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소식지/월간 다시서기 1월호

다시서기센터 2018. 4. 4. 11:20






<본문 글>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이 된 큰 딸아이가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더군요. 이제 철이 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에 기특하여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더니 저의 한 건 부푼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렸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이유는 이번 기말고사에서 평점 얼마 이상을 받으면 엄마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허락했다는 것 때문이랍니다. 충격에 빠진 저는 절대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며 차라리 시험을 망쳐도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이유인즉슨 저희 집에는 이미 유기묘 두 마리와 얻어와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 합이 3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기묘 두 마리도 큰 딸의 동물에 대한 오지랖 때문에 길에서 주워온 고양이들이고요.


  아이의 입장은 더 완강해 졌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고 유기견을 데려오고자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온갖 유기견 사이트와 동물병원 홈페이지를 검색하던 아이는 인천 서구의 한 동물병원에서 보호 중이던 안락사를 앞둔 유기견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곤 저에게 끊임없는 설득과 회유를 하여 결국 개를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우리는 보더콜리 믹스견인 듯한 중간사이즈의 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인상은 개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과 너무 더럽다는 것, 그리고 기침을 매우 심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격은 너무 순하고 겁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듯 해 보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초 검사를 하는데 심장사상충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병이 깊지 않다고 우리를 설득하였고 저는 딸아이에게 판단을 맡겼습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장시간에 걸쳐 운전하여 온 곳에서 그냥 돌아서기가 참 난감했습니다. 무엇보다 녀석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녀석 레오를 덜컥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유기묘를 데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레오는 딸아이 방에서 지극정성의 간호를 받으며 낮선 동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밥도 잘 먹고 대소변도 잘 가려 하루 두 번 산책을 나갈 때 외에는 집안에서 실례를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기침이 잣아 들어도 집안에서 짓는 소리 한 번 내질 않아 가족들이 매우 신기해했습니다. 문제는 겁이 너무 많아 집안에 들어오면 딸아이 책상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심장사상충이 걱정되어 소개받은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우리는 그 병의 심각성에 한번 놀라고 그 치료비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딸은 그동안 자신이 조금씩 모아왔던 용돈을 모두 내기로 했고 아빠가 부족분을 메워주기로 했습니다. 치료 중에 털 깎고 목욕시키고 옷도 입히자 제법 괜찮은 애완견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지극정성의 딸아이 돌봄에 레오는 조금씩 가족들에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거나 산책 나갈 때 외에는 웅크리고 움직임이 전혀 없던 녀석이 누군가 집에 출입을 하면 문 앞까지 나와 문틈으로 구경을 하거나 딸아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고 반기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습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이런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참 큰 감동을 주었고 레오가 주는 친밀감에 소소한 기쁨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아직 치료 완료까지 한 달여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잘 견디어 내면 더 좋은 조건의 주인을 소개하든가 아님 우리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여 년 전 제가 가출청소년 쉼터에 근무할 때에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거리를 떠돌던 거친 아이들 중에 유독 키가 크고 서구적으로 생긴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머리를 길고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던 녀석은 정서적으로 심한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어서 상담에 매우 유의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와 상담 중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엉뚱하게 커다란 개를 데리고 농촌에서 농사지으면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개를 왜 키우냐고 물었더니 듬직하고 항상 자기를 믿고 따라줄 것 같다며 꼭 개를 키우고 살고 싶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고 상처 깊은 아이는 아마도 그 대체 대상으로 사람을 항상 믿고 따르는 우직한 개를 선택한 듯합니다. 서울역 광장에 나가면 우리가 만나는 거리 선생님도 노숙을 하거나 혹은 쪽방에 사시면서 개를 키우시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또 종종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는 서양의 노숙인들은 유독 개를 키우며 노숙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믿지 못할 사람보다 우직한 개가 더 의지가 된다는 생각에 개들에게 정을 주시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만큼 개는 알게 모르게 우리들 정서와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본 작가 기타가와 나쓰가 지은 출판만화 [개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에서는 어르신 호스피스 병동에서 유기견 보타모찌가 어르신들의 마지막 길을 어떻게 배웅하는지를 보여주며 개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고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외로운 노인들에게 보타모찌는 가족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 책의 서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만약 10년 전 어느 날, 보타모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인생의 끝부분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단 한 마리의 유기견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있다. 그렇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무술년 새해에 개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금년이 황금 개띠 해이기도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 주는 함의는 남다른 것 같습니다. 무조건적인 신뢰와 헌신, 관계에 대한 배려와 충성은 어찌 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받은 큰 선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었던 감정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긍정적 특징들이 올 한 해 우리사회에 넘쳐나길 기도해 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배려하고 가진 자가 가난한 이를 기억하여 나누는 세상, 거짓과 배신이 아니라 신뢰와 헌신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희 집에 들어온 레오는 우려와 걱정을 걷어내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미소와 감사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서 더 큰 기쁨이 되기 기대합니다. 다시서기 가족들도 이런 기쁨을 전하는 전령으로의 역할을 더 잘 감당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