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文)

담우淡友DAMWOO 2021. 4. 20. 11:40

 키 2미터를 육박하는 장신에 몸무게도 지도 강사인 내 체중의 50킬로그램을 훌쩍 넘는 헤비급 체형의 고1 Jee군은 가슴에서 머리까지 걸쳐져 있는 마음이 11살에 가깝다. "안녕하세요. 제가 깜빡했어요. 선생님 미안해요." 목소리도 앳되고 순진무구하다. 가끔 큰 소리로 인사를 하거나 금방 파악이 안되는 웃음을 크게 터트리곤하지만, "동생들이 놀랬지요?" 상황을 의식하면서, 간지럼을 태우면 죽어라 웃어 젖히는 성격이다.

마음이 밝은 날의 정물화 스케치

 하지만 Jee군은 이젤 앞에 앉아 스케치북 위에 연필을 겨누면, 특등 사수처럼 예리하게 과녁에 집중한다. 그리는 방식의 이론이나 순서 따위는 그의 탄창에 한 발도 들어 있지 않다. 과녁에 조금 빗나가지만, 한 발도 장외로 나가지 않고 네모의 화면 안에 다닥다닥 들여 맞춘다. 연필의 탄착점이 이어져  Jee군 만의 형태와 구성이 발현 된다. 채색에 들어가면, 짙은 색을 먼저 쓰는데 검정색을 무차별로 쓸 때면, 바닥에 액션 페인팅 대가의 잭슨 플록을 무색케 한다. 붓에 물감을 묻히면 바로 쓰지 않고 물통에 씻은 다음 다른 색을 묻힌 뒤 섞어서 다시 물에 헹구어 칠한다. 그래서 색조가 대부분 연하다. 물통의 물도 금방 먹물 수준으로 탁해진다. 팔레트는 온통 짙은 색 물감으로 빼곡 들어 차서 빈 곳이 없다. 그런데도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정물이나 풍경의 밝고 어두운 색조에 따라 그림이 밝거나 어둡다. 

마음이 정돈 되었을 대의 정물화

 Jee군의 그림은 일반적인 미술 표현의 기준이 적용 되지 않는다. 표현의 기술을 설명하거나 제시하기는 하지만, 그 틀에 맞추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그림에서든 Jee군의 생각이나 느낌 및 의도가 첫째고, 강사의 제안이나 제시는 둘째도 아닌 세 번째가 되기 일쑤다. Jee군의 첫 번째 느낌이나 의도가 둘째 세째 번 제안 보다 낫기 때문이다. 미술 행위에 대한 격려나 동작의 추임새가 효과를 더하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을 그릴 때의 작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원에 처음 왔을 때, Jee군은 꽤 혼란스러웠다. 느닷없이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웃는 바람에 다른 원생들까지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림은 자기한테 익숙한 캐릭터나 캘리그라피로 화면을 채웠다. 물감은 단색으로 어두운 색을 마구썼다. 그림을 배운다기 보다 Jee군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형상들을 지면에다 투사하는 개념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제안이나 간섭을 하면, 오히려 엉망이 되곤했다. 그냥 지켜 보기를 몇 해.....Jee군의 할머니와 돌봄 도우미의 한결같은 지원에 학원을 그만 두었다가도 다시 나오는 반복이 이어졌다.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운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관련 없는 원생들까지 Jee군의 그림행위에 동기가되고 주변이되었다. 언어치료에 의한 존댓말이나 순화어가 순진한마음속에서 초록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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