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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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숍 방문기] 포트넘 앤드 메이슨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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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2009. 12. 7.



권여사님.

이제 곧 설인데 이 먼곳에서 달리 해 드릴 건 없고 궁금해하시던 <포트넘 앤드 메이슨> 백화점 사진이나 찍어 올려요. 그동안 다른 티숍들은 방문할 때마다 제깍제깍 방문기를 올렸었는데 이상하게 이 <포트넘 앤드 메이슨> 매장만 사진찍어 올릴 생각을 지금껏 못 하고 있었네. 눈 팽팽 돌게 하는 물건들이 많아 침 흘리며 구경하느라 그랬나? 










입구는 이렇게 생겼어요. 저기 저 창틀의 당초문 비스무리한 것acanthus과 묵직한 나무 문 좀 보세요.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를 연녹청색eau de nil과 나무색으로 조화시킬 생각을 다 하다니. 미술하는 친구가 런던은 디자인의 도시라 했는데 정말이네요. 하여간 런던엔 이런 식의 기가 막힌 배색들이 많이 눈에 띄어요. 비 오는 회색조 겨울에 빠알간 이층버스가 그 중 최고. 국회의사당과 빨간 이층버스 배색도 멋지고.










석수장이가 이렇게 대접받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새로 짓는 건물뿐 아니라 옛 건물 유지 보수하는 데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국엔 아직도 솜씨 좋은 석수장이들이 많아요. 영국에서는 석수장이들을 '스톤메이슨stonemason'이라 불러요. 그냥 '메이슨mason'이라 부르기도 해요. <포트넘 앤드 메이슨> 할 때의 그 메이슨 씨 조상도 아마 솜씨 좋은 석공이었을지 모르죠.  










1층에서는 이렇게 차와 커피, 과자들을 팔고 있어요. 앞 뒤 옆으로도 다양한 종류의 차가 진열되어 있어요. 원래 사진 찍는 분위기가 아닌데 권여사님이 궁금해하시니 막 찍어대요. 이렇게 어두운 실내에선 수동 조작해야 그나마 광량 확보가 되는데 지금 그럴 계제가 아녜요. 저기 뒤에 두 눈 부릅 뜬 점원이 서 있으니 사진 어두워도 그러려니 하세요. 오늘은 홍차가 있는 1층만 찍어요.









이쪽은 커피 코너랍니다. 광택 나는 근사한 나무통에 담겨있는데 보관하는 온도에 주의하라고 아예 뚜껑에 온도계가 다 부착되어 있어요. 커피 좋아하는 권여사님 생각이 났으나 괜히 또 오후에 커피 한 잔 드시고 잠 못 주무실까봐 파스. (→ 패스의 영국 발음)









이거 보고 눈이 번쩍 했을 권여사님. 그렇게 맛있다고 노래를 하던 포트넘의 크리스마스 티예요. 값을 좀 내렸네요. 크리스마스 지났다 이거죠. 홍차는 마셔 본 적도 없었다는 권여사님이 이런 향홍차가 입맛에 맞았다니 의외지 뭐예요. 대개 얼 그레이나 크리스마스 티 같은 향홍차들은 취향을 좀 타거든요. 이거 두 개 더 사서 월요일에 부쳐 드릴 테니 아낀다고 재탕, 삼탕 우려 드시지 않으셔도 돼요. 잘게 부순 홍차는 녹차와 달리 펄펄 끓는 뜨거운 물로 화끈하게 한 번만 우리고 과감히 버리는 거예요. 아까워도 어쩔 수 없어요. 옛날분들은 전쟁을 겪어서 그런가, 빈부에 상관없이 다들 알뜰살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주로 미리 담아 놓은 홍차를 사지만, 입맛이 까다로워서 자기만의 블렌드를 고집하거나 여유 좀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카운터에 가서 고급차를 따로 주문하기도 해요. 권여사님도 백화점 지하에서 커피 살 때 봉지에 미리 담아 놓은 것 안 사고 따로 이것저것 주문해서 섞기도 하잖아요. 차도 똑같아요. 사진에 있는 큰 통에서 손님이 달라는 대로 덜어 별도로 무게를 재서 팔아요. 


프랑스인들은 차보다 커피를 더 즐기긴 하지만 차를 마실 때는 꽃이나 과일 등 이것 저것 부재료를 넣어 향을 낸 홍차를 즐기고, 영국인들은 다양한 차끼리 이렇게 저렇게 섞어 진하고 꽉 찬 맛을 내는 홍차를 선호한다고 해요. 이런 영국식 차들은 홍차의 세계에서 대개 탄탄한 클래식 라인을 형성하고, 프랑스식 향수차(?)는 기분 전환용 바리에이션을 이루기도 하죠. 두 나라 사람들의 기질 차이가 차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죠. 요즘 젊은이들은 영국식 프랑스식 할 것 없이 그때그때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즐기지만요. 그래도 향홍차 중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얼그레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건 또 영국 차랍니다. 하하. 









보내 드릴 크리스마스 홍차 두 통 사 갖고 나오면서 이번에는 진열장을 찍어 봤는데, 어이구, 연식이 좀 된 느려터진 똑딱이로 뱅뱅 도는 저 회전 테이블 찍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어. 사진 좀 흐려도 그러려니 하시구랴. 저 크리스마스 과자 정말 예쁘지 않아요? 어쩜 과자를 저렇게 만들 수가 있는지. 표면에 울퉁불퉁 줄도 다 넣고. 내 지금까지 살면서 트리 모양 과자 수없이 많이 보았어도 저렇게 장식도 없이 심플하면서 예쁜 건 처음이에요. 가만 보니 영국 디자인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고. 투박한 아름다움 말예요. 빵이나 케이크에 글레이즈로 광내거나 과하게 장식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과·제빵 책들을 봐도 손으로 만든 티가 역력한 것들을 선호하는 듯하고요. 일부러 과자 부스러기를 접시 한 쪽에 슬쩍 흘려 두기도 하더라고요. 하여간 내 여건만 되면 언젠가 제과·제빵 꼭 배우고 말 겁니다.  왼쪽에 크리스마스 홍차통 또 보이죠?









2단 스탠드에 민스 파이 담아 놓은 것 좀 보세요. 잼이나 스프레드, 절임 등 각종 조제 식품들도 보이는데, <포트넘 앤드 메이슨>은 홍차로도 유명하지만 이런 고급스러운 조제 식품들로도 유명해요. 여왕이 이곳 조제 식품들을 좋아한다고 해요.









이번에는 3단 스탠드. 

과자도 탐나지만 옆에 있는 생철통도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네 했죠. 영국에는 철제 비스킷통 모으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전문가가 잡지의 고충 상담 코너에서 녹슨 틴 복구하는 법 강의도 다 합니다. 하여간 신기한 나라죠.









유리 제품들도 한국에서 보던 거랑 많이 달라요. 과자를 저렇게 막 쌓아 놓으니 은근 멋있지 않아요? 이곳 사람들은 음식 저렇게 담듯 정원도 최대한 안 가꾼 것처럼 보이게 가꾼다네요? 자기 집 정원에 야생동물 깃드는 것이 정원 가꾸기의 최대 목표라는데, 야생동물은 또 너무 깔끔맞게 가지치기 한 프랑스식 정원에는 오지를 않는다네요. 거미줄도 웬만하면 걷질 않는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에 영국인 친구 집에 초대 받아 갔을 때도 그 친구가 자기집 정원에 새 찾아 온다고 얼마나 의기양양해 하던지. 여름에 오면 개구리도 볼 수 있다고 아주 뿌듯해 죽어요.  









샴페인과 젤리네요. 연녹청색과 금색의 일관된 제품 포장. 저 배색은 아마 백년 가도 안 바뀔 겁니다. 영국에 와서 한 가지 깨달은 건요, 요즘의 최첨단 전자 제품이 신기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 남은 옛날 물건들이 더 신기하다는 거예요. 재료도 그렇고 솜씨도 그렇고, 옛날 제품들은 어쩜 그리 하나같이 품질들이 우수한지 몰라요.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도 옛날 것들은 지금처럼 싼 재질이 아닌 제대로 된 철제와 나무로 만들었더라고요. 과연 세상이 발전하고 있는 게 맞는지 헷갈린다니까요. 옛날 물건들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그렇게 옛것에 집착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영국인들은 자기들이 일으킨 산업혁명에 대해 뿌듯해하면서도 무언가 아쉬워하는 듯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유리 티포트 하나 장만해야 된다고 작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여기서 본 것들이 하도 삼삼해 다른 건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문제는 여기 티포트들 가격이 상상 초월이라는 거죠. 탄탄하니 실해 보이면서 디자인도 예쁘죠?










이건 더 끝내주죠?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죠? (과자는 이제 눈에도 안 들어옴.)










요것도 예쁘죠? 
깨지는 것들은 왜 더 소중하고 각별하게 느껴질까. 
질문 속에 이미 답이 들어 있네. 

 

하여간 권여사님이 궁금해하신 덕에 이렇게 사진도 다 찍고 게시물도 하나 남기게 됐으니 혹시라도 여기서 본 것들 중 마음에 든 것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내 당장 부쳐 드릴 테니. 아참, 말만 하면 안 되고 돈도 꼭 같이 주셔야. 떡고물로 포트넘 과자 한 통 사서 냠냠 먹고 깡통은 고이 모셔 두게 기왕이면 좀 넉넉히. 으흐흐.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요.