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단다칸 2009. 12. 7. 20:52

[한국 경제의 희망, 强小기업] (25) 쓰리세븐

국민일보 | 입력 2009.12.06 18:59

 
'손톱깎이 명성' 되찾기 제2 혁신
손톱깎이 하나로 세계를 재패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6년 설립된 손톱미용 전문 생산업체 '쓰리쎄븐'. 1990년대 중반부터 매년 8000만∼1억개 손톱깎이를 만들어 이 중 90%를 미국 중국 등 92개 국에 수출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43%)였다. 손톱깎이를 사용하는 사람 2명 중 1명은 '777' 로고를 손에 쥐고 있던 셈이다. 쓰리쎄븐은 단가 100∼500원 하는 손톱깎이로 연간 3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알짜 기업이었다.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던 쓰리쎄븐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산 불법 복제품이 문제였다. 90년대만 하더라도 가격 대비 품질 차이가 현저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품질의 제품이 반값 이하에 유통되자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겼지만 역부족이었다. 매출은 2001년 343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판매가를 20∼30% 인상하자 국내 매출도 급감했다. 현재 직원 수는 140여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고 생산량도 연 3000만개로 전성기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국 수도 63개국으로 줄었다.

쓰리쎄븐은 올해를 '제2 도약'을 위한 원년으로 삼겠다며 자신에 찬 모습이다. 내년 매출 목표는 역대 최고치였던 340억원대를 회복하는 것. 지난 10월 김상묵(50) 대표이사 사장 등 창업주 2세들이 티에이치홀딩스를 설립, 중외홀딩스에 인수됐던 쓰리쎄븐을 되사면서 본격적인 혁신에 나서고 있다.

5일 충남 천안시 마정공단에 위치한 본사 공장은 주문 물량을 맞추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이날 생산해야 하는 물량은 13만여개. 조립라인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던 20여명의 직원들은 "한동안 우중충했던 회사 분위기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 힘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쓰리쎄븐이 자신 있게 제2 도약을 내세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목욕탕, 호텔 등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손톱깎이의 날만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보다 정교하고 매끄럽게 깎이는 기술 개발을 위해 지난 11월 연구소를 설립해 정부로부터 인가도 받았다. 공정과정에서 유해 독소 물질 사용을 줄여 ISO14000 인증을 받는 등 친환경 경영에도 앞장서고 있다.

해외시장에 불법 복제품이라는 복병이 있다면 국내에선 낮은 브랜드 인지도가 문제다. 국내에 유통되는 손톱깎이의 90% 이상은 쓰리쎄븐 제품이지만 대부분 판촉용으로 쓰이다 보니 브랜드 자체가 의미가 없다. 10∼20년을 사용하고도 가방 제조업체 '쓰리세븐'과 착각하기 일쑤다. 권정수(42) 인터넷사업본부장은 "그동안 수출기업에만 초점을 맞춰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며 "브랜드 홍보에 박차를 가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인터넷 쇼핑몰(www.i777shop.com)을 열어 고객 접근성을 높이고 유통망을 강화한 게 그 예다.

손톱깎이 제조는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30여 가지 공정을 거쳐야 한다. 철판을 프레스로 절단하고 열처리를 한 뒤 자갈과 특수약품이 들어간 통 안에 넣어 회전시켜 다듬는다. 이후 연마, 조립을 거쳐 최종 도금을 끝내야 완성품이 나온다. 박도범(47) 생산부장은 "손톱깎이 제조는 금속가공의 총화"라고 말했다.

전 세계 인구의 30∼40%만이 손톱깎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그만큼 신시장 개척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김 사장은 "30년 동안 똑같은 성과를 내고 유지하는 회사가 많지 않다"며 "지금 회사가 과거에 비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혁신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의 별명은 '용광로'다. 지난 2001년 중국 산둥성에서 쓰리쎄븐의 불법 복제품이 대규모로 유통되자 1t짜리 트럭 2대 분량(시가 3억원)을 몽땅 사들여 고철 처리 공장의 용광로에 쏟아부은 데서 붙여졌다. 쓰리쎄븐을 '손톱깎이의 대명사' 만들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위생 관념이 높아지면 손톱깎이도 칫솔처럼 개인별로 사용하고, 손톱·발톱용을 구분해서 쓰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쓰리쎄븐의 도전은 계속됩니다"라고 말하는 김 사장의 얼굴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천안=권지혜 기자 jhk@kmib.co.kr

 

한국경제의 희망, 强小기업―(24) 누리텔레콤] AMI 시스템으로 해외 진출 가속화

국민일보 | 입력 2009.11.29 18:45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천궁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깃불이 켜졌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신인 미국 에디슨 전기조명회사가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로 사용되던 건천궁에 전깃불을 점등했다. 향원정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 설비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16촉광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 첫 전깃불을 밝힌 지 122년이 흐른 2009년 9월 21일. 조송만(49) 누리텔레콤 사장은 GE와 차세대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핵심 인프라인 지능형 원격 검침(AMI·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시스템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누리텔레콤과 검침 장비인 스마트미터를 생산하는 GE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AMI 시스템이란 전기, 수도, 가스 등의 실시간 사용량을 자동 검침해 온도제어, 실시간 전력요금, 실시간 부하 제어 등 쌍방향 통신을 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다.

1992년 설립된 누리텔레콤은 2000년 AMI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후 한국전력이 발주한 산업용 고압(100㎾ 이상) 전력 AMI 시스템을 공장이나 빌딩 등 14만 수용가에 독점 공급했다. 국가 스마트그리드 계획상 2020년까지 저압수용가 1800만 가구에 원격 검침 시스템 설치가 예정돼 있어 향후 전망도 밝다.

해외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2005년 태국 AMI 시스템 구축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호주 멕시코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등 11개 국에 수출했다. 2007년 5월에는 노르웨이 HTS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스웨덴 4위 전력회사 예테보리에너지가 발주한 234억원 규모의 스마트시티 구축 본 사업을 수주했다. 27만2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누리텔레콤은 AMI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운영기술 일체를 턴키방식(일괄 수주)으로 수출했다. 조 사장은 수주 소식을 접한 후 며칠간 잠을 못 잘 정도로 기뻤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입찰에 참가할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었고 입찰 참여마저 늦어 다른 업체로 선정이 거의 돼 있던 단계였습니다. 하지만 발주처에서 자신들이 향후 추진하려는 사업과 관련해 우리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결과를 뒤집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 성과를 바탕으로 누리텔레콤은 창업 당시 5000만원이었던 자본금을 올해 기준 55억원으로 불렸고, 매출은 2000년 코스닥 상장 당시 144억원보다 4배 정도 증가한 594억원(2008년 기준)을 기록했다. 창업 당시 조 사장을 포함해 3명뿐이었던 직원도 136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연말까지 매출 635억원에 57억원의 영업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30%였던 수출 비중도 내년에는 35%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누리텔레콤이 현재와 같은 성과를 달성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실패가 바탕이 됐다. 조 사장은 1995년 향후 인터넷이 보편화될 것을 예상하고 웹브라우저 '시콤 웹'을 자체 개발해 공기업 등에 수천카피를 납품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스 센터'라는 시스템 관리 소프트웨어로 재기의 발판을 다졌으나 2004년 원격 검침 분야의 시장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시스템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마저 포화상태에 달해 매출액이 67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조 사장은 매출이 바닥까지 떨어져 3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AMI가 글로벌 아이템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연구개발비를 유지해 오늘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AMI 시장이 기로에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외에서 국가 단위의 스마트 그리드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 만큼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을 바꿔 수출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세웠습니다. 지금도 매출의 대부분을 수출에서 벌어들이는 게 목표입니다. 기술 개발은 기본으로 하고 품질과 마케팅 능력까지 겸비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한국경제의 희망,强小기업―(23) 동아원] 50여년 한 우물… 2015년 매출 1조 올린다

국민일보 | 입력 2009.11.22 18:14

 
보릿고개로 끼니를 때우기 어려웠던 시절, 밀과 옥수수는 우리의 주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수입한다. 당연히 시세 변동에 민감하다. 밀을 원재료로 하는 제분·사료업체도 우여곡절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분·사료업체인 동아원은 50여년간 한 우물을 파왔다.

 
1953년 설립된 조선제분을 모태로 성장한 동아원. 2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동아원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식 사장은 "56년 회사 역사는 위기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동아원은 밀, 옥수수 등 원자재를 전량 수입하다보니 예기치 않은 경영위기를 경험했다.

가깝게는 호주에 가뭄이 든 지난 2007년. 그 해 호주의 밀 생산량은 예상보다 43%나 줄었다. 호주에서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단 연락이 온 것은 당연했다. 호주산 밀은 제면용으로 적합한 품종이라 다른 밀로 대체할 수도 없었다. 가장 비슷한 품종을 생산하는 캐나다로 급히 수입처를 바꿔야했지만 농산물 특성상 생산량이 갑자기 늘지는 않는다. 이 사장은 "회사 고위층이 캐나다 대사 등 관계자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우리한테 밀을 팔아달라고 읍소하며 다녔다"고 회상했다.

동아원은 아픈 기억을 잊지 않았고 수입 의존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직접 개발한다는 전략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 사장은 "해외 진출 시도는 많았지만 농작물 분야에선 모조리 실패했어요. 현지에서 농장 개발부터 시작하려다보니 무리수가 따랐던 겁니다"고 설명했다.

동아원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 업체들이 어떻게 해외시장을 개척했는지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현지 물량을 수매하는 1단계와 계약 재배하는 2단계를 거쳐 농장개발로 가야 성공한다는 점을 발견해냈고 실행에 옮겼다.

동아원의 노력은 오는 25일 캄보디아 바탐방 지역에서 첫 결실을 맺는다. 1단계인 '현지물량 수매' 차원에서 캄보디아에 옥수수 건조, 집하장 시설을 건립한 것. 이 사장은 "이런 시도는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이라며 "정부에서 27억원을 지원받았고 내년에는 캄보디아 파일린과 칸달 지역에도 시설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이 시설이 완공되면 지역마다 5만t씩, 연간 15만t을 들여올 수 있게 된다.

이 사장은 "이런 방식을 통해 무엇보다도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죠. 또 단가도 내려가 이를 가격에 반영하면 가격 경쟁력도 생깁니다"고 말했다. 나라의 식량안보를 일정 부분 책임지게 됐다는 자부심도 더불어 생겼단다. 동아원은 옥수수를 시작으로 밀 등 다른 작물도 직접 해외에서 생산하고자 태국,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준비 중이다.

수입이 대부분이지만 동아원은 국내 밀 농가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사장은 "밀 농가에 3∼4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고 국내 밀 품질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원은 지난해 전체 밀 수확량의 15%에 해당하는 1300t을 사들였고 올해도 3000t을 확보했다. 내년엔 1만5000t을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었다. 무려 전체수확량 대비 60%에 이르는 양이다. 미리 생산물량을 수매하기로 해두면 밀 농가들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깔렸다. 또 국산 밀 식감이 수입 밀보다 다소 텁텁한 느낌을 주는 점을 개선하고자 동아원 중앙연구소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사료 시장 규모는 5조원 정도.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소는 250만 마리, 돼지는 940만 마리, 닭은 1억2000만 마리다. 하지만 현재 쌀을 제외하면 식량자급률은 5%에 불과하다. 이 사장은 "소, 돼지, 닭도 먹어야 살고 사람도 소, 돼지, 닭이 살아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 2080억원을 기록한 동아원의 2015년 목표는 매출 1조원. 이 사장은 "기업간 중심 경영에서 기업과 소비자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해외 사업이 제 궤도에 올라서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한국경제의 희망,强小기업] (22) 경인양행


매출 1000억 돌파… 염료업계 독보적 선두
아버지는 적시타를 날렸고 아들은 구원 등판했다. 염료를 수입에 의존했던 시절, 고교 화학교사 출신인 아버지는 염료 국산화를 위해 기업을 세우고 업계 1위로 이끌었다. IT업계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던 아들은 염료업계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던 업체를 살려냈다. 지금은 연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창업주 김동길(71) 회장과 그의 장남인 김흥준(42)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끄는 경인양행 이야기다.

경인양행은 창업주가 2세에게 주식을 증여하거나 헐값에 넘기는 식으로 가업을 승계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출신 2세가 별도 사업을 하며 저축한 종잣돈으로 지분을 매입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경인양행 스토리를 듣기 위해 13일 서울 염창동 본사에서 김 부회장을 만났다.

김 부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기업 물려받을 생각하지 마라’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경인양행은 1971년 출발한 국내 염료업계의 독보적 1위 업체. 85년 100만 달러, 87년 200만 달러, 88년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쌓아올리며 급성장했다. 김 부회장이 대학생일 때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기업이 부쩍부쩍 커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버지 가르침에 따라 다른 분야 사업을 꿈꾸며 보냈다.

경인양행은 2001년 중국투자법인을 설립했고,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 의해 부품·소재 수출 선도기업으로 선정됐다. 2002년 5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뒤 몇 년간 침체기에 빠졌다가 지난해 7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현재 40여개국에 염료 등을 수출하고 있으며 매출의 70%가량을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경인양행이 재도약, 침체, 회복세를 겪는 동안 김 부회장은 IT업계에서 잘 나가는 기린아였다. 95년 친구들과 함께 나모인터랙티브를 설립해 공동대표로 일했다. 나모웹 에디터를 만든 회사다. 2003년 엔씨소프트 사업총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엔씨소프트는 글로벌 온라인게임업계 선두권 업체.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기업들의 지휘 라인엔 그가 있었다.

이런 화려함을 뒤로 한 채 2005년 경인양행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경인양행은 혼수상태에 가까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운명이 얼마 안 남은 회사 같다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차라리 사업을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죠.”

김 부회장은 경영에 참여하면서 김 회장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회사에선 전문경영인으로 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스맨(Yes Man)이 되지 않겠다는 뜻이죠. 다른 사람들은 회장님 의견에 반대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저라도 반대해야, 아니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사업에 100점짜리 정답은 없다”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 만큼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자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김 회장은 약속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우리 경제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을 운영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아들이 경영인으로서 회사를 다시 도약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단순한 대물림이 아닌 전문경영인 영입 효과를 보고 싶은 마음도 강했던 것이다.

메스를 든 김 부회장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 경인양행 사업 부문은 비용으로 보나 인력 구성으로 보나 레드오션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었다. 블루오션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고르게 재구성한 뒤 사업부별 책임제를 강화했다. 회사는 회생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전자재료 분야에도 진출하면서 매출액 1250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은 건 처음이었다. 수출탑 트로피도 6년 만에 다시 받았다. 올해 매출액도 지난해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공을 아버지 덕분으로 돌렸다. 사업 영역을 다각화한 건 김 부회장이지만 기업의 기초 체력을 다진 건 김 회장이라는 설명이다. “경인양행은 기술력에 승부를 거는 업체입니다. 요즘도 연구·개발(R&D) 인력은 교사와 연구원을 거친 회장님이 직접 선발하십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키웠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김 부회장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더 뻗어나가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유병석 기자 bsyoo@kmib.co.kr

 

[한국경제의 희망,强小기업] (21) 한국스마트카드

 

티머니 시스템으로 직원 1인당 8억 매출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는 외국 여성들은 ‘한국의 자랑거리’로 휴대전화에 이어 교통카드를 꼽았다. 카드 한 장으로 버스와 지하철, 택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보통신(IT) 기술이 교통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2004년 서울시 교통카드 ‘티머니(T-money)’가 도입된 뒤 서울과 수도권 시민 대다수는 선불형이든 후불형(신용카드)이든 교통카드 하나로 버스와 지하철을 탄다. 사용 횟수는 하루 평균 3500만건에 달한다.

교통카드 도입은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이 우리나라보다 빨랐지만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하나의 카드로 아우르는 시스템은 티머니가 유일하다. 버스나 지하철을 환승한 횟수와 상관없이 이동한 거리만큼만 요금을 부과하는 통합거리비례 요금제도 티머니가 세계 최초다.

한국스마트카드는 티머니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는 회사다.

사업 특성상 회사의 성격도 일반적인 사기업과는 다르다. 2

003년 서울시 교통카드 시스템 사업자로 선정된 LG CNS 컨소시엄(26개사)이 출자한 회사로 서울시가 대주주(지분 35% 보유)다.

“경쟁하는 업체가 없으니 너무 쉬운 사업 아니냐”는 질문에 박계현 사장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부인했다. 사업에 얽힌 많은 주체들과 부딪치지 않고 협업 관계를 잘 가져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 사장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버스운송사업자, 신용카드사, 이동통신회사, 편의점, 지방의 교통카드 사업자 등과 끊임없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취임한 박 사장은 서비스 고도화와 해외 진출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수많은 필요에 대응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승객들의 불편을 세심히 파악하는 데 소홀했다는 반성으로 정교한 서비스 구축에 나서는 것이다. 박 사장과 팀장급 직원들은 3개월 전부터 고객의 소리(VOC)를 취합해 집중 논의하는 모임을 매주 열고 있다.

티머니의 독보적 기술력은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티머니 시스템과 선불카드 인프라를 수출했다. 현재 웰링턴시 버스 300여대에 티머니 시스템이 구축됐고 유통 가맹점 150여곳에서도 티머니가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지에서 사용된 티머니 정산 작업까지도 한국의 정산센터에서 이뤄진다.

한국스마트카드는 웰링턴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추가 진출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멕시코의 교통카드 시스템 구축사업 입찰에 참여해 협상을 진행 중이며, 베트남에선 교통 시스템 구축에 관한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카오, 러시아 지방 정부에서도 수출 상담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박 사장은 “교통문제 해결은 어느 나라건 공통된 고민”이라며 “시내에서 승용차를 줄이려면 대중교통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값싸고 정확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서울시 사례가 모범이 된다”고 말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동전을 없앤 티머니는 교통카드에 머물지 않고 소액결제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화장품 숍, 놀이공원 등에서 카드로 결제하기 눈치 보이는 1만원 이하 금액을 티머니로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 교통결제를 제외한 유통결제 건수는 지난해 2056만건으로 전년 대비 245% 성장한데 이어 올해는 4000만건을 무난히 넘길 전망이다. 한국스마트카드의 지난해 매출은 903억원, 올해는 10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직원이 130명임을 감안하면 1인당 8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특히 휴대전화와 결합한 ‘모바일 티머니’가 지갑을 대신하고 있다. 3세대(G) 휴대전화 유심(USIM·가입자 인증 모듈)에 자동 충전과 결제 기능을 탑재한 모바일 티머니는 휴대전화 하나로 교통요금은 물론 온·오프라인 유통매장에서 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전자화폐다. 잔액이 부족해지면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와 연동, 자동으로 충전되기 때문에 기존 티머니보다 편리하다. 상용화 10개월 만인 지난 9월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박 사장은 “유심으로 할 수 있는 모바일 티머니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모바일이 아니더라도 자동 충전되는 선불카드 기능을 신용카드에 얹어 소액결제를 편하게 하는 서비스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한국경제의 희망, 强小기업―(20) 한성엘컴텍] LED 조명 제조사로 또 한번의 통 큰 변신

 


한성엘컴텍은 지금 변신 중이다. 20년 넘게 업계 수위를 달려온 전자부품 제조업체와 IT(정보·기술) 부품업체의 옷을 벗고,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제조업체로 주력 업종을 바꾸고 있다.

현재 LED 시장은 대표적인 친환경 산업으로 꼽히면서 국내에만 500개가 넘는 업체가 포진해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 발을 담그고 있는 LED 조명 분야는 웬만한 기술과 자금력만으로 업계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동종 업계에서 한성엘컴텍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이유다.

◇위기 때마다 변화 선택=31일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한성엘컴텍 본사. 2층에 자리한 고호석(53) 사장의 집무실 책상 한가운데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코드그린’이 눈에 띄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산업의 미래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요즘 CEO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을 탐독하면서 영감을 많이 얻고 있어요. 우리 회사가 이 시점에 왜 변신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한성엘컴텍의 변신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 회사는 1983년 전기 전류를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전자 부품인 ‘전해콘덴서’ 제조업체로 문을 열었다. 이후 전자레인지용 고압 콘덴서 제조를 병행하며 세계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 업계 1위를 달려왔다.

첫 번째 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수많은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상황에서 고 사장은 기존 사업 분야만으로는 더 이상 회사의 존립이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때 새로운 ‘먹거리’를 찾느라 동분서주하던 고 사장의 눈에 휴대전화가 들어왔다. IT 분야에 첫발을 담그는 순간이었다. 고 사장은 자체 연구소를 만들어 휴대전화의 핵심 조명 부품인 EL(형광물질 발광) 제품을 개발, 국내 최초로 흑백 휴대전화에 적용하면서 전자부품업체에서 IT 부품 제조 분야로의 업종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IT 기술은 회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IT 업체들이 신기술 개발 성패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상황에서 고 사장은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2003년 회사는 기존의 EL 부품에서 한 단계 진화된 LED 결합용 BLU(백라이트 유닛)에 이어 휴대전화 카메라 핵심 부품인 CCM(소형 카메라 모듈) 개발까지 잇따라 성공하면서 ‘IT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기술력이 변신의 동력’=한성엘컴텍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423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15가지 관련 기술 특허·실용신안 등으로 무장하고 2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 승승장구하며 올해는 매출액 2000억원까지 내다보고 있다. 그런 업체가 또다시 LED 조명업체로 세 번째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고 사장은 이미 2년 전부터 사내에 LED 조명사업부를 만들어 신규 사업에 대한 ‘워밍업’을 해왔다. 당시만 해도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용어가 요즘만큼 귀에 익숙하지 않던 시기였다.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기업들이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모든 분야에 친환경을 접목하고 있잖아요. 그 흐름을 타느냐, 못 타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한성엘컴텍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변화’를 외칠 수 있는 건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다. 경기 침체의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던 98년 2월, 남들은 사업을 접기 바쁜 상황에서 고 사장은 거꾸로 기술연구소를 만들었다. 연구원 모집 공고를 내자마자 3000여명이 몰렸는데, 고 사장은 이들 가운데 10명의 정예 요원을 뽑아 애지중지 키웠다. 현재 400여명의 직원 중 2개 연구소 70명에 이르는 연구진은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돌파구를 찾아내는 든든한 ‘구원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고 사장은 “LED 조명 분야만큼은 필립스나 오스람 같은 세계적인 조명회사 제품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면서 “남보다 한발 더 빠른 기술 개발이 우리의 주특기”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평택=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한국 경제의 희망, 强小기업] (19) 동방 노보펌
‘화재 차단 문’으로 건설현장 점령
1997년 오수호(55) 동방강건 사장은 독일 노보펌사(社)로부터 합작을 제의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유럽 최대 철강회사 티센크루프 자회사 노보펌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점유율이 높은 방화문 제조 업체로 1996년부터 아시아 진출을 위해 합작사를 물색 중이었다.

노보펌은 우리나라의 주요 방화문 제조사 7곳을 후보로 올렸다. 방화문을 공급받는 건설사에서까지 업체에 대한 평을 수집하던 노보펌은 동방강건을 파트너로 낙점했다. 그러나 오 사장과 그의 선친이자 창업자인 고(故) 오정섭 회장은 합작에 회의적이었다. 가업으로 시작한 사업인데다 합작에 대한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노보펌의 본격적인 구애가 시작됐다. 담당자들이 한두 달이 멀다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결국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구상하던 오 사장이 제의를 수용하면서 2000년 11월 합작이 성사됐다. 사명도 2003년 동방 노보펌으로 바꿨다.
오 사장은 “노보펌 관계자들이 건설사를 찾아 동방강건이 어떤 회사냐고 물었을 때 첫 대답으로 ‘깨끗한 회사’라고 들은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처럼 세계적 기업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선친인 오 회장이 이뤄놓은 기술적 성취가 바탕이 됐다. 1957년 국내 첫 강재 창호회사 동방강건을 설립한 오 회장은 초기부터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미국 UL(미국 최대 안전 규격 인증 기관) 인증을 비롯한 해외 인증을 취득했다. 출입문에 방화문으로서의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을 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수출을 시작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방 노보펌은 국회의사당, 인천국제공항, 63빌딩, 아셈 컨벤션센터, 스타타워, 그랜드하얏트호텔, 타워팰리스 등을 포함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의 아파트에 제품을 공급했다.

위기도 있었다. 노사 분규가 한창이던 90년대 초 회사가 어려워지자 오 회장은 92년 둘째아들인 오 사장에게 회사 정리를 부탁했다.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오 사장은 사업에 별 뜻이 없었지만 선친의 인생이 묻혀 있는 곳을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름에 응했다. 하지만 막상 회사 일을 맡고 나서 오 사장의 생각이 달라졌다.
“당시 분위기가 강성 노조 쪽으로 흐르긴 했지만 사원 개개인의 심성은 회사를 위하고 있었어요. 그에 힘을 얻어 사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속이는 게 없고 앞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원칙들을 철저히 지켜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오 사장이 사원들을 설득하는 동안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노조는 3년 만에 자진 해산했다. 이후 노사 분규가 발목을 잡은 적은 없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60% 이상 올라 회사 사정이 나빠졌을 때는 팀장들이 자신의 급여를 반납하는 대신 사원의 월급을 깎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오 사장이 회사를 맡았을 때 18억원대로 떨어졌던 매출은 지난해 267억원대로 올랐다.

올해로 52년째를 맞는 동방 노보펌은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현재 10% 수준인 수출 비중을 30%로 확대하고, 매출을 500억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오 사장은 “선친께서 정직과 함께 강조한 것이 나눔이었습니다. 자기 가족 먹여 살리는 것은 짐승들도 다 하는 일인데 그 이상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죠. 제가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사원들에게 많은 것을 돌려주는 사장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의 희망,强小기업] (18) 더존비즈온

‘경영정보화 솔루션’ 오라클과 맞대결
세계적 IT기업 오라클이 경쟁 상대라고 큰소리치는 중소기업이 있다. 경영정보화 솔루션 전문기업 더존비즈온이다. 더존은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기업인들에겐 친숙한 이름이다.


수도·전기요금은 아무 은행에서 내면 되지만 아파트 관리비, 대학 등록금은 특정 은행에서만 받아준다. 고지서 지로용지의 바코드에 특정 아파트의 다양한 정보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모 모양의 2차원(D) 코드를 활용한 더존의 '유비쿼터스(U)-빌링 시스템'이 도입되면 어떤 고지서든 모든 은행의 ATM기는 물론 편의점에서도 24시간 아무 때나 낼 수 있게 된다.

서울 양평동 본사에서 18일 만난 이중현 대표는 "지금까지는 일반 기업을 상대로 한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만 했는데 이제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U-빌링 시스템 등을 통해 일반인도 우리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더존은 모든 서비스를 한꺼번에 다 제공하는 특징을 가졌다. U-빌링 시스템을 보더라도 지로용지에 청구 내용을 담을 때 2D 코드로 인쇄되게끔 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고지 내용이 많은 비표준 장표도 일반 지로용지처럼 쓸 수 있도록 했다. 또 2D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스탠드형, 펜형 스캐너를 직접 개발하며 경쟁력을 더했다.

1991년 설립된 더존은 회계 프로그램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94년 '네오플러스'를 선보이며 이 분야 스타기업으로 등극했다. 97년 정보통신부의 국책연구개발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기술력 덕분에 큰 굴곡 없이 성장해 왔다. 세계적인 위기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이 대표는 "우린 97년 외환위기 때도 성장했다"면서 "세계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타격받은 기업들이 원가절감 등을 위한 대안으로 기업정보화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몇 차례 계열사 조정을 통해 현재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은 더존다스가, 중소기업 경영업무 전산화를 위한 경영정보솔루션(MIS) 개발은 더존디지털웨어가 맡고 있다. 하지만 각 사 장점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더존비즈온이 주체가 돼 두 회사를 합병, 다음달 20일 합병법인을 출범시킨다.
합병 후 더존의 매출액은 1100억원, 순이익은 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더존은 기업경영정보화 솔루션 소프트웨어를 원천 연구개발해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통합 IT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새롭게 출범할 합병법인 더존은 기존의 ERP, MIS 사업 외에 다양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솔루션 사업은 더존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 회계기준 단일화 추세에 발맞추고자 2011년부터 상장법인, 금융회사에 IFRS를 도입하기로 하고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12일 확정한 의무적용 대상은 상장사와 비상장 금융회사로 올해 7월 기준 유가증권시장 701개사, 코스닥시장 1016개사 등 1900개 기업에 이른다. 더존으로선 기존 자사의 ERP시스템 중에서 회계기준을 IFRS로 바꾸면 되기에 더존 ERP를 써 왔던 회사는 계속적으로 더존의 유력한 고객이 되는 셈이다. 더욱이 연결재무제표, 개별재무제표 작성에 필요한 솔루션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오라클, SAP 등 외국 업체와도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건실한 기존 역량에 차세대 동력의 시장성도 밝아 더존은 매달 10여명씩 연간 100여명을 선발한다. 내년 말이면 완공되는 강원도 춘천시에 '더존 IT연구개발단지'도 더존이 또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개발인력에겐 연구개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며 "좁아서 불편한 이곳에서 넓은 춘천으로 이전하면 여러 상황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