 이렇게 살아있는데.”

 


지영섭은 불대장 방노인을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방노인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보더니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다시 반가움과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마음 한 구석에 쌓여있던 그간의 아픈 기억들이 눈물과 함께 풀어져 내렸던 것이다.

“잘 살았는가? 영섭이. 사기를 잘 만든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었어.

자네에게 미안해서 말이야.”

“저도 형님이 보고 싶을 때가 참 많이 있었어유. 엄동嚴冬에는 더욱 생각이 많이 났구만유.

그런데 그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셨어유?”
“하하하! 내가 배운 것이 가마에 불 때는 것밖에 더 있나. 여기저기 가마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불이나 때주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지. 내가 너무 오래 보이지 않아 죽은 줄 알았어?”

“아닙니다유, 형님.”
“나는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아.”
“불대장 형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유. 백자를 구우면서도 나무 재 하나 붙이지 않고 불 때는

기술은 형님뿐이지유.”
“이제는 다 부질없는 짓이야. 옛날이 좋았지. 영섭이도 많이 변했구만. 살도 빠지고 눈도

구만리나 들어갔어.”
“세월이 많이 지나지 않았어유.”
“허긴 그렇기도 하지. 한 20년은 된 것 같은데.”
“아마 그 정도 됐을 겁니다유.”
“배가 고픈데 술은 없는가? 술 한 바가지 목구멍에 넘겼으면 좋겠네. 술 배가 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것 같애. 힘이 없어.”
“형님은 여전 하시네유. 점심식사를 먼저 하시고 술을 드시지유.”
“밥은 무슨 밥이야! 내가 술 마시는 것이 낙이지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안 그런가.”
“…”
“예, 맞아유. 형님.”
“저기 가마에 나무를 나르는 사람이 자네 아들인가?”
“예, 그렇습니다유.”
“그래, 어쩐지 자네와 닮은 데가 있더구만…”
“술 한 잔 같이 하게 이리 오라고 해봐!”
“정호는 술을 못하는데유.”
“도공이 술을 못 마시면 되는가! 술을 잘 마셔야 사기를 잘 굽지!”
“……”
“정호야! 잠깐 이리 오너라.”
“예, 아부지.”
“불대장 방씨 아재다. 인사드려라.”
“처음 뵙겠습니다. ‘지정호’입니다.”

“튼튼하게 잘 생겼구나. 어깨가 쩍 벌어진걸 보니 사기 하나는 잘 만들겠구나. 자! 너도

술 한 바가지 마셔라. 힘든 일을 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한단다. 흐흐흐, 술기운이 없으면

불도 잘 때지 못하지…”

“고맙습니다만 술은 다음에 마시겠습니다. 오늘은 불도 때야 하고 나무도 날라야 하니까유.”
“그래도 한 바가지 정도는 마실 줄 알아야지!”
“정호야, 괜찮다. 한 모금만 마시고 가거라.”
“예, 아부지.”
“허허, 이놈 보게. 튼튼하게 생겨가지고… 말도 야무지게 잘 하네. 그래, 입에 맞지 않으면

마시지 마라. 멀쩡한 사람의 정신을 다 혼절시키는 게 술이지. 잘 생각했어. 흐흐흐…”

지영섭이 봉통(예열칸) 불 때기를 마치고 가마 불창에 장작을 넣자 방노인이 불 살창으로

가마 안의 불꼬리를 보면서 한 마디를 한다.

“내가 보건대 아직 자네는 불 다룸이 서툴러 나무와 불의 궁합을 모르고 있어.”
“한동안 몸이 아파 불을 자주 때지를 못해서 그렇구만유.”

“그건, 하수下手들의 변명이야! 불 다루는 것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어. 불을 땐다고

다 같은 불이 아니야. 불의 성질을 알아야지. 불을 때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릇을 굽는 것은

불이란 말이여!”

 


 방씨는 영섭의 서툰 불 다룸을 질타하고 가마 안 불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 때 과일을 들고 오는 선희를 보자 두 눈의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섭이, 나 이제 갈란다. 여기 있으면 잔소리만 하게 되고 불 때는데 방해만 될테니.”
“아니구만유, 형님!”
“가마의 불꽃이 절정에 달아오를 때 불 힘이 골고루 사기에 전달이 되기 위해서는

나무와 나무 사이가 겹치도록 해야 해. 불창 아궁이 바닥을 산모양이 되도록 나무를

낙하시켜야 불 파도가 골고루 사기를 감싸고 나가면서 때깔 좋은 사기가 나온단 말이여!”
“예, 알겠습니다유. 형님.”
“그럼 잘 있어, 영섭이…”

불 대장 방노인이 집 앞 고목을 돌아 마을로 내려가고 있을 때, 정호가 영섭에게 물었다.

“방씨 아재는 어느 요窯에 계시는지요?”
“응, 한때는 나와 함께 관요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는데 불만 전문으로 때는 불대장이었단다.

젊었을 때 각시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첫 애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었단다. 그런데

각시가 죽은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불을 때다가 마지막 나무를 불창에 던져 넣고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아이와 함께 죽어 있는 것을 본 거지. 피범벅이 되어 있는 그 주검을

보고 그 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어. 그 후부터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온 마을과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죄인이다! ~ 내가 죄인이다! ~ 아이와 각시를 죽인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다!’ 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돼버렸단다. 그러다 간혹 정신이 돌아오면 자기를 부르다 죽은 각시와

아이 생각을 잊으려고 날마다 술에 취해 살고 있단다. 그러나 그의 불 다루는 기술만큼은

관요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원래 다리를 절었나요?”
“아니,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어.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더라…. 아이와 각시가 죽고부터 날마다

술에 절어있었지. 술을 마시고 요장 窯場을 찾아가서 횡설수설하면 다른 도공들이 싫어하는

것은 뻔하지. 관요에 있을 때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방씨 아재를 나도 몇 번인가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하루는 방씨 아재가 다른 요장에 놀러 갔더니 도공들이 불을 때면서 술을 마시고

 있길래 아재도 한 잔 달라고 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젊은 도공들이 두들겨 패서 실컷 맞았단다.

‘미친 점粘놈 빨리 죽어라’고 발길질을 하고 얼굴에다 술을 붓고 끌고나가 문밖에다 내팽개친

모양이더라. 그러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소금까지 뿌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집으로

데려와 치료를 했었지만 워낙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서 그런지 그때부터 다리를 절게 되었단다.”

정호는 방노인의 지나온 애환을 듣고 앞산을 향해 돌아섰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금쪽같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호는 구대감이 주문한 백자와 분청을 굽고 있었다.그간 캐 온 온갖

다양한 흙으로 꿈에서 본 비파색 사발을 만들기 위해 늦은 밤까지 땀을 흘리며 물레를 차며

성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기간동안 참선공부를 위해 떠나있던 지허스님이

능하요에 왔다.
“모두들 잘 계셨는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스님, 오셨습니까?”
“그래, 정호야 잘 있었느냐?”
“예, 스님.”

정호는 지허스님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간 능하요에서 새로운 흙으로 구운 발우를 지허스님께 보여 드렸다.

“불이 제대로 맞지 않았던 것 같구나. 전체가 어두운 회색이지만 죽절굽의 물방울 현상(매화피)은

조화롭게 잘 나왔구나. 두 손 안에 편안히 감싸지는 느낌이 좋구나. 가루차를 풀어 마시는 찻사발로

사용하면 좋겠다.”정호는 오래 전의 꿈 이야기를 스님에게 했다. 다 듣고 난 후 스님은 길상스런

꿈이라며 걸망 속에서 작은 광목 보자기를 풀어 놓았다.

“그렇잖아도 내가 사는 하동 북청 옥종리 절골 산중턱 절개지에 특이한 흙이 있길래 눈여겨 봐 두었지.

오는 길에 조금 가지고 왔다. 어떤 색깔의 사기가 만들어 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흙으로

한 번 구워 보아라.”
“예, 스님.”

광목 보자기를 풀자 흙에서는 약간의 향내 같은,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흙이었다.

진붉은 노란색에 금빛이 어렴풋이 비치기는 한데 점력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스님, 느낌이 괜찮은 흙인데유… . 냄새도 좋고유.”
“그래, 붉고 노란 흙들이 금빛을 발하며 섞여 있어 내가 한 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묵은

흙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제가 찻사발과 발우를 구웠던 흙도 이 흙과 색깔이 조금 비슷했습니다. 중방골 계곡 절개지에서

눈에 띄어 캐 왔는데, 비가 오고 난 후 다시 가보니까 비에 휩쓸려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스님! 저는 꿈속에서 본 그 찻사발을 꼭 만들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래, 부처님은 원을 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하셨으니, 네 원도 이루어 질것이다.”

 


정호는 한여름의 불볕더위도 잊고 발물레를 차면서 찻사발 성형에 몰두했다. 땀이 비 오듯

온 몸을 타고 내렸다. 턱밑에 고인 땀방울이 흙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떨어진 땀방울이

흙과 하나가 되어 물레 위를 돌아간다. 그래도 정호는 지허스님을 생각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물레를 찼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드디어 재벌가마에 불을 때는 날,

정호는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 의해 관헌으로 끌려갔다. 오래 전에 관헌으로 끌려가

곤장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그도 똑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법을 어기며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그도 곤장을 맞았다. 그는 냉방에 구감되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서 석방이 되었다.

“정호야, 네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죄라면 사기를 잘 만든 죄밖에는….”
“어무이, 저도 하늘을 원망했지만 천민인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좋은 세상이 올 때 까지는 참고 살 수밖에 없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모두 다 용서하자.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면서….”

“예, 그래야지요. 어무이.”

“이제 능하요에서는 사기를 구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만든 도자기를 본 일본 상인이

관요의 도자기 보다 낫다고 말들을 하고 다니니까 관요장이 이것을 빌미로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는 능하요를 조정에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영구폐쇄를 주장하고 나오니 구대감도

관헌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는가 보더라.”

“그랬을 겁니다.”

“그래, 사대부의 세력다툼에 네 아버지와 네가 결국은 희생양이 된 것이다.”
“……”
“구대감이 당분간 대감댁에서 약을 먹고 몸조리를 하면서 좀 쉬라고 하더라. 나이 들어

골병이 도지면 큰 병이 되니까 다른 생각 말고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예, 어무이.”

곡우穀雨가 지나면서 정호의 몸은 조금씩 회복이 되어 이제는 장작을 팰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안정이 되었다. 왕성한 봄기운으로 산과 들엔 온갖 꽃들이 피어나며 향기를 날리고 있다.

구대감 댁 마당에 핀 노란 개나리도 벌써부터 담장 밖으로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은은한 홍매의 향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집안에 번져나고 있다.

 


정호는 진달래 붉게 핀 앞산에 올라가 차 잎을 따 왔다. 그늘에 말린 찻잎을 덖기 위해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는데 그간 불사를 다 마친 지허스님이 정호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스님, 오셨습니까?”
“그래, 정호야. 몸은 괜찮으냐?”
“예, 스님,”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닙니다. 스님.”
“정호야…”
“예, 스님.”
“나를 따라 절에 가서 살지 않겠느냐?”
“……”
“내가 생각해 보았는데 너는 세속에 살 사람이 아니다. 오랫동안 너를 지켜보았지만

심성이 어질고 맑아 마을에 살면 시련과 고통이 계속 따를 것이다. 그래도 양인兩人 어머니를

만나 너는 글을 깨쳤지 않았느냐. 생각이 깊어 이 현실에서는 네 뜻을 펼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도 잘 알 것이다. 오늘 밤 깊이 생각해 보고 다음날 나와 함께 북청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예, 스님…”
다음날 아침 정호는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두고 구대감 댁을 떠나왔다. 어머니에게 는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 감춘 눈물이었지만, 집이 멀어지자 두 줄기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호야, 이제는 마음이 정리가 되었느냐?”
“예, 스님.”
“그럼, 조금 쉬었다 가자. 이틀을 걸어가야 하니까 탁발도 하면서 천천히 가자.”
“예.”
“나도 부모님을 두고 출가를 할 때 지금의 네 마음처럼 그랬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 없더라. 그래서 지금 네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
“세속의 정든 인연을 끊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한 생을 세속 인연에 끄달리지 않고

쉬게 하면 전생의 업장이 멸滅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호화로운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했기 때문에 성불을 할 수가 있었다. 속가에 남아 왕위를 계승하였다면 선인의 예언대로

전륜성왕이 될 수는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인류에 길이 남는 성인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의 근본인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업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키고 윤회輪回를 벗어나게 하는 ‘깨달음’에 그 목적이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 함께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자.”

“예, 스님.”

 


옥종리 절골 정수사에 도착한 다음 날 정호는 삭발을 했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영원한

불제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삭발을 하는 의미라고 지허스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 무명초無明草를 제거해야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이는 곧 소유하지 않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을 약속하는 것이며

과거의 습성, 관행, 혈연까지 절연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삭발의식을 엄숙히

행하는 것이다.”
스님은 마음 가운데 애욕을 떠난 이를 ‘사문沙門’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는 말의 의미를 정호의 가슴에 새겨 주었다.
정호행자는 조석으로 예불문을 염송하기 시작했다. 몸으로는 절을 하고, 마음으로는 그 뜻을

새겨가며 날마다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일체 생명의 본원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날마다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어느 듯 두 해가 지나고 정호행자는 정수사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처님 전에서

수계를 받았다. ‘정호井戶’라는 세속의 이름을 그대로 법명으로 이어받았다. 지허스님은

스님이 되면 법명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도 그 제자가 출가 전에 사용하던

이름을 법명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며 그대로 쓰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이름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는 스님이 되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했다. 수계를 받은 후, 정호스님은

그 법명처럼 성품이 우물처럼 깊고 집처럼 든든한 법기法器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행자가 들어오면서 정호스님도 정수사 생활에 익숙해졌다. 지허스님은 먼저 출가한

덕산스님과 정호스님을 불렀다.
“덕산, 정호야, 수행자의 구경 목적은 ‘깨달음’에 있다. 그래서 마음공부인 참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대 시교를 알지 못하면서 가부좌 틀고 앉아 있다고 누구에게나 다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 숙생에 불법과의 인연이 있는 사람은 법기法器가 무르익으면 몰록

깨닫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부처님과 조사어록을 공부하고 참선을 하는 것도 좋은 공부 방법이다. 문자에만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경을 바로 이해 할 때, 사교입선捨敎入禪 하거라.”
“예, 스님.”
정호스님은 불경을 배우고 선사어록을 통해 선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선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선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허스님께 질문을 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마음에 낀 때를 벗기는 작업이 선禪이다. 선은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번뇌를 제거시켜 때가 묻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다.

부처의 마음이 오면 비춰주고, 가면 흔적을 지우는 거울 같은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창호지와 같아

한 번 먹물이 떨어지면 지워지지 않는다. 참선은 밝은 거울이 되려고 하는 수행이다. 그러니

일상이 선禪 아닌 것이 없다.”

 


정수암에 대중이 늘어나고 참선객들도 모여들어 한 철씩을 정진하고 돌아갔다. 정호스님은

선방스님들을 시봉하면서 화두話頭를 잡았다. 그러면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통해 선의 깊은

세계를 조금씩 체험해 갔다. 한 번 좌선을 하면 오랜 시간을 선열禪悅에 들곤 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찾아 온 어느 날 지허스님이 정호스님을 불렀다.
“정호야!”

“예, 스님.”
“참선공부가 잘 되느냐?”
“예, 잘되고 있습니다.”
“조사祖師들께서 ‘평상심이 도道’라고 했다. 빛의 광선이 수 천 갈래이나 근본 요소는 하나이다.

화두를 놓지 않고 잡고 있으면 행주좌와行主坐臥가 선禪 아닌 것이 없다. 마음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려 하지 마라.”
“예, 스님.”

“오늘 내가 찾아 온 것은, 옛부터 우리 절집은 단청, 탱화, 기와, 발우를 스님들이

직접 그리거나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있다. 우리 정수암에도 작은 사기 가마를 묻어 해제 철에는

발우와 찻사발을 만들어 산사山寺에서 올곧게 수행하시는 스님들께 보시布施를 하려고 하는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
“……”
“예, 스님. 스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날을 택해 대중이 함께 울력運力하는 마음으로 작은 가마를 묻어 보도록 하자!”
“예, 스님.”
짚단으로 가마 지붕을 먼저 만들고 정호스님과 대중들은 황토에 사토를 섞어 흙벽돌과

망뎅이를 만들어 가마를 짓고 토물을 받아 흙을 만들었다.

두 달간 쉬지 않고 울력運力을 한 끝에 작은 가마의 자태가 드러났다. 인근 야산에서 퍼온

흙이지만 색감과 느낌이 좋았다. 땀 흘리며 꼬막을 밀면서 정호스님은 꿈에 보았던 그 ‘찻사발’을

생각했다.


“정호야, 물레는 마음과 같이 잘 돌아 가느냐?”
“예, 스님.”
“부처님 전에 올리는 찻사발은 탈속脫俗한 사람이 만들어야 성물聖物이 될 수 있다.”
“예, 스님.”
“불보살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좋은 법기法器를 만들어 보아라.”
“예, 스님.”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모여 사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고부터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 공안을

타파했고 차와 선禪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
“예, 스님,”


지허스님과 정호스님이 마음으로 만드는 찻사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덕산스님이 지허스님을

찾아 황급히 뛰어 왔다.
“스님, 빨리 와 보십시오.”
“왜 그러느냐?”
“지대방에서 이상한 노인이 술에 취해서 자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깨어나셨느냐?”
“예, 물을 찾길래 한 사발 떠 드리고 바로 달려 왔습니다.”
“정호도 한 번 가보자.”
“예, 스님.”
정호스님은 지대방에서 자고 있는 노인을 보자 깜짝 놀랐다.

구석 저 만큼에서 웅크려 자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사남면의 불대장 방노인이었다.

온 방안에서 술 냄새가 역겹게 풍기고 있었다. 손과 발은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었다.

“정호야, 이 노처사가 누군지 아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사남면 관요에서 불대장을 지낸 방처사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어젯밤 남산이와 함께 도량에서 행선行禪을 하는데, 노처사가 법당 계단 구석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길래 이곳으로 모셔 왔다. 일어나면 공양을 차려 드리고 내 방으로

모시고 오너라. 이 분께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예, 스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기는 경전을 읽거나 참선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있으면 그 때 만들도록 하고

해제 철에 불을 때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손이 많이 가는 일이 있으면 그 때는 대중의

울력運力으로 하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스님.” 지허스님이 방으로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불대장 방노인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단번에 정호스님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찾아오기는 했네, 정호.”
“예, 처사님.”
“너무 반갑네, 반가워.”
“어디에 계시다가가 오셨습니까?”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나서 사남면에 갔다 왔어…”

 “… ?”
“나무관세음보살…”
“그간 어디에 계셨어요?”
“앞산 너머 점粘골 움막에서 지내고 있어.”
“참, 정호스님! 중방골 우리 마누라 산소위에 있는 절에 가서 하루를 잤는데

거기서 스님의 어무이를 만났어.”

“그래요! 건강은 좋으시던가요?”
“그 절에서 공양주를 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하대. 정호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말하기에 죽은 영섭이 생각나서 찾아왔지.”

“시장하실 텐데 공양을 드시고, 큰 스님에게 인사드리도록 하지요.”
방노인이 늦은 아침공양을 하는 동안 정호스님은 잠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잘 계신다는 방씨의 말에 다소 마음은 놓였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불보살님께 감사를 드렸다. 방씨는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워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지허스님을 찾아가 큰절로 인사를 했다.

“앞산 점골 가마에서 잡일을 하며 살고 있는 방무현입니다.”
“예, 방처사님. 공양은 많이 하셨는지요? 정호수좌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이름난 불대장이시라고요.”
“그건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눈이 어두워 불 색깔도 볼 수가 없습니다.

점골에서 잡일을 해주고 거저 밥이나 얻어먹고 살지요.”
“이곳 정수사에서는 부처님 전에 올릴 찻사발과 수행하는 스님을 위해 발우를 조금

만들고 있습니다. 가끔 오셔서 정호수좌를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처사님이 어렵고 힘겨울 때는 언제든지 찾아오셔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예, 스님. 고맙습니다.”

지허스님이 정성으로 가루차를 풀어 방씨에게 주자 방씨는 떨리는 두 손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차를 마시고 점粘골로 돌아갔다.

다음 해 정호스님은 점골 사람으로부터

방노인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마을 민가에 큰 불이 났다. 어린아이가 미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아이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도 큰 불길 속에 뛰어들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방씨가 불길 속에 들어가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밖으로 던졌다. 그러나 정작 그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무너진 집 더미에

 깔려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을 듣고 정호스님은 자신이 구운 찻사발에

가루차를 정성껏 저어 불전에 올리고 방노인의 명복을 빌었다.

‘방처사님! 생전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겠습니다.

불 땔 때마다, 평소 무심코 던지고 가신 말 한 마디가 지금 저에겐 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사바세계에 오시지 말고 왕생극락 하옵소서. 왕생극락 하옵소서…’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정수사에서는 재벌가마에 불을 지폈다. 불을 때면서 정호스님은

이번에도 비파색 나는 마음의 찻사발을 기도했다. 그러면서 다시 불창에 장작을 던지고 있었다.

정호스님은 그간 수 십 번도 넘게 가마에 불을 때었다. 그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흙으로

여러 개의 사기나 도편에 유약을 발라 불창 앞과 살창 앞, 가마의 좌우, 위아래에 위치를

바꿔가며 놓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성燒成실험을 하고 다양한 재유灰釉(느릅나무, 소나무,

참나무, 감나무, 볏짚, 콩깍지… 등)를 만들어 실험을 해 보았다. 그 재유들로 장석, 규석,

석회석에 섞어 초벌 성형한 발우와 찻사발에 시유를 한 다음 불을 때 보기도 하면서 마음의

찻사발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깊은 절골 계곡에도 어느 듯 가을이 찾아와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절경을 이루었다.

어느 날, 새벽 예불을 모시고 난 지허스님은 사중 일을 정호스님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다비茶毘식날 점粘골에서 조문하러 온 노 도공陶工이 차를 마시다

정호스님이 만든 미완未完의 찻사발을 보았다. 그는 불길이 잘못 지나갔음을 지적하고

불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옛날 불대장 방노인이 들려준 바로 그 말과 같았다.

“불을 때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릇을 만드는 것은 불이다. 모든 사기가 다 속살까지

익어야만 좋은 색깔이 나오는 것은 아니란다. 겉 불만 잘 때도 좋은 그릇이 나오는 경우도 있단다.

결국 흙과 불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그것은 즉 ‘산화불(散火 : 사기 전체를 익히지 않고 표면만 익히는 약한 불)’로 소성을 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그는 능하요 시절부터 백자나 분청을 소성하기 위해 환원불에 길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번 불을 땔 때마다 산화불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식의 불을 때었던 것이다.

정호스님은 참선과 물레차기로 오십년을 보냈다. 참선의 힘을 얻어 탐,진,치에 걸리지 않은

마음의 자유도 조금씩 더했다. 집착과 분별심이 끊어진 적멸위락寂滅爲樂,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사가 없는 법기法器가 되어갔다. 그러면서도 오직 한 생각, 성물聖物이 될 찻사발만을

생각하고 또 만들었다. 돌아가는 발물레 위에서는 손과 발, 마음이 하나 되어 무아지경이 되었다.

흙을 성형 하다보면 때로는 법희선열法喜禪悅에 빠지기도 했다. 

 


정호스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예불을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신중단을 향해

반야심경을 낭송하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뚫고 가는 한 줄기 소나기 같은 경구經句에

마음이 닿았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다 비었음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사리자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서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며, 감각,지각의지, 계속되는 생각, 최후의 인식도

그러하느니라.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이 경구가 머리를 스치면서 정호스님은 어떤 영감靈感을 얻었다. 같은 흙과 같은 재유라도

소성燒成방식이 다르면 유약에 따라 색상도 달리 나온다는, 지혜의 해답이 반야심경 속에

들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정호스님의 노련한 발물레 위에서는 어떠한 흙들도 그의 마음가는대로

형상이 되어 나오고 또 성형이 되었다. 무아의 경지에서 우주의 법칙을 체득하고 의상조사

법성게法性偈가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능엄주를 외우면서 성형한 찻사발은 단순히 그의

손으로 만든 사기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물레자국,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감싸는 넉넉함,

대마디 죽절굽, 깊은 샘과 같은 차고임 자리,자태에서 풍기는 무언無言의 위압감, 그것은

불전에 올리는 불기佛器요,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 헌다완獻茶碗이 성형되어가고 있었다.

재벌가마에 다시 불이 부쳐지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 가마의 연기가 하늘로 오르면서

소나무에서 나는 향내가 정수사의 온 경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덕산스님이 만든 발우와

찻사발도 가마 안에서 불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를 나르는 행자들의 머리위에도 맑고 깨끗한

기류氣流가 흐르는 듯 했다.

정호스님은 흰수염을 날리며 중성불, 산화불을 오가며 불춤과 불 파도,불산을 다스리며

나무를 불창에 던졌다. 오랜 시간 장작을 태운 가마의 불길은 네 번째 가마의 유약을 녹였고

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다섯 번째 가마의 유약이 녹을 무렵이 되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며 굉음轟音을 동반한 천둥번개의 섬광閃光이 가마위에 떨어졌다.

그을음이 다 날아간 가마 안 찻사발은 불과 한 몸이 되어 이글거리고 있었다. 주황색 불길이

은백색으로 바뀌자 정호스님은 마지막 장작을 던져놓고 가마를 향해 합장을 했다.

내리던 비도 그쳤다.

이틀을 식힌 가마의 문을 조심스럽게 헐었다. 일념으로 생각해오던 마음의 찻사발은

어두운 가마 안에서 장엄한 비파색枇杷色 만다라를 펼치고 있었다. 유약은 짙게 녹아 마치

벌집 같은 빙렬氷裂을 보이며 큰 물방울같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매화피梅花皮는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사발이었다. 정호스님은 무아지경에서 법희선열法喜禪悅로 만든 찻사발을

두 손으로 잡고 하나하나 포개어 조사전 마루 아래에 깊이 넣어두었다. 이것은 정수사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찻사발이 되었다.

그 찻사발과 발우는 차를 좋아 하는 선객禪客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변에 있는 스님들에게

조주스님의 끽다 정신을 들려주었다. 차茶와 선禪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경계를 말하면서

차생활과 불전헌다 할 것을 권하였다.
그 해 겨울,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 공양을 마친 정호스님은 상좌 현수스님을

법당으로 불렀다. 보자기에 싼 찻사발을 풀어놓으며 당부의 말을 했다.

“현수야, 이 찻사발은 내가 오직 마음으로 만든 찻사발이다. 이 찻사발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나의 수행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경을 읽을

때나 맑은 의식을 행할 때는 삼보전에 반드시 헌다獻茶를 해야 한다. 헌다를 할 때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여라.”

“예, 스님.”
“이 찻사발에 담긴 차를 마시는 것은 곧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마시는 것과 같다.

그 기운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맑히고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끊게 해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도반道伴이 될 것이다.”

“예, 스님.”
“여기 마지막으로 구운 다섯 번째 가마에서 나온 다완(茶碗찻사발) 가운데 몇 개를 남겨 두었다.

내가 열반涅槃에 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의 눈이 열린 자가 찾아올 것이다. 그 사람이

이 다완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강산이 전란戰亂의 광풍狂風에 휩쓸릴 것이다.

인과에 얽힌 업業의 수레가 피를 뿌리며 지나갈 것이니 이곳 또한 온전치 못할 것이다. 정수사

대중은 국난國難이 오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방어防禦하고 대중이 힘을 합쳐 불법을 지키며

난세 속에서도 수행자의 본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훗날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선승禪僧을

찾아 목숨 걸고 참선해서 대장부 일대사를 해결하도록 하거라.”

“예, 스님. 명심하겠습니다.”
“승찬 조사祖師의 신심명信心銘을 가슴에 새기며 수행의 거울로 삼아라.”
“예, 스님.”

현수스님이 법당을 나가자 정호스님은 유약이 떨어져 나간 다완茶碗에 말차를 정성껏 저어

불전에 올렸다. 귀명삼보를 염송하고 좌선한 채로 열반에 들었다.

1563년 명종明宗 18년,

일본스님 한 분이 정호井戶라는 도공을 찾아 하동 북천 옥종리 입구에서 길을 묻고 있었다.


                                                      - 끝 -



 정호다완 井戶茶碗
높이 9.1cm, 지름 15.3~15.5cm, 무게 370g


일본명 喜左衛門大井戶茶碗 所藏者 기자에몬대정호다완을
소장했던 소장자

竹田 町人 1527 ~ 1568 다케다 죠닌
豊臣秀吉 1536 ~ 1598 도요토미 히데요시
午利食 1598 ~ 1612 오리베
德川家康 1543 ~ 1616 도꾸가와 이에야스
本多能登守忠義 1615 혼다노토노카미
中村宗雪 1634 나까무라소세스
塘氏家茂 1741 스즈미우이에시게 (삿된 마음으로 소장후 사망)
松平不味 1775 마스다이라후마이 (소장 후 알 수 없는 병에 걸림)
月潭 1811 겟탄 (소장후 후마이와 같은 병에 걸림 )
京都 紫野 大德寺 孤蓬庵 교토 무라사끼노 다이도꾸사 孤蓬庵에 안장 후
마스다이라후마이松平不味와 겟탄月潭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

1951 우익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국보 지정

 



찻사발 정호다완井戶茶碗의 복제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초인적인 경지에서 정신精神을 모아 만든 성물聖物 정호다완井戶茶碗

선수행禪修行 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의 정호다완을 만들어 보기 위해 옛날 방식대로 흙물을 수비해서 점토를 만들어 발물레로 성형하여

돌을 가루내어 만든 유약을 발라 만든 찻사발을 보면서 선조 선도공의 경지를 엿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훗날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정호다완을 만든 선도공과 

조우 할 날을 기대 할 뿐입니다. 



글쓴이 / 이천기 李千基

경남 거창 주상면 보해산에서 AI조류독감 Avian Influenza, 아프리카 돼지열병 예방 및 치료

지구 온난화를 대비하는 농사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교토 대덕사 고봉암에 안장되어 있는 정호다완 원본


정호다완  2003년 이천기 작


정호다완  2003년 이천기 작


시간됄때 읽어보려고 제카톡에 저장하려고합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셔도 됩니다.

 
 
 

나의 이야기

흙사랑-이천기 2018. 5. 3. 16:22



< 정호다완 >

土魂 정호다완 (井戶茶碗) 이천기李千基 원작 

1519년 겨울, 능하요菱荷窯에 불을 지핀 것은 바람이 조금 부는 맑은 날 아침이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려 산과 들이 온통 하얗게 덮여 있다. 집 앞 야트막한 산에는 노루와

산토끼들이 가끔씩 내려와 먹이를 찾아 움직일 뿐, 인적이 드문 산 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지난밤에 눈발이 날려 입구가 막힌 가마 봉통(아궁이)을 눈삽으로 치우고 난 후, 정호는

전날 미리 넣어 둔 솔가지에 불을 붙였다.

예열칸 가마의 연기는 유약이 발린 사기들을 헤치고 굴뚝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겨울의 찬 공기를 데우며 연기는 춤을 추듯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장작을 쌓아 둔 창고에도

아침햇살이 흘러들기 시작한다.

정호는 봉통 칸에 긴 나무를 넣어 놓고 몇 시간 후 칸불에 사용할 장작을 지게로 나르면서

부처님 전에 올릴 찻사발과 지허스님께 드릴 발우를 생각했다. 얼마 전 새로 찾아 낸 흙으로

구울 발우와 찻사발이 원하는 대로 잘 구워지기를 염원해 본다. 정호는 쉬지 않고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나무를 옮기고 있다. 지영섭은 ‘쿨룩쿨룩’ 기침을 하면서

방문을 열고 나와 가마 아궁이 앞에 앉아 장작을 나르고 있는 정호를 보고

“정호야! 밤새 눈이 많이 왔구나. 그래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다행이다. 사기沙器를 굽기에는

좋은 날이다.”
“일어 나셨습니까. 아부지.”
“그래, 너도 잘 잤느냐?”
“예.”
“내가 불을 볼 테니 너부터 아침을 먹고 오너라.”
“아닙니다. 제가 불을 볼 테니 아부지 먼저 식사를 하세유.”
“그렇다면 어무이한테 말해서 밥상을 여기로 가지고 와서 같이 먹자. 눈이 왔어도

불 앞이라 따뜻하다.”
“예, 알겠습니다.”

정호가 나간 후 봉통안의 불길이 잦아지는 것 같아 영섭은 큰 장작을 몇 개 뽑아

봉통 안에 다시 던져 넣었다. 순간 허리의 통증이 느껴진다. 가마에 손을 짚고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만큼 정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세를 바로 했다.

오래전 관헌에 끌려가 매를 맞고 난 후부터 생긴 허리의 골병이다. 오늘처럼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나타난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짐을 느낀다.

“아부지, 밥상을 어디다 놓을까유?”
“여기 봉통 앞에 놓아라.”
“너무 뜨겁지 않을까유?”
“오늘따라 허리가 많이 아프구나. 불 가까이 있고 싶어서 그런다.”
“불은 제가 땔 테니까 밥 먼저 드시고 칸불을 넣을 때까지 방에서 좀 쉬세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유…”

“…내가 알아서 하마. 저녁까지 불 때려면 힘들 텐데 많이 먹어라.”
“예, 아부지도 많이 드세유.”

지영섭은 정호와 함께 가마불 앞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불빛을 받아 발그스레한 정호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봉통(아궁이)속의 불꽃을 바라본다. 기억 저편 관요官窯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젊은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관요에서 머슴처럼 물레를 차면서 사기를 만들던 그 시절, 도자기를 좋아하는 세도가

구具대감의 눈에 띄었다. 그 후 구대감이 만든 가마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 양인兩人의 딸인

김선희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정호를 낳았다. 지난 시간들의 아슴한

기억들이 불꽃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부지, 봉통 속으로 불길이 잘 빨려 들어가는 것 같네요.”
“그렇지? 불 파도가 일지 않은 걸 보니 이번 분청은 잘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성燒成 날을 잘 택한 것 같네유.”
“그래, 이번 가마에 네가 만든 찻사발과 발우도 잘 구워졌으면 좋겠다.”
“예, 저도 기대가 큽니다유.”
“백자와 분청은 늘 해오던 것이라 그런대로 괜찮게 나오는 것 같은데 네가 꿈속에서 본

그 빛깔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다. 흙과 유약을 잘 선택해서 수 십 번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예.”

 


늦은 밤이 되어서야 세 번째 굴의 백자 유약이 녹았다. 정호는 찻사발의 불보기(시편示片)를

여러 개 꺼내 물에 담구었다가 식힌 후 다시 색깔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짙은 회색과 조금

검푸른 색만 눈에 뜨일 뿐, 그토록 원하는 비파색은 아니다. 고온을 견디지 못한 유약이

 아래로 흘러 내려 있다.

“정호야! 이번 흙도 아마 불에는 약한 것 같다.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그래도 발우는 흙발우 색깔과 비슷해서 그런대로 나온 것 같다만…”

“예, 그런 것 같네유.

열에 강한 흙을 다시 찾아 봐야 겠네유.”

마지막 가마굴의 유약이 녹자 영섭은 정호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호는 가마주변의 장작을 옮겨 놓고 먼저 꺼낸 불보기를 손에 잡았다. 그리고 나서

가마 안에서 붉게 달구어진 발우와 찻사발에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었다.

오래 전, 정호는 금빛 옷을 입은 보살이 부처님 전에 차를 올리는 꿈을 꾸었다.

찻사발을 양손에 잡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차를 올리는 보살의 모습이었다.

그때 꿈속에서 본 찻사발의 빛깔은 살구색 또는 비파색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정호는 그 찻사발을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정호는 수없이 산 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찾아낸 온갖 종류의 흙으로

찻사발과 발우를 만들어 보았다. 흙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유약도 만들어 보았다.

가마는 보통 두 달에 한 번씩 불을 지피는데 그때마다 구워져 나오는 것을 잘 살펴보고

있지만 지금까지 원하는 색깔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봄이 되자 정호는 다시 새로운 흙을 찾기 위해 산으로 갔다.

불에 강한 흙은 아무래도 찾기가 힘들다. 산의 허리와 계곡을 따라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생각처럼 원하는 흙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허스님이 살던 중방골, 그 골짜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우천 북쪽에 있는 진개골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흙을 찾았다.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가마로 돌아와 토물을 받아 꼬막을 밀고 물레에 올려 성형을 시작하자 점력이 없는 흙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선 흙의 성질을 알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레를 차며

성형을 해보아야 한다. 수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초벌을 마치고 다시 재벌 가마에

불을 땔 수가 있는 것이다.

드디어 가마에 불을 때는 날이다. 칸불에 땔 장작을 나르고 있는 정호앞에 상처투성이

얼굴을 한 노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여기가 능하요 맞재? 영섭이가 사기를 만드는 곳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만…”
“영섭인 어디 있는고?”
“저기 가마에 불을 때고 있습니다.”
불대장 방노인은 불을 때고 있는 영섭을 금방 알아보았다. 넘어질듯 다리를 절룩거리며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어이, 영섭이! 나야.”
“아이고, 형님. 이게 몇 년 만인가유? 살아 계셨구만유.”
“내가 왜 죽어! 이렇게 살아있는데.”

 


지영섭은 불대장 방노인을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방노인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보더니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다시 반가움과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마음 한 구석에 쌓여있던 그간의 아픈 기억들이 눈물과 함께 풀어져 내렸던 것이다.

“잘 살았는가? 영섭이. 사기를 잘 만든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었어.

자네에게 미안해서 말이야.”

“저도 형님이 보고 싶을 때가 참 많이 있었어유. 엄동嚴冬에는 더욱 생각이 많이 났구만유.

그런데 그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셨어유?”
“하하하! 내가 배운 것이 가마에 불 때는 것밖에 더 있나. 여기저기 가마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불이나 때주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지. 내가 너무 오래 보이지 않아 죽은 줄 알았어?”

“아닙니다유, 형님.”
“나는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아.”
“불대장 형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유. 백자를 구우면서도 나무 재 하나 붙이지 않고 불 때는

기술은 형님뿐이지유.”
“이제는 다 부질없는 짓이야. 옛날이 좋았지. 영섭이도 많이 변했구만. 살도 빠지고 눈도

구만리나 들어갔어.”
“세월이 많이 지나지 않았어유.”
“허긴 그렇기도 하지. 한 20년은 된 것 같은데.”
“아마 그 정도 됐을 겁니다유.”
“배가 고픈데 술은 없는가? 술 한 바가지 목구멍에 넘겼으면 좋겠네. 술 배가 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것 같애. 힘이 없어.”
“형님은 여전 하시네유. 점심식사를 먼저 하시고 술을 드시지유.”
“밥은 무슨 밥이야! 내가 술 마시는 것이 낙이지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안 그런가.”
“…”
“예, 맞아유. 형님.”
“저기 가마에 나무를 나르는 사람이 자네 아들인가?”
“예, 그렇습니다유.”
“그래, 어쩐지 자네와 닮은 데가 있더구만…”
“술 한 잔 같이 하게 이리 오라고 해봐!”
“정호는 술을 못하는데유.”
“도공이 술을 못 마시면 되는가! 술을 잘 마셔야 사기를 잘 굽지!”
“……”
“정호야! 잠깐 이리 오너라.”
“예, 아부지.”
“불대장 방씨 아재다. 인사드려라.”
“처음 뵙겠습니다. ‘지정호’입니다.”

“튼튼하게 잘 생겼구나. 어깨가 쩍 벌어진걸 보니 사기 하나는 잘 만들겠구나. 자! 너도

술 한 바가지 마셔라. 힘든 일을 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한단다. 흐흐흐, 술기운이 없으면

불도 잘 때지 못하지…”

“고맙습니다만 술은 다음에 마시겠습니다. 오늘은 불도 때야 하고 나무도 날라야 하니까유.”
“그래도 한 바가지 정도는 마실 줄 알아야지!”
“정호야, 괜찮다. 한 모금만 마시고 가거라.”
“예, 아부지.”
“허허, 이놈 보게. 튼튼하게 생겨가지고… 말도 야무지게 잘 하네. 그래, 입에 맞지 않으면

마시지 마라. 멀쩡한 사람의 정신을 다 혼절시키는 게 술이지. 잘 생각했어. 흐흐흐…”

지영섭이 봉통(예열칸) 불 때기를 마치고 가마 불창에 장작을 넣자 방노인이 불 살창으로

가마 안의 불꼬리를 보면서 한 마디를 한다.

“내가 보건대 아직 자네는 불 다룸이 서툴러 나무와 불의 궁합을 모르고 있어.”
“한동안 몸이 아파 불을 자주 때지를 못해서 그렇구만유.”

“그건, 하수下手들의 변명이야! 불 다루는 것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어. 불을 땐다고

다 같은 불이 아니야. 불의 성질을 알아야지. 불을 때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릇을 굽는 것은

불이란 말이여!”

 


 방씨는 영섭의 서툰 불 다룸을 질타하고 가마 안 불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 때 과일을 들고 오는 선희를 보자 두 눈의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섭이, 나 이제 갈란다. 여기 있으면 잔소리만 하게 되고 불 때는데 방해만 될테니.”
“아니구만유, 형님!”
“가마의 불꽃이 절정에 달아오를 때 불 힘이 골고루 사기에 전달이 되기 위해서는

나무와 나무 사이가 겹치도록 해야 해. 불창 아궁이 바닥을 산모양이 되도록 나무를

낙하시켜야 불 파도가 골고루 사기를 감싸고 나가면서 때깔 좋은 사기가 나온단 말이여!”
“예, 알겠습니다유. 형님.”
“그럼 잘 있어, 영섭이…”

불 대장 방노인이 집 앞 고목을 돌아 마을로 내려가고 있을 때, 정호가 영섭에게 물었다.

“방씨 아재는 어느 요窯에 계시는지요?”
“응, 한때는 나와 함께 관요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는데 불만 전문으로 때는 불대장이었단다.

젊었을 때 각시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첫 애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었단다. 그런데

각시가 죽은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불을 때다가 마지막 나무를 불창에 던져 넣고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아이와 함께 죽어 있는 것을 본 거지. 피범벅이 되어 있는 그 주검을

보고 그 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어. 그 후부터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온 마을과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죄인이다! ~ 내가 죄인이다! ~ 아이와 각시를 죽인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다!’ 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돼버렸단다. 그러다 간혹 정신이 돌아오면 자기를 부르다 죽은 각시와

아이 생각을 잊으려고 날마다 술에 취해 살고 있단다. 그러나 그의 불 다루는 기술만큼은

관요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원래 다리를 절었나요?”
“아니,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어.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더라…. 아이와 각시가 죽고부터 날마다

술에 절어있었지. 술을 마시고 요장 窯場을 찾아가서 횡설수설하면 다른 도공들이 싫어하는

것은 뻔하지. 관요에 있을 때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방씨 아재를 나도 몇 번인가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하루는 방씨 아재가 다른 요장에 놀러 갔더니 도공들이 불을 때면서 술을 마시고

 있길래 아재도 한 잔 달라고 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젊은 도공들이 두들겨 패서 실컷 맞았단다.

‘미친 점粘놈 빨리 죽어라’고 발길질을 하고 얼굴에다 술을 붓고 끌고나가 문밖에다 내팽개친

모양이더라. 그러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소금까지 뿌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집으로

데려와 치료를 했었지만 워낙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서 그런지 그때부터 다리를 절게 되었단다.”

정호는 방노인의 지나온 애환을 듣고 앞산을 향해 돌아섰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금쪽같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호는 구대감이 주문한 백자와 분청을 굽고 있었다.그간 캐 온 온갖

다양한 흙으로 꿈에서 본 비파색 사발을 만들기 위해 늦은 밤까지 땀을 흘리며 물레를 차며

성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기간동안 참선공부를 위해 떠나있던 지허스님이

능하요에 왔다.
“모두들 잘 계셨는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스님, 오셨습니까?”
“그래, 정호야 잘 있었느냐?”
“예, 스님.”

정호는 지허스님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간 능하요에서 새로운 흙으로 구운 발우를 지허스님께 보여 드렸다.

“불이 제대로 맞지 않았던 것 같구나. 전체가 어두운 회색이지만 죽절굽의 물방울 현상(매화피)은

조화롭게 잘 나왔구나. 두 손 안에 편안히 감싸지는 느낌이 좋구나. 가루차를 풀어 마시는 찻사발로

사용하면 좋겠다.”정호는 오래 전의 꿈 이야기를 스님에게 했다. 다 듣고 난 후 스님은 길상스런

꿈이라며 걸망 속에서 작은 광목 보자기를 풀어 놓았다.

“그렇잖아도 내가 사는 하동 북청 옥종리 절골 산중턱 절개지에 특이한 흙이 있길래 눈여겨 봐 두었지.

오는 길에 조금 가지고 왔다. 어떤 색깔의 사기가 만들어 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흙으로

한 번 구워 보아라.”
“예, 스님.”

광목 보자기를 풀자 흙에서는 약간의 향내 같은,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흙이었다.

진붉은 노란색에 금빛이 어렴풋이 비치기는 한데 점력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스님, 느낌이 괜찮은 흙인데유… . 냄새도 좋고유.”
“그래, 붉고 노란 흙들이 금빛을 발하며 섞여 있어 내가 한 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묵은

흙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제가 찻사발과 발우를 구웠던 흙도 이 흙과 색깔이 조금 비슷했습니다. 중방골 계곡 절개지에서

눈에 띄어 캐 왔는데, 비가 오고 난 후 다시 가보니까 비에 휩쓸려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스님! 저는 꿈속에서 본 그 찻사발을 꼭 만들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래, 부처님은 원을 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하셨으니, 네 원도 이루어 질것이다.”

 


정호는 한여름의 불볕더위도 잊고 발물레를 차면서 찻사발 성형에 몰두했다. 땀이 비 오듯

온 몸을 타고 내렸다. 턱밑에 고인 땀방울이 흙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떨어진 땀방울이

흙과 하나가 되어 물레 위를 돌아간다. 그래도 정호는 지허스님을 생각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물레를 찼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드디어 재벌가마에 불을 때는 날,

정호는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 의해 관헌으로 끌려갔다. 오래 전에 관헌으로 끌려가

곤장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그도 똑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법을 어기며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그도 곤장을 맞았다. 그는 냉방에 구감되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서 석방이 되었다.

“정호야, 네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죄라면 사기를 잘 만든 죄밖에는….”
“어무이, 저도 하늘을 원망했지만 천민인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좋은 세상이 올 때 까지는 참고 살 수밖에 없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모두 다 용서하자.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면서….”

“예, 그래야지요. 어무이.”

“이제 능하요에서는 사기를 구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만든 도자기를 본 일본 상인이

관요의 도자기 보다 낫다고 말들을 하고 다니니까 관요장이 이것을 빌미로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는 능하요를 조정에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영구폐쇄를 주장하고 나오니 구대감도

관헌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는가 보더라.”

“그랬을 겁니다.”

“그래, 사대부의 세력다툼에 네 아버지와 네가 결국은 희생양이 된 것이다.”
“……”
“구대감이 당분간 대감댁에서 약을 먹고 몸조리를 하면서 좀 쉬라고 하더라. 나이 들어

골병이 도지면 큰 병이 되니까 다른 생각 말고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예, 어무이.”

곡우穀雨가 지나면서 정호의 몸은 조금씩 회복이 되어 이제는 장작을 팰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안정이 되었다. 왕성한 봄기운으로 산과 들엔 온갖 꽃들이 피어나며 향기를 날리고 있다.

구대감 댁 마당에 핀 노란 개나리도 벌써부터 담장 밖으로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은은한 홍매의 향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집안에 번져나고 있다.

 


정호는 진달래 붉게 핀 앞산에 올라가 차 잎을 따 왔다. 그늘에 말린 찻잎을 덖기 위해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는데 그간 불사를 다 마친 지허스님이 정호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스님, 오셨습니까?”
“그래, 정호야. 몸은 괜찮으냐?”
“예, 스님,”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닙니다. 스님.”
“정호야…”
“예, 스님.”
“나를 따라 절에 가서 살지 않겠느냐?”
“……”
“내가 생각해 보았는데 너는 세속에 살 사람이 아니다. 오랫동안 너를 지켜보았지만

심성이 어질고 맑아 마을에 살면 시련과 고통이 계속 따를 것이다. 그래도 양인兩人 어머니를

만나 너는 글을 깨쳤지 않았느냐. 생각이 깊어 이 현실에서는 네 뜻을 펼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도 잘 알 것이다. 오늘 밤 깊이 생각해 보고 다음날 나와 함께 북청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예, 스님…”
다음날 아침 정호는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두고 구대감 댁을 떠나왔다. 어머니에게 는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 감춘 눈물이었지만, 집이 멀어지자 두 줄기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호야, 이제는 마음이 정리가 되었느냐?”
“예, 스님.”
“그럼, 조금 쉬었다 가자. 이틀을 걸어가야 하니까 탁발도 하면서 천천히 가자.”
“예.”
“나도 부모님을 두고 출가를 할 때 지금의 네 마음처럼 그랬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 없더라. 그래서 지금 네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
“세속의 정든 인연을 끊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한 생을 세속 인연에 끄달리지 않고

쉬게 하면 전생의 업장이 멸滅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호화로운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했기 때문에 성불을 할 수가 있었다. 속가에 남아 왕위를 계승하였다면 선인의 예언대로

전륜성왕이 될 수는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인류에 길이 남는 성인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의 근본인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업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키고 윤회輪回를 벗어나게 하는 ‘깨달음’에 그 목적이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 함께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자.”

“예, 스님.”

 


옥종리 절골 정수사에 도착한 다음 날 정호는 삭발을 했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영원한

불제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삭발을 하는 의미라고 지허스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 무명초無明草를 제거해야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이는 곧 소유하지 않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을 약속하는 것이며

과거의 습성, 관행, 혈연까지 절연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삭발의식을 엄숙히

행하는 것이다.”
스님은 마음 가운데 애욕을 떠난 이를 ‘사문沙門’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는 말의 의미를 정호의 가슴에 새겨 주었다.
정호행자는 조석으로 예불문을 염송하기 시작했다. 몸으로는 절을 하고, 마음으로는 그 뜻을

새겨가며 날마다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일체 생명의 본원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날마다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어느 듯 두 해가 지나고 정호행자는 정수사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처님 전에서

수계를 받았다. ‘정호井戶’라는 세속의 이름을 그대로 법명으로 이어받았다. 지허스님은

스님이 되면 법명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도 그 제자가 출가 전에 사용하던

이름을 법명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며 그대로 쓰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이름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는 스님이 되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했다. 수계를 받은 후, 정호스님은

그 법명처럼 성품이 우물처럼 깊고 집처럼 든든한 법기法器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행자가 들어오면서 정호스님도 정수사 생활에 익숙해졌다. 지허스님은 먼저 출가한

덕산스님과 정호스님을 불렀다.
“덕산, 정호야, 수행자의 구경 목적은 ‘깨달음’에 있다. 그래서 마음공부인 참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대 시교를 알지 못하면서 가부좌 틀고 앉아 있다고 누구에게나 다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 숙생에 불법과의 인연이 있는 사람은 법기法器가 무르익으면 몰록

깨닫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부처님과 조사어록을 공부하고 참선을 하는 것도 좋은 공부 방법이다. 문자에만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경을 바로 이해 할 때, 사교입선捨敎入禪 하거라.”
“예, 스님.”
정호스님은 불경을 배우고 선사어록을 통해 선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선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선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허스님께 질문을 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마음에 낀 때를 벗기는 작업이 선禪이다. 선은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번뇌를 제거시켜 때가 묻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다.

부처의 마음이 오면 비춰주고, 가면 흔적을 지우는 거울 같은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창호지와 같아

한 번 먹물이 떨어지면 지워지지 않는다. 참선은 밝은 거울이 되려고 하는 수행이다. 그러니

일상이 선禪 아닌 것이 없다.”

 


정수암에 대중이 늘어나고 참선객들도 모여들어 한 철씩을 정진하고 돌아갔다. 정호스님은

선방스님들을 시봉하면서 화두話頭를 잡았다. 그러면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통해 선의 깊은

세계를 조금씩 체험해 갔다. 한 번 좌선을 하면 오랜 시간을 선열禪悅에 들곤 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찾아 온 어느 날 지허스님이 정호스님을 불렀다.
“정호야!”

“예, 스님.”
“참선공부가 잘 되느냐?”
“예, 잘되고 있습니다.”
“조사祖師들께서 ‘평상심이 도道’라고 했다. 빛의 광선이 수 천 갈래이나 근본 요소는 하나이다.

화두를 놓지 않고 잡고 있으면 행주좌와行主坐臥가 선禪 아닌 것이 없다. 마음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려 하지 마라.”
“예, 스님.”

“오늘 내가 찾아 온 것은, 옛부터 우리 절집은 단청, 탱화, 기와, 발우를 스님들이

직접 그리거나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있다. 우리 정수암에도 작은 사기 가마를 묻어 해제 철에는

발우와 찻사발을 만들어 산사山寺에서 올곧게 수행하시는 스님들께 보시布施를 하려고 하는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
“……”
“예, 스님. 스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날을 택해 대중이 함께 울력運力하는 마음으로 작은 가마를 묻어 보도록 하자!”
“예, 스님.”
짚단으로 가마 지붕을 먼저 만들고 정호스님과 대중들은 황토에 사토를 섞어 흙벽돌과

망뎅이를 만들어 가마를 짓고 토물을 받아 흙을 만들었다.

두 달간 쉬지 않고 울력運力을 한 끝에 작은 가마의 자태가 드러났다. 인근 야산에서 퍼온

흙이지만 색감과 느낌이 좋았다. 땀 흘리며 꼬막을 밀면서 정호스님은 꿈에 보았던 그 ‘찻사발’을

생각했다.


“정호야, 물레는 마음과 같이 잘 돌아 가느냐?”
“예, 스님.”
“부처님 전에 올리는 찻사발은 탈속脫俗한 사람이 만들어야 성물聖物이 될 수 있다.”
“예, 스님.”
“불보살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좋은 법기法器를 만들어 보아라.”
“예, 스님.”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모여 사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고부터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 공안을

타파했고 차와 선禪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
“예, 스님,”


지허스님과 정호스님이 마음으로 만드는 찻사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덕산스님이 지허스님을

찾아 황급히 뛰어 왔다.
“스님, 빨리 와 보십시오.”
“왜 그러느냐?”
“지대방에서 이상한 노인이 술에 취해서 자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깨어나셨느냐?”
“예, 물을 찾길래 한 사발 떠 드리고 바로 달려 왔습니다.”
“정호도 한 번 가보자.”
“예, 스님.”
정호스님은 지대방에서 자고 있는 노인을 보자 깜짝 놀랐다.

구석 저 만큼에서 웅크려 자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사남면의 불대장 방노인이었다.

온 방안에서 술 냄새가 역겹게 풍기고 있었다. 손과 발은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었다.

“정호야, 이 노처사가 누군지 아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사남면 관요에서 불대장을 지낸 방처사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어젯밤 남산이와 함께 도량에서 행선行禪을 하는데, 노처사가 법당 계단 구석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길래 이곳으로 모셔 왔다. 일어나면 공양을 차려 드리고 내 방으로

모시고 오너라. 이 분께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예, 스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기는 경전을 읽거나 참선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있으면 그 때 만들도록 하고

해제 철에 불을 때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손이 많이 가는 일이 있으면 그 때는 대중의

울력運力으로 하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스님.” 지허스님이 방으로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불대장 방노인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단번에 정호스님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찾아오기는 했네, 정호.”
“예, 처사님.”
“너무 반갑네, 반가워.”
“어디에 계시다가가 오셨습니까?”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나서 사남면에 갔다 왔어…”

 “… ?”
“나무관세음보살…”
“그간 어디에 계셨어요?”
“앞산 너머 점粘골 움막에서 지내고 있어.”
“참, 정호스님! 중방골 우리 마누라 산소위에 있는 절에 가서 하루를 잤는데

거기서 스님의 어무이를 만났어.”

“그래요! 건강은 좋으시던가요?”
“그 절에서 공양주를 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하대. 정호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말하기에 죽은 영섭이 생각나서 찾아왔지.”

“시장하실 텐데 공양을 드시고, 큰 스님에게 인사드리도록 하지요.”
방노인이 늦은 아침공양을 하는 동안 정호스님은 잠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잘 계신다는 방씨의 말에 다소 마음은 놓였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불보살님께 감사를 드렸다. 방씨는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워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지허스님을 찾아가 큰절로 인사를 했다.

“앞산 점골 가마에서 잡일을 하며 살고 있는 방무현입니다.”
“예, 방처사님. 공양은 많이 하셨는지요? 정호수좌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이름난 불대장이시라고요.”
“그건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눈이 어두워 불 색깔도 볼 수가 없습니다.

점골에서 잡일을 해주고 거저 밥이나 얻어먹고 살지요.”
“이곳 정수사에서는 부처님 전에 올릴 찻사발과 수행하는 스님을 위해 발우를 조금

만들고 있습니다. 가끔 오셔서 정호수좌를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처사님이 어렵고 힘겨울 때는 언제든지 찾아오셔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예, 스님. 고맙습니다.”

지허스님이 정성으로 가루차를 풀어 방씨에게 주자 방씨는 떨리는 두 손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차를 마시고 점粘골로 돌아갔다.

다음 해 정호스님은 점골 사람으로부터

방노인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마을 민가에 큰 불이 났다. 어린아이가 미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아이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도 큰 불길 속에 뛰어들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방씨가 불길 속에 들어가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밖으로 던졌다. 그러나 정작 그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무너진 집 더미에

 깔려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을 듣고 정호스님은 자신이 구운 찻사발에

가루차를 정성껏 저어 불전에 올리고 방노인의 명복을 빌었다.

‘방처사님! 생전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겠습니다.

불 땔 때마다, 평소 무심코 던지고 가신 말 한 마디가 지금 저에겐 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사바세계에 오시지 말고 왕생극락 하옵소서. 왕생극락 하옵소서…’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정수사에서는 재벌가마에 불을 지폈다. 불을 때면서 정호스님은

이번에도 비파색 나는 마음의 찻사발을 기도했다. 그러면서 다시 불창에 장작을 던지고 있었다.

정호스님은 그간 수 십 번도 넘게 가마에 불을 때었다. 그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흙으로

여러 개의 사기나 도편에 유약을 발라 불창 앞과 살창 앞, 가마의 좌우, 위아래에 위치를

바꿔가며 놓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성燒成실험을 하고 다양한 재유灰釉(느릅나무, 소나무,

참나무, 감나무, 볏짚, 콩깍지… 등)를 만들어 실험을 해 보았다. 그 재유들로 장석, 규석,

석회석에 섞어 초벌 성형한 발우와 찻사발에 시유를 한 다음 불을 때 보기도 하면서 마음의

찻사발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깊은 절골 계곡에도 어느 듯 가을이 찾아와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절경을 이루었다.

어느 날, 새벽 예불을 모시고 난 지허스님은 사중 일을 정호스님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다비茶毘식날 점粘골에서 조문하러 온 노 도공陶工이 차를 마시다

정호스님이 만든 미완未完의 찻사발을 보았다. 그는 불길이 잘못 지나갔음을 지적하고

불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옛날 불대장 방노인이 들려준 바로 그 말과 같았다.

“불을 때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릇을 만드는 것은 불이다. 모든 사기가 다 속살까지

익어야만 좋은 색깔이 나오는 것은 아니란다. 겉 불만 잘 때도 좋은 그릇이 나오는 경우도 있단다.

결국 흙과 불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그것은 즉 ‘산화불(散火 : 사기 전체를 익히지 않고 표면만 익히는 약한 불)’로 소성을 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그는 능하요 시절부터 백자나 분청을 소성하기 위해 환원불에 길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번 불을 땔 때마다 산화불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식의 불을 때었던 것이다.

정호스님은 참선과 물레차기로 오십년을 보냈다. 참선의 힘을 얻어 탐,진,치에 걸리지 않은

마음의 자유도 조금씩 더했다. 집착과 분별심이 끊어진 적멸위락寂滅爲樂,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사가 없는 법기法器가 되어갔다. 그러면서도 오직 한 생각, 성물聖物이 될 찻사발만을

생각하고 또 만들었다. 돌아가는 발물레 위에서는 손과 발, 마음이 하나 되어 무아지경이 되었다.

흙을 성형 하다보면 때로는 법희선열法喜禪悅에 빠지기도 했다. 

 


정호스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예불을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신중단을 향해

반야심경을 낭송하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뚫고 가는 한 줄기 소나기 같은 경구經句에

마음이 닿았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다 비었음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사리자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서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며, 감각,지각의지, 계속되는 생각, 최후의 인식도

그러하느니라.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이 경구가 머리를 스치면서 정호스님은 어떤 영감靈感을 얻었다. 같은 흙과 같은 재유라도

소성燒成방식이 다르면 유약에 따라 색상도 달리 나온다는, 지혜의 해답이 반야심경 속에

들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정호스님의 노련한 발물레 위에서는 어떠한 흙들도 그의 마음가는대로

형상이 되어 나오고 또 성형이 되었다. 무아의 경지에서 우주의 법칙을 체득하고 의상조사

법성게法性偈가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능엄주를 외우면서 성형한 찻사발은 단순히 그의

손으로 만든 사기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물레자국,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감싸는 넉넉함,

대마디 죽절굽, 깊은 샘과 같은 차고임 자리,자태에서 풍기는 무언無言의 위압감, 그것은

불전에 올리는 불기佛器요,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 헌다완獻茶碗이 성형되어가고 있었다.

재벌가마에 다시 불이 부쳐지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 가마의 연기가 하늘로 오르면서

소나무에서 나는 향내가 정수사의 온 경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덕산스님이 만든 발우와

찻사발도 가마 안에서 불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를 나르는 행자들의 머리위에도 맑고 깨끗한

기류氣流가 흐르는 듯 했다.

정호스님은 흰수염을 날리며 중성불, 산화불을 오가며 불춤과 불 파도,불산을 다스리며

나무를 불창에 던졌다. 오랜 시간 장작을 태운 가마의 불길은 네 번째 가마의 유약을 녹였고

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다섯 번째 가마의 유약이 녹을 무렵이 되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며 굉음轟音을 동반한 천둥번개의 섬광閃光이 가마위에 떨어졌다.

그을음이 다 날아간 가마 안 찻사발은 불과 한 몸이 되어 이글거리고 있었다. 주황색 불길이

은백색으로 바뀌자 정호스님은 마지막 장작을 던져놓고 가마를 향해 합장을 했다.

내리던 비도 그쳤다.

이틀을 식힌 가마의 문을 조심스럽게 헐었다. 일념으로 생각해오던 마음의 찻사발은

어두운 가마 안에서 장엄한 비파색枇杷色 만다라를 펼치고 있었다. 유약은 짙게 녹아 마치

벌집 같은 빙렬氷裂을 보이며 큰 물방울같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매화피梅花皮는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사발이었다. 정호스님은 무아지경에서 법희선열法喜禪悅로 만든 찻사발을

두 손으로 잡고 하나하나 포개어 조사전 마루 아래에 깊이 넣어두었다. 이것은 정수사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찻사발이 되었다.

그 찻사발과 발우는 차를 좋아 하는 선객禪客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변에 있는 스님들에게

조주스님의 끽다 정신을 들려주었다. 차茶와 선禪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경계를 말하면서

차생활과 불전헌다 할 것을 권하였다.
그 해 겨울,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 공양을 마친 정호스님은 상좌 현수스님을

법당으로 불렀다. 보자기에 싼 찻사발을 풀어놓으며 당부의 말을 했다.

“현수야, 이 찻사발은 내가 오직 마음으로 만든 찻사발이다. 이 찻사발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나의 수행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경을 읽을

때나 맑은 의식을 행할 때는 삼보전에 반드시 헌다獻茶를 해야 한다. 헌다를 할 때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여라.”

“예, 스님.”
“이 찻사발에 담긴 차를 마시는 것은 곧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마시는 것과 같다.

그 기운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맑히고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끊게 해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도반道伴이 될 것이다.”

“예, 스님.”
“여기 마지막으로 구운 다섯 번째 가마에서 나온 다완(茶碗찻사발) 가운데 몇 개를 남겨 두었다.

내가 열반涅槃에 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의 눈이 열린 자가 찾아올 것이다. 그 사람이

이 다완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강산이 전란戰亂의 광풍狂風에 휩쓸릴 것이다.

인과에 얽힌 업業의 수레가 피를 뿌리며 지나갈 것이니 이곳 또한 온전치 못할 것이다. 정수사

대중은 국난國難이 오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방어防禦하고 대중이 힘을 합쳐 불법을 지키며

난세 속에서도 수행자의 본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훗날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선승禪僧을

찾아 목숨 걸고 참선해서 대장부 일대사를 해결하도록 하거라.”

“예, 스님. 명심하겠습니다.”
“승찬 조사祖師의 신심명信心銘을 가슴에 새기며 수행의 거울로 삼아라.”
“예, 스님.”

현수스님이 법당을 나가자 정호스님은 유약이 떨어져 나간 다완茶碗에 말차를 정성껏 저어

불전에 올렸다. 귀명삼보를 염송하고 좌선한 채로 열반에 들었다.

1563년 명종明宗 18년,

일본스님 한 분이 정호井戶라는 도공을 찾아 하동 북천 옥종리 입구에서 길을 묻고 있었다.


                                                      - 끝 -



 정호다완 井戶茶碗
높이 9.1cm, 지름 15.3~15.5cm, 무게 370g


일본명 喜左衛門大井戶茶碗 所藏者 기자에몬대정호다완을
소장했던 소장자

竹田 町人 1527 ~ 1568 다케다 죠닌
豊臣秀吉 1536 ~ 1598 도요토미 히데요시
午利食 1598 ~ 1612 오리베
德川家康 1543 ~ 1616 도꾸가와 이에야스
本多能登守忠義 1615 혼다노토노카미
中村宗雪 1634 나까무라소세스
塘氏家茂 1741 스즈미우이에시게 (삿된 마음으로 소장후 사망)
松平不味 1775 마스다이라후마이 (소장 후 알 수 없는 병에 걸림)
月潭 1811 겟탄 (소장후 후마이와 같은 병에 걸림 )
京都 紫野 大德寺 孤蓬庵 교토 무라사끼노 다이도꾸사 孤蓬庵에 안장 후
마스다이라후마이松平不味와 겟탄月潭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

1951 우익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국보 지정

 



찻사발 정호다완井戶茶碗의 복제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초인적인 경지에서 정신精神을 모아 만든 성물聖物 정호다완井戶茶碗

선수행禪修行 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의 정호다완을 만들어 보기 위해 옛날 방식대로 흙물을 수비해서 점토를 만들어 발물레로 성형하여

돌을 가루내어 만든 유약을 발라 만든 찻사발을 보면서 선조 선도공의 경지를 엿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훗날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정호다완을 만든 선도공과 

조우 할 날을 기대 할 뿐입니다. 


글쓴이 / 이천기 李千基

경남 거창 주상면 보해산에서 AI조류독감 Avian Influenza 예방 및

지구 온난화를 대비하는 농사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교토 대덕사 고봉암에 안장되어 있는 정호다완 원본


정호다완  2003년 이천기 작


정호다완  2003년 이천기 작




 
 
 

나의 이야기

흙사랑-이천기 2009. 4. 13. 16:27

지난 달 조선일보는 설문조사에서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일제식민지를 대동아 평화를 위한 일이었다고

변명하는 군국 우익단체를 제외하고  한국인은  아시아 에서 가장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나라를 일본이 우선 순위라고 했다.

 

나도  도자기를  깊이 알기 전에는  일본인을 '쪽바리' '왜놈'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세계에도 양면이 있고 바른 사고를 가진 현자가 있듯이

차와 도자기와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부터 만나게 된 한 일본인이

단적인 내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고 자연속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살아가도록

마음의 스승이 되기도 했다.

 

그의 생애를 韓,日 합작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해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사람들을 변호하며  독립과 평등을 주장하며  조선인을 사랑했던 일본인

아사가와 다쿠미 (淺川巧.1891-1931) 그는 조선의 공예를 사랑하고 조선에 살다가

조선에서 죽어 조선땅에 묻힘으로써 조선의 흙이 된 사람이다.

고고학자이며 교사였던 그는 생전에 월급의 상당부분을 조선 민예품을 수집하는 데 썼고,

그렇게 모은 민예품도 대부분 조선민족미술관에 기증하고 집에는 깨진 물건만 남겨놨다고

한다.

그는 평생 돈을 모으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켰다. 본인은 허름한 조선 옷을 입고  가진 돈을

모두 가난한 조선인과 불우한 이웃에게 썼다. 조선 땅에서 진정으로 사랑과 헌신을 몸소

실천한 그가 식목일 기념행사 준비로 과로한 나머지 급성 폐렴에 걸려 만 40세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가족은  그에게 조선옷을 입혀 입관했고 상여를 내보낼 때는 30여명의 이웃이

서로 상여를 메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망우리 이장이 억지로 그중 10명을 골라야만 했다.

묘지로 향하는 상여의 뒤로 많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따랐다. 그는 그렇게 양 국민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저 세상으로 떠나간 것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柳宗悅, 1889~1961) 는 조선 도공이

만든 정호다완을 일본 우익단체의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일본국보로 지정하게 했고

일본총독부에 의해 1921년에 광화문을 해체를 한다고 하자  조선인을 선동하여 '자국문화를 지켜라'

라고 자극을 주어 여론이 확산되자 일본 지식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사설의 정당성이 인정돼

일본 정부는 광화문의 해체 대신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야나기는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항상 감시를 당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아!광화문'이란 사설을 실어 일본에 저항했다.

 

그 후 철학·종교·예술을 아우르는 문예잡지 '시라카바'의 창간을 주도한 그는

조선 미술에 심취하게 됐다. 이때부터 자주 한반도에 건너온 야나기는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문장을 발표했다. 또 시라카바를 통해 '조선 민족 미술관'

설립을 제창하면서 1924년 서울 경복궁내에 지금의 미술관을 세웠다.

 

이영화는 마음의 교류를 그려낸 휴먼드라마 “일 포스티노”(IL POSTINO - 1994년 이태리

=프랑스)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 - 1989년 미국), 그리고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 - 1987 미국)등 과 같이 실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의 휴먼드라마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에 제작될 영화 “백자같은 사람”이 한,일 양국의 감정을 넘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아름답고

순결한 하나의 백자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올 가을 일본 150개 극장 개봉 

 

 백자같은 사람  영화제작 발표회 

 

 망우리에 있는 아사가와 다쿠미 묘소

 그를 사랑한 조선인의 감사비가 있다.

 

 그가 좋아 했던 조선백자 형상의 부도

아사가와 다쿠미를 사랑하는 모임 연주회

 

  

 

당시 요미우리 신문에 실린 기사 /  

 

한국에 소개된 야나기 평전

조선의 땅에 묻힌 일본인 야나기 일대기 정말 이런 정신을 가진 인간이 있었다는게 감동 그 자체네요 눈물이 날 만큼 감동입니다...가슴이 먹먹해 지네요....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 미술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 감동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가 조선 미술품을 보는 시각에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조선을 바라본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니까요. 애상적인 조선미술품, 곧 망국의 역사를 겪을 수밖에 없는 조선의 정신이 미술품 속에 담겨 있다고 봅니다. 우리 걸 좋아한 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좋아할 게 아닙니다.
정말 이런 일본인이 있었나요?
감동입니다.
일본인 중에는 극우파도 있지만
인간다운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